부산진 시장에서 화물전표 글씨는 아버지 전담이었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아버지가 시장에서 대접을 받은 건
순전히 필체 하나 때문이었다
전국 시장에 너거 아부지 글씨 안 간 데가 없을끼다 아마
지게 쥐던 손으로 우찌 그리 비단 같은 글씨가 나왔겠노
왕희지 저리 가라, 궁체도 민체도 아이고 그기
진시장 지게체 아이가
숙부님 말로는 학교에 간 동생들을 기다리며
집안 살림 틈틈이 펜글씨 독본을 연습했다고 한다
글씨체를 물려주고 싶으셨던지 어린 손을 쥐고
자꾸만 삐뚤어지는 글씨에 가만히 호흡을 실어주던 손
손바닥의 못이 따끔거려서 일찌감치 악필을 선언하고 말았지만
일당벌이 지게를 지시던 당신처럼 나도
펜을 쥐고 일용할 양식을 찾는다
모이를 쪼는 비둘기 부리처럼 펜 끝을 콕콕거린다
비록 물려받지는 못했으나 획을 함께 긋던 숨결이 들릴 것도 같다
이제는 지상에 없는 지게체
-『부산일보/오늘을 여는 詩』2025.02.04. -
그리움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큰 힘이 아닐는지요. 늙고 병든 아버지의 등을 밀며 낙인처럼 찍혀있던 지게 자국을 보았다는 시인의 시 ‘아버지의 등을 밀며’가 생각납니다. 노동자로 살아왔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몸에는 그들만의 흔적이 정신과 육체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아름다운 것 하나쯤 물려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 때문에 시인은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요.
시인은 늦깎이 대학생 시절에 야간 수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좋은 시집을 필사했는데요. 오른손 검지에 펜혹이 생길 때까지 필사를 했다고 합니다. 왜 시를 쓸까, 물을 때마다 좋은 시를 만나고 좋은 시인을 만났다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이 묻어있는 글씨체가 있을 겁니다. 흰 종이 위에 그리운 아버지의 이름을 적어봅니다.
〈신정민 시인〉
Blowin' in the Wind (2004 Remaster) · Peter, Paul and M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