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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어두운 주택가 골목길 귀퉁이에 도둑고양이 한마리가 자가용 밑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와 좌우를 살피더니 맞은편 담벼락에 고이 쌓여있던 쓰래기 더미와 음식물 쓰래기통을 노려본다. 마음을 먹었다. 앞발을 내밀어 몇 발자국 내딛는 그 순간. 고양이의 귀가 한쪽으로 쫑긋 쏠리다 금방 다시 자동차 밑으로 쑥 들어가 그림자도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자취를 감춰버린다. 골목 언덕 아래 쪽에서 멀리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바쁘게 올라오는 모습이 차츰 선명해 지다가 이제는 가쁜 숨소리까지 가깝게 들린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힘겨운 숨소리가 뛰는것이 버거운 노인이나 몸이 아픈 사람일 확률이 높았다. 언덕이라 걸어 오르는 것이 가뜩이나 힘겨울탠데 뛰어 올라오는 그 그림자는 차츰 가로등에 모습이 드러난다.
" 헉,,, 허억.."
큰 숨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속도. 천천히 모습이 노출된다. 가볍지 않은 발소리가 터벅터벅 골목과 주택 건물들 사이를 간간히 울린다. 가로등 밑으로 순간 보인 그 인영의 모습에서 노쇠한 한 노인이 어깨를 힘겹게 들썩이며 허연 입김을 남기다가 이내 사라진다. 언덕이 곧 내리막으로 바뀌어 그 노인의 가쁜 뜀걸음이 다시 힘을 얻은것일까. 발소리가 이내 빨라진다. 아니 빨라진것이 아니라 소리의 간격이 이상하리만치 가깝다. 알고보니 뒤에서 따라오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였다. 그 노인을 이제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할 만큼 가깝게 따라오는 이들이 내리막에서 몸을 잘 가누지 못하며 뛰어내리는 불상한 뒷덜미에 손이 거의 닿을랑 말랑한다.
" 아 씨.. 이놈의 영감탱이가 기운도 좋지 왜이렇게 지치지를 않아?"
" 거기서 !!"
노인은 필사적으로 그 손을 팔로 뿌리치며 앞만보고 달린다. 내리막길 끝자락 사거리. 노인이 탄력을 받아 더 빨리 뛰어간다 싶을때, 드디어 사고가 터진다. 꺽어지는 왼쪽 골목에서 똥개 한마리가 돌아다니다 그 노인의 발치에 치여 같이 크게 넘어진다.
" 깨깽!"
" 아이고!"
개는 다시 금방 일어나 왔던 골목길 쪽으로 냅다 뛰어가 버리지만 그 노인은 그 개처럼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한손으로 허리를 다른 한손으로는 무릎을 매만지며 신음을 토한다.
" 아이고.. 이놈들아.... 이 다죽어가는 늙은이를 잡아다가 뭐할건대 !! 아이고 나죽내..."
금방 그 노인이 쓰러진 곳에 모여 빙글 둘러싼 남자들은 입에서 거친 입김이 밥솥에서 나오는 김처럼 쉴세없이 토해져 나온다.
" 아.. 진짜... 애먹이누만요. 거..하아 "
그 남자들중 한명의 주머니에서 은색 팔찌 한셋트가 나온다.
" 수배범 조신철씨. 사기혐의 및 공무집행 방해죄로 체포합니다."
허리와 무릎을 매만지던 손을 우악스럽게 낚아 채, 그 멋드러진 은팔찌를 찰칵하며 채워버린다. 양옆에서서 힘겹게 그 노인을 일으켜 새운 남자들은 무전기로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 경찰차를 호출한다. 잠시 후 조용하던 골목가에 곤히 잠든 사람들의 짜증을 유발하는 싸이랜을 울리며 도착한 경찰차에 노인을 앞세운다. 그 노인은 최대한 아프고 억울한 표정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을 잡은 형사들을 올려다 보면서 천천히 탑승한다. 무슨일인가 나와보는 사람들과 항의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지만 둘다. 큰 소득을 얻지 못하고 점점 멀어지는 사이랜소리와 경찰차를 바라만 볼뿐이다.
초여름이지만 새벽이면 아직도 입김이 올라오는 경기도의 어느 인적드문 곳. 왕복 2차선 도로를 따라서 산길과 논밭을 구불구불 거슬러 가다보면 걷보기에 딱 보아도 군부대 이거나 아니면, 감옥이라고 감이 올법한 외관에 역시나 정문에 슬로건은 희망차고 긍정적이며 유치한 간판이 여지없이 걸려있다. 그런 간판이 오히려 그 안에 있는 장소를 칙칙하게 만드는 것을 모르는걸까. 높은 담벼락위에 둥근 철조망이 넝쿨대신 촘촘히 설치 되어있는것은 물론, 무인카메라와 군대군대 감시첨탑이 흔치않은 근처 방문객을 위축되도록 부추기고있다. 도랑에서 맹꽁이들이 꽉꽉대는 소리가 정겹지만 그 바로 넘어 지대에서는 이상하게도 더욱 차갑고 긴장감이 흐르는 공기를 느낄 수있다. 정문 철창문옆에 큰 초소건물안으로 하얀 형관등 불빛이 새벽 하늘의 밝기보다 밝아 눈에 띄지만 역시나 사람냄새, 아니면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다. 철창문과 별관 건물 사이, 얼마 되지 않는 마당공간안에 새벽잠이 없는 참새들만 바닥에 무슨 먹을것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닐뿐 썰렁하다. 벽돌건물 외관을따라 드믄드믄 뚥려있는 창문으로는 안의 모습이 보일랑 말랑 할 정도로 캄캄 한 실내를 보여주었지만, 잠시후 경쾌한 음악소리가 시작되면서 건물을 한 부분씩 밝은 등의 빛이 밝히기 시작한다. 걷으로 보기에 어두운곳이 밝아지니까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할 수 있겠으나, 그 안에서 마지막 불침번을 지내는 근무자를 제외하고 반기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아이고 저 소리좀 그만, 노래나 좀 바꿔주든가 매번 저거냐."
근무동내 무인카매라 모니터와 근무일지가 도란도란 어질러진 곳에서 야간 근무자들이 수형자들보다도 더 짜증이 섞인듯한 목소리로 마지막 옹알이를 한다.
" 아.. 이제.. 두시간만 참으면 퇴근입니다... 어제 밤도 참 길었어요..."
처음 볼맨소리를 내밷은 근무자보다 훨신 어려보이는 근무자가 양팔을 쭉 피고 기지게를 켠다.
" 복도 근무자들 움직이라고 무전좀 때려라.. 나는 10분이라도 눈을 붙여야겠다.."
모니터가 수십대 설치된 화면 아래쪽 책상에 던저놓은 모자를 푹 눌러쓴다음 선임자가 신경쓰지 않게 살살 문을 열고 나온다. 어느정도 사무실에서 멀어졌다 생각한 그는 무전으로 근무자들에게 보고를 요청한 다음 본인도 아침 점오를 참관하기 위해 1층 복도로 내려간다.
분주히 각 거실문짝에 달려있는 현황판과 안에 있는 사람들을 훍어보는 근무자들 가운대 서서 목을 살살 돌리며 천년 같은 몇시간을 견디기 위해 애를 쓴다. 인원과 건강어쩌고 떠드는 근무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자신이 들고있는 현황과 맞다고 대충 눈으로 휙휙 둘러보는 척 한 후, 시계를 슬쩍 본다. 이제 거실 청소와 식사 인솔이 진행된다. 주간 근무자가 사무실에 도착하여 정해진 구역의 인수인계가 목전에 다가오고 있지만 그는 상황실에 퍼자고 있을 자신의 맞선임을 깨우기 위해 허겁지겁 올라간다.
" 김교위님! 아.. 민철이형님! 아직도 자고계세요?"
선임인 김교위의 어깨를 거칠게 흔들어 자신이 빨리 퇴근하고싶다는 의사를 충분히 전달한다.
"어.. 아.. 10분만.. 밥먹고와.. 10분만 있다가 일어날게.."
" 밥은무슨! 밥먹다가 일터지면 또 저번처럼 붙잡히게요? 아빨리좀 일어나봐요!"
" 아씨! 왜자꾸 안달이야! 30분만 더 자고 일어난다니까!"
" 10분이라면서요.! 아 몰라! 밥먹고 올동안 옷 갈아입고 나와계세요!"
"어 알았어.."
민철은 우웅거리는 모니터의 잡음을 자장가 삼아 다시 잠에 빠진다. 후임자는 다시 문을 살살 닫은 다음 식당으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조금 먼길이지만 도착할때 쯤이면 한가하겠지? 예상했던 그는 식당안이 한참 붐비는 모습이 확실하여 잠을 설친 스트레스와 함께 가슴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다.
" 어 경호구나 밥먹으로 왔어?"
식사 통제를 하고있던 그의 동료이자 선임인 주간 근무자가 그의 험한 표정을 가늠하며 말을 건다.
" 조용히 구석에서 밥먹으면 누가 뭐라 안하겠죠..?"
"교정관님 출근시간이 어쩌면, 늦을수도.. 빨리먹고 일어나. "
" 네.. 감사합니다.."
배급줄을 훌쩍 뛰어넘어서 주방안으로 들어가 근무자들을 위한 밥과 반찬통을 열어 이것저것 푸짐하게 담는다. 뒷사람이고 뭐고 일단 담아낸 경호는 창가쪽 사람들 없는 곳에 앉아서 주위 수형자들의 어색한 시선을 무시하며 아침을 먹는다.
" 야이씨!"
어디선가, 평소라면 좀처럼 들어볼 수 없는 소란스러움이 시작되는가 보지만 도저히 의자에 몸이 들러붙어버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제발, 그냥 말싸움만 하다가 돌아가라, 제발, 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며 급하게 몇숟가락 남은 밥을 쑤셔 넣는다.
" 아! 이놈의 영감탱이가 밥맛떨어지게! 왜 재체기를 하다가 내옆에서 똥을 지리고 날리야!"
" 내가 니 할애비뻘이야 이놈아! 그리고 똥이라니! 방귀좀 새어나온거여! 니놈은 방귀도 안뀌냐?! 이놈아!?"
" 안뀐다! 어쩔래! 아 냄세! 오늘 아침 다먹었네! "
"아니 이놈이 증말로?!
주위에 있던 수형자들이 몰려든다. 아마 저 둘을 말리기위해 그러나보다 싶다. 하지만,
" 아니 노약자들은 먼저먹고 나가셨어야지 지금까지 뭘한거야? 나이먹은게 뭔 벼슬이라고. 시끄럽게 굴지말고 빨랑나가!"
근처에 서있던 누군가가 그 노인에게 윽박지른다. 금방 누그러 들것같지않은 분위기를 읽은 교도관들이 달려와 뒤늦게 사이를 갈라놓는다.
" 아니! 선상님들! 이것좀 놔봐. 내가 쭈글쭈글하다고 니눔하나 못때려눕힐거 같냐 이 새파란놈이! 내가 젊었을땐 박씽도 배웠었어! 아 잠깐 이것좀들 나보시라고! 몸좀 잠깐 풉시다."
노인은 교도관들의 만류를 뿌리치며 허리를 요리조리 돌리는 시늉을 한다. 허나 그모습을 보며 웃는사람이 태반이다.
" 허허 이놈들이? 다들 한명씩 밖으로 나와봐. 아주 피똥을 싸게 해줄라니까. 아 이거보쇼 좀 놓으라니까!"
경호는 교도관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그 노인을 끌어내어 평온한 오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속 주문을 외우는 중이다. 다행히 들려나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확인한 다음, 다시 따스한 아침 햇살을 음미하며 마지막 찬물 한잔을 들이 킬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20분이 흐른뒤라 선임을 깨운 후 옷을 갈아입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풍성히 잔반을 식판에 쌓아 올린뒤 한번에 훅 하고 잔반통에 던저 넣은 경호는 상황실로 향한다.
" 톡톡."
들릴듯 말듯 자는사람을 고려해서 살짝 노크 한다음 상황실 문을 연다.
" 어? 안계시네?"
상황실안에는 민철 교위는 없고 다른 주간 근무자들이 불 환히 켜둔체 근무준비로 한창이었다.
" 누구찾아?"
" 아. 그 민철 교위님 여기서 주무시는줄 알고 왔는대 안계시네요? "
" 김교위님 퇴근 하신다고 나가셨는대?"
" 네? 퇴근이요? "
" 어. 한 10분 됐을걸? 너도 퇴근해."
" 네.. 그럼 수고들 하세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경호의 표정이 아까전 노인의 불호령과 같은 노기를 띄는 듯 하다. 허나 그 노인과 마찬가지로 딱히 어떻게 복수를 할 건덕지가 없기에 1분도 더 이곳에 있기 싫다는 듯 탈의실로 뛰어간다. 뛰어가다가 혹여 누가 말을 걸어 세운다든가 연장근무를 해야할 돌발상황이 생긴다던가 하는 최악의 불길한 상황이 자꾸만 머리속을 맴돈다. 드디어 눈앞에 탈의실 문이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 어 경호야 잠깐만."
뛰어가다가 옆에서 누군가의 말을 분명히 들었지만 무시하고 탈의실 문을 벌컥 연다.
" 야야! "
호통이 들린다. 불행히도 그 목소리가 익숙한, 그리고 소름끼치게 싫은 문영철 교정관의 부름이었다.
" 어이 병아리. 교정관님이 부르시는대 관등성명도 없고 씹어? 민철이 어디갔어? 민철이 불러와."
경호는 뒤를 돌아 경례를 하고 대답한다.
" 교정관님 나오셨습니까? 김민철 교위님은 퇴근준비 하고 계실텐데.. 전화 한번 해보겠습니다."
" 사무실로 오라그래."
"넵"
영철 교정관이 완전히 자리를 비워서 경호는 민철에게 전화를 건다.
" 어 경호야 나 정문앞에 있으니까 빨리나와"
" 김교위님.. 교정관님이 찾으시는대요? 사무실로 오시랍니다."
" 뭐?! 그게 무슨 개떡같은 소리야! 퇴근시간 한참지났는대 집에가는 사람보러 다시 오라는거야? 장난하냐? "
" 아니면 통화를 한번 해보시는게 어떻겠어요?.."
" 아 증말 지가 무슨 대통령이라도 되는줄아나? 아니! 퇴근하는 사람보러 왜 또 다시 올라오래! 내가 전화 할태니까 넌 일단 정문으로 나와있어"
" 넵 "
경호 또한 짜증이 안나는 것은 아니었다. 김교위의 차량으로 함께 출퇴근을 하는것으로 편의를 보고 있었으며 그것때문에 근무를 최대한 같이 할 수 있도록 사정을 봐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었다. 만약 그가 발이 묶이면 차로 삽십분 넘는 거리를 걷거나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그러나 김교위가 비상 근무를 서게 된다면 경호는 기꺼이 걸어서라도 집에 가리라 마음먹는다. 경호는 옷을 천천히 갈아 입은 다음 햇살이 따듯하게 내리쬐는 정문 근처를 서성이며 바닥을 신발로 거칠게 훍는다.
약 10여분나 흘렀을까. 경호의 휴대폰에 김교위의 이름이 찍힌다.
" 네 어디십니까?"
" 야.. 나 좀더 여기 있어야겠다. 어제 하... 일반 거실에서 누가 얻어 터졌나봐. 왜 보고서에 작성 안됐냐고 난리다.. 다친사람 입실 시키고 경위서 제출 하라니까 오전은 꼴딱 날라간거지. 어떻할래 기다릴래?"
경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 아니요. 오늘 병원에 예약이 되어있어서 오전에 꼭 들려야해요. 저 혼자서 택시타고 가면 되니까 너무 신경 써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언른 가라. "
" 넵 고생하세요."
경호는 금방 콜택시를 불러 집 주소를 기사에게 불러준다. 택시비가 아깝기도 하지만 기다렸다가 같이 무슨 짐덩이를 떠안을지 모르는 마당에 차라리 혼자 맘편히 집에 가는것이 나은 선택이라 자부한다. 택시안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음악과 이쁜아줌마같은 여자DJ의 목소리에 취해 꿈뻑꿈뻑 졸던 그는 오전 아침의 푸릇푸릇한 논냄세와 풀냄세가 약간 쾌쾌한 도심의 콘크리트 냄세로 바뀐것을 느끼고 눈을 뜬다.
"네~"
한참 출근시간을 넘겼지만 그래도 이른 시간. 조용하고 넉넉한 도로와 길가를 볼때마다 남들과는 달리 쉴수 있다는 뿌듯함이 매번 밀려왔다. 돈을 계산한 뒤 택시에서 내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공원으로 들어간다. 공원 바로 뒤쪽 2층짜리 주거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그곳 중앙에 위치한 거처를 향해 지친 발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다.
공원에는 아침잠이 없으신 어르신들이 천천히 돌아다니거나 정자에 앉아있으신 모습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시끄러운 서울 기차역과 8차선 도로 부근의 원룸방살이. 2년간의 공시생 생활을 접고 작년 임용에 성공하여 이곳에 자리 잡은 후 일자리를 제외한 모든것이 만족스러웠다. 아니 그 한사람을 제외하고. 가끔 밤에 취객이나 중고등학생들이 소란을 벌이는 날이면 다음날 출근해야하는 자신에게 손해가 드는것 같아 분노가 솟구칠때가 있지만 막상 경찰을 불러도 그때뿐이었다. 때문에 분노에 휩싸여 뜬눈으로 밤을 세운 경험과 몇개월의 통달로 씨끄러운 소음속에서 잠자는 기술을 얻을 수 있었다.
2층 건물의 1층. 한층에 한가구씩 구성되어있는 건물의 특성상 약간 넉넉한 집안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 이사온 다음 이런 집에 여자친구 한명 대리고 와서 살면 참 좋겠다는 상상을 자주 해보았다. 허나 현실은 이 근처에 사는 자신의 직장동료 그것도 칙칙한 아저씨들이 들낙날락 하는 아지트나 다름 없었다.
경호는 문을 따고 들어와서 팬티를 제외한 모든 옷을 훌렁 벋어 빨래통에 던저 넣어버리고 어제 펴놓았던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눈을 감는다.
"띠리링!"
분명히, 이불속으로 들어간것 까지는 기억이 났는대, 갑지기 귓가에서 성가신 알람이 울린다.
"아이씨.."
이불을 힘겹게 걷어낸다음 캄캄한 방안의 불을 킨다. 하품을 늘어지게 한다음 부엌이 딸린 캄캄한 거실로 들어간다. 어제 저녁에 사놓은 시장표 닭강정. 먹다 남은것을 먹기위해 냉장고 안을 뒤잔다.
" 삐리리리리"
안방의 핸드폰 벨소리가 들린다. 스펨전화일까. 소에서 긴급 호출로 걸려온 비보일까. 여자친구의 애정섞인 연락이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이곳에서나 전에 살던 곳에서나 신기루같은 존재일뿐이다.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인간관계를 끊은체 살았고, 이곳에서도 근무스케줄 특성상 사람들 만날 기회가 없다는 좋은 핑게거리가 따라다닌다. 경제적인 여유나 있는가. 저 소리는 분명히... 소에서 걸려온 전화가 틀림없다. 때문에 비록 차갑게 식은 닭강정이 하찮았지만 저녁을 먹는다는 이유를 떠올려서 전화를 피한다.
" 윙윙.."
문자가 왔다. 전화를 안받아서 뭔가 남길말을 끝까지 전하겠다는 비열함이 느껴진다. 경호는 그 의도를 비웃으며 전자레인지에 닭강정을 넣는다. 데워지는대까지 기다릴수 있는 시간은 약 3분, 그 시간도 따분해서 낡은 tv를 킨다.
( 해외 산업스파이들의 활동이 발각되어 기업들의 핵심 기술이 누출되었다는 안좋은 소식이 들립니다. 기업의 문제만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국가적 손해가 아닐 수 없는대요. 자세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기술자들을 천시하니까 저러지 굳이 누출뿐이겠어? 인재들 빠저나가는거나 막으라고해"
TV앞에서 팔짱을 끼고 훈수를 둔다.
"띵. 띵"
닭강정이 알맞게 데워졌다는 신호를 듣고 후다닥 달려가 약간 미지근한 닭강정을 집어들어 TV앞에 앉는다.
(제작년에도 이런 비슷한 사례가 발견되었었죠? 당시 그 기술이 획기적이었다는 학계의 반응을 힘입어 국내를 떠들석 하게 만든 반 중력 부양장치의 개발자 조신철 박사 사건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 계약후 몰래 개발된 기술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해외 기업에 빼돌리려다. 적발 되었었죠. 결국 나중에야 그 기술이 상당부분 허구였다고 밝혀저 수사국과 국내 학계의 얼굴을 붉힌 사건 이었지만 만연해 있는 이런 관행과 열악한 개발 환경을 개선해야 하지 않겠냐는 반성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호는 그 발언에 힘입어 듣는사람이 있다는 듯이 혼자 열변을 토한다.
" 거봐라. 이 나라는 이래서 발전이 없다니까? 대학졸업하면 죄다 사무실에서 팬대잡으려고 하지 저런일을 하냔말이야? 이게다 정부가 무능해서 그런거아냐? 대우를 잘해주냐 환경이 좋냐 급여가 좋냐. 기술계통을 우대해줘야할거아냐?"
윗층에서 들어줬을지도 모르지만 대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뉴스와 그 다음 드라마까지 보는동안 그자리에서 꼼작 앉고 가만히 있던 경호는 TV위에 달려있는 시계를 본다.
"아씨.. 한것도 없는대 시간은 왜이렇게 빨라.."
다음날 아침출근의 스트레스를 미리 걱정하며 자리를 정리한 다음 씻을까 하며 화장실 불을 킨다.
" 아니다. 내일 아침 씻을건대 뭐하러 지금 씻냐.."
다시 불을 끄고 침실에 놓아두었던 핸드폰 문자를 확인한다.
[ 니 애미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도통 연락이 없냐 너는 어떻게? 이번주 주말에 집에 올라올거냐? 맨날 야근한다고 핑게대지말고 얼굴좀 비춰라. 아 그리고 이왕이면 혼자 올라오지말고 옆에 꼭 한명 더 대리고 올라와라 알았지? 문자봤으면 전화좀 해라.]
부재중 전화번호에 울엄마라고 떡하니 찍혀있다. 경호는 예전 부모님의 집에 있을때 독립하고 싶어서 안달이었지만 지금은? 지금도 집에 들어가고 싶어하는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핸드폰을 다시 이불 발치에 두고 창문을 벌컥 열어 환기를 시킨다.
" 야야. 점심때 그새끼 우리반에 알짱대던거 너 봤어?"
" 아니? 왜? "
" 얼굴도 쭈꾸미같이 생겨가지고 내 남친한태 꼬리치는거 저번에 봤잔아? "
" 아.."
" 달려가서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주고싶었는대 어떻게 알고 금방 도망가더라? 울 남친이 그딴년한태 넘어갈 수준은 아니니까 안심은 돼는대 생각할수록 괘씸하잔아?"
공원 어딘가에서 작은 불빛 4개가 켜졌다가, 꺼졌다가를 반복한다. 그 불빛으로부터 매쾌한 냄새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기분이다.
" 하.. 지내 집에가서 피우지 왜 꼭 여기서 난리냐고.."
경호는 환기를 포기한듯 창문을 닫는다. 여대생이라기 보다 여고생 아닐까? 이쁜가? 저것들은 언제까지 저기서 수다를 떨까? 새벽까지 조잘대면 나가서 뭐라고 해야겠다. 라는 생각 다음에 잘하면 저중에 하나 꼬실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이상한 생각까지 한다. 부모님이 교복을 입은 여자친구를 보시고 뭐라고 하실까. 아니 왜 이런생각을 하고있지? 경호는 자신의 생각이 부끄럽지 않았지만 그냥 허무하다고 느껴서 윗 이불을 들처매고 문 밖으로 향한다.
" 팡! 팡!"
자기전에 꼭 이불속 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어쩌면 있을 바퀴벌래를 털어내며 팔운동을 한다. 공원의 여고생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후다닥 4~5번 흔든다음 들어가 버린다.
" 철컥."
현관문을 잠근다음 약간 차갑게 식은 이불을 급히 안방에 던저넣는다. 내일은 주간근무 후에 헬스장을 꼭 들러야 겠다며 마음먹고 이불속에 몸을 넣는다.
첫댓글 헬스장에 가려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