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 스님]
한국불교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명절은 다섯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네 가지는 부처님의 생애와 관련된 것이다.
이를테면 불탄일(음4월 8일) · 성도일(음12월 8일) ·
출가일(음2월 8일) · 열반일(음2월 15일)이다.
여기에 우란분절(음7월 15일)을 추가하여 5대 명절로 삼고 있다.
앞의 4대 명절은 부처님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날을 기린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우란분절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욱이 불교입문서에서 조차 우란분재의 본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곳이 있다.
이처럼 우란분재의 본뜻이 왜곡된 가장 큰 원인은
'우란분(盂蘭盆)'이란 말이 인도 고전어인 산스크리트(梵語)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란분'의 원어는 범어 '울람바나(Ullambana)'이다.
이것을 중국에서 '우란분(盂蘭盆)' 혹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
소리나는 대로 번역하기도 하고, 구도현(救倒懸)이라고 뜻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구도현이란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울람바나(Ullambana)'라는 단어는 범어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울람바나는 형용사 람바나(lambana) 혹은
아와람바나(avalambana)가 변형된 말이기 때문이다.
울람바나(Ullambana)는 형용사 람바나에 다시 접두사 U(…위에)가
첨가된 단어다.
'람바나'는 '아래쪽으로 매달린' 혹은 '거꾸로 매달리게 하는 것'
이란 뜻이며, '아와람바나'는 '매달린', '기댄'의 뜻이다.
따라서 울람바나는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한다'는 의미의
구도현(救倒懸)으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원어의 의미를 정확히
번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란분이란 단어가 갖고 있는 뜻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 어의(語義)만으로는 우란분절의 참뜻을 알기 어렵다.
이제 우란분재의 본래 의미를 살펴보자.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매년 승려들의 안거(安居)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에 여러 스님들에게 공양을 베풀면,
그 공덕으로 현재의 부모는 물론 과거 7대의 부모까지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란분재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신통제일이었던
목련(目連)존자가 비록 육신통(六神通)을 얻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귀도(餓鬼道)에 빠진 그의 어머니를 구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께 자문을 구하였는데, 부처님께서는 목련존자에게
스님들의 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에 승재(僧齋; 승려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를 베풀면 그 공덕으로 선망부모를 구제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이 일러주신 대로 이 날 승려들에게 공양한 결과
그의 어머니를 구제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란분재의 시초이다.
다시 말해서 우란분이란 생전에 지은 무거운 죄업으로 지옥에서
거꾸로 매달려 심한 고통을 받을지라도, 이 날 시방의 스님들을
청해 모시고 맛있는 음식으로써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으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란분재의 본뜻인 '승재(僧齋)' 혹은 '승공(僧供)'의
의미는 퇴색되고, 영가 천도의식(薦度儀式)이 주로 행해지고 있는데,
이러한 오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운서(雲棲)스님이 지은 <정와집(正訛集)>에 의하면, "세상 사람들이
7월 15일에 귀신에게 음식을 올리는 것을 우란분대재(盂蘭盆大齋)의
모임이라고 생각하나 이는 와전(訛傳)된 것이며, 이 날 선조(先祖)의
혼령(魂靈)과 아귀에게 공양 올리는 것은 본래의 의미가 아니다.
우란분재란 목련존자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7월 15일이란 많은 승려들이
해재를 하여 마음대로 규약을 받지 않는 날이니 90일을 참선하여
득도(得道)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 날에 공양을 하면 그 복이 백 배나
된다는 것이며, 귀신에게 시식(施食)하는 것은 아니다.
시식이란 아란(阿難)에게서 비롯된 것이니 7월 15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우란분재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범어 울람바나(Ullambana)의 음역인
우란분(盂蘭盆)을 다시 한자로 풀이함으로써 빗어진 해프닝을 들 수 있다.
이를테면 우란분의 분(盆)을 그릇의 이름으로 이해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분(盆)은 bana의 음역이기 때문에 그릇과 전혀
관계가 없다.
이러한 잘못을 <현응음의(玄應音義)> 제13에서 이미 지적하고 있다.
한편 우란분절은 민족의 고유 풍습인 백종날과 혼동되었다.
백종일(白踵日; 음력 7월 15일)은 우리 민족의 축제일로 모든 농민이
일손을 놓고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날이었다.
절기 상으로 농한기(農閑期)인 이 때 우리 조상들은 백 가지 과실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풍류를 즐겼다.
현재 경남 밀양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백중놀이가 그 대표적인 풍습이다.
이러한 민족 고유의 풍습이었던 민중의 축제, 즉 백종과 불교의 우란분재가
결합하므로써 백종(百種 · 白踵), 혹은 백중(百衆 · 白衆 · 百中)
등으로 불리어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날을 효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명절로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우란분재의 본뜻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와 같이 우란분재의 의미가 여러 가지로 변질될 경우, 불가 고유의
행사였던 안거(安居)와 자자(自恣), 그리고 승공(僧供)의 의미가 점차
퇴색되어 버리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한편 우리는 음력 7월 15일 이 날을 백종 혹은 백중으로 부르기보다는
원어에서 유래한 우란분절 혹은 우란분재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고,
우란분절보다는 우란분재로 부르는 것이 보다 불교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란분절은 단순히 절기[날짜]에 초점을 맞춘 것인데 반해
우란분재라는 말은 본래의 의미인 승재(僧齋) 및 재계(齋戒)의 뜻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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