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 아래서도
시월 셋째 목요일이다. 달력상 가을이 이슥해진 시월 중순인데도 날씨는 아직 지친 폭염의 여운이 남아 제 자리를 잡지 못하는 듯하다. 일교차가 커져 아침저녁 선선한 감이 들어도 낮에는 기온이 여전히 높다. 우리나라 가을 날씨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높고 푸른 하늘을 언제 봤는가 싶다. 엊그제 비가 한 차례 지나갔음에도 맑은 날은 잠시고 주말 앞두고 또 강수가 예보되었다.
아침에 그간 자주 이용한 창원역 기점 운행 마을버스 첫차를 타지 않고 명서동 원이대로에서 본포를 거쳐 북면으로 가는 30번 버스를 기다렸다. 충혼탑과 창원대로를 둘러 온 본포행 버스를 타고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강고개를 넘으니 동읍 일대는 아침 안개가 짙게 끼어 가시거리가 무척 짧았다. 올가을 들어 몇 차례 안개가 끼긴 해도 이번만큼 짙게 낀 날은 아니었더랬다.
차창 밖으로는 안개가 자욱한 아침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거쳐 주남삼거리에서 화목 화양을 지났다. 동전을 지나면서 무거운 짐을 안은 할머니와 노인복지센터로 출근하는 아주머니가 내렸다. 남은 승객은 에어컨 부품을 만드는 작은 회사로 출근하는 한 처자와 같이 용산마을에서 내렸다. 산남과 주남 두 개 저수지를 수문으로 경계 짓는 짧은 둑을 따라 걸으니 마을 안내판이 나왔다.
그간 용산이 두 개 저수지 사이여서 물이 흔한 마을이라 ‘용 룡(龍)’ 자를 쓴 용산(龍山)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늘날 주남저수지로 완성된 둑을 쌓기 이전 늪지 시절부터 있던 자연마을이 디딜방아처럼 생겨 붙여진 지명이었다. 내수면 순수 어업에 6가구 종사하면서 마을이 시작되어 단감을 재배하는 5가구에다 나머지는 80여 가구 벼농사를 짓는 규모가 큰 마을로 되었다.
용산마을에는 예전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오래전 폐교되어 주남 생태학교로 바뀌었다. 세월이 흘러 운영과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형편이지 싶다. 안내판에 희미해진 글자에는 용산의 ‘용’은 한자로 ‘디딜방아 용(舂)’자였다. 디딜방아는 Y자로 갈라진 통나무에 공이를 박아 절구에 곡식을 빻는 도구였다. 돌로 된 절구는 우묵하게 파인 확으로 알곡을 채워 방앗공이가 닿는 구덩이다.
농업용수로 내보내 수위가 낮아진 저수지 수면에는 마름을 비롯한 습지 식물이 가득 덮어 자랐다. 여름에 넓은 잎을 펼쳐 화사한 꽃을 피웠던 연들은 잎사귀가 모두 시들어 서리를 맞은 듯했다. 용산마을 들러리에서 합산마을로 가는 산남저수지 둑을 따라 걸으니 가장자리에 무성한 갯버들과 이삭이 팬 물억새가 보였다. 합산을 지나니 텃밭에 불꽃 맨드라미 꽃송이가 눈길을 끌었다.
합산에서 추수가 시작된 들녘을 따라 걸으니 안개는 짙어 언제 걷힐지 모를 듯했다. 마침 들녘 한복판엔 안개꽃을 가꾸는 비닐하우스와 파프리카 농장을 지나기도 했다. 가촌마을이 저만치 보였고 맞은편 상등마을은 진영 아파트단지와 이어졌는데 아직 안개가 쌓여 있었다. 농로를 따라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겨 디뎠다. 마을도서관 열람실을 찾을 생각은 접고 산책으로 보낼 참이다.
가촌에서 산업단지와 장등을 지난 가술에 닿으니 10시가 되었는데 안개는 서서히 걷혔다. 도서관으로 가질 않고 행정복지센터 인근 삼봉 어린이공원 쉼터에서 보냈다. 배낭에 넣어간 국어학자 남신혜가 쓴 ‘K- 예능과 우리말’을 꺼내 읽었다. 방송과 젊은 세대에 퍼져가는 신어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점심때가 되어 국숫집으로 들어 한 끼 때우고 오후는 가술 국도변을 거닐었다.
아침나절 짙은 안개에 이어 하루 내내 하늘은 잿빛으로 흐렸다. 국도를 건너는 육교 주변을 서성이다 초등학교 울타리와 이어진 들판으로 나가봤다. 봄날에 꽃을 한 번 피웠을 야생화들이 철을 잊고 다시 피어났다. 노란 괭이밥꽃이 귀여웠고 토종 민들레가 흰 꽃으로 피어 포자가 날렸다. 곁에는 여름에 핀 망초도 한 번 더 피었고 제철 꽃으로는 둥근 잎 유홍초가 무리를 지었다. 24.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