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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원하느냐 (막3-52)
2024년 8월 28일 (수요일)
찬양 : 주 내 아버지
본문 : 막10:46-52절
☞ https://youtu.be/W9pAW5FIjr4?si=wqc6yum1mjdWzNve
어제는 중보기도팀 일일 부흥회가 은혜롭게 마쳤고, 이어서 공동체 예배로 라마나욧선교회와 웨이브리즈 플랫폼 그리고 땡스기브가 연합하여 예배로 하나님을 경배했다. 모든 시간 함께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오늘은 안산에 있는 파트프라임에서 웨이브리즈 플랫폼 개발회의가 있다. 소중한 시간 주님의 은혜로 파트프라임과 함께 웨이브리즈의 새로운 자리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도한다. 주님 파트프라임을 축복하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은 매우 잘 알려진 바디매오란 맹인 거지의 치유 장면으로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찾는 상황을 특별하게 소개한다. 46절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바디매오가 성문 밖에 앉아 구걸하는 맹인 거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문 근처는 구걸하는 자들에게 매우 좋은 위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바디매오는 들어오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있다.
바디매오는 떠나시는 예수님 소식을 듣고 놀라운 반응을 보인다. 47절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아마도 여리고성을 찾으신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것이고 그 안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란 표현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는 호칭이다. 다윗의 후손으로 언약된 메시야로 예수님을 믿었다. 여기서 바디매오가 외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헬라어로 "ἐλέησόν με" (eleēson me)로 <자비를 베풀다, 동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ἐλεέω" (eleeó)에서 나온 것이다.
바디매오가 외친 이 말은 행인에게 나를 불쌍히 여겨 한 푼을 달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바디매오는 자신의 생애에 전혀 해보지 않은 놀라운 선포를 하고 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자신의 앞을 지나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해 줄 자비와 능력을 베풀어 주시기 위해 오신 메시야임을 믿었고 그렇게 간절히 호소하는 것이다. 그의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그는 거지로서 돈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을 믿는 자로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주님으로 간절하게 찾은 것이다. 바디매오가 얼마나 간절하게 매달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대매오가 누구를 찾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얼마나 주님을 찾았으면 예수님과 함께한 일행들이 너무 힘들어서 바디매오를 꾸짖는다. 48절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많은 사람이 꾸짖어>
바디매오의 간절한 외침은 많은 사람의 꾸짖음의 이유가 되었다. 그들은 바디매오의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맹인 거지가 존귀하신 예수님의 길을 방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예수님 가까이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는 이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있던 누구도 다윗의 자손 예수여 하며 외친 바디매오의 진심을 알지 못했고, 거지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무시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한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사람의 꾸짖음은 우리가 가진 진심을 무너뜨리는 이유가 되곤 한다.
그래 내가 거진데 보지도 못하는 내가 이렇게 외친다고 누가 알아주겠어 ~ 그저 한 푼 줍쇼 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지 ~ 하면서 좌절하곤 한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오히려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을 붙잡고 그 누구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소리를 더 크게 외쳤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야가 자신을 만나주실 것을 믿었다. 그에겐 꿈이 생겼기 때문에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냥 한번 혹시나, 어쩌다 <나 예수님 만났다> 자랑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소망 눈을 치료하여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믿음으로 외친 것이기에 멈출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만 놀랍게도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며 소원을 아뢰는 최고의 복을 누린다. 49절, 51절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은 맹인 거지 바디매오를 부르시고 소원을 물으신다. 그는 거지로서의 소원 한 푼을 구할 것이냐? 아니면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눈을 뜨는 기적을 믿음으로 구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조금의 주저함이 없이 <선생님 보기를 원하나이다>하고 외친다. 여기 바디매오가 <선생님>이라 부른 것은 헬라어 "Ῥαββουνί" (Rabbouni)이며,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영적 지도자이자 메시아로 인정하는 표현이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단순한 교사나 스승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으로 여기고, 그분께 모든 신뢰를 두고 있다는 신앙 고백을 담아 이 호칭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단순히 시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 그의 삶의 모든 문제를 치유하시는 메시야로 구원자요, 자신의 참 주인으로 믿었다는 말이다.
그는 그 믿음이 있었기에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외쳤다. 많은 사람은 놀랐을 것이다. 미쳤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 장면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오직 주님은 바디매오의 믿음을 아셨고 믿음대로 구원을 받았다고 선언하셨다. 눈을 치료하시지 않고 그를 구원하셨다. 그리고 구원은 곧 그로 보게 하셨고, 바디매오는 가라는 말씀을 넘어 예수님을 따른다.
물론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는 표현은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 그분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따르며 새로운 영적 여정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돌아가는 자가 되지 않고 믿음대로 그는 그분의 제자가 되어 따르는 자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주님은 그것을 보셨던 것이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주님은 내게 물으신다.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너는 나를 얼마나 간절하게 찾고 있느냐?
너는 나를 어떻게 부르고 있느냐?
오늘 나도 거지처럼 한 푼을 구해야 할 거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맹인이다. 그리고 많은 꾸짖음도 듣고 있다. 바디매오가 바로 나다.
주님은 오늘 내게 물으신다. 아니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초대하신다. 진정한 당신의 자리로 말이다. 나로 바디매오처럼 주님을 믿고 부르짖으라고 말이다. 누구의 꾸짖음에 주저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며 넘어오라고 하신다.
오늘 나의 원함은 진실로 주님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친절하게 전해줄 수 있는 종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주는 진리를 누구나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도록 전하는 종이 되게 하소서. 이것이 나의 원함이다.
주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가 맹인입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보고 싶습니다. 주님을 주인을 모시고 따르고 싶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중보기도 제목>
웨이브리즈: 플랫폼이 새로운 도약을 이루며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목회사관학교: 진짜 목사가 세워지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재정적 필요: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스페이스 알 사역: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틴케이스 공간: 젊은 세대를 세우는 공간으로 소중히 쓰임 받게 하소서.
작은교회 부흥: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충주 라마나욧: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