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0년대🌺 |
✿1539년 조선 중기의 문신, 정치인, 시인, 성리학자, 교육자, 화가 이산해(李山海) 출생
이산해 (李山海 1539∼1609)조선 중기 문신.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 본관은 한산(韓山). 1561년(명종 16) 식년문과에 급제, 이듬해 홍문관정자가 되었다. 그 뒤 부수찬·병조좌랑 등을 거쳐 사헌부집의·동부승지·대사성 등을 지냈다.
이산해(李山海, 1539년 7월 20일 ~ 1609년 음력 8월 23일)는 조선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 정치인, 시인이며 성리학자, 교육자, 화가이다. 당적은 동인, 북인에 속했으며 당의 주요 수뇌부이자 전략가였다. 본관은 한산, 자(字)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종남수옹(終南睡翁)·죽피옹(竹皮翁)·시촌거사(枾村居士).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사육신의 한사람인 이개(李塏)의 종고손이 된다.
관직은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을 거쳐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조선 명종 때부터 광해군 때까지 벼슬을 한 조선시대 학자,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거친 당대의 세도가이자 문장가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서훈되고 아성부원군(鵝城府院君)에 책봉되었다.
156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문장력을 인정받아 명종의 명을 받아서 경복궁 대액을 썼던 그는 여러 벼슬을 거쳐 1588년 우의정에 올랐다. 기축옥사 무렵 좌의정, 영의정에 올랐으며, 1590년에는 광국공신 3등으로 책록되어 아성부원군에 책봉되었다. 기축옥사의 참혹함을 보고 서인에게 원한을 품고 서인 공격의 선봉장이 된다.
1591년 세자 책봉파문(건저문제)로 실각한 정철과 서인의 처벌을 놓고 동인이 내부의 여론이 나뉘었을 때는 정철을 사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으며, 남인과 북인으로 갈릴 때에는 북인의 지도자가 되었다. 1590년과 1591년, 1592년, 1599년과 1602년 세 번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했다. 화가 이산보의 사촌 형이며, 토정비결의 저자인 문신 겸 역술인 이지함은 그의 숙부이기도 했다. 토정 이지함, 남명 조식의 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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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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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 광무 황제, 강제로 황제 자리를 물려줌-순종(純宗) 즉위.
제27대 순종(純宗, 1874~1926)
1907년 7월20일 광무 황제, 강제로 황제 자리를 물려줌-순종(純宗) 즉위. 순종은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조선 제27대 왕입니다. 묘호는 순종이고, 시호는 효황제입니다. 생일인 3월 25일은 대한제국 때 '건원절'이라는 이름의 국가 경축일이었습니다. 1907년(융희 원년) 8월 7일 궁내부대신 이윤용이 황제 탄신경절을 건원절로 개칭하자고 상소해 이를 윤허하였으며, 다음해인 1908년(융희 2년) 음력 2월 8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3월 25일로 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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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한ㆍ중 연합군, 羅南 72연대 대파 🌲48년 국회,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 선출 (24일 취임). 🌲50년 공산군, 대전 점령, 딘 소장 납치 🌳65년 박정희 대통령·박순천 민중당대표 회담 🌲68년 정보부, 추자도 간첩사건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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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미국 아폴로 11호 암스트롱 인류최초 달착륙
미국 아폴로11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1969년 7월 20일 바위로 뒤덮인 달의 `고요한 바다` 표면에 인류최초로 발을 내디뎠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1호 발사와 함께 시작된 미소간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미국이 처음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순간이었다. 소련은 그동안 첫 유인우주선 발사, 첫 지구궤도 선회, 첫 우주유영 등에서 미국을 앞서 나갔다.
아폴로11호 착륙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달 착륙선 이글은 암스트롱과 올드린을 태워 모선 콜롬비아를 떠났고, 함께 출발한 콜린스는 달 주위를 110km 상공에서 계속 돌았다. 마침내 달 착륙선의 해치가 열렸고 인류최초로 달에 내린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인간의 작은 발자욱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거대한 도약"이라고 감회를 표현했다. 18분 늦게 달에 착륙한 올드린은 첫 발을 내디면서 "아름답군, 아름다워, 멋진 황량함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진의 주인공은 올드린이 차지했다. 암스트롱만이 카메라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2시간 31분을 달에 체류하며 예정대로 임무를 모두 마친 이들은 달을 떠나 모선인 콜롬비아호와 도킹하고 지구로 귀환해 하와이 남서쪽 1500km에 위치한 태평양에 무사히 착륙했다.
왼쪽부터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 사령선 콜롬비아호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착륙선 이글호 조종사 버즈 올드린. NASA 제공
17일 발사된 이래 119시간 18분이 소요됐고 120만km의 우주여행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비행사들을 직접 환영하기 위해 항공모함 호네트에 타고 있었으나 유리창 너머에서만 이들을 대면할 수 있었다. 비행사들은 엄격한 검역으로 3주간 격리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검역이 끝난 후 뉴욕과 시카고에서는 국가적인 영웅을 환영하는데 어울리는 퍼레이드를 벌였고 전 미국은 열광했다. 이후 미국은 아폴로 11호를 시작으로 1972년 12월 17호까지 다섯번 달착륙에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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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년 신민당 전당대회(당수 김홍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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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브루스 리(이소룡) 사망
‘드래곤 위기일발’ 촬영중 타이의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브루스 리(왼쪽)와 감독 로우 페이.
불세출의 쿵푸 스타 브루스 리(32)가 애인인 여배우 베티 팅 베이의 맨션에서 쓰러져 홍콩의 퀸 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973년 7월 20일 사망했다.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영화계 흑막에 의한 암살’, ‘뇌수종·가슴통증 때문에 마셨던 진통제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 ‘애인 베티 팅 베이와 성관계 중 돌연사’ 등 여러 설이 있다.
그는 그때까지 당시 미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뛰어난 액션으로 미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인 그는 홍콩으로 돌아와 홍콩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누리며 영화회사인 골든 하베스트사와 계약한 후 1971년 홍콩 골든하베스타사(社) 제작의 ‘당산대형(唐山大兄)’에 출연하면서부터 크게 인기를 끌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진부하고 유치했지만 빛나는 그의 육체미가 영화의 성공에 한 몫을 담당했다.
‘비폭력 맹세를 하고 꾹 참아오지만, 악인의 비도덕적 행위에 결국 철봉을 휘두른다’라는 캐릭터가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로써 그는 중국인이기 때문에 미국사회에서 받아야하는 갖가지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실력으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계속해서 그는 ‘정무문(精武門)’ ‘용쟁호투(龍爭虎鬪)’ 등의 영화를 통해 중국인의 강한 이미지를 서양인들에게 심어 주었다.
그러나 이날 돌연 요절한 것이다. 액션 배우가 된 그의 아들 브랜든 리마저 1993년 ‘The Crow’ 촬영 중 실탄이 장착된 줄 모르고 연기하다 발생한 뜻밖의 사고로 목숨을 잃자 이후 ‘저주받은 부자(父子)’라고 불리워지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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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미국 무인우주선 바이킹1호 화성 연착 성공
바이킹 1호에 의해 최초로 촬영된 화성의 표면. 생물체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었다.
미국 NASA의 무인우주선 바이킹1호가 1976년 7월 20일 11개월간의 비행 끝에 화성 크리세 플래니티아(황금의 땅)에 연착륙하는데 성공, 지구의 사막 지형과 놀랍도록 유사한 바위투성이의 화성표면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화성의 신비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착륙 25초 후부터 화성표면 사진촬영에 들어갔고 19분 만에 지구로 첫신호를 보냈다.
우주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화성탐사를 진행해왔던 미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 사진촬영, 토양분석, 기상관측, 그리고 최대의 관심사인 ‘화성에는 지금 생명체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과거에 존재했었는가’의 조사를 목적으로 약 1년 전 2대의 무인탐사기를 쏘아올렸다.
착륙후 주변풍경 관찰과 기상관측, 그리고 대기와 토양 분석 등의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생명활동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화성표면이 바위투성이의 검붉은 사막으로 구성되어있고, 토양 분석 결과 희박하게나마 수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과 생명체의 4대 요소인 질소 산소 수소 탄소가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약 1개월 후 다시 발사된 ‘바이킹2호’가 지진계 고장으로 지진관측의 임무를 다 하지 못한 ‘바이킹1호’를 대신함으로써 화성이 지구보다 내부의 활동이 적다는 것도 밝혀졌다. 이 바이킹계획의 성공으로 지구에 보내진 방대한 사진과 데이터가 화성의 지도작성과 지질학, 기상학 등의 연구에 크게 공헌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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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고리원전 1호기 준공식
경남 양산군 고리에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고리원전 1호기`.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자력발전 1호기가 7년 7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1978년 7월 20일 준공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원자력발전소 보유국이 됐다.
당시 원자력 1호기의 시설용량은 58만7천kw로 우리나라 전체 발전용량 6백59만kw의 9%선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외자 8백40억원 등 총 1천5백60억원의 공사비가 든 고리원전 1호기는 발전 시설용량 58만7천kw의 가압경수로형으로서 당시 국내 기술이 전무해 미국의 웰코사가 전반적인 건설책임을 지고 원자로 설비와 연료공급을 맡았고 영국에 제너럴일렉트릭사가 터빈 발전기 공급과 토건공사의 감독을 맡았다. 국내에서는 현대와 동아건설이 원자로와 터빈 공사에 하도급업체로 참가했다.
세계각국이 급증하는 전력의 공급선을 공해가 비교적 적은 핵에너지에서 찾기 시작한 것은 고리원전 1호기 준공일로부터 불과 20여년전의 일이었다. 1956년 9월, 영국의 칼더홀 원자력발전소가 세계최초의 상업발전을 시작한 이래 각국은 다투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에너지자원이 부족하기만 했던 우리나라도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1962년 원자력발전소 건설구상을 하기 시작, 1971년 고리원전 1호기를 착공, 7년 7개월 만인 1978년 오늘 그동안의 온갖 우여곡절을 뒤로하고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준공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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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김진호,세계궁도선수권대회 5개의 금메달-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여자 부문 6개의 금메달 중 5개 🌲79년 카터 미대통령, 주한 미 지상군 철수 문제를 1981년에 재검토 발표 🌲81년 한국·인도네시아, 건설협력협정에 합의 🌲84년 IBF 주니어밴텀급 챔피언 전주도, 필리핀의 도전자 데빌로스에 7회 KO승,4차 방어 🌲84년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국내 최대의 부처 진신 사리 3과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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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남아공 보타 대통령, 비상사태 선언
남아프리카공화국 나탈루에서 한 흑인 청년(가운데)이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198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거의 전쟁 상태나 다름없었다. 백인 소수정부는 비합법인 아프리카인민족회의(ANC)에 의한 산발적인 게릴라 습격과 학생단체, 노동조합, 지역조직 연합체인 통일민주전선(UDF)의 봉기에 직면해 있었다. UDF는 돌과 화염병만으로 무장한 남아공 군인들과 싸워 나갔다. 보타 대통령은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21일 0시부터 비상사태를 선언한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흑인 데모대를 철저하게 탄압하기 시작했으며 월말까지 약 천여명 이상을 체포했다. 이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지자 각국에서 시민운동이 일어나 남아공을 제재하라고 자국 정부에 강력 요구했다. 첫 조치로 뉴욕에 있는 체이스 맨해튼은행이 남아공의 채무연기를 중지한다고 발표하자 다른 은행들도 동참했다. 경제위기에 직면한 남아공 기업가들이 ANC 간부와 협상을 벌여 한정적인 개혁을 이끌어 냈지만 남아공에서의 인종차별정책은 계속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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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이현재 서울대 총장 전격 해임. 후임에 박봉식 교수 임명 🌲85년 경찰, '민중예술'처음으로 규제.'1985 20대의 힘' 등 작품 30점 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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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유학생 이재환, 오스트리아 빈에서 납북
1987년 미국 MIT대 경영학과 박사과정 유학 중 오스트리아 빈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납북된 이재환씨.
미국 MIT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이재환씨(25세)가 여름 방학을 맞아 배낭여행을 하던 중 1987년 7월 2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 기관원에 의해 납북됐다. 북한 중앙방송은 사건발생 19일이 지난 8월 8일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한국 유학생 이재환씨가 3국을 통해 의거입북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본인의 자유의사를 확인하자는 우리 정부의 요구에 응답을 하지않았다.
이씨는 서울대 영문과 재학중이던 83년 도미해 미시간대, 스탠퍼드대를 거쳐 MIT 대학원에 재학중이었다. 납북후 이씨가 북한에서 결혼해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대한 연구와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으나 국가정보원은 1999년 1월 이씨가 탈북하려다 붙잡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있던 이씨의 사망소식이 알려진 것은 2001년 2월 북한 조선적십자사가 대한적십자사에 이 사실을 전하고 나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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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신문협회, 중앙지 기자의 지방주재와 지방지 기자의 서울주재 제도를 8월1일부터 부활시키기로 결의 🌲87년 태백시 한보탄광 광원ㆍ가족등 600여명, 처우개선등 요구하며 농성 🌲87년 민정당, 개헌안 요강 발표 🌲88년 충북 북부, 영서 남북, 경북 북부 집중호우로 26명 사망 12명 실종 🌲88년 재야 11단체,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위한 민주단체협의회 발족 🌲89년 정부, 남북교류협력협의회 제4차회의에서 재일교포 이대경 목사의 방북신청을 처음 허용 🌲89년 손성필 북한적십자위원장, 평양축전에 참가 했던 임수경의 판문점 통과 귀환과 귀환후의 신변 보장등 요구 🌲89년 광주시내 23개 고교생 1만 5000여명, 전남대와 대동고에서 전교조 가입교사 징계에 항의 🌲89년 서울시내 노점상 2000여명, 명동 일대에서 노점상 철거 항의 시위후 명동성당에서 철야 농성 🌲90년 노태우 대통령, 8월17일을 '민족대교류기간' 으로 선포하고 남북한의 전면개방 및 자유왕래를 제의- 북,거부 🌲90년 김대중 평민당 총재ㆍ이기택 민주당 총재ㆍ 김관석 통추회의상임대표, 통합정당을 결성키로 🌲90년 소 물먹여 도살 판매-마리당 30-50키로그램 늘여 🌲92년 김달현 북한 부총리, '경제5단체장들을 초청 하고 싶다'고 밝혀 🌲92년 민자당 임채정후보가 낸 노원을구 당선무효소 송에 따른 대법원의 재검표 결과 86표 가 늘어 당선 🌲93년 현대자동차 분규 극적 타결-긴급조정권 발동 🌲94년 정부, 6ㆍ25전쟁은 북한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과 공모해 도발- 공식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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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전국에 폭염, 영천과 밀양 39.4℃, 합천 39.2℃, 마산 39.0℃
1994년7월20일..전국에 폭염,
영천과 밀양 39.4℃, 합천 39.2℃, 마산 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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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대한변협, 검찰의 `5ㆍ18'사건 불기소결정과 관련 반법치주의적이고 반역사적인 결론-비난성명 발표 🌲95년 민변, 국회위증 혐의로 전두환 이희성 등 7명 고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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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제26회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 모습.
20세기 마지막 지구축제 96하계 올림픽대회가 1996년 7월 20일 오전 9시30분 미국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화려한 개막식을 갖고 16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인종 종교 국경을 초월한 온 인류가 한자리에 모인 제26회 하계올림픽대회 개막식은 `지상최대의 쇼`로서 올림픽 최대 하이라이트 `영웅들을 부른다`는 주제로 4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한국 선수단은 알파벳순에 따라 케냐에 이어 오전 11시10분쯤 남자배구의 기수인 최천식을 앞세우고 96번째로 입장했다. 이번 올림픽대회에서 한국은 유도 양궁 배드민턴 레슬링 등에 금 7개 은 15개 동 5개를 획득해 우크라이나(금 9개)에 이어 종합 10위를 차지했다. 1996년 8월 5일 주경기장서 폐막식을 끝으로 올림픽 창설 1백년 째에 거행된 애틀랜타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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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정부, 한국전력이 제출한 대북경수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사업에 대한 협력사업자 신청을 승인 🌲98년 해양부, 해양환경개선 분담금제 및 해양환경 보전해역지정ㆍ관리제를 도입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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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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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북한 고려항공, 양양공항(南)∼선덕공항(北) 남북직항로 첫 시험비행
2002년 7월 20일 오후 선덕~양양 간 남북 직항로 개설 시험비행을 위해 양양국제공항 활주에 내린 북한 고려항공기 뒤로 대한항공 여객기가 이륙준비를 하고 있다.
북한 고려항공 소속 JS-802편이 20일 오후 1시8분 양양공항에 도착, 휴가를 마친 한국전력 관계자 등 남측 인사 8명을 태우고 오후 2시 북한 선덕공항으로 되돌아감으로써 대북(對北) 경수로 건설의 인력·물자 수송을 위한 양양~선덕간 남북 직항공로 첫 시험비행이 실시됐다. 이날 고려항공기의 비행은 공해상을 이용한 915km의 역(逆)‘ㄷ’자 항로로 이뤄져 1시간25분 가량이 소요됐으나, 단축항로를 이용키로 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 간의 합의에 따라 앞으로는 630여km에 1시간10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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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20일 한희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서 첫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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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7월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방한중인 블레에 영국총리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 해결 방안과 양국 간 경제교류 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두 정상은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는 북한의 핵개발 포기 및 국제사회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블레어 총리는 다자대화 방식을 통한 해결에 대한 지지입장을 표명했다.
두 정상은 또 양국 간 경제교류를 확대키로 하고, 특히 이라크 재건사업에 공동참여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키로 했다. 이에 앞서 19일 블레어 총리는 일본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핵문제 해결을 위한 5자 회담 수용을 북한에 촉구했다. 블레어 총리는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핵 다자회담에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것을 강력 지지한다”고 말했다.
블레어 총리는 7시간30분 동안 서울에 머문 뒤 이날 밤 중국 베이징으로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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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최석우 몬시뇰 선종
최석우 몬시뇰(명예 고위성직자)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의 개척자인 최석우(崔奭祐·87) 몬시뇰(명예 고위성직자)이 2009년 7월 20일 오후 6시45분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했다. 1922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최 몬시뇰은 고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가톨릭대학에서 공부하고 1950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벨기에 루뱅대와 독일 본대학교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각각 석·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64년 〈한국교회사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 2005년 주교 서품을 받지 않은 천주교 고위성직자를 뜻하는 '몬시뇰'에 임명됐다.
1992년 최 몬시뇰이 시작하고 2006년 후임 김성태 소장 시절 완간된 《한국가톨릭대사전》(전12권)은 그의 대표적 역작으로 꼽힌다. 14년간 천주교계뿐 아니라 국사학계와 개신교계 학자 등이 두루 참여해 만든 대사전은 8000여 항목에 1만여 장의 사진으로 꾸며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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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0일, 러시아 출신 억만장자 유리 밀너, 외계인 탐사 프로젝트에 1억 달러 기부
인류는 신대륙 발견을 넘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누군가 ‘저 하늘 너머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고 묻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러시아 출신의 억만장자인 유리 밀너(Yuri Borisovich Milner, 1961년 11월 11일 ~ )다. 그는 지난 7월 20일 영국 런던의 왕립학회에서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 프로젝트에 10년간 1억 달러(1,160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Yuri Milner, with Stephen Hawking on Monday, promised to spend $100 million to search for signals from alien civilizations.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란 외계 지적생명체를 찾기 위한 일련의 활동을 통칭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외계 행성들로부터 오는 전자기파를 찾거나 그런 전자기파를 보내서 외계 생물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능을 갖춘 생명체라면 규칙적 전파를 발송할 것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는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SF영화 ‘콘택트’로도 대중에게 알려졌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