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실록에는 김종서 황보인 등 정승들이 왕위를 찬탈하여
안평을 옹립하려 했다고 되어 있으나, 늙은 정승들이 역적소리 들어가며 어린 왕을 폐하고
시퍼런 안평을 옹립해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닌것으로 봄이 합당합니다.
단지 왕이 어리고 왕실에 수렴청정할 어른이 없으므로
어린 왕이 성장할 때까지 나라를 맡아 관리할 수밖에 없는
대신 그룹으로서는 대군들에 의한 정변, 특히 수양의 정변 시도를 우려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최소한 보위를 넘볼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의 안평을 끌어들여 수양을 견제하려 했던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대신 그룹과 안평의 견제로 조급해진 수양은 거의 막가파식으로 자기 세력 확장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이러한 행위로는 반대 진영의 경계심만 자극할뿐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수양이 무엇인가 돌파구를 찾고자 고심할 때, 수양 앞에 나타난 자가 있으니 이 자가 바로 우리 역사 최고의 책사인 한명회입니다.
수양은 한명회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야망을
이룰 계획을 착착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명회는 수양 앞에서, “어린 임금이 있을 때면 옳지 못한 이가 정권을 잡아 권세를 부리지만, 충의로운 신하의 반정으로 바로 잡히게 되니, 이는 하늘이 정한 이치입니다”라고 그럴듯하게 아뢰니,
수양은 이로써 갈 길을 명확히 하게 됩니다.
한명회는 안평, 김종서 등에 대한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는 한편,
홍달손, 양정, 유수 등의 무사를 끌어들여
충성서약을 받았고 수양은 수양대로 신숙주, 홍윤성 등 측근 영입에 박차를 가하는 등 거사를 향한 준비를 착착 진행시켰습니다.
그 중 신숙주는 합류를 권하는 수양에게 “장부가 편히 아녀자의 품에서 죽기를 바라겠습니까”라는 말을 하며 수양의 편에 서게 되는데, 세종, 문종으로부터 성삼문 등과 더불어 어린 단종 보호의 특명을 받은 바 있는
신숙주의 이러한 변절은 후일
‘숙주나물’이라는 말을 생기게 합니다. 물론 수양은 ‘수양버들’이라는 말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요
한편, 수양은 상중에 있는 어린 단종에게 종묘사직을 위해 중전을 맞이할 것을 강력히 권했고,
뜬금 없이 치세와 관련된 상소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어린 단종은 물론 노련한 김종서,
황보인까지도 수양이 왕위까지 노리는 것은 아닌 것으로 오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김종서 등의 방심을 겨냥한 수양과 한명회의 책략이었습니다. 어린 단종의 처지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습니다.
- 계유정난 -
실록에 나타난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킨 결정적 명분은 안평대군과 김종서등의 역모였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들이 역모를 꾀했을까요?
단종실록에서 안평과 김종서의 역모 증거로 제시되는 첫 번째는 김종서의 측근 이징옥이 북방의 무기를 한양으로 빼돌렸다는 것인데, 안평과 김종서 등이 힘을 합쳤다면 역모사건을 조작한 후 한양의 군을 동원해 수양을 치고 단종을 압박하면 될 일이지, 대단한 것도 아닌 칼과 창 같은 무기를 굳이 북방에서 한양으로 옮길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영의정 황보인의 노비 아무개가 황보인 등의
구체적 역모계획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갖바치가 등장하는데, 어떻게 일개 종이 거사계획의 내밀한 부분까지 샅샅이 알게 되었는지는 고사하고 그 아무개
종의 이름조차 실록은 밝히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모로 보나 이는 수양과 한명회가 만든 억지 명분에 불과하다 하겠습니다.
어쨌든, 수양은 계유년 모월 모일 거사일을 정하고,
활쏘기를 명목으로 군사를 모은 후,
가노인 임어을운, 양정 등 소수의 무사들만 데리고 직접 김종서의 집으로 가 임어을운으로 하여금 방심한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치도록 했고, 이로써 북방의 대호라고 불리운 천하의 명장 김종서는 허망하게 꼬꾸라지고 말았습니다.
김종서만 해치우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한명회의 장담대로
김종서가 쓰러지자 달리 수양의 행보를 막을 그 어떤 시도도 찾아 보기 어려웠습니다. 수양과 한명회는 그동안 규합한 군졸들을 몰고 그날 밤 입궐해 안평이 김종서 등과 공모하여 불궤한 짓을 도모하였기에
먼저 김종서 부자를 베었다고 하면서 대신들을 모두 대궐로 불러들이게 하였습니다.
그날 밤 입궐한 대신들은 문 너머의 책임자 한명회의 손짓 여하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었는데, 야사에는 한명회가 직접 살생부를 작성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대신들을 죽일지 말지를 고개를 끄덕이는지 여부에따라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 날로 안평대군과 그의 아들은 강화로 압송되었다가
얼마 뒤 사사되니 안평의 나이 36세였습니다. 또한 잠시 살아났던 김종서 역시 그 날로 이승을 하직했고
그 외에 수양의 반대편에 섰던 무수한 대신들이 죽었으며
그 아들 중 16세 이상은 교형에 처해졌고
15세 이하의 아들은 관노로 전락했으며, 처, 첩, 딸은 노비 신분이 된 뒤 공신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안평과 김종서등의 역모를 명분으로 난을 일으킨 수양,
그러나 그 역모의 진위를 파헤치고자 하는 어떤 시도는 커녕 오히려 입을 열 기회도 주지않고,
당사자들을 모두 서둘러 죽여 버렸으니, 이는 수양의 명분이 그야말로
명분에 불과했음을 자인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저 세상에서, 손자 수양대군이 형제를 비롯한 무수한 신하들을 죽이고
장차 증손자인 단종까지 죽이려 한다는 것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면 과연 뭐라 했을까요? 자기를 닮아 과단성이 있다고 칭찬했을까요 ? 아니면 다 자기의 업보라며 땅을 쳤을까요 ? 태종만 생각하면 사실 조금 고소한면도 있습니다.
계유정난의 손쉬운 성공으로 이제 세상은 온전히 수양의 것이 되었습니다. 어린 단종은 어찌 홀로 그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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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수양의 집권방식이 우리의 현대사에 그대로 반영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