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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잠깐만. 오늘 토요일이지?"
" 네.."
" 오늘 그... 뭐 있지않았냐?"
" 오늘.. 아니요. "
" 그 왜. 외출하는 사람 있었던거같은대?"
" 그런가요.. 따라다니려면 고생들 하시겠네요."
" 설마.. 우리보러 따라가라고 한다면, 그냥 교수형대로 뛰어갈지도 몰라. 나좀 잘 잡아줘라."
" 뇌에 빵꾸가 나지않았다면 우리보러 가라고 하겠습니까?"
" 난 집에가서 자야되.. 너도 내일 비번이지? 집에가면 일단 핸드폰을 꺼두자고."
" 그러자구요."
눈꺼풀을 억지로 끌어올리며 옷을 갈아입는 그 두명의 뒷모습을 한명의 그림자가 덮는다.
" 여 벌써 집에들 가나.?"
김교위가 먼저 뒤를 돌아 불청객의 정체를 확인한다.
" 교정관님 오셨어요? 오늘 요일 착각하신거 아닌가요.?"
" 어. 아니야. 오늘 외출자들 꽤 되잔아? 주간근무자 빼고 한가한 사람들이 일손을 보태줘야지."
" 그런가요."
" 뭔 영화를 그렇게 본다고들 나가는지 원.. 자네들 내일 비번이지?"
" 글세요. 근무표좀 봐야겠네요."
" 맞을거야. 내가짯는대 모를라고. 오늘 오전에 약속 없으면 같이좀 가지? 왠종일 있을것도 아니고 오전에만 잠깐 나가는건대."
경호는 김교위보다 먼저 교수형대로 뛰어가고싶은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차피 간밤에 잘 잣을거 아니야? 나도 잘 알지. 조금만 고생들 해줘. 연장 찍어줄게."
그 두명은 그자리에 굳어서 몸을 바들바들 떤다.
" 외출자 확인해서 운동장으로 인솔 해둬."
" 저기 교정관님."
김교위가 멋지게 반기를 들려는것처럼 말한다.
" 오늘 장인어른 제사인대 장모님 모시고 멀리 가야되거든요. 죄송합니다."
" 그래? 하필 오늘? "
" 네. 저번달부터 오늘을 벼뤄온날이라 빠질수가 없습니다."
" 아이고. 그렇구만 그럼 어쩔수 없지. 경호만 고생하겠네 넌 일층내려가서 인손좀 돕고있어라."
아침이나 먹겠다는 말을 차마 할수 없어서 그냥 내려간다. 말이 오전이지 외출자들 다시 이곳으로 대려오고 뭐하고 하면 세시를 훌쩍 넘길탠대. 맨날 결혼 안하냐며 구박하던 교정관이 연애할 시간이나 주면서 그런말을 하면 좋겠다 생각한다.
일층에 내려온 경호를 맞이하는 선임자들은 하나같이 왜 집에안갔냐고 물어보는대 그것이 더 얄미워보였다.
" 교정관님이 잠깐만 도와달라고 하셔서요.. 오전만 거들고 집에 가라시네요."
" 여기서 사십분만 올라가면 되니까 너무 부담가지지말어. 너나이때 실컷 일하는거뭐. "
그선임의 옥수수를 몽땅 털어버리는 대신, 거실 사이에 있는 벽에 기대서 천창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는다.
약 한시간정도, 모범수와 노약수형자들을 중심으로 20여명이 모였다. 무슨 고등학교 소풍가듯이 인원체크를 한 후, 부러움을 한눈에 받으며 대절버스로 한명씩 태운다.
" 고생이 많으십니다.. "
외출자들 중 끼어있는 말썽쟁이 노인이 인사를 건낸다. 모두 탑승한 다음, 경호는 오른쪽 앞줄에 자릴잡아 창문에 기대어 선잠을 자려한다.
" 기사선생 노래좀 돌려봐봐. 어린 여자애들 나와서 흔드는 그런거 있잔어.?"
꾀꼬리가 울어도 타이밍이 맞아야 듣기좋은법인대 그날 경호에게는 영 좋지 않았다. 기분 맞춰준답치고 기사가 소리를 빵빵하게 올려서 돌려준다.
" 하씨..."
사십여분 동안 그 노래를 따라부르며 박수치고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한숨도 못잤다. 논밭이 도시로 변해가는 과정을 일일이 충혈된 눈으로 봐야하는 고통속, 드디어 멀리 ccv영과관 건물과 수형자들의 환호가 들렸다. 이제 멀쩡한 사람들이 수없이 노니는 번화가의 극장 주차장에 도착한 버스가 평복차림의 중년, 노년의 남자들을 쏳아낸다. 들뜬 그들과 다르게 무표정했던 교도관들은 물건 나르듯 사람들을 위로 올려 보낸다.
맨 뒷줄에서 터덜터덜 따라가는 경호에게 말썽쟁이 노인이 따라붙는다
" 어제 밤세도록 야간근무 섯지요?".
" 그랬지요."
" 영화 시작하면 눈좀 붙이셔야겠어요."
" 저는 아직 젊어서 괜찮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 젊은 사람은 뭐 사람도 아닌가보요? "
" 네 .. 아닌가봐요."
" 젊은 선상님은 그래도 좋은일 하면서 고생하니끼 보람은 있겠죠?"
" 월말이면 가끔 그럽니다."
" 아이 그러면 안돼죠. 꿈이니까 그 고생을 하고 여기까지 온거 아니요?"
" 꿈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 그럼 꿈이 뭐시였소?"
" 그게... 말 하기가 좀 그래요.. 밖으로 꺼내기 민망한 크기랄까요. 누가알면 훅하고 꺼저버릴 촛불갔달까."
" 이보시오... 내말좀 들어봐봐요. 꿈이란건 . 굳이 꺼내지않아도 그 열기가 밖으로 후끈하게 터저나오는법이지. 날 보시오. 아마 이 늙은이 가슴속에는 젊은 친구들이 둘러서서 빙글빙글 돌고있는 캠프파이어가 일렁이고 있을지도 몰라요?. "
" 조신철씨는 무슨꿈을 꾸시길래 활활 타오른답니까?"
" 나중에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든 세상이 알게될거요. 허허."
경호가 보기에 좀 호기로운 노인이다 여겼었는대, 이제보니 세계 정복정도 꿈꾸는 사이즈가 아닐까 추측한다. 상영시간 15분전. 각자 마실 콜라나 씹을거리를 사서 보고싶은 영화 상영관에 삼삼오오 모인다. 들뜬 수형자들이 신나서 소음공해를 만들기 바빳지만 경호를 비롯한 외출 통제관들은 눈이 빠른속도로 한명한명 감시하느라 죽을맛이다.
영화가 시작될 시간이 되어서 곧 그곳은 잠잠해진다. 캄캄한 상영관 안이라면 완전히 골아 떨어질까봐, 경호는 가방과 옷을 파는 이층 아웃랫 주변을 맴돌기로한다. 날이 더워 짜증날만도 하건만 여기 저기 커플들이 서로 찰싹 들러붙어 어찌나 짹짹 대는지 에어컨 온도를 높이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몇분후, 얼마 돌아다니지 않은것 같은대 여러가지로 피곤했다. 어디 기대거나 앉았으면 좋겠다 싶어 디저트 매장이 모여있는 일층으로 내려간다. 역시 여긴 더워서 그런가 사람이 별로 없다. 덥지만 그나마 가장 시원할 것 같은 그늘진 벤치를 찾아 앉는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얼굴 구경, 옷차림 구경, 아이스크림 매장안에서 수다를 떨고있는 아가씨들 구경, 그러다가 이젠, 아주 아가씨들 점수를 매기며 놀기 시작했다.
" 아 피곤해.."
피곤함을 극복하려는 시도중 가장 볼쌍스런 행위가 아닐 수 없지만 시간은 참 잘갔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차, 멀리서 도저히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사람을 발견했다.
" 저 영감탱가 진짜 미쳤나.."
에스컬레이터 올라가는 입구옆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맛있게 빨고있는 모습이 저번 순회날의 비극과 겹쳐 보였음은 물론, 또 누군가 비합법적 배려가 있었기에 호사를 누리는 구나 싶으니까 열이 확 올라온다.
" 영감님! 여기 금연구역인거 안보이세요.? 상영관 안에 안계시고 왜 나오셨어요!"
" 응? 선상님도 여기 계셨구만. 영화가 재미가 없어서말이여. 말도 빠르고 화면도 너무 높아서 목이 뻐근허니 앉아있을수가 있어야지."
"자꾸만 통제를 거부하시면 다음부터 밖에 못나오십니다?"
" 아이고 알았어. 내가 도망이라도 갈까비 그러나?"
경호는 그 노인을 대리고 삼층 상영관 대기실 근처 카페에 앉힌다.
" 영화끝날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십시다."
" 여기가 훨씬 낫구만? 커피맛도 쌉쌀하고.. "
경호는 오른손으로 양쪽 관자노리를 꾹꾹 누르며 목을 돌린다.
" 선상님은 중국어좀 할줄 아시나?"
" 중국어는 왜요? "
" 아니 그냥.. 요즘 공뭔들 외국어 잘들 하잔아? 가끔 중국애들 들어오는걸 봤는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으니깨 대리고 오는거겠지?"
" 그럼요. 베트남어나 중국어 잘하시는분들이 얼마나 많은대요. 저도 중국어과를 나와서 꽤 합니다."
" 그렇구만? "
노인은 한약 마시듯 인상을 쓰며 커피를 주욱 들이킨다음 말을 이어간다.
" 크아. 내가말이여 여기 오기전에 뭔일을 했는지 알고있나 모르겠네? 박사였어! 공학쪽으로 잘나갔었지!? "
" 네 명부에서 대충 보아서 알고있습니다."
" 내가.. 사업을 좀 추진하고 있거든. 그 민철선생님도 알고있을걸? 내가 기가막힌걸 만들었는대 들어볼려?"
" 아 그거 들었습니다. 자동차를 개발하셨다구요?"
누가 들을까봐 손으로 입을 가린다음 목소리를 내리깐다.
" 그게 그냥 자동차가 아니야? 비행기처럼 날아다니는대 수직으로 뜰수고 있고 수백키로로 날아다니기까지 한다니까?"
" 공상영화에 나오는 그런물건을 만드셨네요? 그런게 정말 있다면 때돈을 버시겠는대요?"
" 돈도 돈이고! 상도타고 유명해지지! 물론 ! 처움 개발을 시작할땐 그런걸 바라고 시작한게 아니었는대 이놈의 나라가 날 이렇게 만든가여."
" 무슨일이 있으셨는대요?"
" 설계도랑 사업계획서같은걸 기관이다 대기업이다 하는곳에 뿌려봤는대 코웃음을 치는거야? 하도 안되겠어서 중국에도 좀 뿌렸지. 근대 거기는 다르더라고. 직접와서 브리핑을 해달래! 기회다싶어 갔지? 설명을 듣더니 같이 좀 해보자네? 그 말이 나오니까 덜컥 계약을 했어. 근대 국내에서 뒷북을 쌔리 친거야. 이 기술이 향후 100년의 시대를 앞서갔다는둥 지원금을 주겠다는둥. 하지만 나는 지조가 있는놈이라 단칼에 엿을 맥였지. 그게 문제였어. 지원금을 멋대로 줘버려놓고 기술을 중국에 빼돌렸다나 뭐라나.. 문전박대 할땐 언제고! 일단 기술 일부분을 계약대로 넘겨줬으니까 넘어간건 사실이지만 기술유출은 말이 안되잔아?. 검사도 판사도 다 한패거리가 되가지고 매국노취급하더니 나중에는 나보고 사기꾼이래! 그런기술은 애초에 없었고, 지원금을 목적으로 사기친거라고. 기자들도 기가막히더만? 동작이 너무빨라? 해명할 틈을 안줘? "
" 그렇군요."
" 에헤이? 반응이 왜이렇게 싱거운감? 이 나이지긋한 신사가 소설이라도 쓰는줄 아는가?"
" 소설이라니요. 그래서 그 기술이 뭐가 그렇게 획기적이랍니까?"
" 아무리 선상님이 중국어를 잘하고 많이 배웠어도 나만큼은 아니지. 내 평생을 배우고 연구하는대 썼는걸? 알려줘도 모를거여. 내 후배 박사놈이 그나마 조금 거들줄 알지."
" 후배분이 시범제품을 만드셨다죠?"
" 앵? 그게무슨소리야? 그가그러든?"
" 김교위님이 거기에 관심이 많으시거든요. "
" 아 그렇지. 맞아. 그양반한태도 말했지. 사람이 너무착해. 믿을만 하길래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봤었어. "
" 착실히... 돕고 계시는것 같더군요. 저도 잘되면 껴달라고했는대 그건 아실려나 모르겠네요."
" 그럼! 선상님도 껴줄게. 중국어를 글케 잘하신다면 통역관으로 써주지뭐."
" 하하 영광입니다. "
" 이게말이야? 원리가 역중력을 이용하는건대 사람들이 잘 모르는거여. 보통 하늘을 날리려면 불을 꽝하고 추진력을 얻으려고 하잔어? 그건 에너지낭비. 환경오염. 뭐 말도못하잔아? 이건 달러."
" 뭐가 어떻게 다른건데요"
" 글세 설명해줘도 모를거라니깐. 왜 지구에는 중력이 있잔어? 우주에도 있고? 이 중력의 반대 자력. 즉 역중력을 발산한다 이거야! 전기가 약간 많이 들었는디 그것도 개선이 되었지. 지금쯤이면? 이 역중력을 조절하는 것도 기술인대 중국놈들한탠 이걸 안가르쳐 줬어. 그냥 따라 만들어서 전원 누르면 뽕하고 하늘로 솟구칠걸? 허허허."
" 머릴 잘 쓰셨네요."
" 거럼! 다 알려주면 개털되는걸? "
" 앞으로 출소하시면 할일이 많으시겠어요. 왠만한 출소자들은 취직이 안돼서 힘들어 하거든요."
" 그런사람들랑 나랑 비교가 되나? 그나저나 앞으로 6년을 어떻게 기다릴지 막막하다네.."
" 지금처럼만 꾸준히 모범수로 계시면 가석방 위원회에서 눈여겨 볼지도 모르니 힘내십시오."
" 그런가.. 다른 방법은 없는건가.."
" 그야뭐.."
" 언제 한번 김선생님이랑 셋이서 진지하게 얘기좀 해보세."
" 얼마든지요 ."
그외 세상돌아가는 시덥잔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세 그 근방이 소란스러워진다.
" 이야 그 여자주인공 잊을수가 없겠어! 오늘밤 꿈에 나오는거아냐?"
" 나오면 좋지! 나오면 나도좀 불러봐봐."
영화가 끝나서 상영관 밖으로 나오는 모범수들이 다시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 나오신분들은 이쪽으로 열맞추어 서주십시오."
누군가의 통제를 듣고 경호와 노인도 합세한다.
" 어 경호야 푹 잣냐? 너 집이 이 근방이었지?"
" 그렇겁니다."
지금 있는곳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다고 해야할 것 같았다.
" 그럼 너는, 외출자들 다 버스에 타면 퇴근해라. "
" 감사합니다."
그말에 힘이난 경호는 속속이 모여든 외출자들을 모아서 일층 주차장으로 인솔했다. 약 삽십여분이 걸려서 모두 태운 경호는 선임자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가 떠나는 것을 구경한다.
" 여기가.. 어디다냐.."
자신이 살고있던 곳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 커다란 시내라는것을 알게되어 집으로 곧장 갈수있는 버스를 타기위해 근처 정류장을 찾아 헤맨다. 핸드폰의 지도를 따라 걷던 그는 이제 거의 다 도착해가는 거리를 확인하며 시선을 핸드폰이 고정한다. 햇살이 너무 밝아 액정의 밝기가 따라가지 못해서 더욱 집중하여 지도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앞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샴푸 냄새와 얼얼한 입가의 통증을 느낀다.
" 아!?"
젊은 여성의 비명이 경호의 몽롱한 정신을 깨운다.
" 으. 어?"
앞을 보고 걷지 않은 남녀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차마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며 부딛힌 곳을 매만진다.
" 괜찮으세요? 세게 부딯힌거 같은대.."
경호가 먼저 상태를 묻는다.
" 으.."
그녀의 이마에선 경호의 앞니와 충돌하여 생긴 작은 상처 때문에 붉은빛이 돈다. 경호의 입술에도 피가 약간 맻혀있다.
" 피가 약간 나는거 같은대요? 병원에 대려다 드릴까요?"
" 아 필요없어요."
그녀는 떨어뜨린 핸드폰을 줍더니 다시 소리를 지른다.
" 어?! 깨졌나? 이게뭐야!"
경호는 그녀옆에 서서 같이 핸드폰을 보았는대 번들번들한 액정위로 거미줄이 쫙쫙 쳐져있듯이 금이 가있었다.
" 이거 어떻해요!"
자다가 따귀를 맞은기분이라, 뭐라 말할지 아무 생각도 할수 없었다. 자신이 잘못해서 그렇게 된게 맞는지 따져볼 틈이 없어 그저 미안하다고만 할뿐이었다.
" 핸드폰이 아주 못쓰게 되버렸네요.. 죄송합니다. 변상을 해드릴태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 이거 못고처요! 교환해야한단말이에요! 한정판이라 금방 바꿀수도 없고.. 제가 쓰던거 쓰다가 다른거 바꾸면 이상해서 싫다구요!"
" 정말 죄송합니다."
" 어떻해..."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없었지만 목소리만 들으면 우는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애절했다.
" 핸드폰을 꼭 쓰셔야된다면 제껄 빌려드릴게요. 그쪽 핸드폰은 제가 가지고 가서 고처오겠습니다."
" 필요없어요! 제가 고처올거니까 교환비나 주세요!"
그둘은 연락처를 교환한 다음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갈라졌다. 약간 꼬불꼬불한 갈색 긴 머리에 고양이같은 눈. 끝으로 갈수록 슬슬 올라간 눈썹의 모양은 인상적이었지만 그녀의 쏘아붙임이 너무 비호감이라 느낀 경호는 다시한번 자신이 여성과 인연이 지지리도 없는 놈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진이 다빠진 마당에 버스뒷좌석에 기대어 코를 고는 것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 한시간이 조금 안된 시간동안 타임머신을 탄것같이 순식간에 도착해버린 버스가 초취한 몰골의 청년을 내려주었다. 마지막 힘을내 집까지 얼마 안남은 거리를 걷는다.
다음날 주말. 그는 휴일이라고 특별히 여가 활동을 하지 않는다. 임용전에 상상하던 멋진 취미와 자기개발 따위는 낮잠과 바꾼지 오래. 최소한 사람들을 만나자, 라고 생각하던 것들도 독서나 운동도 그냥 다 귀찮게 느껴졌다. 다음날 있을 근무를 위해 잠을 자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면 24시간이 오히려 빠듯했다. 한시간 같은 휴일 하루가 거의다 지나 이제 저녁. 어제 사고의 원흉. 그녀에게서 제발 전화가 안왔으면 하는 바램으로 핸드폰을 의식하며 저녁을 준비하지만 안타갑게도 미세한 진동과 벨소리가 들려온다.
" 짜증나."
뒤늦게 자신의 전적인 과실이 아니었음을 자각하여 억울한 마음을 혼자 달래고 있었던차. 그녀가 맞다면 반드시 조리있게 설득하리라 다짐한다.
" 여보세요?"
" 어 경호야. 쉬는대 전화해서 미안하다. "
"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오히려 김교위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 그게 .. 너 심부름 하나만 할래?"
" 심부름이요.? 언제요? 뭘요?"
" 아니 당장은 아니고.. 다음 비번 있을때 언제 한번 시간좀 내줄 수 있나해서."
" 간단한 일인가요.?"
" 뭐... 간단하달까.. 너 저번에 한몫 껴달라고 했었잔어?"
" 그런일이 있었죠. "
" 응 아는 사람이 사업 아이템 시범제품을 만들었다 하더라고. 가서 내 대신 봐주면 어떨까 하는대."
아는사람이란 단어가 우스웠지만 참는다.
" 좋죠. "
" 너무 고민을 안하는거 아니냐? 벌써 교도관 생활에 염증이 나면 안돼는 거지만... 그래..좋은 기회가 있으면 따라가는게 남자인거지뭐..아무튼..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자."
" 네. 그러죠. "
" 어그래 잘 쉬고 내일보자"
" 넵 쉬십시오."
심부름이 귀찮다,라기보다 뭔일일까 궁금함이 컷다. 그 노인과 관련된 시덥잔은 사기놀이엔 끼고 싶지 않았으므로 확실히 물어봐야 하지 않나.? 그날. 잠이들어 의식이 사라지기 까지 그녀에게선 전화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뜨고 출근하는 내내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자신과 아쉽다는 괴물의 속삭임이 계속 맴돌았으나 교도소 정문이 눈에 들어오고부터 싹 잊어버렸다.
월요일 아침. 95퍼센트의 똑같은 업무와 5퍼센트의 변수 속. 경호는 언제 저 김교위가 자신에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킬까 주시한다. 허나,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음이 변했을까. 왠만큼 대박이 아니라면 튕겨볼까?
오후 다섯시 수형자들이 먹고 씻고 신변 정리를 할 시간. 주간 근무자들이 슬슬 퇴근에 대한 열망이 무르익을때즘 경호에게 낮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아마 돈문제 때문일거라고 들뜬 속내를 나무란다.
" 여보세요?"
멋들어지게 관등성명과 직급을 이야기할걸,
" 저기. 그 저번에요. 그쪽이 망가뜨린 핸드폰 주인인대요."
" 네네. "
" 견적나와서 일단 제돈으로 교환의뢰 했거든요. 금액 나온 견적서 사진 보내드릴까요?"
" 아니요. 계좌번호랑 금액만 말씀해주세요. 송금해 드릴게요."
" 네. 그럼 지금 보내드려도 되나요?"
" 송금은 지금 힘들고 좀 있다가 해드려도 되죠?"
" 네? 왜요"
" 지금 근무중이라 나갈수가 없어서요."
" 인터넷 뱅킹으로 보내주시면 되잔아요?"
" 인증서가 여기에 없어서요. 있다가 저녁 일곱시쯤 보내드릴게요."
" 하아.. 그럼 그렇게 하세요."
분명 더 물어볼것이 있었는대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보려고 했었나? 대화가 너무 짧았던거같은대.. 전화를 끊고 가만히 서서 고민하던 경호에게 사무실의 자기 옆자리 윤경이 지나가며 말을 건다.
" 멍청하게 가만히 서서 녹봉을 받아먹는 공무원이 여기있네?"
" 아 윤경선배님."
짧게 경례를 하니까 어울리지않는 근엄한 표정으로 경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 뭐라도 좀 해라. "
" 죄송합니다."
" 뭐가죄송한대?"
" 그..."
경호는 연속 두번 겪는 황당한 일을 이겨내기위해 발버둥친다.
" 식사통제가 막 끝나서.. 근무교대나 준비해놓겠습니다."
" 응 빨리 튀어올라가봐"
윤경도 이런 수모를 다 겪은다음 지금에 이르렀던걸까. 그래서 성격이 저렇게 차가울까? 전화속 그녀도 그래서 이렇게 차가운걸까? 경호주변의 여성들만 하나같이 어려운 환경을 딯고 걸어온 여전사들밖에 없어서 이런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려 한다. 어딘가 따듯하고 친절한 여성이 경호를 기다리고 있을거라 가슴깊이 위로하며 사무실에 도착한 그. 아직 야간 근무자들이 올시간이 안되어 절반 이상의 자리가 비어있다. 교정관은 격리된 자신의 자리에 누워 선잠을 자고있고 김교위도 비슷하게 책상에 엎드려 있다. 경호도 그렇게 엎드려있다가 집에 가고싶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들몫까지 인수인계 준비를 해야했다.
약 40분 정도 경호와 2명 더 달라붙어 마무리짓고 자고있는 몇몇 사람들을 깨운다. 윤경도 같은 직급 주제에 팔을 턱에 괴인상태로 소심히 자고있다.
" 선배님 "
그녀의 어깨를 살살 흔든다. 그녀는 제법 깊이 잠들다 깬것처럼 깜짝 놀라며 의자를 들썩인다. 경호가 고등학교시절 수업시간중 자다가 땅에 떨어지는 느낌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난 경험과 비슷한것 같았다.
" 많이 피곤하셨나봐요. 일어나시고 집에가셔서 주무셔야 겠습니다."
" 지금 몇야?"
" 사십오분정도 되었습니다."
" 지겨워.."
윤경은 모니터의 화면 보호기를 끄기위해 마우스를 성가신듯 흔든다. 경호는 근거없는 핀잔을 들을것 같아 자신의 자리를 대충 정리하기 시작한다.
" 경호야 오늘 무슨 약속 있냐?"
김교위가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있는 경호에게 물어본다.
" 아니요. "
" 그럼 끝나고 잠깐만 남아서 기다려봐"
대충 무슨일일지 감이 잡힌 그는 흔쾌히 대답해준다.
" 뭐야?"
전혀 물어볼거같지 않았던 윤경이 호기심을 부린다.
" 음.. 아가씨라도 소개시켜주실려나보죠?"
" 미친"
길게 대화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불쾌할 수가 없다.
" 윤경선배님도 소개시켜달라고 해보시죠?"
" 필요없거든? 교위님 인맥이 거기서 거기지."
" 요즘에 정보회사 통해서 자주 나가시더니 괜찮은사람 만나셨나봐요?"
" 괜찮기는 무슨.. 남자들이 왜 다들 그렇게 눈만 높은지.. 주제를 모르고 참나.. 무엇보다도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어."
윤경 근처에는 신기하게도 못생기고 나이많지만 출생배경에 비밀이 가득한 사람들만 모이는 저주가 걸려있나보다. 그중에서 잘 찾아보면 진짜 왕자님이 있을지도 모르는일일탠대. 계속 물어보면 끝없이 말대꾸를 해줘야하는 곤란함에 빠질지 몰라 화장실에 가는척 일어난다. 허나 윤경도 따라서 일어나는 바람에 진짜 화장실로 가야했다.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지 않아서 대충 필요치않은 볼일을 본후 밖으로 나온다
." 야야 내가말이야 저번주 금요일에 마흔살 남자를 소개받았는대 있잔아?"
" 어업? 네.."
화장실 근처 2인용 밴치에 앉아있던 윤경이 미처 다하지 못한 응어리를 풀기위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 이마도 거의 벗겨졌는지 앞머리를 한쪽으로 완전 돌려놨는대 카바가 안되는거야 크킄. 머리가 자꾸만 갈라지고 푹 주저앉은게 다보여. 그런대다가 정장이라고 입은게 꾸깃꾸깃해가지고! 일하다가 막 온것처럼.. 결정적으로.. 뭘 먹을때마가 쩝쩝대는 소리때문에 진짜 쥐어박고 싶드라 정말! 추잡스러워! 아저씨같이..막 다리도 힐끔힐끔 훔처보고.. "
" 아주 잘못 걸리셨네요."
" 그러니까! "
" 뭐하는 사람이래요?"
" 사업한대. 귀금속같은거 판다는대"
" 금은방이요?"
" 금은방 하니까 없어보인다.. 아무튼 돈은 좀 버나봐. 키도 크더라."
" 그래요?"
" 그건 그렇고 나보고 자기 소개좀 해달래.. 사전정보같은 안보고 나오셨냐고 그랬더니 잘 못봤다내? 그래도 첫인상이나 좋게나 남겨주자 싶어서 조근조근 말해줬지. 직업은 뭐다 위아래로 언니랑 남동생 있다. 부모님은 무슨일 하신다. 줄줄 말하는대 예의없이 말에 끼어들어놓고 대뜸 몇살이냐 그러는거있지? 거기서부터 느낌이 않좋았어. 아니 그전부터...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어. 서른 다섯이요. 푸하하 그새끼 표정이 갑자기 더 구겨지더라? 안그래도 썩은 얼굴이 더 썩는대 하.. "
"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 나 아무말 안했어! 그냥 일어나서 반가웠어요! 했지. 그때 그놈 정수리가 딱 보이는대, 잔디밭에 제초재를 뿌려놓은거 마냥! 아우 열받아! 남은거 움켜쥔다음 확 뽑아버리고싶드라."
" 윤경 선배님같은 분을 놓혀버리다니 그사람 눈뜬 장님이로군요."
" 그런놈은 나이 육십까지 여자 못만나다가 지또래 아줌마랑 재혼이나 하라지 "
이후로 20분간 윤경의 울분을 받아주던 경호는 김교위의 도움으로 진짜 남은 용무를 완수 할 수 있었다.
" 이렇줄알았으면 저녁이나 먹고갈걸 그랬네."
" 라면 물부어드릴까요."
" 아니야. 난 가정이 있다고.."
그둘은 회의실에 앉아서 문을 잠근다.
" 너 다음 비번이 언제냐?"
평소 교정관이 앉는 자리에 앉아서 원탁위로 다리를 올린다.
" 수요일입니다."
" 이틀후 로구나."
" 무슨일인대요.?"
" 뭘좀 확인해볼게 있는대 말이야.. "
" 설마.. 그건 아니죠?"
" 그거라니. 난 감이 안잡히는대? "
" 노인내 말을 믿고 움직이는거라면 생각좀 해보려구요."
" 나참.. 믿는다는게 아니야. 그러니까 확인을 하고 싶다는 거지. 시범제품이 완성 됐다니까 확인하면 금방 알수있지않겠어?"
" 자동차가 둥둥 떠다니는걸 확인만 하면 된다는겁니까.."
" 나도 알아. 말도 안된다는거. 그치만 말이야. 만약 그게 진짜라면? 우린 대박나는거잔아! 이시대에 가장 운좋은 사람이 되는거야!"
" 진짜라면 말이죠.. 그노인 기분 안거스르면서 확인까지 하려니 신경좀 쓰셔야겠습니다?"
" 내가직접 보겠다며 돌아다니면 딱 의심하는거 같잔아. 그노인 조수랑 너랑 안면좀 트는 구실로 만나자 이야기가 나온거니까 가서 확인좀 해봐봐. 그렇게 신박한 물건인지."
" 하... "
김교위가 무슨생각하는지 복잡히 고민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자기딴에는 기가막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제3자가 보면 사기에 걸려드는 소심한 욕심쟁이에 불과해보였으니까.
" 그럼 수요일쯤 볼수 있냐고 수배해 보면 되겠네요."
" 그래! 사진도 좀 찍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는 속임수가 있는지 확실히 파악하라고. 나보단 니가 더 잘볼거아니냐?"
" 저라고 기계를 잘 아는건 아니에요.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절대로 안속을 자신이 있었다.
다음날 화요일. 야간 근무을 위해 인수인계를 마치고 사무실이 한가할때즘 김교위가 경호의 메신저로 짧은 연락처를 보낸다. (010xxxxxxxx) 나총명. 몇살인지, 어디사는지 까지는 나와있지 않아서 그와의 대화가 길어질것 같다.
( 내일 만나기로 되어있는걸 이사람이 알고는 있어요?)
( 어 신철씨가 전화해놓았대. 내일 시간약속만 잡으면된다)
질질끌기 싫었던 경호는 바로 사무실을나와 남자화장실로 걸어들어간다. 좌변기 뚜껑을 내린다음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건다
" 뚜우우웃~"
일분정도 기다리다가 안받는구나 싶어 끉으려는대 통화음이 멈춘다. 경호는 상대방이 아무말이 없어서 잠깐 기다린다.
" 누구세요?"
경호의 신상을 먼저 물어본 총명의 태도에서 음험한 첫 느낌을 받는다.
" 저기. 조신철씨 소개로 전화드린 경호라고 합니다"
" 소개요? "
" 넵 조신철씨 일을 도와드려고 연락을 드렸는대 그쪽에서는 아직 소식을 못 들으셨나봅니다?"
" 아..니요? 듣긴 했어요. 실례하지만 뭐하시는 분이죠?"
" 그건. 만나뵙고 이야기를 해드려야될것 같은대.. 내일 만나기로 하셨잔아요?"
" 그랬죠. "
" 몇시쯤이 괜찮을까요?"
" 음... 내일 아침 아홉시 어떻습니까?"
" 아홉시요..?"
" 네 서울 버스터미널 근처 카페에서 만나는게 어떻습니까? 아홉시면 사람이 없어서 이야기 하기 수월할거같은대."
" 그럼.. 그렇게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