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순례 후기
주초에 비가 한 차례 지나갔는데 주말을 앞두고 또 강수가 예보된 시월 중순 금요일이다. 봄가을에 우리나라 상공 기단은 고기압이 이동성이라 그를 뒤따르는 저기압이 기압골을 형성해 구름으로 몰려와 때때로 비를 내려줌이 일반적 현상이다. 이번에 비가 내리고 나면 시베리아의 차가운 공기가 고기압으로 팽창해 남쪽으로 밀려오면 기온이 내려가면서 가을은 점차 이슥해 갈 테다.
아침 식후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본포 강가로 가는 30번 버스를 타려고 원이대로로 나갔다. 외동반림로를 따라가니 반송 소하천에는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헤엄쳐 놀다가 자연석 더미로 올라 마주 보고 깃을 말리며 멋을 부렸다. 오리류는 대개 금실이 좋다마는 흰뺨검둥오리는 번식기가 아니라도 연중 부부애를 과시함이 특징인데 깃털 색이 같아 얼핏 봐선 암수를 구분 지을 수 없었다.
간선 급행 운행체제로 개편되어 한결 이용이 편리해진 버스 정류소에서 대방동을 출발해 본포를 둘러 마금산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명곡동에서 도계동을 지나면서 교외로 출근하는 이들을 몇몇 태워 내려 주남저수지를 비켜 갈 즈음 차창 밖은 시든 연잎이 보이고 갯버들은 청청한 모습 그대로였다. 봉강을 지난 본포에 내리니 한 아낙만 남았는데 종점 마금산까지 갈 듯했다.
마을회관에서 민물횟집을 지나 강둑으로 올라서자 본포교와 수변 생태공원이 펼쳐졌다. 예전에는 교외로 나와 야영하는 이들이 수변 공원 주차장에 더러 보였는데 당국에서 계도를 해 텐트는 모두 치워져 깔끔했다. 창녕함안보를 빠져나온 강물은 수산으로 향해 너울너울 흘렀고 강 건너 학포 언저리는 우거진 갯버들이 원시림을 보는 듯했다. 반월에서는 샛강인 청도천이 보태졌다.
유명한 성악가 조수미 부친이 나서 자란 활천을 지난 상옥정에서 60번 국가 지원 지방도 교차로를 비켜 강둑으로 뻗은 자전거길을 따라 걸었다. 아침이면 끼는 안개는 간밤에 날씨가 흐려 일교차가 적은 관계로 강 건너편 밀양 덕대산 기슭으로만 엷게 걸쳐졌다. 지나간 여름에는 폭염이 대단해서 아침이라도 강둑을 걸어볼 생각 못했는데 날씨가 서늘해져 야외 활동하기 좋은 때였다.
강변에는 창원 시민들에게 상수원을 공급하는 여과수를 퍼 올리는 드넓은 둔치가 펼쳐졌다. 이삭이 패서 허옇게 보인 물억새는 군락을 이루어 자연이 빚어낸 계절감과 서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절로 자란 드릅나무와 뽕나무가 간간이 섞인 속에 예전 과수원이었던 단감나무에서 감이 달여 볼이 노랗게 물들어갔다. 녹지를 이룬 군데군데 여과수를 뽑아 올리는 취수정 시설이 드러났다.
제1 수산교 앞둔 둑길에서 신설도로 굴다리를 지난 당리마을로 나갔다. 들녘을 따라 걸으니 비닐하우스단지는 딸기와 고추를 비롯해 벼농사보다 수익이 좋은 작물을 키웠다. 열매채소는 현지 농부가 키우고 일손이 많아 가는 수확은 베트남 부녀들이 맡았다. 베트남 청년들은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비닐하우스를 세우거나 철거할 때 거들었는데 언제봐도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일했다.
본포에서 둑길을 한참 걸어 당리 비닐하우스 특용작물 재배단지를 거쳐 들녘 한복판으로 나갔다. 가술에서 와도 이동 거리가 제법 되는 들판 가운데는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규모가 큰 비닐하우스에서 연중 오이를 키우는 농장이 있었다. 그곳 일꾼들도 역시 베트남인인데 주인을 잘 따르고 맡은 일을 잘했다. 지난여름에 이어 두 번째로 심은 다다기 오이는 끝물 수확이 한창이었다.
지난봄부터 들녘 산책을 나서 농장 주인장과 안면을 터서 인사를 나누고 지내는 사이다. 일전에도 농장을 지나다가 상품 포장에서 밀려난 오이를 챙겨 아파트단지 이웃 동 노인 집으로 보냈다. 이번에는 올해로는 마지막이라 우리 집으로 가져가 찬으로 삼을 셈이다. 봉지에 채워 담다 보니 양이 제법 되어 자주 찾는 마을 도서관 사서에게 보내고 제과점으로도 보냈더니 흡족해했다. 24.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