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변명 한마디-[구타교실] 23편 광주에 간 똥행패편에 대해 여러분들이 의견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건 유머가 아니라 민족의 비극이다.
공수부대의 미화에 실망했다는 의견도 계셨습니다.
우선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단 말씀 먼저 드립니다. 꾸벅~
저의 의도는 일방적 가해자로만 등장하는 똥행패 선생도
거대한 사회의 구조적 폭력 앞에서는 한낱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여튼 죄송~
그당시 공수부대의 행동은 절대 미화 되선 안됩니다.
하지만 학살의 주범은 따로 있습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마음씨가 어떤 주인이 갖느냐의 문젭니다.
다시는 그런 민족의 비극이 없길 바라며 이 글을 아픔을 간직한 광주시민과
본연의 임무인 대간첩 작전에만 충실해야 할 공수부대원들에게 바칩니다.
[구타교실] -27- 부정한 자의 최후 편~
대망의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우리 반과 다른 반과의 성적 경쟁은 무의미했다.
살인기계 똥행패 밑에서 극한의 훈련을 받는 우리에겐 오직 자신만이 적이었다.
우리 반이 성적 최우수임은 '짜고 치는 고도리'보다 해답이 명확했다.
그러나 똥행패는 선천적 구타 체질에 후천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이런 타입은 노력을 게을리해도 되련만...
우리에게 북한의 고교에서도 있을까 싶은 '목표 성적 달성제'란 과업이 주어졌다.
반 일등을 도맡는 석환이에겐 전교 일등이란 과제가 성적이 중간쯤인 내겐
평균 90이, 가끔 1등은 바뀌지만 절대 꼴찌의 자리를 남에게 내주길 불허하는
응석이에겐 평균 60이란 당면 과제가 주어졌다.
이 과제는 단검 하나 주고 '야! 너 김정일 죽이고 와'였다.
전교 1등은 전국 1등을 노리는, 머리는 엄청 크고 팔 다린 가는 E·T 같은 놈이
있었고 내가 하루 아침에 평균 90을 받기란 팬티 한장 달랑 입고
에베레스트 등정하기보다 어려웠다.
그래도 우린 나았다.
초등학교 입학이래 단 한번도 평균 40을 못넘은 응석이에게 60을 넘으라고 한건
'넌 기말고사 통지표 나오는 날이 죽는 날이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똥행패는 전인교육 공동의 적임과 동시에 주입식 교육에는 히어로였다.
시험 수준은 대체로 평이했다. 어쩌면 목표 성적 달성도 이룰 듯 했다.
국어 시험, 본업이 단란주점인 함춘봉 교무과장이 내는 시험이었다.
학부모에게 돈 뜯을 시간도 없는데 문제를 제대로 낼리 없었다.
교과서 빈 칸 채워넣기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문제지를 베낀 것이었다.
머리 속이 가물 가물 아예 모르는게 낫지 안개가 피어오르며 어디선가 산신령이
나타날 듯 미칠 지경이었다.
'여기서 점수 따 둬야 하는데' 가방안의 국어 책이 간절했다.
왜 미리 손가락으로 물건을 투시하는 능력을 안 배워 두었던가
석환이는 거침없이 푸는듯 싶었고 응석이는 어디선가 본 듯한 문제에 고심을
하는양 머리를 쓸어 올리는척 계속 손바닥을 힐끔거렸다.
스포츠 신문을 보는 척 하던 학생부 선생이 이를 놓칠리 없었다.
"너 지금 뭘 계속 힐끔거리는거야?" 하며 응석이의 손바닥을 펴니
손바닥 반절만한 메모지 한장에 국어 책 한권이 다들어 있었다.
이는 인간 인쇄의 승리요 컨닝페이퍼 역사상 유래가 없는 명작이었다.
'그거 만들 시간에 공부를 하지'들 한다.
그러나 바위에 바늘로 글씨를 새기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게다가 응석이의 머리는 강도가 낮은 '인장석' '정장석' '석영' 따위가 아닌
최고의 강도를 자랑하는 '금강석'이었다.
"너 같은 자식은 시험 볼 자격도 없는 놈이야" 하며 시험지를 박박 찢었다.
한 명의 낙오자 탄생의 순간이었다.
'친구! 잘 가게나 이 다음 세상에선 좋은 곳에서 만나세'
시험 감독 학생부 선생은 대걸레 에서 걸레 부분을 떼어 낸 후
자루로 응석일 패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수히 맞은 엉덩이에 굳은 살이 박혔는지 몇대 안가서 부러지고 말았다.
부러진 대걸레 자루를 다시 사다 놓은지 일주일만의 일이였다.
학교 옆 철물점 아저씬 대걸레만 팔아도 자식 대학 등록금은 나왔다.
다섯 개 있던 대걸레 자루가 다 부러질때까지 맞았다.
필시 저 선생은 철물점 아저씨에게 향응을 제공 받았음이 틀림없다.
가뜩이나 머리에 안개가 피어오르는데 돼지 잡는 소리에 머리 속은 대마초를
핀 양 더 혼미해졌다.
저 자식이 죽든 말든 빨리 끝났음 좋겠단 우정과는 영원히 담 싼 비열한 생각이
피어올랐다.
응석이의 활약 덕분에 쉬운 국어 시험을 망쳤다.
시험 종료 후 똥행패 선생이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왔다.
그의 손엔 육환장이 들려 있었다. 7공주파의 애환이 서려 있는
우리에게 그 신품을 사용하기는 두번째다.(첫번째는 5,6회 정신 단련봉 1호의 정체
편 참조 바람)
똥행패는 '갈아마시겠다' 거나 '어머니가 이 세상에 널 낳아 주신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란 극언은 했어도 인격 모독적인 말은 삼가했는데
거침없이 쓰레기 같은 자식이라고 했다.
응석이가 쓰레기라면 고철 종류 일 것이다. 재생을 위해 찌그러뜨리느라
두들겨대는 고철
곤장대를 준비하기엔 분노가 너무 컸다.
육환장으로 응석이의 머리를 그대로 내리쳤다.
최고의 강도인 금강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응석인 교실 두바퀴를 맞으며 굴렀다.
이건 어떤 홍콩 느와르도 흉내낼 수 없는 처절한 액션신이었다.
맞는 응석이도 응석이지만 친구가 교실을 굴러가며 맞는 걸 보는 우리들의
심정은 월드컵에서 한국이 네델란드에게 0:5로 지는 걸 보는 것보다 착잡했다.
우리 교실을 함께 지나던 교무과장과 시험 감독 선생이 재시험을 치르게
해 주겠다고 빌때까지 맞았다.
기말고사는 끝났다.
석환이는 의외로 E·T를 제치고 전교 1등을 차지했고 나는 88점을 얻어 대사면의
은전을 입었다.
응석인 당연히 60점을 못넘었지만 초등학교 입학 이래 최초로 40점을 넘어
44점을 받았다.
이는 무식한 주입식 스파르타 교육이 전인 교육을 무릎 꿇게 한 사건이었다.
똥행패는 통지표를 나눠주던 방학식날 우리에게 부라보콘을 하나씩 사주었다.
응석인 내게 윙크하며 말했다.
"그때 말야 내가 바닥 구르며 쑈 좀 했지 나 잘했지"하며 콘을 즐거이 빨았다.
내 팔땡이 응석이의 사땡에 무색해지고 있었다.
그래 너 잘났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