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 문단에 등단을 하고자 하시는 분께 드립니다
박주병
천리 밖에 여덟 식구를 남겨두고 가족을 먹여 살릴 생화를 찾아 나 홀로 관악산 밑 어느 아파트에 방 한 칸을 얻어 삭거한 적이 있습니다. 1983년 겨울, 그때 외투 하나 없이 퍽 춥고 외로웠습니다. 편찮으신 아버지를 먼 객창에서 생각하며 쓸쓸한 심정으로 「돌계단」이란 수필을 썼습니다.
한국일보에서 1984년도 신춘문예 광고를 보고 이 글을 보냈습니다.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춥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남은 마지막 단계에서 이면기의 「구도로」에 밀리고 말았습니다. 선자 중 하나는 박연구 수필가이고 다른 하나는 몇 해 전에 같은 신문에서 박연구의 선으로 당선된 윤모촌이란 새내기 수필가였습니다.
사람을 깔봐도 분수가 있지, 글쎄 생면부지의 박연구란 자가 나의 승낙도 받지 않고 「돌계단」을 한낱 동인지에 불과한 『수필공원』에 덜렁 초회추천을 해버렸습니다. 심사평에서, 신춘문예 때에는 하지 않던 말이 쓸데없이 혹독했습니다. 누가 봐도 사랑의 매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도 잘못 쓴 글이라면 추천을 하지 말았어야지 생트집을 잡다니 신춘문예 심사가 공정했다고 떠들어대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더이다.
이듬해에는 공모 부문에 수필이 빠졌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무렵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몇 해 동안 수필이 들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응모하던 때에는 조선일보에는 없어지고 한국일보에만 남아 있었던 겁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지방신문은 안중에도 없었으니 나는 참 오만했습니다.
신춘문예에 수필이 들어 있는 신문은 중앙지는 전무하고 지방지에서도 만나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문사를 탓할 일이 아니라 시나 소설의 수준에 필적하는 수필을 쓰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거문고 소리 맑으면 학이 저절로 춤을 춘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너무 허리를 젖히지 말고 돌아앉아 고개 숙이고 거문고 줄이나 고를 일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무슨 책을 몇 권을 읽었다느니 공부를 많이 했다느니 하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거의가 어느 놈을 가르치려 들거나 훈시이거나 좋게 말해 지식 정보를 제공하는 편언(片言)에 불과합니다. 그 정도의 지식을 얻으려면 사계 권위자의 저서를 읽는 것이 정확하고 안전하고 경제적입니다. 남산 검불 북산 검불 그러모은 그들의 글을 가만히 보면 모르는 게 없습니다. 백학을 두루 통달한 사람은 흔치 않은 법, 박이부정(博而不精)은 학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설명은 예술이 아니잖습니까? 나는 외칩니다. “글에서 설명을 타도하라!”
문인끼리 서로 비하하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다고 구양수가 말했다지만 비하는 약과요 비위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분기탱천하여 안할 소리 못할 소리 해 가며 제 아비 연배의 노인한테 행패까지 부리는 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지만 들에서 새는 바가지는 집에 가도 샐 겁니다. 그 부모가 참 불쌍하단 생각이 듭니다. 혹시 고려장이나 당하지 않을지, 않았는지.
싸움도 쳐다보고 하라는 말이 있지요. 그렇게 해야 져도 몸값이 오르니까. 글을 두고 그런 싸움을 거는 것을 낙으로 삼는 자, 싸움을 거는 수법이 부처의 입에 독사의 마음입니다. 내가, 생면부지의 사람이 한 번 만나자고 해도 그 사람이 문인행세를 하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간해서는 응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등만 뽑는 현상공모에서 1등과 3등과는 차이가 날지 몰라도 1등과 2등은 보기 나름입니다. 「구도로」와 「돌계단」도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이럴 때 기미상적(氣味相適)한 선자를 만난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백낙일고(伯樂一顧)란 말 많이들 합니다. 천리마도 백낙이 돌아보지 않으면 한낱 소금 수레나 끄는 노새나 당나귀일 뿐이겠지요.
문예지는 너무 쉽게 신인을 배출합니다. 폐단이 많다고 말이 많습니다. ‘추천장사’란 해괴한 소리가 문단에 떠도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니 다한 말입니다. 문예지의 추천을 받았노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신춘문예는 한 해에 하나. 사람들은 신춘문예를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합니다. 고고하고 도도하고 눈이 부신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닙니다. 별을 따면 만뢰구적이라 군말이 없을 것이외다. 신춘문예, 그 순수한 열정!
등단을 원하시는 분! 이왕이면 좀 늦더라고 신춘문예를 하십시오! 원시반종(原始反終)이니 원시요종 (原始要終)이니 하듯이 신춘문예는 어쩌면 시작이 아니라 마침일 수도 있습니다. 늦어도 늦은 게 아닙니다. 딱 한 편으로 문단을 입 다물게 하세요. 신춘문예에 매달렸다가 영영 등단하지 못할 걸 두려워 마세요. 씨구려 문인이 되어본들 본인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별로 득이 없습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