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만 서로 스쳐도 인연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이 행길에서 스쳐지나가도 어떤 인연이 있다는 의미의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런 사고방식에 의하면 서로 알게 되어 교제할 경우에는 우연한 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만일 저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겠지 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 말하자면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이 크게 변하게 된 그런 만남이 있는 법인데, 인간은 그리스도를 만났을 경우에 그의 인생이 180도로 변하여 완전히 새로운 딴 길을 가게 된다.
크리스마스의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박사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동방의 나라 박사들은 별의 지시를 따르고 물어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자기들이 갖고 있는 최고의 보물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치고 경배한 다음, 다른 길을 통해 돌아갔다고 쓰여 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꿈에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헤롯 왕에게 돌아가지 않은 것이지만, 나는 여기에 시대를 초월하여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 완전히 딴 길을 가는 것을 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멸망의 길을 향해 가던 사람이 하늘나라를 향해 가게 되고, 자기 중심의 냉정한 인생을 보내던 사람이 감사와 찬미의 밝은 인생을 살게 된다. 즉 예수님은 그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생활 태도까지도 크게 바꿔 놓는다는 것이다.
나는 전에 기쁨에 넘치는 어떤 여학생을 만났는데, 그녀는 극동방송의 복음 프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렇게 변했다고 한다. 그녀는 전에 자기 용모가 추하고 다리까지 절뚝거려 고민하던 끝에 자살을 결심하고, 한 달 가량 그 방법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끝에, 드디어 자살을 단행하려던 날 아침이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세수를 마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그녀는 할아버지의 방에서 “자살은 어째서 죄인가?”라는 제목의 목사의 설교를 라디오를 통해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중에 차츰 살고 싶은 의욕과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뜻하지 않은 이 변화에 어리둥절하여 예수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서점에 가서 성경을 사다가 읽기 시작했고, 잘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목사님에게 물어보기 위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어, 기쁨과 찬미가 넘쳐나는 생명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당신도 예수를 만나 진정 예전과 다른 인생길을 걷고 계십니까?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종교적 만남 본문 : 행 3-10
인간의 삶은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뜻하고 교제와 협동 등 삶의 필수적인 요소들이 이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각기 하나님이 주신 자기 재능에 따라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 직업에 따라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하여 각 사람의 삶이 규정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어떤 인생을 사는 사람인가는 그 사람이 어떤 만남을 많이 갖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1. 인생을 규정하는 만남(행1:8)
1)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삶 인간의 삶을 이루는 만남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상인은 이익을 위하여고객들을 만납니다. 이를 상업적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은 자기 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선거구민을 만납니다. 이는 정치적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수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납니다. 이는 학문적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친구끼리 만나는 우정의 만남이 있고 애인끼리 만나는 사랑의 만남이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만남의 삶을 통하여 그 인생을 연출해 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의 삶이 상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학자로서의 그의 인생을 규정 짓습니다. 인간의 만남이 그 인생을 규정 짓는 이유는 그 만남이 가치 추구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인은 이익이라는 가치 추구를, 정치인은 세력 확보라는 가치 추구를, 학자는 학문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하여 만남을 갖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가 추구하는 가치에 의하여 그 자신이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2) 베드로와 앉은뱅이의 만남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다가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 앉은뱅이는 날 때부터 앉은뱅이로서 사십 여 년을(행4:22) 산 사람입니다. 이 앉은뱅이는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구걸하기 위하여 거기에 앉아 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앉은뱅이였으나 그의 인생은 구걸하는 자, 즉 걸인이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동정에 의한 얼마간의 금전적 혜택이었습니다. 그는 그에게 베풀어지는 이 금전적 혜택으로 그의 걸인으로서의 삶을 유지해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사도로서의 그들의 삶은 그리스도의 증인됨(행1:8)에 있었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인간의 구원에 있었습니다. 이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기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들과 앉은뱅이의 만남은 사도와 걸인이 만남이었고 이 만남은 동류끼리의 만남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부류끼리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만남이 반드시 동일한 가치, 또는 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는 구걸을 위하여 사도들을 만나고 있고, 사도들은 그 만남을 구원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만남은 그 만남의 정황이 어떻든 간에 각각 주관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 종교적 만남(마28:19,20)
1) 종교적 만남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난 베드로와 요한은 그의 구걸행위를 그의 구원으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가 바로 그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앉은뱅이는 사도들과의 만남에서 적은 돈을 추구하고 있으나 사도들은 그와의 만남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가치 추구를 영적 가치 추구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만남,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만남, 그것은 곧 종교적 만남입니다. 그리고 이 종교적 만남에서만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됩니다. 앉은뱅이와 사도들의 만남이 금전적인 거래로 끝났다면 앉은뱅이의 걸인으로서의 삶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도들과의 종교적 만남을 통하여 앉은뱅이로부터 해방되어 근본적인 인생문제를 해결받은 것입니다.
2) 구원을 이루는 종교적 만남 앉은뱅이는 사도들과의 종교적 만남을 통하여 그의 궁극적 필요를 충족시켰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성전 미문에 앉아 구차하게 동정 어린 적은 돈을 구걸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당당한 정상인으로 자력에 의하여 떳떳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앉은뱅이로부터 벗어난 것은 그가 정상인이 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는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면서 그것을 곧 구원이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마9:22;막10:52;눅8:48:17;19). 앉은뱅이는 그가 일어남과 동시에 구원된 것입니다. 그의 육체의 구원은 동시에 영혼의 구원을 전제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이 종교적 만남을 통해서만 영육이 다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세 가지의 종교적 만남(행3:1-4)
1) 세 가지의 종교적 만남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앉은뱅이를 만난 일은 그들이 연출하는 종교적 만남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만납니다. 내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마나 나의 사정을 아뢰는 것이며 그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모든 은혜가 하나님과의 이 만남(기도)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첫 번째의 종교적 만남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또 자기 자신을 만납니다. 이 때의 자신과의 만남은 하나님 앞에서의 만남이기 때문에 위장되지 않은 진실한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진실한 자신을 만나는 데서부터 인간은 발전과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과의 만남, 이것이 두 번째의 종교적 만남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만난 것은 세 번째의 종교적 만남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만났으며,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름)를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타인과의 만남, 그것이 세 번째의 종교적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과의 만남,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타인과의 만남, 이것이 세 가지의 종교적 만남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만남의 삶 예수께서는 3년 반 동안의 공생애 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세리도 만나시고 창녀도 만나시고 어부도 만나시고 유리하는 백성들과 병자들도 만나셨습니다. 바리새인도 만나시고 서기관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도 만나시고 총독도 만나셨으며 대제사장과 왕도 만나셨습니다. 가계 각층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다양한 만남을 오직 한 가지 종교적 만남으로만 일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전제하지 않은 만남은 전혀 없으셨습니다. 그러한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도 이 종교적 만남의 삶을 살도록 분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5,16)가 그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이 종교적 만남의 삶은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고 최우선으로 수행되어야 할 사명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종교적 만남을 통해서만 모든 인간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모든 인간이 향유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인간은 그 만남을 통하여 그 인생이 규정되고, 그 만남은 각 사람의 주관적 가치 추구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이 만남의 삶을 회피하거나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궁극적 가치는 구원에 있고, 그것은 반드시 종교적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수많은 형태의 만남을 가지더라도 거기에 구원이 없다면 그것은 허무한 것입니다.
기도 우리 인간을 만남의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 수많은 만남의 삶 속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해서만 구원을 이루시게 하셨고, 그러한 만남을 위하여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이 종교적 만남의 삶으로만 일관하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의 만남을 통하여 많은 생명이 구원받도록 해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지혜와 능력과 유모와 기도와 찬양과 전도와 겸손과 성결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에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