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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대기(以飽待饑)
배불리 먹으면서 적이 굶주리기를 기다린다
以 : 써 이(人/3)
飽 : 물릴 포(飠/5)
待 : 기다릴 대(彳/6)
饑 : 주릴 기(𩙿/12)
출전 : 손자병법(孫子兵法) 군쟁편(軍爭篇) 第七
故善用兵者, 避其銳氣, 擊其惰歸, 此治氣者也.
그러므로 용병을 잘하는 사람은 적의 사기가 왕성할 때는 공격을 피하고, 나태해지고 쉬고 싶어 하는 적을 공격한다. 이것이 기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以治待亂, 以靜待嘩, 此治心者也.
다스려진 것으로 혼란한 것을 치고 안정된 것으로 적의 소란하고 흥분된 것을 치니, 이것은 마음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以近待遠, 以佚待勞, 以飽待饑, 此治力者也.
편히 쉬면서 적이 피로하기를 기다리고, 배불리 먹으면서 적이 굶주리기를 기다리니 이는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無邀正正之旗, 無擊堂堂之陣, 此治變者也.
통제가 잘되어 깃발이 정연하고 진의 위세가 당당한 그러한 적은 공격하지 않으니 이는 바로 변화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以佚待勞(이일대로)
以飽待饑(이포대기)
편안히 지내며 수고롭기를 기다리고, 배부르게 지내면서 굶주리기를 기다린다
이일대로지계(以佚待勞之計)는 무엇보다 '기다림'이라는 중국의 전통적 사고에서 가장 돋보이는 전략이고 전술일 수 있다. 기다린다고 해서 마치 수주대토(守株待兎) 얘기처럼 하거나,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기다리며 변화를 지켜보는데 그 자세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 쪽은 편안히 기다리는데 상대는 수고롭게 하고, 우리 쪽은 배불리 먹으면서 기다리는데 상대는 허기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때맞춰 공격한다면 이기기 쉽다.
세상 만물은 변하기 마련이다. 상황과 조건도 변한다. 준비하라. 이쪽은 여유를 갖고 편안히 기다리면서 변화를 주시하라. 그리고 기회가 오면 마치 사자가 토끼를 잡듯이 신속하고 최선을 다해 제압하라는 것이 이 기다림의 요체다.
손자병법(孫子兵法)
지치고 주리고 어지럽게 하라
사람은 아침에 기가 살아있고, 낮에는 늘어지고, 밤에는 맥이 풀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싸움은 기가 살아있을 때는 피하고 늘어져 있을 때를 노려야 한다. 이것이 기를 다스리는 법이다. 아군의 통제를 유지하면서 적군의 무질서를 기다리고, 차분하게 적의 동요를 노리는 것(以治待亂 以靜待譁)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다.
아군은 편하게 쉬면서 적군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리고, 아군은 잘 먹으면서 적군은 못 먹기를 기다리는 것(以近待遠 以逸待勞 以飽待饑)은 힘을 다스리는 법이다. 질서정연하게 깃발을 똑바로 세운 적을 맞이해서 싸우면 안 된다. 의연하고 당당하게 진용을 구축한 적을 공격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변화를 다스리는 법이다.
싸움에서 이기자면 적이 약해야 한다. 적이 강하면 공격해서는 안 된다. 적이 강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3가지다.
첫째, 적이 약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누구든 싸움에 막 임해서는 바짝 긴장하지만, 긴장은 곧 풀리기 마련이다. 기다리면 적이 무질서해지고 동요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를 노려야 한다.
둘째, 적의 약한 곳을 찾아낸다. 싸우려고 다부지게 마음먹은 상대에게 섣불리 덤볐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 모자를 돌려쓰고 비딱하게 선 상대가 있다면, 그자부터 노려야 한다.
셋째, 적을 약하게 만든다. 누구든 지치고 굶주리고 혼란스러우면 싸울 마음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따라 조선에 들어왔던 포르투갈 신부가 남긴 기록을 보면, 조선군도 고구려처럼 청야전술로 일본군을 괴롭혔다. 그것도 아주 철저히 말려 죽였다. "조선인들이 산성으로 숨으면서 갖고 갈 수 있는 건 모조리 갖고 갔고, 추수하지 않은 들판의 곡식까지 깡그리 망쳐 놨다. 밤에 물을 길으러 가보면 못물에 시체가 떠있다."
식량을 없앤 정도가 아니라 물까지 못 마시게 한 것이다. 이쯤 되면 왜군이 겪은 참상은 상상을 초월하다. 조선군에 투항하는 일본군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식량 부족 때문이었다.
청야전술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적을 괴롭히는 동안에 나는 내 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 긴장이 풀리거나 기강이 해이해져서도 안 된다. 아무리 지치고 굶주려도 조직은 흔들려선 안 된다. 약점을 노출시켜서도 안 된다.
약점이 노출되기 가장 쉬운 시기는 인사(人事) 철이다. 인사 이야기가 나오면 조직이 멈춰선다. 누구나 인사가 예상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자신의 인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사로 누가 올지, 부하로 누가 올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인사가 때를 놓치면 조직이 동요한다. 적의 개입없이 스스로 동요하는 지름길이다.
인사는 전격적으로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조직이 흔들리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적은 알아서 무너진다. 지치고 주리고 어지럽게 해야 하는 상대는 적이다. 스스로 힘을 뺄 이유가 없다.
이순신 장군과 조충국(趙充國)
조충국(趙充國)은, 전한시대 장수로 76살의 나이로 흉노와 맞서 싸워 공을 세웠다. 황제에게 둔전(屯田; 고려와 조선시대에 군량을 충당하기 위하여 변경이나 군사 요지에 설치한 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충국(趙充國)은 자는 옹손이고 농서 상규 사람이다.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고 침착하면서도 대담한 사람이었다. 젊어서부터 병법을 공부했고, 사방 오랑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그들의 사정에 정통했다.
그러나 조충국(趙充國)이 명장으로 인정받은 것은 노년인 70세 이후였다. 몇십 년의 전투 경험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가 말년에야 오랜 경험과 지략이 바탕이 되어 꽃을 피운 대기만성형 인물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중에 나라의 빈 땅을 활용해 백성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군량을 확보하고, 피난민이 먹고살 수 있게 하기 위한 탁월한 아이디어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즉 백번 듣는 것보다 실제로 한번 보는 것이 낫다고 현장을 강조했던 명장 조충국으로부터 얻은 지혜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1593년 9월에 조(趙)나라의 이목(李牧)과 한(漢)나라의 조충국(趙充國)이 일찍이 경험한 방책이라면서 군사를 이용해 둔전(屯田)을 실시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역대병요(歷代兵要; 조선 세종 때 이석형 등이 엮은 군담집)에는 둔전을 실시하면서 외적을 물리친 조충국과 이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동국병감(東國兵鑑; 조선 문종 때 편찬한 이민족과의 전쟁 전란사)에도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둔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나라 선제가 티베트 계통의 유목민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조충국에게 적임자를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을 때, "제가 비록 늙었지만 신보다 나은 사람은 없습니다", "백번 듣는 것보다는 실제로 한번 보는 것이 낫습니다. 군사 일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신이 직접 가서 현지 지형을 관찰한 뒤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이순신과 조충국의 전략전술도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 "아군은 지금 막 도착해 몹시 피로하다. 저들이 공격하더라도 맞서 싸우지 말라. 게다가 저들이 유인책을 쓰지도 모른다. 적을 공격할 때는 반드시 섬멸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니 사소한 이익을 탐내지 말라(小利不足貪)."
조충국이 말한 아군의 피로 문제는 '손자병법'의 '군쟁'에서 말하는 "싸울 곳에 가까운 곳에 있는 군대로 먼 길을 오는 적을 기다려 싸우고(以近待遠), 편안히 쉬어 힘을 비축한 군대로 피로한 적과 싸우고(以佚待勞), 배부른 군대로 굶주린 적과 싸우라(以飽待饑)"라는 전략에서 강조했다. "우리들의 피로한 세력으로써 편안히 숨어 있는 적과 대적한다는 것은 실로 병가의 좋은 방책이 아니다"고 했다.
이순신은 군사들이 피로한 상태에서는 전투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피로한 일본군과 싸워 승리했다. 이순신이 압송까지 되었던 부산포에 나아가 싸우라는 선조의 명을 어긴 것도 바로 이러한 병법의 전략에 따른 것이다.
조충국의 "사소한 이익을 탐내지 말라"와 이순신이 말한 "작은 이익을 보고 들이친다면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은 모두 '사마법(司馬法)'에서 강조한 것이다. 왜군과의 전투에서 원균과 부하들이 포상을 위해 왜군의 머리를 베는 것에 집중할 때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전투에 집중하라고 하였다.
조충국은 '손자병법'을 인용해 그들이 막다른 길에 몰린 도적이기에 궁지로 몰면 안 된다며, 서서히 공격해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적의 결사 저항을 막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순신도 '궁구물박(窮寇勿迫; 피할 곳 없는 도적을 쫓지 말라)'을 경계해 무리한 공격을 하지 않았다. 산 위로 도망간 일본군이 백성을 해칠 것을 우려해 일본군이 도망갈 배를 남겨두기도 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7篇 군쟁편(軍爭篇)
의표를 찌르는 기습전법
'군쟁'이란 군대를 써서 승리를 얻는다는 뜻이다. 즉 전투를 말한다. 이제까지 논술한 것은 전투에 있어서의 중요한 전제 요건이었다. 그러나 본편부터는 실제 전투에 있어서 필승하는 방략을 논술한다. 심리전에 있어서는 허실의 기계(奇計)를 써서 이른바 사치(四治)의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1) 군쟁보다 어려운 것은 없다.
孫子曰: 凡用兵法, 將受命於君, 合軍聚衆, 交和而舍, 莫難於軍爭.
손자가 말하기를, "무릇 용병법은 장수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아, 군사를 합하고 무리를 모아 화(和)로써 사귀어 머무르는 것으로 군쟁보다 어려운 것은 없다.
마침내 전쟁이 시작되면 주장(主將)이 임명되고, 각종 군대와 병과(兵科)를 모아 편성하며, 가급적 필요한 사람을 징용한다. 그리고 한 곳에 군문(軍門)을 벌여 놓고 숙영한다. 여기까지의 일도 상당히 복잡하지만, 그 병을 움직여서 직접 교전을 시작할 경우에는 모든 것을 규합하여 경합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군쟁이란 말의 해석 방법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동일 진영 내에서는 공명다툼, 선진(先陣)다툼, 노획품의 쟁탈전 등이 있을 것이다. 적에 대해서는 장수와 장수의 작전 경쟁, 그 간파경쟁, 용병 만단의 경쟁, 기타 각종 경쟁이 있을 것이다.
제1장 시계편에서 시작하여 작전, 모공, 군형, 병세, 허실편에 이르기 까지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점차 각론으로 들어왔는데, 마침내 백병전 차례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제까지 설명된 방법 중에서 재차 등장하는 말이 많이 나타난다.
이 조항은 군쟁 편의 첫머리이므로 특히 해설을 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나, 손자 자신이 쓰고 있듯이 군쟁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손자'의 병법 중 진정한 전쟁에 참가하는 병술가에게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되어 있으나, 우리들로서는 얼마만큼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는 독자의 마음 가짐에 달려 있다고 본다.
(2) 돌아가는 길은 샛길로 하고, 재해를 이익으로 전환시켜라.
軍爭之難者, 以迂爲直, 以患爲利.
군쟁의 어려움은 우(迂)로써 직(直)을 삼고, 환(患)으로써 이(利)를 삼는 것이다.
故, 迂其塗而誘之以利, 後人發先人至, 此知迂直之計者也.
그러므로 그 길을 우회하여 이를 유인하는데 이(利)로써 하고, 남보다 뒤져서 떠나고 남보다 앞서 이르는 것은, 이 우직(迂直)의 계(計)를 아는 자이다.
군쟁이란 어려운 것으로서 방법 여하에 따라 멀리 돌아가는 길을 반대로 가까운 길로 갈 수도 있고, 손실 재난을 돌려서 이익으로 할 수도 있다. 원래 길을 멀리 도는 것은 손해이다. 그러나 일부러 돌아가라는 것은 거기에 어떠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이쪽의 진발(進發)을 알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 진행 속도를 모르게 하고 방향도 알리지 않는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눈을 가리면 상대의 계획에는 반드시 파탄이 오고 만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도 있듯이 오히려 그쪽이 목적지에 빨리 닿게 된다. 상대에게 '이젠 됐다'는 생각을 갖게 해놓고, 실은 그 허점을 찔러서 샛길을 택하여 급습하거나 방심하고있는 틈을 이용하여 시간을 버는등 수단 방법은 많을 것이다.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가장을 하였지만 실은 상대보다 먼저 전쟁터에 도착하는 재주를 부리는 것이 바로 이 계략이다.
여기서 '유지이리(誘之以利)'란 말은 아군의 작전을 상대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려면 엉뚱한 곳으로 상대가 주의를 돌리도록 소리(小利)를 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좀더 복잡한 작전인 듯하나 결국 상대를 속이는 행동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저돌적으로 상대의 중위(重圍)를 돌파하는 것보다는 다소 멀리 도는 한이 있어도 이쪽에서 피하는 것이 손해도 적고, 또한 적이 당연히 예측하지 못한 후면이나 측면을 찌르는 것이므로 거기서 생기는 상대의 혼란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의 손실이라도 각오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 때의 손실이 낭비가 되어서는 아무 의미도 없겠으나, 저울에 달아보고 수지가 맞는 희생은 아낌없이 지불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예화]
돌아가는 길은 샛길로 하고, 재해를 이익으로 전환시켜라.
軍爭之難者, 以迂爲直, 以患爲利.
군쟁의 어려움은 우(迂)로써 직(直)을 삼고, 환(患)으로써 이(利)를 삼는 것이다.
노(魯)나라 애공(哀公) 17년,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를 공격하였을 때의 일이다.
월의 왕 구천은 군을 좌우로 나누어서 각각 전고(戰鼓)를 울리며 진격시켰다. 밤이 되어도 전고 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월군(越軍)의 진격도 그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오군(吳軍)에서는 이 전고 소리에 따라 월의 군 소재를 알고 그 속도를 잰 다음에 역시 군을 좌우로 나누어서 만전의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그런데 월왕 구천은 별개의 중군에게 은밀히 강을 건너게 하고, 전고를 조용히 울리며 진격시키고 있었다. 제3군을 눈치채지 못하고, 좌우에 대해서만 만전의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던 오의 군대는 월의 중군이 돌연 습격해 왔을 때는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월의 좌우 양군에게 총공격을 당하여 궤멸상태에 빠진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또 서진(西晉)의 민제(愍帝) 건흥4년, 석륵(石勒)과 희담(姬澹)이 싸울때의 일이다.
희담의 군이 멀리 원정해 온 터이라 피로할 것이니, 이는 편함으로써 수고로움을 기다린 것이라고 계산한 석륵은 장수 공장(孔長)을 선봉으로 파견하여 희담의 군을 영격(迎擊)시켰다. 그런데 희담 군의 공격은 의외로 날카로워 어정쩡한 태도로 영격을 하던 공장의 군대는 어림도 없이 격파되어 퇴각하고 말았다.
그러자 희담은 곧 군사를 몰아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안 석륵은 급히 그 진로에 복병을 깔고, 패주하는 공장의 군을 추격하는 데만 여념이 없는 희담의 군대를 갑자기 좌우에서 협격시켰다. 좌우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대하여 전혀 무방비 상태였던 희담의 군이 대패를 맛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공장이 패주하고 희담이 추격으로 옮겼을 때 석륵은 뚜렷하게 주도권을 쥔 것이었다. 승패는 어떻게 해서 주도권을 쥐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손자는 말하기를, "주도권을 쥐는 어려움은 먼 길을 가까운 길로 전화시키고, 재해를 이익으로 전화시키는 데 있다. 먼 길을 취하듯 꾸며 유인하고, 적보다 늦게 출발하여 적보다 먼저 도착한다"고 한 것이다.
월의 왕 구천은 먼 길을 가까운 길로 전화시킴으로써 주도권을 쥐고, 석륵은 재해를 이익으로 전화시킴으로써 주도권을 쥐었다고 할 수 있다.
(3) 군쟁은 이로움이 되고 위태로움이 된다
故, 軍爭爲利, 軍爭爲危.
그러므로 군쟁은 이로움이 되고 위태로움이 된다.
故, 擧軍而爭利則不及, 委軍而爭利則輜重損.
그러므로 군을 들어 이(利)를 다투면 곧 미치지 못하고, 군에 맡겨 이(利)를 다투면 곧 치중에 손해를 본다.
그러므로 모든 경우에 군쟁이란 눈앞에 보이는 이해가 그대로 안위와 표리 관계에 있는 때가 많은 것이다. 싸움에서 모든 이해를 무시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최대의 목적이 되어 이익만을 좇고 있으면 가장 중요한 목적인 전승에는 도달할 수 없다.
문제는 소국부가 아니고 전체이다. 전군의 연계 병참선(兵站線)이란 것을 무시하면서까지 적을 좇다보면 아무래도 탄약이나 식량을 허비하는 손해를 입기 쉬운 것이다. 지나치게 뻗어 나가면 발밑에 허점이 생기기 쉽다.
전쟁에 끌린다는 것은 인정이고, 자연의 기운이다. 그러나 기세를 타고 이에 깊이 빠져들면 대국적으로 보아 큰일이 생기게 된다. 특히 승리를 앞에 두었을 때가 위험하다. 이럴 때야말로 누군가가 높은 곳에 서서 전국면에 빈틈없이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지 않으면 뜻하지 않은 곳에 파탄이 생긴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전투에는 이기고 전쟁에는 지는 결과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깊이 들어 가면 병참 보급선이 늘어 난다. 이 점만도 위험하다. 하물며 이 약점을 적이 파고 들면 눈뜨고 볼 수 없는 꼴이 되고 만다.
(4) 병참이 길어지는 것은 금물이다.
是故, 卷甲而趨, 日夜不處, 倍道兼行,
그러므로 갑옷을 걷어 올리고 달려서, 밤낮을 쉬지 않고 길을 갑절로 하여,
百里而爭利, 則擒三將軍, 勁者先, 罷者後, 其法十一而至.
행군 100리에서 이(利)를 다투면, 곧 세 장군은 포로가 되고 강한자는 앞서고, 약한 자는 뒤쳐져 그 법이 10의 1 이른다.
五十里而爭利, 則蹷上將軍, 其法半至.
50리에서 이(利)를 다투면 곧 상장군은 전사하고, 그 법은 반이 된다.
三十里而爭利, 則三分之二至.
30리에서 이(利)를 다투면 곧 3분의 2에 이른다.
是故, 軍無輜重則亡, 無糧食則亡, 無委積則亡.
그러므로 군에 치중이 없으면 곧 망하고, 양식이 없으면 곧 망하며, 맡기는 자가 없으면 곧 망한다.
무거운 갑옷 투구류를 벗어 버리고 가벼운 차림으로 한때의 휴식도 없이 주야 겸행으로 강행군을 하여 100리나 떨어진 곳에서 승부를 지으려고 하면 곧 무리가 생기기 때문에 세장군 모두 포로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것은 당시의 역사책인 '좌전(左傳)'에 나오는 사실을 보기로 든것 같다.
이렇듯 무리한 강행군이면 완강한 자만이 앞서고, 지친자는 점점 뒤쳐져서 목적지에 닿은 것은 겨우 10명에 1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낙오하거나 뒤늦게 도착하게 된다.
만약 50리의 거리라면 상장군, 즉 전위부대의 장수는 전사하고 제때에 도착한 병력은 반남짓할 것이다. 그리고 30리의 거리라 하더라도 그한계선까지 무리한 행군을 한다면 역시 3분의 2의 병력이 남고 3분의 1의 병력은 고스란히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강행군에는 가장 중요한 탄약이 제때에 도착되지 않기 때문에, 군사는 맨손으로 덤비는 꼴이 되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양식의 경우도 같다. 배가 고파서는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한 원칙이다. 그리고 현지에서 써야 할 군자금도 불충분할 것이다. 이쯤 되고 보면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해도 관언은 아니다.
싸움이란 상대적인 것이므로, 시대가 바뀌어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여기서 설명한 숫자상의 비율 등은 들을 필요도 없겠으나 이치만은 같다. 병참이 길어지는 것은 금물이다. 그 늘어난 병참선을 생각지 않는 강행군의 원정은, 결국 모두를 파멸로 몰아 넣고 만다는 것이다.
사업을 경영할 때는 거리란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수송 시간이나 경비의 소모를 수반하나,이는 채산이 나올때까지 요하는 시간의 장단에 따르는 무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든 기구가 보조를 맞추어 움직이지 않으면 사업은 잘 되지 않는 법이다. 무리한 강행군, 그것도 한도를 넘는 오랜 시일이나 연월이 걸리면 반드시 큰 파탄을 가져오는 법이다.
(5) 이웃에 도움을 청할 때는 간부급을 거절하라.
故, 不知諸侯之謀者, 不能豫交.
그러므로 제후의 계략을 모르는 자는 미리 사귈 수 없다.
不知山林險阻沮澤之形者, 不能行軍.
산림, 험조, 저택의 형세를 모르는 자는 행군시킬 수 없다.
不用鄕道者, 不能得地利.
향도를 쓰지 않는 자는 지리를 얻을 수가 없다.
이러한 미묘한 관계가 있으므로, 인접국 등의 왕후가 응원을 신청해 와도 행군시키는 법을 모르는 자라면 쉽게 도움을 청해서는 큰일이 난다. 조그만 부주의라도 민감하게 나타나는 법이다.
이를테면 산림 지대로 진군시키려고 할 때 어느 곳이 험하고 어느 곳이 습지대인지 자세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예정대로 군사를 이동시킬 수 없다. 그럴때는 그 지방 사람을 길잡이로 쓰지 않으면 절대로 유리한 행동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인접국에서 단지 군사만을 빌려 준다면 실로 고맙지만, 거기에 서투른 지휘자가 붙어 있을 때는 사정이 다르다. 이 쪽과 똑같은 전술 지식이 있는 자라면 그래도 무방하나, 만약 그렇지 못할때는 거추장스럽기만하게 된다.
그 때문에 오히려 패전이란 고배를 마시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이론을 존중한다면 부득이한 응원을 청할때는 가급적 노동력만으로 하고 간부급의 유능한 사람은 거절하는 것이 좋다.
(6) 침략하기는 불과 같고, 조용함은 산과 같이 하라.
故, 兵以詐立, 以利動, 以分合爲變者也.
그러므로 싸움은 거짓으로 서고 이(利)로써 움직이고, 나누어 합하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故, 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難知如陰, 動如雷震.
그러므로 그 빠름은 바람과 같고, 그 조용함은 숲과 같고, 침략하기는 불과 같고, 움직이지 않음은 산과 같고, 알 수 없음은 그늘과 같고, 움직임은 뇌진과 같다.
손자의 병법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유명한 문구인데, '풍림화산(風林火山)'이란 말은 병법의 대명사같이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싸움이란 먼저 상대의 눈을 어지럽게 하여 정체를 잡지 못하도록 행동을 일으키고, 다음에는 가장 유리한 조건을 향하여 움직여서 그 조건이나 상대의 움직임 여하에 따라 자유 자재로 변화하여 분산집합할 수 있는 용맹을 지녀야 한다.
이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움직여야 할 기회를 잡거든 황야를 휩쓰는 강한 바람과 같은 속도가 있어야 하고, 정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을 때는 마치 산림속과 같이 고요해야 하며, 적지로 침입하였을 때는 마른 풀에 불이 붙듯 맹렬한 기세라야 한다.
또 자중을 요할 때는 큰산이 흔들리지 않듯 침착성을 보여야 하며, 그늘에 숨어버린듯 전혀 눈치챌 수 없는 행동으로 상대를 공격하되, 벼락이 떨어지듯 격렬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용병하는 부장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점이다.
문구로서는 실로 유명하나, 그 내용은 이제까지 말한 것을 요약하여 배열하고 자연현상에 비유하고 있으므로, 새삼 해설을 더할 필요도 없다. 오직 명문(名文)이므로 원문을 외워두면 일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7) 우직(迂直)의 계를 아는 자는 승리한다.
掠鄕分衆, 廓地分利, 懸權而動.
고을을 약탈하여 무리에게 나누어 주고, 땅을 넓혀서 이익을 나누고, 저울에 달아 움직인다.
先知迂直之計者勝, 此軍爭之法也.
먼저 우직(迂直)의 계를 아는 자는 승리한다. 이것이 군쟁법이다.
적지에 침입하면 약탈한 물자는 군사들에게 나누어준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이제까지 계속되어 온 문장으로 미루어보아 그와 같은 해석은 어딘지 합당치 않은 듯한 느낌이 든다.
전지(戰地)의 악습으로 공략지와 약탈 행위는 붙어 다니는듯 당시의 전투에도 다분히 그러한 경향이 있었을 것이므로 혹 그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차라리 적지에 침입하면 적령(敵領)을 토착인들에게 나누어 주어 가급적 이를 순무시키고 앞에서 나온 길잡이와 같은 현지인의 협력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석하는 편이 이치에 맞을 것 같다.
이러한 지역을 가급적 확대해 나가 이쪽에 편리한 장소를 분산 설치한다. 그러면 미지의 지역에 대해서도 각종정보가 모이므로 이것을 비교 검토하여 경중을 정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가 있다. 이처럼 아군의 계략을 선용하는 것이 승리로 통하는 길이요, 군쟁의 법이라고 한다.
가령 적지라 하더라도, 그곳 주민은 제 3자로서 자기 형편이 유리한 쪽으로 기울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주면 이쪽 마음대로 그 주민을 활용할 수가 있다. 이것을 일러 실정을 모르는 적지로 들어갔을 때의 '우직의 계'라고 한다.
손자의 이와같은 사고방식은 역시 실전 경험을 쌓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중점을 파악해야 하는 점이 중요하나 필요한 경우에는 먼저 주어야 한다. 이 '준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직의 계'일지도 모른다.
곧장 목적물과 정면충돌하는 것은 언제 어느경우에도 득책이라고는 할수 없다. 가까운 길로 가려면 멀리 돌아가라는 반어적인 어투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진의를 파악하여 활용할 경우 여러모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8) 야전에는 불과 북을, 주전에는 정기를 사용한다.
軍政曰; 言不相聞, 故爲金鼓, 視不相見, 故爲旌旗.
'군정'에 이르기를, "말해도 서로 들리지 않으므로 금고를 만들고, 보아도 서로 보이지 않으므로 정기를 만든다"라고 하였다.
夫金鼓旌旗者, 所以一人之耳目也.
무릇 금고와 정기는 사람의 이목을 하나로 하는 것이다.
人旣專一, 則勇者不得獨進, 怯者不得獨退. 此用衆之法也.
사람이 이미 전일하면, 곧 용자도 홀로 나아가지 못하고, 겁자도 홀로 퇴각할 수 없다. 이것이 무리를 쓰는 법이다.
故夜戰多火鼓, 晝戰多旌旗, 所以變人之耳目也.
그러므로 야전(夜戰)에 불과 북을 많이 하고, 주전(晝戰)에 정과 기를 많이 하는 것은 사람의 이목을 변하게 하는 것이다.
故三軍可奪氣, 將軍可奪心.
그러므로 삼군은 기운을 빼앗아야 하고, 장군은 마음을 빼앗아야 한다.
군서에도 대군단에 대하여, 우렁찬 목소리의 호령이라 하더라도 철저하지 못하므로 징이나 북을 쓰며, 손짓으로는 도저히 전원이 볼수 없으므로 기의 색깔이나 모양을 바꾸어서 신호를 한다고 쓰여 있다. 기나 북은 신호표지로서의 기능도 기능이지만 그것보다는 사람들의 이목이나 주의를 통일시키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중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한 특별히 무용에 뛰어나다고 하여 혼자 빠져나가 공을 세울 수도 없겠고, 겁쟁이라고 하여 혼자 도망칠 수도 없는 일이니, 오로지 개체로서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 민중을 쓰는 원칙이다.
군중은 개체의 집단이란 것 뿐아니라 군중 특유의 강력한 힘이 생겨나는 법이다. 개체의 힘을 그 숫자만큼의 배율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강력한 힘이 된다. 이것은 강한 자가 단독으로 돌진하는 대신 약한 자도 함께 끌어 모두가 동등한 활동을 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합쳐져 커다란 다른 힘이 되는 것이다.
집단에 집중된 힘은 크다. 따라서 야전을 할 경우에는 필요 이상의 화톳불이나 횃불을 쓰고 힘껏 북을 치며, 낮 싸움에는 될수있는한 기를 세움으로써 압도적인 기세를 보여 상대편 삼군의 기를 꺾고 상대편 장수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려는 일종의 심리작전이다.
이야기는 지휘 신호를 주제로 하고 있으나, 손자의 의도는 예로부터 병서에도 나오는 것으로, 그러한 신호 보다는 군중이란 것과 그 위력, 또는 그에 수반되는 군중심리나 상대편에 주는, 대집단의 위압감 등의 심리적인 면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통일된 집단력은 개인의 힘이 누적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그 통제에는 기나 북처럼 집단에 맞는 지령 방법이 취해지고 있다는데도 무엇인가 암시하는 것이 있는 듯하다.
(9) 상대의 기세가 쇠하였을 때를 노려라.
是故, 朝氣銳, 晝氣惰, 暮氣歸.
이 때문에 아침의 기는 날카롭고, 낮의 기는 게으르며, 저녁의 기는 끝난다.
故, 善用兵者, 避其銳氣, 擊其惰氣. 此治氣者也.
그러므로 군사를 잘 쓰는 사람은 그 날카로운 기를 피하고, 게으른 기를 친다. 이는 기를 다스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리적인 움직임이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아침에는 병사들의 기분이 충실하기 때문에 기운이 차 있고, 낮이 되면 아무래도 늘어지기 쉽다가 저녁이 되면 하루의 일이 끝났다는 것에 안심을 하게 된다.
따라서 병사를 잘 쓰는 사람은 이러한 병사들의 기분을 잘 파악하여 아침의 날카로움은 가급적 피하고, 대낮이나 저녁 때의 기분을 노려서 습격하는 것이다. 이는 비로소 기분이란 것의 움직임을 잘 이해하고 터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관찰에 따르면 오늘날 가장 능률이 오른 아침 출근 직후가 교통혼잡으로 파김치가 되어 버린다는 것은 대단한 국가적 손실이다. 경영자로서는 자위상(自衛上) 이 교통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예화]
상대의 기세가 쇠하였을 때를 노려라
朝氣銳, 晝氣惰, 暮氣歸.
아침의 기는 날카롭고, 낮의 기는 게으르며, 저녁의 기는 끝난다.
7세기 초의 수나라 말엽에 천하는 크게 어지러웠다. 당 태종은 고조(高祖)의 권유로 천하 통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태종에게는 이정(李靖), 이적(李勣) 등의 명장이 있었으므로, 무위가 크게 올라 널리 성밖 까지 그 이름을 떨쳤다.
특히 유명한 것은 장락왕(長樂王)을 자칭하던 두건덕(竇建德)과 범수(氾水) 동쪽에서 싸운 일이다. 건덕의 군대는 장장 수 리(里)에 걸쳐 진을 치고 있었다. 태종은 장군들과 함께 높은 곳으로 올라가 건덕의 군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장군들에게 이제 필승은 틀림없다고 자신있게 말하였다.
태종이 말하였다. "저놈들의 모습을 보니 얼굴은 험상궂고 평온하지 않은데다 무엇인가 다투고 있다. 저것은 군대에 정령(政令)이 없기 때문이다. 또 성 근처 가까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이쪽을 얕보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군은 병사를 아껴서 출격하지 말고 적의 기력이 쇠하기를 기다리자. 대진이 길어지면 군사는 주리기 시작하여 돌아갈 생각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철퇴하는 시기를 보아 출격하면 반드시 승리한다."
이른 아침 5시부터 임전체제로 들어간 건덕의 군대였으므로, 정오가 되자 군사들은 공복과 피로가 생겨서 털썩 주저 앉거나 다투어서 물을 빼앗아 마시기에 이르렀다.
이를 본 태종은 기회를 포착하여 전군에 출격을 명하니, 마침내 건덕을 사로잡아 버렸다. 싸움에 진 건덕은 장안에서 사형당하고, 거병한지 겨우 6년만에 꿈이 깨졌으니 용병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 일전이었다.
(10) 고요함으로써 화(譁)를 기다린다.
以治待亂, 以靜待譁. 此治心者也.
다스림으로써 난(亂)을 기다리고, 고요함으로써 화(譁)를 기다린다. 이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이 쪽은 빈틈없이 통제되어 순조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상대가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기를 서서히 기다리고 있거나, 이 쪽이 만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고요한 상태에 있으면서 상대가 떠들썩한 모습을 보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역시 인간 심리를 이용한 방법이다.
극히 말하기 거북한 예이지만 상대편에 쟁의가 일어나서 아침부터 떠득썩하며 혼란스러울 때가 공격하는 데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11) 편함으로써 수고로움을 기다린다.
以近待遠, 以佚待勞, 以飽待饑. 此治力者也.
가까움으로써 먼 것을 기다리고, 편함으로써 수고로움을 기다리고, 배부름으로써 굶주림을 기다린다. 이는 힘을 다스리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비교하면 앞서 말한 바 있듯이 이쪽은 근거리 이동으로 끝내고 상대가 멀리 고생을 하면서 오는것을 기다린다든지, 이쪽은 애를 쓰지않고 한가한 상태로 상대가 피로에 지치는 것을 대기하고 있다든지, 또는 이쪽은 식량급여가 만족한데 상대는 부족하여 고생할 때를 기다리는 것 등은 전력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심리적인 것과 전력적인 것을 대비한 것이다. 여기에 인용된 것은 앞서 여러 차례 등장하였던 것이므로 달리 해설할 필요는 없다. 이 두가지가 작전의 주가 되어, 다음 조항 이하에서 설명되듯 구체적인 작전이 되는 것이다.
(12) 진형이 정비된 상대에게는 손대지 말라.
無邀正正之旗, 無擊當當之陣. 此治變者也.
정정한 기(旗)를 요격하지 말고, 당당한 진(陣)을 습격하지 말라. 이는 변(變)을 다스리는 것이다.
질서가 정연하게 대형을 정비하여 있어야 할 곳에 틀림없이 정기를 세우고, 오는 적에게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은 손해이다. 빈틈도 없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적진을 습격하는 것은 역시 불리한 공격이다. 이를 안다면 변화의 콧대를 치는 법을 아는 것이다.
육박전의 요령을 세가지 요소, 즉 심리적인 것, 전력적인 것, 그리고 여기서는 전략적인 것으로 요약하였다. 다음에는 이 3요소의 응용이란 형태로 구체적인 전법, 즉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순차로 전개하고 있다.
[예화]
진형이 정비된 상대에게는 손대지 말라
無邀正正之旗, 無擊當當之陣.
정정한 기(旗)를 요격하지 말고, 당당한 진(陣)을 습격하지 말라.
후한(後漢)말, 조조(曹操)가 업(鄴)을 포위하자 곧 원상(袁尙)이 구원하러 갔다. 이사실을 알고 조조가 말했다. "원상이 만약 큰길로 진격해 올때는 피해야 한다. 그러나 서산(西山) 간도 쪽으로 오면 생포할 수 있다."
과연 원상은 서산 간도로 진격해 왔다. 조조의 군은 즉시 요격하여 원상의 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큰길을 정정당당하게 진형을 펴고 진격하는 군은 자신을 뒷받침하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간도를 남모르게 진격해 오는 기습대(奇襲隊)에 비하면 전혀 다른 힘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무적의 힘이다. 아니 무적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힘이다.
▶️ 以(써 이)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람이 연장을 사용하여 밭을 갈 수 있다는 데서 ~로써, 까닭을 뜻한다. 상형문자일 경우는 쟁기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以자는 '~로써'나 '~에 따라'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以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以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수저와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두고 밭을 가는 도구이거나 또는 탯줄을 뜻하는 것으로 추측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무엇을 그렸던 것인지의 유래와는 관계없이 '~로써'나 '~에 따라', '~부터'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以(이)는 ①~써, ~로, ~를 가지고, ~를 근거(根據)로 ②~에 따라, ~에 의해서, ~대로 ③~때문에, ~까닭에, ~로 인하여 ④~부터 ⑤~하여, ~함으로써, ~하기 위하여 ⑥~을 ~로 하다 ⑦~에게 ~을 주다 ⑧~라 여기다 ⑨말다 ⑩거느리다 ⑪닮다 ⑫이유(理由), 까닭 ⑬시간, 장소, 방향, 수량의 한계(限界)를 나타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위치나 차례로 보아 어느 기준보다 위를 이상(以上),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전(以前),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어떤 범위 밖을 이외(以外), 일정한 범위의 안을 이내(以內), 어떤 한계로부터의 남쪽을 이남(以南), 어떤 한계로부터 동쪽을 이동(以東), ~이어야 또는 ~이야를 이사(以沙), 그 동안이나 이전을 이왕(以往), 까닭으로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을 소이(所以), ~으로 또는 ~으로써를 을이(乙以), 어떠한 목적으로나 어찌할 소용으로를 조이(條以), ~할 양으로나 ~모양으로를 양이(樣以), 석가와 가섭이 마음으로 마음에 전한다는 뜻으로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심오한 뜻은 마음으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는 말 또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의사가 전달됨을 이르는 말을 이심전심(以心傳心),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뜻으로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당해 내려는 어리석은 짓을 일컫는 말을 이란투석(以卵投石), 대롱을 통해 하늘을 봄이란 뜻으로 우물안 개구리를 일컫는 말을 이관규천(以管窺天), 귀중한 구슬로 새를 쏜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이주탄작(以珠彈雀), 독으로써 독을 친다는 뜻으로 악을 누르는 데 다른 악을 이용함을 이르는 말을 이독공독(以毒攻毒),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으로 힘에는 힘으로 또는 강한 것에는 강한 것으로 상대함을 이르는 말을 이열치열(以熱治熱), 옛것을 오늘의 거울로 삼는다는 뜻으로 옛 성현의 말씀을 거울로 삼아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이고위감(以古爲鑑), 새우로 잉어를 낚는다는 뜻으로 적은 밑천을 들여 큰 이익을 얻음을 일컫는 말을 이하조리(以蝦釣鯉), 손가락을 가지고 바다의 깊이를 잰다는 뜻으로 양을 헤아릴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을 이지측해(以指測海),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이식위천(以食爲天), 사슴을 말이라고 우겨댄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기만하고 권세를 휘두름을 이르는 말을 이록위마(以鹿爲馬), 하나로써 백을 경계하게 한다는 뜻으로 한 명을 벌하여 백 명을 경계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이일경백(以一警百), 털만으로 말의 좋고 나쁨을 가린다는 뜻으로 겉만 알고 깊은 속은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이모상마(以毛相馬), 남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삼아 자신을 경계함을 이르는 말을 이인위감(以人爲鑑), 백성을 생각하기를 하늘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백성을 소중히 여겨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음을 일컫는 말을 이민위천(以民爲天), 피로써 피를 씻으면 더욱 더러워진다는 뜻으로 나쁜 일을 다스리려다 더욱 악을 범함을 이르는 말을 이혈세혈(以血洗血),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을 이왕찰래(以往察來), 불로써 불을 구한다는 뜻으로 폐해를 구해 준다는 것이 도리어 폐해를 조장함을 이르는 말을 이화구화(以火救火) 등에 쓰인다.
▶️ 飽(배부를 포)는 ❶형성문자로 饱(포)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밥식변(飠=食; 먹다, 음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부풀어 커지다의 뜻을 가지는 包(포)로 이루어졌다. 만족하게 먹다, 만족해 하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飽자는 '배부르다'나 '속이 꽉 차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飽자는 食(밥 식)자와 包(쌀 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包자는 자궁에 있는 아이를 그린 것으로 '싸다'나 '감싸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飽자는 식사로 배가 부른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飽자의 갑골문을 보면 包자가 아닌 欠(하품 흠)자가 그려져 있었다. 欠자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니 이것은 배가 불러 트림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 包자가 뜻과 발음을 대신하게 되면서 지금은 飽자가 '배부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飽(포)는 ①배부르다 ②속이 꽉 차다 ③옹골지다 ④옹골차다 ⑤(내용이)충실하다 ⑥물리다 ⑦가득 차다 ⑧만족하다 ⑨착복(着服)하다 ⑩배불리 ⑪족히 ⑫충분히,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주릴 기(飢)이다. 용례로는 배부르게 먹음을 포식(飽食), 무엇이나 그 용량에 충분히 참을 포만(飽滿), 흡족하게 누림을 포향(飽享), 싫도록 봄을 포간(飽看), 어떤 일을 싫도록 많이 겪음을 포경(飽經), 너무 많이 먹어서 몸이 상함 또는 그리하여서 생긴 병을 포상(飽傷), 썩 많이 들음이나 싫도록 들음을 포문(飽聞), 작은 틈이나 공간에 물이 가득 차 있는 일을 포수(飽水), 배고픔과 배부름을 기포(飢飽),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는다는 뜻으로 옷과 밥이 넉넉함을 온포(溫飽), 양껏 먹어서 배가 잔뜩 부른 느낌 또는 충분히 차서 만족스런 느낌을 포만감(飽滿感), 정해진 한도까지 꽉 채워진 분량을 포화량(飽和量), 어떤 정도에 한껏 이르지 아니함을 불포화(不飽和), 배 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의식이 넉넉하여 불편함이 없이 편하게 지냄을 이르는 말을 포식난의(飽食暖衣), 더할 수 없는 양에 이른 상태나 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을 포화상태(飽和狀態), 배 부를 때에는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 맛을 모름을 이르는 말을 포어팽재(飽飫烹宰), 고기가 아니면 배가 부르지 않다는 뜻으로 나이가 든 노인의 쇠약해진 몸의 상태를 이르는 말을 비육불포(非肉不飽), 굶주리게 되면 오고 배가 부르게 되면 떠나 간다는 말을 기래포거(飢來飽去), 돌담이 배가 나오면 곧 무너진다는 뜻으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거나 해로운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석장포복(石墻飽腹), 옷을 따뜻이 입고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다는 뜻으로 의식 걱정이 없는 편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난의포식(暖衣飽食), 가난하여 술찌끼와 쌀겨조차 배부르게 먹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조강불포(糟糠不飽) 등에 쓰인다.
▶️ 待(기다릴 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寺(사, 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寸(촌)은 손, 寺(사, 대)는 손에 물건을 가짐으로, 가만히 멈춰 있음과 손으로 무엇인가 함을 나타낸다.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는 행동하는 일, 즉 무엇인가 행동하기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일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待자는 '기다리다'나 '대우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待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寺(절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중국이 불교를 받아들이기 이전까지는 寺자가 '관청'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待자는 이렇게 '관청'을 뜻하던 寺자에 彳자가 결합한 것으로 '관청을 가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었다. 그런데 지금의 待자는 왜 '기다리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관청은 행정을 담당하던 곳이었으나 업무를 처리하는 속도가 매우 더디었다. 그래서 待자는 '관청을 가다'를 뜻하다가 후에 '기다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待(대)는 ①기다리다 ②대비하다, 갖추어 놓고 기다리다 ③대접하다, 대우하다 ④모시다, 시중들다 ⑤돕다, 거들다 ⑥의지하다, 기대다 ⑦더하다, 더해 주다 ⑧저축하다, 비축하다 ⑨기대(期待)를 걸다 ⑩지속하다, 지탱하다 ⑪임용하다 ⑫막다, 방비하다 ⑬때, 기다리는 때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손님을 맞음으로 음식을 차려서 손님을 대우함을 대접(待接), 접대로 예의를 갖추어 대함을 대우(待遇), 기회가 오기를 기다림을 대기(待機), 위험이나 난을 피하여 기다리는 일을 대피(待避), 바라고 기다림을 대망(待望), 약속을 기다림을 대기(待期), 명령을 기다림을 대령(待令), 관원이 과실이 있을 때에 처분의 명령을 기다림을 대명(待命), 죄인이 처벌을 기다림을 대죄(待罪), 손님을 대접함을 대객(待客), 시기를 기다림을 대시(待時), 병세가 대단하여 살아날 가망이 없게 됨을 대변(待變), 사람을 기다림을 대인(待人), 반갑게 맞아 대접함을 환대(歡待), 희망을 가지고 기약한 것을 기다림을 기대(期待), 몹시 괴롭히거나 사납게 대우함을 학대(虐待), 푸대접으로 소홀히 대접함을 홀대(忽待), 특별히 잘 대우함을 우대(優待), 업신여기어서 푸대접함을 천대(賤待), 매우 기다림을 고대(苦待), 사람을 불러서 대접함을 초대(招待), 손을 맞아서 대접함을 접대(接待), 정성을 들이지 않고 아무렇게나 하는 대접을 냉대(冷待), 후하게 대접함 또는 그러한 대접을 후대(厚待), 너그럽게 대접함을 관대(寬待), 높이 받들어 대접하는 것을 존대(尊待), 손님을 대접함을 객대(客待), 예로써 정중히 맞음을 예대(禮待), 불친절한 대우를 박대(薄待),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함을 일컫는 말을 수주대토(守株待兔),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몹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학수고대(鶴首苦待), 거적을 깔고 엎드려 벌 주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죄과에 대한 처분을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석고대죄(席藁待罪), 오래 서서 분부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권문세가에 빌붙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을 조롱해 이르는 말을 장립대명(長立待命),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세월을 아껴라는 의미의 말을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어찌 명년을 기다리랴의 뜻으로 기다리기가 매우 지루함을 이르는 말을 하대명년(何待明年),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처지가 몹시 궁박하여 어찌할 대책도 강구할 길이 없어 될 대로 되라는 태도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좌이대사(坐而待死), 창을 베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항상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인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을 침과이대(枕戈以待), 정당한 이유없이 남보다 나쁜 대우를 함 또는 그 차별을 두고 하는 대우를 일컫는 말을 차별대우(差別待遇), 말에 기대어 서서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빠르게 잘 짓는 글재주를 부러워하여 이르는 말을 의마가대(倚馬可待), 인정없이 몹시 모질게 대함을 일컫는 말을 문전박대(門前薄待), 편안함으로써 피로해지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여 전력을 비축하고 나서 피로해진 적을 상대한다는 말을 이일대로(以佚待勞) 등에 쓰인다.
▶️ 饑(주릴 기)는 형성문자로 飢(기)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밥식변(飠=食; 먹다, 음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幾(기)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饑(기)는 ①주리다(≒飢) ②굶다 ③흉년(凶年)이 들다 ④흉년(凶年) 따위의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飢(주릴 기), 餓(주릴 아), 饉(주릴 근) 등이다. 용례로는 배가 고파 몹시 고생을 함을 기궁(饑窮),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입을 것이 없어 얾을 기동(饑凍), 흉년으로 인하여 굶는 집을 기호(饑戶), 굶주림과 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함 곧 절박한 민생고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기닉(饑溺),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린 해를 기년(饑年), 굶주리고 헐벗어 배고프고 추움을 기한(饑寒), 기근과 질병을 이르는 말을 기역(饑疫), 크게 든 기근을 대기(大饑), 그다지 심하지 아니한 기근을 소기(小饑), 흉년이 들어 배를 곯음을 황기(荒饑), 흉년으로 기근이 듦을 연기(年饑), 가뭄으로 인한 굶주림을 한기(旱饑), 굶주린 까마귀가 울지 않는다는 뜻으로 신하가 임금에게 할 말을 하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기오지금(饑烏之噤), 화살이 빨리 날아가는 소리를 형용하여 이르는 말을 기치지규(饑鴟之叫), 반대로 배가 고플 때에는 겨와 재강도 맛있게 되는 것임을 이르는 말을 기염조강(饑厭糟糠), 내가 굶주리는 것이고 내가 물에 빠진 것과 다름이 없다는 뜻으로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생각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애를 씀을 일컫는 말을 기기기닉(己饑己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