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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여보세요? 교워님?"
" 야 경호맞지? 야이씨? 어떻게 된거냐?"
" 아아.... 지금 다 설명드리긴 길구요.. 어찌됐든 트럭 챙겨서 바이어 화물선까지 직접 갔다 나르기로 했어요. 도중에.. 일행 두명이 붙긴 했는대 우리 도와주신 분들이라 상관 없을듯 해요."
" 왜 상관이 없어. 우리 지분이 줄탠대. 그사람들 인생은 어쩌고. 한국이랑 영원히 쫑나도 상관없대? "
" 그렇걸요."
" 독심술이라도 배웠냐? "
" 수배 달렸거든요. 우리못지않게."
" 범죄자야?"
" 음... 우리때문에 그렇게 됐어요. 숨겨줬었거든요"
" 으이구... 어쨌든 우리 지분은 변동없게 잘해라? 알았지? 우리 가족은 나하나 믿고 여기 타지로 왔으니까. "
" 저도 어쩌면 같은 꼴일지도.."
" 뭐가같아.."
" 나중에 보심 알아요."
" 여자냐..."
" 네."
" 윤경이야?"
" 절대로 아니에요"
" 그래? 갸말고 너따라올 여자가 있었다니 참 세삼스럽네? 그건 뭐 그렇고 언제 오는대?"
" 총명이형 말로는 이삼십분이래요? 화물선에 도착하면 몇시간 걸리겠죠. 그쪽은 상황이 어때요?"
" 나쁘진 않아. 니들 못오면 빼고 시재품 진행 하자는 말이 나온마당이라 내가! 설득하느라 애좀 먹었다!"
" 역시. 믿을사람은 같은밥 먹은 교워님 뿐이내요. 금방 갈태니까 기다리라고좀 전해주세요."
" 그래그래.. 너네 오면 파티나 거하게 하자고. "
" 어?"
" 왜그래? "
" 하늘에 전투기 두대가 날아댕기는대요? 어씨? "
" 전투기? 중국애들꺼 아니야? "
" 모르겠어요. 총명이형 저거 뭔지 알아요?"
언니와 총명이 어의없단 표정으로 경호의 얼굴을 본다.
" 여기도 뭔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거기 근처에 관계자 있으면 물어봐줘요."
" 기다려봐."
휴대폰을 그대로 귀에 댄 체 눈만 꿈뻑 거리는 것이 답답했는지 언니가 총명에게 뭐라도 시키려는듯 다시 어깨를 턱턱 두드린다.
" 혹시 저 비행기랑 연락 가능해요?"
" 연락? 아... 그게. 가능하려나? 경호야 너 중국말 할줄 안댓지?"
" 대학교 4년짜리 전공생한태 무리한걸 시키시면 안돼요.. 제대로 써본건 한참 됐다구요."
" 아나... 이렇땐 또 왜이렇게 겸손해? 간단한 대화는 할수있잔아?"
" 음... 그렇겠죠? 이 핸드폰 받고 계세요."
" 잠깐만, 통신망을 열어놓고,"
뭘 어떻게 한건지 모르겠는대 금방 통신망을 연결했다고 손으로 귀주변을 빙글빙글 돌린다. 경호는 중국어로 역시 뭐라 하는지 모를 말로 중얼중얼 거린다.
( 어? 한국사람이 아닌가본대? 이거 중국말 아니야?)
전투기로부터 전달된 수신음은 한국말이었다.
( 저거저거 영해침공인대. 근대 저거 트럭 아니냐? 밴가? 하늘을 나는 배가.. 우리 영해를 침범했다고 보고를 올려야 되는건가?)
두대의 전투기 대화음이 그대로 전달됐다. 경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화물칸에 있는 튼튼한 화물함을 하나씩 열어보더니 공간이 많이 남는 화물함을 발견하여 은선을 그 안에 숨긴다.
" 야? 너 뭐하냐?"
" 그러게?"
운전석의 두사람과 초롱초롱한 눈으로 화물함 입구까지만 머리를 내민 은선을 포함, 영문을 모르겠다는 물음을 가만히 참고있다.
"미사일 날아오면 살사람은 살아야죠."
" 네? 미사일이 날아와요? "
함 안에 쭈그리고 있던 은선이 벌떡 일어나 묻는다.
"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그쪽도 함안으로 냉큼 들어가요.. "
" 그쪽 이라니요.. 박 은지! 은지라고 기억해두세요. 그리고 저안에 들어가봐야 여기랑 별 다를바 없을거 같은데요? 전 여기 있을래요."
은지의 대답을 듣고 경호는 은선을 다시 앉힌다.
"아무일 없겠지만 제 걱정을 덜어 준다 생각하고 들어가 있어줘요."
" 다들 나와있는대 저만 있긴 좀 그래요.."
수신 스피커에서 전투기 조종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이번엔 한국말이 아닌 명백한 중국말이었다.
" 야 일단 앉아봐!. "
" 애들이 우리 중국사람인줄 아나보네."
조종석의 두 예비커플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 그럼 형님이 한국말로 대답해주세요."
" 아.."
( 아아 여기는 해상위에서 비행 테스트를 진행중인 연구원 총명이라고 합니다. 한국말로 말씀해주십시오.)
( 어? 네.. 여긴 대한민국 공군 서해상 수비대 입니다. 그쪽 국적을 밝혀 주세요.)
( 여기 모두 한국 사람들 입니다. 뭐 중국말 할줄 아는 사람도 있는대 한국사람 틀림없습니다.)
( 서쪽으로 더 날아가면 중국 영해 침범입니다. 방향을 바꾸고 우리 통제에 따라주세요)
( 아니, 우린 자회사 제품 테스트 중입니다. 사전에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라 확인해보면 금방 아실겁니다)
( 테스트요? 그런말. 들은적 없습니다.)
( 지금 보시면 아시잔아요? 헬기나 비행기로 보입니까? 비상하는 트럭을 개발했는대 시험 비행중이란 말입니다.)
그들의 눈에도 신기해 보였는지 갈팡질팡 하느라 시간이 흐른다.
" 저 경호씨..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되요?"
경호는 단호한 눈빛으로 대답한다.
" 우리가 중국영해까지 넘어간 다음이라면 나와도되요."
" 허?"
" 야야 너도 거기 들어가있어. "
" 그렇까요?"
은지가 어느새 보조석에 앉아 발을 보조 조종대 위에 올려놓고 뒤로 푹 기댄다.
( 확인해 봤는대 그런거 없답니다. 신원이 불순하니 우리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위협 사격을 가하겠습니다.)
" 은지씨 같이 들어가 있어요!"
" 아 거참. 들어가나 안들어가나 똑같다니깐."
총명이 다시 마이크를 잡는다.
( 선생님들 쏘지 마세요! 저희 한국사람들 맞아요! 대한민국 만세! 독도는 우리땅! 들으셨죠? 이게 보기엔 민첩해 뵈도 경로를 바꾸려면 반경이 넓거든요 동쪽으로 방향을 틀태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십쇼.)
( 그쪽을 쏘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보호하려고 그러는 겁니다! 앞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진짜 중국이에요? 우리는 못넘어갑니다? 빨리 방향 틀어요)
( 아니 그게 되면 벌써 틀었지? 아 ! 비행장치는 완벽한대 gps는 이모양이야? )
옆에있던 은지도 바람을 잡는다.
" 어어 이거 왜이래? "
손으로 문짝을 탕탕 치며 워급한 상황을 연출한다. 총명은 방향을 좌우로 왔다갔다 하며 육안으로 보이도록 쇼를 한다. 화물칸에선 이미 남녀가 함께 함에 들어가 있어서 서로 끌어안고 진짜 비명을 질러댄다.
" 으아 형님 살살!"
" 끼아아!"
" 은지씨 연기도 한번 피워볼까요?"
" 뭘 그렇게까지.. 우리 얼마나 더 가야되는대요?"
" 앞으로... 10킬로?"
" 얼마나 걸려요?"
" 몇분 안걸리겠죠?"
" 그럼 그냥 이대로 가요 궈찮게."
주위를 맴돌던 전투기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국제적인 마찰을 피하기 위해 포기한 걸까. 눈앞 끝까지 펼쳐진 바다가 하늘에 맞닿은 곳으로부터 흘러 내리는 주황 물감에 점점 물들어 마치 태양이 두개인듯 늦은 저녁의 시작을 알린다. 주황 하늘과 금빛으로 반짝이는 넓은 수면은 그들 탈주의 끝 여정을 축하 해주듯이 찬란하게 빛내주고 있다.
" 거기! 여보세요? 경호야?"
핸드폰에서 작은 말소리가 들린다.
" 경호야 너 찾으신다."
총명의 부름에 감히 대답하지 않고 부스럭 대는 소리와 간간히 숨소리만 들려온다.
" 아 이것들이.. 줘봐요"
은지가 전화기를 대신 받아든다.
" 아 여보세요 용건 말씀하세요. 옆에 총명씨 있으니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 네? 누구세요?"
" 네. 저는 박은지라고 하구요. 남자 두분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준 대가로 중국에 팔려온,"
총명의 눈치를 한번 살핀다. 총명은 뭔가 말하려 하지만 입맛만 다실뿐 조용히 비행에 열중한다.
" 따라온 자매중 언니입니다. "
" 아... 무슨.. 아. 그래요. 전투기라는거 이쪽에서 부른게 아니라던대 괜찮습니까? 상황을 말해놓아서 힘을 써보겠다 했으니 최대한."
" 우린 이미 영해 안으로 들어온거 같구요. 전투기도 안보입니다."
" 아아.. 다행이네요. 왜 이럴게 우여곡절이 많은지.. 고생이 많으십니다. "
그때 멀리서 길죽한 형태의 뭔가가 수면위에서 눈에 띄도록 떠있는것이 보인다. 멀리있어서 작아 보였지만 거리를 따져 본다면 큰 규모의 선박인거같다.
" 경호야아아아아!!"
총명이 우렁찬 뱃심소리로 경호를 부른다.
" 왜요!!!"
" 배다!! 통역 준비해!!"
" 후아아.."
은지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경호가 먼저 함에서 나와 운전석으로 다가가고 은선이 바로 뒤를 따른다.
" 어디요 어디."
" 저어기~ 오른편 수평선 위에."
" 아 진짜.. 저기까지 가러면 삼십분은 걸리겠네!"
" 그렇게 많이 안걸려. 십분? 지금쯤이면 저쪽이 먼저 연락을 걸어와야 하는대?."
" 좀 위로 높이 떠서 날아가면 안되는거에요? 감시당할 뭔가도 없잔아요."
" 그러자 우리 위치도 알릴겸."
트럭이 고도를 높이니까 허전한 느낌이 네사람 모두에게 전달된다.
" 어뭐야 이거! 하늘을 날잔아?"
" 제수씨 여지껏 몰랐어요? 우리 여태 하늘을 날고있었어요."
" 어머어머!"
신기해 하는 은선옆의 경호는 감상에 젖는다.
" 높이 뜨니깐.. 경치 참 좋네요.. "
" 그치? 나도... 트럭을 만들면서 이런 경치를 상상만 해봤는대 직접 보니까 너무.. 좋네.."
" 어제랑 그저깨.. 오늘 있었던 일들이 그냥.. 하..."
" 우는거 아니지?"
" 아니요. 감회가 참 새로워서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뭐가 기다릴지 모르겠는대 .. 참 .. 기대되기도 하고.. 홀가분 하기도 하고 뭐라 딱히 한가지 감정이라고 설명하기 힘들어요."
" 눈이 촉촉한대 ?"
은지가 경호를 올려다보며 놀리자 은선이 엄지손으로 경호의 눈밑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처준다.
" 크흠.. 에험.. 아니라니까요."
경호는 은선의 손에 뭍은 눈물을 자신의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는다.
"중국연락담당자한태 전화 넣어봐요. 거의다 왔다구요."
" 나 전화기가.. "
뒷주머니와 앞주머니를 여기저기 더듬다가 상의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겨우 찾는다.
" 다들 조용히 있어봐."
전화를 걸고 가만히 있던 총명이 오분넘게 안받는 상대방 때문에 표정이 살살 일그러진다.
" 아 이것들이 일을 안하고 뭐하고있.. 아 여보세요? 네네 저희 눈으로 배가 보일정도로 근접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걱정 안했대요? 대화가 너무 짧네."
" 비지니스에 그런게 어딧냐. 배 앞쪽에 화물격납문 열어놨니까 들어오란다."
" 간단하네요. "
" 하.. 오늘은 일찍 자야겠어. 쏘주한잔 마시고."
" 파티해야죠."
" 파티. 좋지. 내일 하자고."
" 허허. 세상일이란게 맘대로 되든가요. 경사도 비극도 우리가 고를수 있는게 아니잔아요.?"
" 아나. 팔팔한 너랑 제수씨랑 둘이서 하라고. "
" 어허? "
경호는 음흉한 미소로 총명에게 눈짓한다. 그때 중국말로 길게 그들을 안내하는 방송이 수신된다.
" 뭐라는거냐?"
" 음.. 저쪽이 자신들 신분을 밝혔고, 우리보러 천천히 돌아서 다가오라네요."
이제 커다란 화물선까지 가깝게 도달했다. 화물선 주변으로 빠르게 선회하는 작은 배들이 호위를 하듯 알짱 거리고 있다. 배 갑판과 화물 격납고 주변엔 똑같은 모양과 색상의 작업복을 입은 인부들이 트럭을 올려다보며 기다리고 있고, 트럭이 바닥에서 쩍 벌린 격납고 입구위에 도달했을땐 그안에 총을 든 검은 전투복 차림의 남자들이 삼사십명 정도 격납고 안에 서성거리는 것이 보인다.
트럭은 공중에 정차후 특유의 웅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점차 고도를 낮추어 내려간다. 격납고 안으로 완전히 트럭이 들어가자마자 격납고 문이 입을 닫는다. 바닥에 표시된 자리까지 안전하게 착지한 트럭은 곧 잔잔히 울렸던 엔진음과 웅웅거림이 수그러 든다. 완전히 멈춘 트럭의 운선석쪽으로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 6명과 어깨뽕이 많이 들어간 흰블라우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다가간다.
" 우리 내려야되는거지?"
" 안내릴려구요?"
" 사람들 얼굴을 봐봐... 험악하잔아."
" 오늘 야근해야하나보죠."
" 그냥 간다고할까? 다음에 다시온다고.."
" 후.. 그냥 일단 내려봐요."
화물칸과 운전석에서 각기 두명씩 내린다음 가장 온화해 보이는 어깨뽕녀 주위에 모인다. 총명이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을 청한다.
" 야 통역해라 만나서 반갑다고 오래가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경호는 제대로 하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름 유창한 한국토속 발음으로 열심히 통역을 한다. 말을 알아들은 여성은 총명의 악수를 받아주며 쏼라쏼라 한다. 총명은 자연스럽게 경호와 눈을 맞춘다.
" 뭐래."
" 난관이 많았을탠대 대단하게도 와주셔서 감사 하답니다. 자신은 회사 그룹의 개발 사장으로 있는 이정이라 하네요."
" 이름참 괴상하네.. 아 그럼 나는 나총명이라고 하고 설계 보완과 시범제품 완성을 한 조신철 박사님 조수라고 대답해드려."
총명은 경호의 모를 통역을 믿으며 앞에있는 젊은 여성향해 웃어보인다. 경호의 통역이 끝나자
" 아아~"
하는 긍정적인 리액션을 취한 여성은 오른쪽으로 손짓하며 또 뭐라뭐라한다.
" 아 그... 트럭은 계약 내용대로 자기내 개발팀에서 공수해 갈 것이고. 우리는 곧장 베이징 본사로 가서 일행과 합류 하면 되겠네요. 라고 말 했습니다."
" 그럼 좋겠네.. 가자고그래."
격납고 한쪽에 나있는 통로로 커플들과 임직원들이 걸어 들어간다. 그 뒤로 경호원들이 따라 붙는다. 가는 내내 형식적인 안부와 트럭에 관한 말들이 오가는 중에 경호는 은지와 은선의 신분에 대한 걱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형님 우리 신분증 말고 은지씨란 은선씨 것도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냥 가면 항에서 공안에게 잡혀갈거에요."
" 맞다 그랬지."
총명은 신분세탁에 대한 요청을 개발부사장에게 의뢰한다. 그러나 그사람들도 바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최대 이틀까진 기다려야 가능하다 한다. 화물선 둿편, 간이 헬기장에 마련된 핼기에 네명과 이정을 포함한 임직원 두명이 함께 오른다.
" 얼마나 걸릴지 물어보면 좀 실례겠지? 한국사람들 성격 급하다고 욕할라.. "
" 궁금하긴 한대요.. "
프로팰러가 돌아가는 소리때문에 오래 대화를 할순 없었다. 통신용 이어폰을 낀 두남자과 이정은 불편한 자리를 최대한 매끄럽게 해보려 머리를 싸매는대, 곧 그렇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설계와 수정에 관한 집요한 질문 때문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핼기안에서 시달린 두사람은 입에 침이 마를때즘 거대한 항구와 선박들이 컨테이너를 내리고 올리는 장소를 지나간다.
" 벌써 육지네요."
" 우리 어디가는 거에요?"
은지가 먼저 용기있게 물어보나 대답해줄 사람은 이정 말고 없었다. 결국 경호가 그여성에게 질문한다.
" 근처 호텔을 들러서 하루 묵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핼기로 베이징 본사까지 간다네요."
" 휴.. 다행이네요. 이 죄수복 차림으로 언제까지 피곤하게 끌려다니나 걱정했어요."
" 옷도 좀 갔다 달래야 갰네요."
경호는 은선을 바라보며 아래위로 시선을 까딱거린다.
" 아 우리 환전 해야하는대 깜빡했다..."
총명의 말에 경호는 실소를 터뜨린다.
" 그와중에 환전까지 하려했다면...왜요 출입국 공무원한태 여권 도장도 받아 오셨어야죠.."
" 호텔에서 써야할거아녀. 우리 남은돈 말이야."
" 그냥 버려요.. 평생 쓸일 없을 태니까."
" 어! 얼마나 있는대요! 버릴거면 나 줘요."
은선이 소리를 지른다.
" 한.. 백구십만원? 백팔십? 어쩌면 호텔에서 한화도 받지 않을까?"
" 은선씨 드리세요 기념으로."
오만원권이 느슨하게 묶인 다발을 가방에서 꺼내 은선에게 주자 은선과 은지의 눈에 생기가 돈다. 헬기는 난장판 같은 항구를 완전히 벋어나 시내에 접어든다. 시내 내부, 고층 건물이 모여있는 소도시까지 날아간 헬기는 준수한 외관의 호텔 건물 옥상쪽으로 내려가더니 탈썩 금방 착륙해버린다.
아직 프로펠러가 한참 돌아가는 중인대도 임직원들의 하차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할수없이 거센 바람을 뒤로하며 그 뒤를 네명이 따라간다. 아랫층 로비까지 단숨에 경보로 내려온 그들을 기다린건 호텔 직원들이었다. 임직원의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어렴풋이 들은 경호가 설명한다.
" 호텔 직원의 안내를 받으래요. 더 뭐라 말한것 같은대.. 저녁밥? 옷? 뭐 그런 애기였던거같아요."
경호는 그들앞에 정중히 서있는 호텔 직원중 한사람에게 다가가 뭐라뭐라 말하니까 직원이 훤히 웃으면서 대답한다.
" Vip룸 두개가 준비 되있고 아랫층에 가면 레스토랑이 있대요 각자 씻고 모여서 저녁 먹으면 되겠네요."
은지가 경호 옆에 서있던 은선의 손을 잡고 일행을 가른다.
" 몇시에 모일까요?"
경호는 은지에게 묻는다.
" 지금... 몇시지? 일곱시 다되가니까 여덟시 반쯤 볼까요?"
" 에에?"
총명의 눈이 커진다.
" 그럼.. 호텔 직원에게 간단히 입을 옷을 부탁해놓을게요. 여기서 만나요."
" 그래요."
경호가 직원을 불러서 두 자매에게 필요한 옷과 장 위치를 알려줄것을 주문한다음 각자 방으로 흩어진다. 가장 끝방. 직원이 문을 먼저 열어 그들을 맞이한다. 천장이 높지 않지만 붉은 색감이 화사하게 감도는 넓고 심플한 방이었다. 고급스런 소파와 옛스러운 액자, 큼직한 항아리들이 눈에 띈다.
" 형님 공장 숙소도 여기랑 비슷했던거같네요."
" 어딜봐서?"
호텔직원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총명은 옷을 훌떡 벋어 욕실로 예상되는 곳으로 뛰어간다.
" 내가 먼저 씻는다!"
" 욕실 두개에요..."
" 우와! 욕탕 겁나크다! "
" 탕에 몸을 지지고 나와도 시간 남을거같으니까 천천히 볼일 보세요."
물 흐르는 소리가 문이 닫히면서 멋는다. 경호도 옷을 천천히 벋은다음 소파위에 던져놓고 밖의 화려한 도시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앞에 선다. 쇠고랑을 철컹거리면서 자신을 쫒는 사람 없이 편안하게 서있다는게 세삼 이상한 느낌 이다.
내일은 평일 이지만 아침 일찍 출근도장 찍고 교정관 눈치 안봐도 되고 저녁 퇴근시간을 빼앗길까 안절부절 하지 않아도 되었다. 싫은 사람 싫은 직장 역겨운 일부 수형자들, 성과, 부모님 눈치, 동기들 경쟁 하나 없는 이곳에서 홀딱 벋고 도주끝의 단맛을 절절하게 흠미한다.
경호도 이제 다른 욕실에 들어가 욕탕에 뜨거운 물을 받고 가만히 손으로 점점 채워지는 물을 손으로 훍는다. 다 됐다 싶어 몸을 훅 날려 풍덩!. 온몸을 던져넣은 경호는 입에서 절로 앍는 소리를 내지른다. 그대로 누운체 눈을 감고 몇분. 몇십분. 그간 겪은 위험한 순간을 생각하며 몸서리 친다. 다시 눈을 떳을때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기를.
약속 시간 삼십분전, 다씻고 정신을 가다듬은 남자 둘이 일층 로비의 카페에 앉아 모험담을 주고 받는다.
" 야 씨! 내가 혼자 산속에서 말야! 순찰도는 경찰들 뿌리치느라 나무 몇게 부러뜨렸는대 지금 생각하면 소변지릴거 같다니까? "
" 저는 생각도 하기 싫어요.. 진저리가 나요.. 오늘부터 동쪽으로 누워 자지도 않으려구요. "
" 나도. 난 이제부터 중국어 배운다음에 한국말 절대 안쓰려고. 관광도 안갈거야."
" 감방관광 하실일 있어요? 생각도 말아요. "
" 나 중국어나 가르쳐줘라. 너 아까 보니까 꽤 하더라?"
" 전공이라니깐요? 근대 저한태 배우려면 기다리세요."
" 응? 무슨 할일이 있다고 기다리래?"
" 은선이랑 은지씨 주민등록 해야하고 그분들도 배워야죠. 무엇보다! 홍콩에 갔다 올겁니다. "
" 신혼여행?"
" 에이.. 결혼식을 안했는대 그건 아니고.. 거기서 살만한 곳을 찾아보게요. 은선이도 홍콩 마음에 든댓어요."
" 거기 좀 먼대? 야이씨 벌써 이 형이랑 떨어져 지내려고? 좀 있다가 가지?"
" 금방 이민 갈거 아니에요. 형님 일 쪼금 도와드리고 보수도 챙겨먹고 해야죠 "
" 무슨 돈이 또 필요해서.. 허이구.. 사업같은거 하지마라 절대로?! 우린 사업 체질이 아니야. 딱 지시받고 움직이는 그런 뭐랄까? 일개미? "
" 사업 절대 안할거에요. 김교위님이랑 돈모이서 빌딩 사기로 했어요. 임대업이 위험하진 않잔아요? 게다가 짭짤하기까지!"
" 그건 뭐 사업이 아니고 부루마블 땅따먹기냐.. 하긴 일벌리는거 치곤 제일 낫네 그게. "
" 그죠? 홍콩은 비싸서 안되겠고.. 광역 도시로 알아봐야겠죠?"
" 여기 회사있잔아. 그회사 부동산쪽도 계열이 있다는대 형이 알아봐줄게. 이상한대 기웃거리다 사기먹으면 중국그지꼴 나기 딱 좋아."
" 그럼 좋죠. "
" 우린요? 우린 뭐 없어요?"
자매들이 오는 소리를 못들은 까닭에 두남자는 살짝 놀랐다.
" 없기는요.. 은지씨는 제가 편의점 하나 차려드릴게요. 제가 관리까지 싹 해드리면 은지씨는 그냥 앉아있기만 하면 되겠네."
" 중국까지 와서 편의점을 하라구요?"
" 아까 분명히!?,,아니면 뭐... 제 집안일좀.. 해주시든가.."
" 허! 가정부따위를 말하는거에요?"
"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같이 살면서.. 그 뭐냐... 살림도 하고.. 같이 밥먹고.. "
" 어험.. 내려갑시다. 가사분담 토론은 둘이 계실때 하시고, 어? 옷 새로 받으신 거에요?"
경호는 자신의 옆자리에 의자하나를 옮겨놓으며 말한다.
" 후우.. 네.. 디자인이 죄수복도다 낫다는 이점만 챙긴.. 그런거죠.."
" 은선이는 이쁘네. "
" 내가? 옷이?"
" 내려가죠. 배고파요."
은지는 먼저 카페를 나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간다. 그 뒤를 세명이 천천히 따라간다.
" 내려가서 옷좀 사자.. 내꺼랑 언니꺼랑."
" 그러자. 한국돈을 받아준다면, 형님은 아까 멋있었어요."
" 에씨 조용히해."
바로 아랫층, 양식과 중식 레스토랑의 갈림길에 선 네사람은 양식에 몰표를 주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맛에 반비례한 양때문에 다시 중식 레스토랑에 들러 밥을 먹는다.
매뉴판의 매뉴를 경호의 적극적인 추천덕으로 폭탄을 피해 배를 가득 채운 다음, 할일을 정한다.
" 자매분들은 쇼핑을 하신다고 했죠? "
" 여기 쇼핑할대가 있나"
총명과 은지의 의욕이 배가 비었을때보다 충만해진거같다.
" 아마 호텔... 이니까 일층에 있을지도 모르고 밖으로 나가야 할지도 몰라요."
경호는 이 호텔에 묵어본 것처럼 이야기한다.
" 그럼 나가자. 답답해."
" 그러자."
은선과 경호도 밖으로 나간다는 점에서 의욕을 느낀다. 제한적이었던 쇼핑을 외부에서 대충 마무리한 일행은 다음날 새벽 5시. 호텔직원의 콜서비스를 받고 일어난다. 계란이 들어간 죽을 먹은 총명과 경호는 일곱시 까지 옥상 헬기장으로 오라는 메모를 참고한 다음, 나머지 자매를 깨워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한 뒤, 어제 그 카페에서 가만히 기다린다.
" 미친듯이 졸립네... 잠자리에 커피를 괜히 마셨나봐.."
" 커피를 아예 마시질 말아요. 속쓰리다뭐다 하지마시고.."
" 지금 졸린거를 몰아내려면 한잔 마셔야겠어."
" 아침 먹을거 시켜놓고 있을까요?"
" 또먹게? "
" 우리말구요."
" 아아. 빨리좀 나오라그래라... 늦겠다."
경호는 샌드위치 두개를 주문한 다음 자매들이 묵고있는 방으로 향한다.
'똑똑.'
가만히 기다려도 기척이 없어 다시 두드린다.
' 똑똑똑'
" 누구세요!"
은지의 신경질 적인 인사말 덕분에 샌드위치 하나를 먹고싶어진 경호는 다시한번 기회를 주기로 한다.
" 경호에요."
" 잠깜만요."
약 이십여분. 카페에 있던 총명이 샌드위치 두개를 들고 찾아온다.
" 너 아직도 안들어가고 거기 서있냐?"
" 기다리래요."
" 우리 올라가야되."
" 지금 몇시죠?"
" 여섯시 사십분."
경호가 다시 문을 두드린다.
" 아진짜!"
은지의 외침이 문밖으로 희미하게 새어나온다.
" 우리 지금 올라가야되요 서둘러요."
십여분이 더 흐른뒤 드디어 문이 열린다.
" 아침부터 정신없게 왜그래요? "
은지의 따지는 말투가 거슬린 총명이 샌드위치를 건내준다.
" 일곱시까지 핼기장에 가야되니까요."
" 그럼 미리 말을 하든가요. 그럼 더 일찍 일어났을거아니에요"
" 우리도 아침에 알았어요. 거기 모닝콜 안들어왔나보죠?"
" 안들어왔어요."
" 이상하네.."
경호가 생수통을 은선에게 건내며 말한다.
" 일단 올라갑시다. 우릴 기다리게 하면 안되니까."
헬기장으로 올라가는 통로에 도착했을땐 경호원들 뒤로 어깨뽕이 사라진 이정을 포함한 임직원 세명이 기다리고 있다.
" 칼같네."
그들의 안내에 따라 핼기장까지 올라갔다. 건물이 높아서 바람이 이리 거센건 아닌거 같은대, 젖은 은선의 머리가 어쩌면 마를지도 모를만큼 예열중인 핼기 바람이 매서웠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네명은 정신없이 서로 올라타기에 바쁘다. 모두 탑승한것을 확인한 직원이 문을 닫아주자 엔진소리가 더욱 심해진다. 앞좌석쪽 총명은 임원이 함께 따라가지 않는다는 사실 덕분에 살짝 마음을 놓는다.
" 밥먹어. "
" 먹어도되?"
" 안될게 뭐있어?"
가장 뒷좌석에 앉은 경호와 은선이 맘편히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앞줄 총명과 은지의 사이엔 냉기가 흐른다.
" 베이징까진.. 삼사십분 가야할걸요? 아까 사온거 드세요."
" 밥먹고 싶은대.."
" 그럼 도착해서 어디 들를까요? 한식 식당이나. 중국집가서 간단하게 먹고 나오면 되겠죠?"
" 오늘 오전에 바쁜거 아니에요? 도착하면 알아서 먹을게요."
"크흠.."
시쓰러운 엔진소리때문에 길게 대화를 이어가진 못했다. 창밖으로 쾌쾌한 하늘과 빌딩이 산듯한 아침햇살을 열기만 남기고 빛을 증발시켜 버린것처럼 건조하게 보인다. 곧이어 공장과 열악한 주거 단지를 지나고 긴 고속도로와 산이 이어진다. 뒤에 앉은 커플은 잠에빠져 서로에게 기댄체 잠들어있다. 옆자리의 은지마저 꾸벅꾸벅 졸고있는 마당. 총명은 계속 창밖의 스모그가 언제 사라지나 지켜볼 뿐이다. 한국에 있을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불평했던 이전의 일이 행복한 것이었구나. 트럭이 이런 대기층을 뚥고 운행하려면 고장에 대비해서 설계를 약간 변경해야 겠구나.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다시 핼기가 큰 도심으로 들어가는 것을 감흥없이 구경한다.
구불구불 혈관같은 도로 사이사이 크고작은 빌딩이 빼곡히 밀집된 중심지에 이른다. 모양이 약간 개성있다고 처줄만한 빌딩의 옥상에 핼기가 속도를 줄여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