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야생화 탐방을 나서
토요일 오후 바람과 함께 가을답지 않은 요란한 비가 지나간 시월 셋째 일요일이다. 날이 밝아온 새벽에 시조를 한 수 남겼다. “폭염에 시달리다 고장 난 시계였나 / 물억새 은빛으로 바람에 일렁이니 / 뒤늦게 계절감 찾아 가을다운 운치다 // 수면에 가득하던 연잎을 고사한 뒤 / 겨울새 선발대가 허공을 선회하는 // 주남지 아득한 저편 내게 남은 길이다” ‘주남지 물억새’ 전문이다.
물억새를 율조로 다듬어 아침이면 지기들에게 카톡으로 사진과 보내는 시조로 준비해 놓았다. 아침 식후는 근교 산자락으로 뚫은 임도를 따라 제철에 피는 야생화를 탐방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원이대로에서 마산역 앞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동마산병원 앞에서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함안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같이 탄 이로 늙수그레한 중년이 몇 되었다.
서마산을 벗어나 신당고개를 넘을 때 옆자리 손님이 나누는 텃밭 가꾸는 얘기를 엿들었다. 두 사내는 서로 잘 아는 사이로 여름 이후는 처음 만난 듯했다. 고추 농사를 지어 말려두거나 가을에 마늘 심은 얘기들이 오갔다. 마산에 살면서 떠나온 옛날 동네로 가 농사를 지었다. 각자 텃밭 위치는 한 사람은 가야 삼봉산 아래고, 다른 이는 군북이었는데 거기는 농지가 제법 넓은 듯했다.
나는 산인 대천마을에서 내려 자양산 통신사 중계소로 오르는 임도를 따라 걸을 셈이다. 마을 곁 냇가에는 전날 내린 비로 평소보다 냇물이 넉넉하게 흘렀다. 차량이나 인적이 드문 호젓한 임도를 따라 걸으니 귀여운 강아지를 목줄에 묶어 산책을 나선 아낙이 뒤따라 와 앞세워 보냈다. 아랫마을로 귀촌해 사는 이로 아침마다 반려견을 운동시키러 임도를 따라 걷는 사람인 듯했다.
임도 길섶에 정상부와 고개 너머로까지 수많은 산수유나무가 심어졌는데 봄날이면 노란 꽃이 화사하고 가을에는 붉은 열매가 달렸다. 지금쯤 산수유 열매는 작기는 해도 과육에 고물이 차 발갛게 익을 때인데 올해는 결실이 저조해 그 수효가 많지 않아 보였다. 지난봄 정상적으로 개화는 이루어졌으나 여름을 거쳐 오면서 이상 고온에 착과 된 열매가 녹다시피 해 성글어졌나 싶었다.
비탈길에서 앞세워 보낸 산책객은 되돌아 내려오고 고갯마루 쉼터 정자에 올라 간식으로 가져간 커피와 술빵을 때 조각내 먹었다. 정자에서 내려와 송신탑이 세워진 정상으로 가질 않고 고려동과 갈전마을을 뒷동산으로 삼는 산등선으로 난 임도를 따라 걸었다. 북향으로 난 임도는 칠월 유원까지 아주 길게 이어져 가끔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이 무리 지어 라이딩 나서는 구간이었다.
임도는 적요해 오가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길섶에는 제철에 군락으로 핀 하얀 구절초와 노란 미역취를 몇 가닥 봤다. 응달에 즐겨 자라는 꽃향유는 개체수가 많아 보라색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길섶에는 우거진 나무가 적어 전방으로 시야가 트여 멀리 천주산이 작대산으로 이어진 산세와 함께 낙동강 건너 창녕 남지와 도천으로 짐작되는 낮은 봉우리의 야산들도 시야에 들어왔다.
일제 강점기 동광을 채굴한 금동굴로 내려가는 갈림길과 남해고속도로 산인휴게소가 보일 산마루를 지나면서 쑥부쟁이와 이고들빼기가 피운 꽃의 열병을 계속 받았다. 절개지에 선 제법 큰 소나무에는 진흙에 뒹군 멧돼지가 몸뚱이를 수없이 비벼대 밑둥치는 반질반질 뿌리가 드러나 고사 되어 눈길을 끌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성어가 떠올라 유저고근(遊猪枯根) 조어를 남겨봤다.
장암마을 갈림길에서 연장 개설된 임도를 따라 산자락을 돌아가니 들판과 고속도로와 산 너머 고개 너머 칠원 읍내 시가지가 보였다. 비탈길을 내려 산모롱이를 돌아간 외딴집 산중 농원에는 중년 부부가 표고버섯을 손질하고 있었다. 깊숙한 달전 골짜기를 빠져나가니 유원으로 초등학교와 실버타운이 나왔다. 폭이 넓어진 광려천을 건너 칠원 읍내까지 가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2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