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장평대전)
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이 진나라에 의하여 통일을 이루어 하나로 나아가는 길에는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 중에는 역사에 남아 후대인에게 교훈을 주는 잔인한 전쟁도 많았다.
가장 잔인하였던 전쟁사를 하나만 짚어보자.
진나라와 조나라가 3년 간을 싸운 장평대전이 유명한다. 진나라의 백기장군은 조의 조괄이 이끄는 군사와 대전에서 크게 승리하여 40만 명을 포로로 잡았다. 포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백기 장군의 고민이었다. 풀어주면 조나라로 돌아가서 다시 진을 침입할 것이다. 그렇다고 포로로 데리고 있기도 어려웠다. 어마어마한 경비 부담은 진나라의 짐이었다. 40만 명의 식량을 감당해야 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백기는 결단을 내렸다. 40만 명의 포로를 생매장하여 없애기로 했다. 두 가지의 고민을 해결하는 유일의 방법이었다.(지금도 유골이 무더기로 발굴된다고 한다.)
그러나, 잔혹한 행위를 뒤따라 오는 부작용도 작지 않았다. 진나라를 상대로 6국이 연합하여 대항했다. 포로가 되면 생매장 당한다는 두려움으로 죽기살기로 항쟁했다. 그래서 진에 의한 중국 통일이 훨씬 더 늦어졌다고 한다.
(* 내가 찾아 본 자료에는 25만이라는 기록도 있었다. )
(*시신이 대량으로 묻힌 구덩이를 발굴했다. 희생제물로 죽은 시신이라는 말도 있고
혹시 장평대전의 역사적 자료가 아닌가 하는 학자도 있다.)
(*중국인은 과장하는 버릇이 있어서, 포로를 학살한 것은 분명하나, 진짜로 몇 명인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