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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골로새서4장10~18절
제목 : 복음에 매인 삶의 은혜
2016년 마지막 날입니다.
올 한해도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바울 사도는 7~8절에서 두기고를 천거하고,
9절에서 오네시모를 소개합니다.
이어서 동료들을 문안합니다.
오늘 성경은 바울과 함께 골로새교회에 문안 인사를 드리는 6명의 인사가 등장합니다.
이중 3명은 유대인으로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이고,
또 다른 3명은 개종한 헬라인으로 에바브라, 누가, 데마입니다.
사도는 동료들이 전하는 문안과 골로새 주변 지역에 인사를 전하고, 친필 서명과 함께 성도들에게 복음에 매인 삶의 은혜를 기원합니다.
바울이 이 사람들을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에게 천거하고 있는 것은
골로새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동료들의 문안(10~14절)
1) 아리스다고와 마가.(10절)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 아리스다고입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라고 소개합니다.
바울과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는
행20:4절에 보면 데살로니가에 거주하던 유대인입니다. (행20:4)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 에베소의 소요(騷擾)를 겪은 후(행 19:29),
같이 여행하고(행 20:4),
로마로 잡혀 가는 바울과 동행하는 자로 나타났습니다.(행27:2).
이것을 보면, 그가 바울이 받는 환난에 동참한 때가 적지 않게 있었던 것입니다.
(2) 바나바의 생질 “마가”입니다(10절하반절)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바나바의 생질 마가 - "생질"이라는 말은 남동생의 아들,
혹은 여동생의 아들을 가리키는데,
마가의 어머니는 바나바의 친 자매였습니다.
"마가"는 "요한"이라고도 하는데
*행 12:12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경건한 모친 슬하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제 1차 선교 여행에 수행원으로 두었습니다.(행 13:5)
중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왔습니다(행 13:13),
후에는 베드로를 도왔고(벧전 5:13),
또한 바울를 도와 근무하였습니다(딤후 4:11).
*딤후4:11“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사도행전(행13:13,15:37-40)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다툼니다.
-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
-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 난자를 데리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다툽니다.
바울이 과거에는 불만족하게 여기던 마가를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를 추천합니다.(딤후4:11).
*딤후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 이유는, 재출발 한 마가의 신앙생활이 장족진보하여 성역에 충성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여기 "명"은 마가를 특별히 존대하라는 사도 바울의 지령입니다.
이 서신을 가지고 골로새로 가는 두기고와 오네시모 편으로 그 지령이 전달된 듯합니다.
2) 유스도라 하는 예수 입니다.(11절)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유스도"는 로마의 이름으로서 '의인'(義人)을 의미합니다.
이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성경에 두 번 더 나타납니다(행 1:23,18:7).
*행1:23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행18:7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스도 예수"는 히브리 이름 "예수"에다가 "유스도"라는 로마 이름을 덧붙인 것입니다.
“그들은 할례파”고 한 것은 위의 세 사람,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라 하는 예수"는 모두 다 순 유대인(할례 받은 자)들이란 말입니다.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
로마의 큰 도성에 유대인들이 많았으나,
복음을 위하여 옥고(獄苦)를 당하는 바울을 동정하는 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위의 세 사람만이 바울을 도와 함께 역사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 복음을 반대하고 또 몰이해(沒理解)하는 유대인들 중에서도 위의 세 사람과 같은 동역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희귀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희귀한 일은 바울에게 특별한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막에서 진주를 줍는 것 같은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3) 에바브라입니다.(12~13절)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① 골로새의 토착민으로서 그곳에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② 항상 애써 기도하는 사람(12절상반절)
③ 확신 있는 신앙생활 자였습니다.(12하반절)
확신 있는 자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떤 교훈이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동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골로새와 데살로니가 지역에 퍼지고 있던 이단에 대항하여 교회를 지키기 위해 로마의 감옥까지 갔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헌금을 모아서 에바브라를 전달자로 해서 바울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라가 돈 가지고 바울을 찾아가보니까,
바울 사도가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라도 오네시모처럼 죄도 없는 사람이,
스스로 자원해서 감옥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바울의 병간호를 하다가 에바브라는 병이 들어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 한 사람을 섬겼지만
나중에는 너희와 라오디아게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한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을 위하여 사랑을 베풀었지만,
나중에는 큰 인물이 되어서 많은 사람을 섬기는 그런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4) 누가와 데마(14절)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14절상반절)
"누가"는 사도 바울에게 가장 귀한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의 대부분을 동반(同伴)한 자로서,
특히 옥중에서 바울의 임종시(臨終時)까지 함께한 사람입니다.
딤후 4:11에는,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제자가 되었던 것과 같이,
누가는 바울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2) 데마입니다.(14하반절)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데마"는 누가와 같이 나중까지 바울과 동고(同苦)하지는 못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입니다(딤후 4:10).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우리가 그를 가리켜 배교한 사람이라고 까지는 하기 어려우나,
그의 신앙이 후년에 이르러 약해졌다는 것은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2. 주변 성도에게 인사(15~17절).
1)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15절).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15상반절)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라오디게아"는 골로새에 가까운 곳이니만큼,
두 교회 사이의 우교(友交)는 친밀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통하여 라오디게아 신자들에게 문안을 보냅니다.
(2) 눔바입니다.(15하반절)
눔바는 여성입니다.
15절에“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라고 소개했습니다.
눔바는 자기 집을 교회로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눔바의 집에 교회가 있었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 집을 교회로 공개하고 산다는 것은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집을 공개하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형제자매들을 받아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평범한 평신도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은 이렇게 하는 구나 배울 수 있습니다.
2) 돌려가면서 편지를 읽으라 하십니다.(16절)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바울은 본절에서 자기의 서신들을 각 교회가 돌아가며 읽을 것을 권합니다.
"이 편지"란 것은 물론 골로새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는 “돌아가면서 읽는 편지” 윤독 서신을 말합니다.
3) 직분은 주님께서 주십니다(17절)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아킵보"는 골로새교회에서 주의 사역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몬1:2)
*몬1: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바울은 여기서 골로새교회에 아킵보를 결려하라고 부탁합니다.
사도가 직접 아킵보를 격려함보다 교회를 통하여 간접으로 권고하는 것을 보면, 사역자는 교회의 권위 아래 지배를 받는 자이고,
교회를 지배하는 자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은 주님께서 세우시고 주님께서 감독하시며,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으로서, '거룩한 직분'이란 뜻입니다.
교직자는 그 직무가 인간을 상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상대한 것이니만큼, 성실히 그것을 수행해야 됩니다.
"이루라"는 말은 그 맡은 책임들 중 하나라도 빼놓지 말고 원만하게 실행하라는 말입니다.
3. 축도로 마칩니다.(18절)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사도는 앞 절까지 대서자(代書者)를 통하여 본서를 쓰다가 끝에 와서는
자필(自筆)로써 기록합니다(살후 3:17).
*살후3:17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사도는 자기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옥중에 수금된 사실이 골로새 신자들에게
기억되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은 그가 골로새 신자들에게 자기 개인에 대한 도움을 구하는 사욕이 아닙니다. 그들이 복음을 위하여 갇힌 바울의 고난을 기억함으로
모든 이단자들을 막을 마음이 강해질 것입니다.
복음을 인하여 수난(受難)하는 자를 기억하는 신자는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더욱 충성할 동기를 얻게 됩니다.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이렇게 짧은 축도는 딤전6:21; 딤후 4:22; 딛3:15에도 있고, 길게 구비한 축도는 고후 13:13에 있습니다.
*딤전6:21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찌어다”
*딤후4:22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딛3:15절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고후13:13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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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두기고, 오네시모, 에바브라, 눔바처럼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60:22절“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 작은 자 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처럼 물질이 많아서 넉넉하게 봉사 못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처럼 머리가 좋지 않아서 똑똑한 사람처럼 지혜롭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눔바는 될 수 있습니다.
에바브라도 될 수 있습니다. 오네시모도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천을 만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작은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커져가고,
우리 모두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풍성해지는 그런 축복이 있어서,
나중에 우리 모두의 이름이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기록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중풍병자 한 사람을 4명이 메고 예수께 나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4명이 한 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예수께 접근하기 어렵자 지붕 위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가 누워 있는 침대를 예수께 내려 보냈습니다.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려간 네 사람은 서로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름은 틀림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출신도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우리는 주 안에서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모여 기도하는 삼 겹줄 기도는 더욱 힘이 있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세 사람이 바울의 위로가 되었습니다(10,11절).
모두 자기만을 위해 사는 때에, 할례 받은 유대인으로 동족의 핍박을 견뎌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를 내던진 유스도, 그리고 마가와 아리스다고는 바울에게 위로이고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나를 위해 살면 나 하나도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결핍을 느낍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면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위로와 구원을 얻습니다.
누가 나에게, 나는 누구에게 위로입니까?
2) 에바브로는 골로새 성도들이 온 세상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 성숙하여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12~14절).
그는 변절한 데마(딤후4:10)와 달리, 끝까지 신실하였습니다.
보든 보지 않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한결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바울은 흔쾌히 에바브라의 증인을 자처합니다.
나는 에바브라처럼 신실하고, 에바브라와 같은 일꾼을 시기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성도입니까?
3) 바울은 골로새 주변의 성도들에게도 안부를 전합니다(15~17절).
초기 교회는 눔바의 집과 같은 성도의 가정에 모여 예배했습니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 공동체도 하나님의 교회이고, 문안받아야 할 성도들입니다.
아킵보에게는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권합니다.
‘이루라’는 말은 완수(완주)하라는 뜻입니다.
신앙이든 사명이든 일등을 위한 질주가 아니라 완주를 위한 경주입니다.
한 해가 저무는 이 시점에 주께서 내게 주신 직분을 잘 감당했는지 돌아봅시다.
4) 바울의 마지막 말은 “매임”과 “은혜”입니다(18절).
육체로는 옥에 갇혀 있으나, 영적으로는 은혜에 매여 있습니다.
한 해 동안 나는 어디에 “매여”달려왔는지 돌아봅시다.
복음을 위한 수고보다 내 욕심에만 얽매여 안절부절하며 살지 않았는지요?
그래도 한 해를 돌아보면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내 약함에도 거저주시는 은혜로 실수와 허물, 아품이 감사의 이유가 되엇습니다.
은혜가 우리에게 있으니, 내년에도 안심입니다.
허나 그 은혜에 부끄럽지 않은 신실한 믿음과 삶으로 응답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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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에베소서 빌립보서설교 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