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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금강경 가르침의 요점 – 부처님의 지혜, 견해(佛知見)
1.상없이 선행을 행하라.
금강경은 중생과 함께하며 실천을 통하여 본성에 합하게 하는 경전입니다.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자비심에서 상없이 선행을 하는 그것이 ‘마음을 항복받는 일’이며 그것이 ‘본성자리를 보는 것’입니다. 상을 취하지 않으면 여여부동의 본성이 바로 그 자리에서 나타나는 이치가 분명합니다.
‘최상의 지혜로 상을 취하지 않고 선행을 하여 본성자리를 보는 것’ 그것이‘금강반야바라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성에 기초하여 살아가도록 삶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중생을 구제하리라는 대원을 세우게 하시고, 또 ‘보시’로 대표되는 육바라밀과 모든 선업을 닦게 하십니다.
1) 상이 없이 일체 중생을 제도하라 (제3 대승정종분)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 實無衆生得滅度者 ~ 有我相 ~ 卽非菩薩’
2) 상이 없이 보시를 행하라 그 복덕이 무량하다 (제4 묘행무주분)
‘應無所住, 行於布施 ‘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無住相布施 , 福德亦復如是不可思量 ’
3)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제10 장엄정토분)
‘應無所住而生其心’
4) 모든 상을 여읜즉 제불이라 이름할 수 있다. (제14 이상적멸분)
‘離一切諸相, 卽名諸佛’
5) 상이 없이 선법을 닦으며 무상보리를 증득한다.(제23 정심행선분)
‘是法平等, 無有高下 ~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修一切善法, 卽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금강경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설한 바‘ 취하지 말라’는 뜻이 아님이 없다. 본 경에서 밝힌 오직 하나의 주요한 뜻은 ‘머무름 없음으로써 아(我相)를 깨뜨리다’이다.
-상을 여의는 공부를 굳게 지녀야 함을 볼 수 있다. 인연 따라 중생이 분별하는 것으로 이름이 상이다. 한 생각 편히 하면 분별의 상이 쉬므로 상이라는 자체가 없다.
-분별심으로 사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사상은 실로 하나의 아상을 벗어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마음 경계의 상 : 탐진치로 인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등,
-외부 경계의 상 : 법상,비법상
-[원각경] ‘환인 줄 알면 여의고 방편을 짓지 않는다’‘지환(知幻)’
-[능엄경] ‘정념진여(正念眞如)로 비로소 능히 모든 幻을 멀리 여의었다.’
-진여본성을 깨달아 비추어야만 바야흐로 환을 알 수 있다. 상을 취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머무름 없이 영원히 중생을 구제함이다. 본성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 또 중생구제의 삶을 실천하면서 본성을 통달한다. 상호 보완이다.
-대자비심의 본성에서 중생을 위하여 큰 원을 세우고 큰 행을 한다.
2. 본성의 자리를 보이다. (성체(性體)를 나타내는 표현)
금강경은 본성을 보게 하는 경전입니다. 본성은 여여함이며, 무아이며, 무유정법이며, 그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진실한 하나의 성품으로 같아서 ‘如如’,‘진여(眞如)’이며, 시법평등입니다. 본성에는 탐진치와 분별심이 없으므로 번뇌를 내려놓게 합니다. 본성은 대자비심이 體이므로 이익일체중생의 행을 합니다.
-阿뇩多羅三먁三菩提 (제2분) : 무상정등정각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제3분): 중생제도(실천행 측면)
-無住相布施(제4분) , 利益一切衆生(제14분): 보시(실천행 측면)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제5분) : 견여래
-無復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無法相, 亦無非法相(제6분) 무상
-無有定法 (제7분) : 무유정법
-無爲法 (제7분) : 무위법
-最上第一希有之法 (제12분) : 최상제일희유지법
-無實無虛 (제14분,제17분) : 무실무허
-實無有法如來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제17분) 실무유법
-諸法如義 (제17분) : 제법여의
-一體法, 皆是佛法 (제17분) : 일체법, 개시불법
-是法平等, 無有高下 (제23분) : 시법평등, 무유고하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제18분) :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제26분) : 모습과 음성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
-一切法無我 (제28분) : 일체법무아
-不取於相, 如如不動 (제32분) : 여여부동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제32분) : 일체 유위법 여몽환포영
2-1. 본성에 대한 설법으로 금강경에는 두가지 관점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본성의 體와 用(行)입니다.
1) 본성을 표현하는 관점 (금강경 사구게)
제1구게 (제5 여리실견분) “범소유상 게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상이 영원하지 않음
제2구게 (제10 장엄정토분)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이생기심” 무주심
제3구게 (제26 법신비상분)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본성을 봄
제4구게 (제32 응화비진분)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인연법
2) 삶에서 본성에 합하게 행하는 관점(대원 대행)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아개영입무여열반 이멸도지 - 제3분)
‘無住相布施 ~ 但應如所敎住.( 무주상보시 ~ 단응여소교주 - 제4분)
‘菩薩應離一切相,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 心不應住色布施. 爲利益一切衆生, 應如是布施’
(보살응리일체상,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심불응주색보시. 위이익일체중생, 응여시보시-제14분)
2-2 본성은 인연법과 중도법임
1)중도법으로 양변을 버린다. ( 法尙應捨, 何況非法.) 단멸상을 말하지 않는다.(不說斷滅相) 법상도 비법상도 취하지 않는다. (不應取法, 不應取非法.)
2)인연으로 생한 법을 체달해 알면 공(空)이 즉 가(假)이고, 가가 즉 공이어서 空과 假(가명으로 있는 법상)가 그대로 하나이다. 이변에 집착하지 않고 중도제일의(中道第一義) 에 합하는 것이다.
3)대개 경의 뜻은 매우 깊고 미묘한 중도제일의(中道第一義)이다.
4)모든 상을 여의면 즉 이름이 제불이다.(離一切諸相, 卽名諸佛) 어찌 ‘무상(無相)’의 본성을 오역하여 ‘허무하다’는 어리석은 상을 내겠는가?
5)인연으로 생(有), 멸(空)함이 찰나이며 동시이다.(햇볕이 한 점을 지나가는 속도처럼 생멸이 일어난다. 마음은 시공간을 초월하므로 생멸이 동시이다.) 가유(假有) 자체로 성품이 공하다. 성의 실상은 본래 이와 같이 상도 없고 상이 아님도 없다. 즉 상이 있고 그 자체로 공하다.
6)법계의 성품이 공함을 보라. 인연법으로 성품이 공하여 잡을 수 없는데 잡으려 애쓰니 번뇌가 있을 뿐이다. 성품이 공할 뿐이지 완전히 없다거나 필요 없다거나 하는 단멸이 아니다.
7)상은 체가 일으키는 작용인데 어찌 단멸하겠는가?
8)보살도를 닦는 자는 육진에 진실로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단멸하면 중생을 제도하지 못한다.
2-3 본성을 깊이 이해하고 일체중생을 제도함
1)사법인(四法印):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열반적정(涅槃寂靜).
2)그래서 수보리가 ‘어떻게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하고 여쭈었다.
3)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중도의 길에서 중생제도의 대원을 세운다.
4)본성을 이해하자니 상이 없으며(無相), 무념(無念)이며, 고요한 가운데 일체법을 포함하고 다 비춘다. 일체 만법이 다 없어진 때(쌍차) 또 밝고 밝게 항상 비추고 있다(쌍조)
5)부처님께서 경전을 통하여 본성을 표현하시고 본성과 하나되는 방법으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수일체선법(修一體善法), 탐욕없는 육바라밀을 행하게 하신다.
6)이타행으로 ‘나’라는 탐욕에서 벗어나 본성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이다. 영원한 대자비심일 뿐이다.
7)부처님이 소승에 대하여 싹이 그을리고 종자가 썩어서 무위(無爲)의 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라 배척하였던 것은 중생제도의 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반야는 이변(二邊, 상과 단멸상)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8)본성을 깊이 이해하고 본성의 대자비심에서 대원 대행을 한다. 일체 중생과 하나되어 같이 기뻐하고 같이 아파하는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그 일체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며, 무주상보시행, 육바라밀을 행한다. 이를 일러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는데 부처님의 심인을 전한 까닭이다.
2-4 [법성게]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무명무상절일체, 불수자성수연성
2-5 [반야심경]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2-6 [원각경]
일체 모든 중생의 비롯함이 없는 환과 무명은 다 모든 여래의 원각심에서 건립되었다.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 허공에 의지해서 형상이 있나니, 허공 꽃이 만약 다시 사라질지라도 허공이란 본래 움직임이 없느니라.
3. 인연법(因緣法)을 설하다
금강경은 인연법을 보게 합니다. 법이 인연으로 생함을 관하게 합니다. 일체 성품이 비어있음은 인연으로 생하고 인연으로 멸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1)인연법을 설하는 금강경의 문구
‘果報亦不可思議’ (제16분)
‘是人以是因緣, 得福多不?’(제19분)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제32분)
-‘상을 취하지 말라’ 왜냐하면 일체가 인연법으로 생하고 멸하니 집착하여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없다. 고로 취할 수 없다.
-마땅히 상대가 있는 일체 유위법 위에서는 변화하여 항상함이 없으므로 이는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이슬, 번갯불과 같은 모습임을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표면은 비록 삼라만상이나 그 속은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법은 인연으로 생한다는 이치를 관찰해 일체 법 당체가 공임을 이해하면 곧 제법공상에 계합해 들어갈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제법이 인연으로 생하는 법임을 관하는 것은 제법공상을 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생멸의 유위법이 꿈과 같고 허깨비 같음을 관하면 곧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생불멸의 무위법에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2)‘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함’을 밝히기 위해 3가지를 설했다.
-1.복덕을 들어 그 실다움이 없음을 설했다. 인연으로 생한 성품이 공함을 밝히기 위해서다.
-2.복덕으로 신상을 구족함을 들어 성품이 공함을 밝혔다. (복덕 구족 => 원만 상호) 부처님이 신상을 구족함을 나타낸 것은 원래 법을 설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다. 인연으로 생한 법은 당체가 공이다. 고로 신상을 구족하여 원만 보신을 장엄함이 있으나 그것이 실다움은 아니다.
-3.법을 설하는 자와 어떠한 법도 가히 설할 것이 없음을 들어 성품이 공함을 밝혔다.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말함으로써 수행의 因과 증득한 果를 설하여 필경 얻음이 없지 않음을 밝혔다. 다음 구절에서 ‘얻은 바 없다.’고 말한 것은 법의 측면에서 설하자면 필경 얻음이 있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4. 불지견(佛知見)을 열개하다.
금강경은 불지견을 열개합니다. 본성을 알게 하고, 본성이 인연법으로 비어있음을 보게 합니다. 마음을 항복받게하고 바른 실천을 열어보입니다. 부처님의 설법은 부처님이 증득한 최상의 지혜로 불지견이니 깨달음으로 바로 달려가는 견해입니다. 불지견으로 마음을 항복받을 수 있습니다.
5. 죄업소멸
금강경은 업장을 소멸하게 합니다. 인연법으로 철저한 인과가 있는데 어떻게 업장을 소멸할까요?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先世罪業, 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卽爲消滅,(제16분)
‘能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으로 죄업을 소멸하게 합니다. 강의내용을 인용하면“그러나 선과 악 두 업이 서로 상쇄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인과의 이치로 필히 인과의 업을 받게 된다. 설령 백천 겁을 지나더라도 지은 바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만약 선업과 악업을 상쇄할 수 있다면 금강경 독송의 공덕으로 선세죄업은 이미 상쇄되었을 것인데 어찌 금세에 응당 악도에 떨어지겠는가? 상쇄하지 못함이 명백하다.”고 했습니다. “오직 힘써 악업을 소멸하는 법만 있을 뿐이다. 선한 종자를 훈습하면 선과를 이루어 악의 종자는 발생할 길이 없다. 비록 아득한 전생에 악을 심어 발전했으나 악과가 성숙할 기간이 아니라면 용맹정진으로 선과를 먼저 성숙하게 하면 악과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오래오래 선근을 증장하면 지엽적인 일이 무성하더라도 악과가 오랫동안 성숙할 기회가 없어지고 장차 무너져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최상승 요의의 교에 의지하여 수승한 인을 닦으면 수승한 과가 정해져 곧 전생에 있는 악의 종자와 뿌리와 잎을 깎아 제거할 것이다. 어찌 선과를 먼저 성숙하게 하여 악과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데 그치겠는가?” 라고 했습니다. 즉 죄업을 소멸함이란 반야지혜로 더 이상 악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비록 악과는 악과대로 받음이나 선과를 먼저 받아 악과를 받음이 늦어지고 장차 무너져 소멸되게 됨을 말합니다. 또 악의 종자를 제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악업을 소멸하는 법입니다. 다시 요약하면 대승경전을 공부한 선업의 공덕의 힘을 입어 선과를 먼저 성숙시켜서 악과를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수승한 과로 장차 죄업을 소멸합니다. 또 경전을 수지독송하므로써 부처님의 견해를 얻어 무량한 복과 지혜의 힘으로 업과를 견디고 이겨내는 힘이 더욱 클 것입니다. 설령 업과를 받더라도 바로 보아 죄업의 결과를 더 큰 공덕의 기회로 바꿀 것입니다.
“경을 수지 독송하면 이것이 참회의 묘문(妙門)이다. 만약 참회하고자 하는 사람은 단정히 앉아서 실상(實相)을 念하라. 모든 죄업은 지혜의 태양이 능히 녹여 없앤다.”
이 경은 참회하고, 업장을 소멸해 제거하는 최고의 경전입니다. 본성을 바로 보아 바른 견해를 가지게 되어 점차 죄업을 짓지 않기 때문이며, ‘죄망심멸 양구공’의 뜻처럼 망념을 제거하는 지혜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며, 경의 공덕으로 선과의 성숙이 먼저 익고 업과의 성숙이 늦어지고 점차 소멸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6. 무념을 통하여 본성에 합하다.
금강경의 가르침으로 본성을 알아 분별상, 망상을 쉬게 합니다.
본성이 무념임을 이해하게 된다. 번뇌의 탐욕을 일으키지 않는다. 아상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고요함에 머무르는 것이 무념은 아니다. 대자비심으로 중생을 위해 끊임없이 자비를 행한다. 무위법으로 ‘무주상보시’를 행한다. 대자비의 실천속에서 점차로 집착하지 않아 염 또한 무념이 된다. 본성의 맑음과 하나가 된다. 탐착하지 않음이 무념이다.
-무념에 이르러야 능히 성을 증득하고 구경이 될 수 있다.
-깨달음은 性이 본래 무념임을 깨닫는 것이다.
-염불: 염(망상)을 끊는 방편으로 청정한 염으로 혼탁한 염을 대치하는 것
-염불의 목적은 반드시 염으로써 무념으로 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
-증득을 기약하지 않으나 스스로 증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염불만으로 무념에 이르지 못한다.
-티끌 경계의 탁함을 생각하면서 또 일면으로 염불하면 행원이 간절하지 못하다 . 어찌 부처님의 접인을 입겠는가? 망상이 어지럽게 날리는 것은 중생의 비롯함이 없는 병의 근원이며, 그것은 절대 강제로 잘라내지 못한다. 불법에 의지해 지혜로써 그것을 비추어 청정하게 전환해야 한다.
-본래 인과 아의 차별이 없음을 깨달아 통달하게 되면 만가지 염이 얼음 녹듯 사라진다.
-염두(念頭)를 전환하는 것을 방편이라 하나 실은 근본으로 잡아당겨 구제하는 법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제외한 다른 법이 없으니 이 이치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망을 끊음으로써 진(眞)으로 돌아간다.
-반드시 대승경전을 많이 독송해야 어리석고 미혹함을 깨울 수 있다. 또 선지식을 친근히 해야 한다.
-공덕(功德)을 닦으면 반드시 무념에 이르러야 능히 성을 증득하고 구경이 될 수 있다.
-경론에 의거해서 지혜를 여는 데는 순서가 있다. 첫째 마땅히 경계가 텅 빈 것을 아는 지혜를 여는 것이다. 일체 경계가 원래 다 텅비고 환(幻)이라 실다움이 없다. 둘째는 일체는 오직 마음이라 마음 밖에 법이 없다. 셋째 염을 끊는데 방편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금강지라 한다.
-인과 我로 경계를 나누어 집착함이 극히 견고하다. 이에 금강경에서는 자기를 버리고 타인을 제도하는 광대심을 발하게 한 것이다. 일진법계를 통달하면 본래 인과 아의 구별이 없다.
-유지계수복자 : 계를 지키고 복을 닦는 것은 수행을 일으키는 최초 방편이다. 잘생겼다. 올바르다 이렇게 판단 하는 모두가 업이다. 수행이란? 판단하는 모든 것을 그치는 것이 수행이다
-염불의 두가지 관점 : 부처님의 가피, 망념을 끊어 진성으로 들어가는 방편(일심염불)
-一念相應一念佛 念念相應念念佛 : 일을 마친 후에 모든 일체망상을 내려놓고 선악을 모두 사량하지 않고서 청정심으로 염불하면 「일념에 부처님의 명호와 상응하여 일념에 부처님이 되고, 염념마다 상응하여 염념마다 부처님이 되나니」
7. 무량복덕을 얻어 본성에 합하다.
복을 통하여 경의 수승함을 나타내었다. 또 복에 집착하지 않아 지혜를 더하여 본성에 합하도록 하였다.
복의 궁극적 다다름은 무량복덕이며 지혜이다. 금강반야를 통하여 중생을 제도하며, 중생제도가 곧 무량복덕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중생제도가 곧 복이다. 중생을 제도하는 과정을 통하여 머무르거나 분별심을 내지 않아 최상의 지혜를 얻게 한다. 즉 복덕을 통해서 相에 머물지 말 것을 가르치고 나아가 性을 증득하기를 요했다.
1)복과 지혜를 쌍으로 닦기를 요한다.
-大悲는 福이다. 여래는 대비심으로 體를 삼았다. 이로써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게 했다.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공감하는 것이 福을 닦음이다. 본경에 설한 복덕은 다 대비로 말미암아 발한 것이다. 발보리심을 하되 복을 닦지 않으면 안된다.
-현실 주변의 모든 모습들이 복덕을 쌓을 수 있는 부처님의 가피이다. 없는 사람에게 나의 것을 내어주기도 하고 배려하기도 하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육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그 자체로 복이 된다. 배려하여 베풀어주고 그것이 지혜로 연결되면 복덕이 곧 공덕이 된다.
-계율을 지키고(계) 머무르지 않고 보시를 행하고(정) 마음의 상을 내지 않아 인욕하면(혜) 복덕을 짓게 된다.
-지혜는 어떻게 얻는가 복을 통하여 얻는다. 복은 어떻게 얻는가 중생을 제도함으로써 얻는다.
-인천의 과보가 아닌 무량복은 어떻게 얻는가. 복에 집착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아 지혜를 얻음이 무량복이요 무량 지혜이다.
-선정은 복을 닦음이 없지 않은가? 선정은 중생구제의 방편으로 그 원은 중생구제에 있다. 선정의 수행은 머무르지 않음(無住)을 더욱 명확하게 뒷받침해 줄 것이다. 무주상보시와 선정은 최상의 지혜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최상의 지혜는 성품이 空함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중생구제의 행(行)과 연결되어 영원히 복과 지혜에 머무른다.
-여래도 반드시 복과 지혜 두 바퀴가 있어야 교화를 행함을 볼 수 있다. 복과 지혜 두 바퀴 모두 중요하지만 지혜가 더욱 중요하다. 고로 삼천대천세계의 보시공덕보다 사구게의 수지독송과 타인을 위해 설하는 것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복 짓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행복을 위해서 나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신 부처님의 일화가 있습니다. 복이 가장 많은 분이 부처님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을 구해 열심히 정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작은 보탬이 되기 위해, 나아가 진리를 얻게 되는 행복을 구하기 위해 오로지 정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무비스님 금강경 강의 中)
-복을 통하여 어떻게 근본 자비, 지혜에 합하게 되는가? 복을 짓는 과정을 통하여 자비를 베풀고 지혜를 얻으며, 지혜를 통하여 수승한 복을 얻는다. 수승한 복이란 영원한 무루복이다. 천생 만생 즐거움을 받아도 그 복이 다하여 다시 번뇌가 찾아 들면 바로 코앞의 현실에서 번뇌가 다시 발발하는 것과 같다. 결국 유루복은 눈 한번 다시 뜨면 무량겁의 즐거움도 찰나에 지나가고 현실은 다시 번뇌 속에 있는 순간이 다가온다. 영원한 무루복이 진정한 복이요 보살은 복을 짓기만 할 뿐 받지는 않는다. 탐착하지 않으므로 재물이 있어도 집착하지 않고 법답게 할 뿐 복으로 누리지 않는다. 복을 짓는 지혜의 행을 할 뿐이다.
2)복과 무상보리에 대한 해설(금강경 강의 –강미농)
-교의가 이토록 수승한데 물질적 복을 내는 것에서 그치겠는가? 능히 선세죄업을 멸하고 무상보리를 얻지 않겠는가? 이 경에 불가사의 불가칭량 무변공덕이 있는 것은 바로 믿어 이해하고 받아 지녀 무상보리를 증득하게 하기 때문이다. 무상보리를 짊어지는 공덕을 성취하는 사람이 앞서 몸과 목숨을 보시한 보살보다 수승한 것은 짊어짐으로써 장차 증득하기 때문이다.
-무상보리를 증득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오랜 장애를 소멸해야 한다. 장애를 제거해야 복덕이 바야흐로 원만해진다. 보리를 증득하면 복덕이 바야흐로 구경이 된다. 이 경에 이러한 공덕이 있다.
-범부의 과보는 비록 큰 부자이거나 큰 지위를 누리거나 혹은 하늘에 태어나는 데 이르더라도 결국에는 일개 고(苦)자를 면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이 경을 받아지니고 독송하면 일체 천.인.아수라가 응당 공양하는 바가 되는데 수승한 복을 얻기는 커녕 가벼이 여김을 당하는 이유는 오랜 업 때문임을 밝혔다. 업장의 힘이 그만큼 큰 것이다. 오직 최상승의 금강경이 더욱더 장애를 제거하는 보검이다. 금강은 능히 끊는다는 뜻이다.
3) 복은 곧 자비( 살생과 육식에 대하여 – 관룡스님)
대승경전에서는 육식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자비의 종자가 끊어진다. 수행의 결과로 생기는 것은 지혜와 자비이다. 지혜와 자비가 같이 간다. 자비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생기는 것. 자비의 종자가 끊어진다는데 먹을 수가 없다. 육식은 살생이다. 고기 입장에서는 먹을 수 없다. 이들과의 인연이 얽히게 된다. 소와의 인연, 물고기와의 인연에 얽혀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남의 살을 먹은 빚을 다 갚을 때 까지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기를 먹으면 선정에 들 수가 없다. 항상 선정을 방해한다. 마지막 설한 열반경에도 고기를 먹지 말라고 되어있다. 이 몸덩어리 더 유지하려고 더 오래 살려고 고기를 먹는 것은 더 오래 살지도 못하면서 업만 더할 뿐, 그들과의 인연만 더 얽혀질 뿐이다. 살생하지 말라. 고기를 먹지 않는 것, 더 이상 욕심이 없는 것만으로도 이생은 성공한 것.
8. 금강경의 요점을 표현한 설법
-금강경은 경은 극히 원(極圓)이고 극히 돈(極頓)인 법문이다. 고로 교의가 수승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圓頓의 근기를 갖춘 자를 위해 설함으로써 그들이 부처님의 종자가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고로 연기가 수승하다고 말했다.
-무릇 [대반야경]의 요의가 이 경에 다 갖추어져 있다. 이 경에서 설한 법은 위 없으며 비교할 곳이 없다. 고로 일체제불과 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다 이 경에서 나왔다고 했다. 비추어 보면 성불하는 법문이 이 경에 있고, 성불 또한 이 경에 있다.
-금강경의 體는 실상(實相)이다. 상을 깨뜨려 실상을 보게 하는 경전이다. “범소유상 개시허망”,“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로써 경의 체를 삼았다. – 수나라때 지자
-생실상(生實相): 어떻게 실상을 드러나게 하는가? 마음이 청정함을 연유로 한다. 청정은 무주(無住)로 말미암는다. 이일체제상 즉명제불, 모든 상을 여의면 실상이 현전하기 때문이다. 일제 제상을 여의면 아견이 제거되고 번뇌가 끊어진다. 번뇌 일분(一分)을 끊으면 실상이 곧 일분(一分) 생한다.
-오직 실상을 바탕으로 머무름 없이 중생을 제도하고 보시하여 무량 복덕과 지혜를 닦아 나간다.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是經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 如來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 금강경은 최상의 지혜, 최상의 공덕이 있습니다. 최상승법을 설하는 반야경전입니다.
[금강경의 대의] (현묵스님)
1)파이집(破二執) 현삼공(現三空) 즉 아집, 법집을 깨트린다. 상을 깨트리고 본성인 空을 나타낸다. 탐욕의 마음으로 내가 있고 그로 인하여 상대가 있고 분별하여 성내는 마음으로 인상이 있으며 무리가 있으면 차별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어 중생상이 생긴다. 이러한 탐진치가 이어지므로 수자상이 있다. 모두 아상에서 연유하므로 나에 대한 집착을 깨뜨려야 한다. 법(法): 나 이외의 일체 현상을 법이라고 한다. 현상에 대한 집착을 깨트린다. 나도 없고 법도 없으며, 공하다는 그 생각도 함께 공해져야 한다.(삼공,三空) 상을 깨트린다는 것은 분별의 생각을 멈춘다는 것으로 망상을 끊어내는 것이다.(斷, 끊을 단)
2)“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마음을 낸 보살들은 어떻게 그 마음을 유지하고 그 마음을 다스리고 항복 받아야 하나이까?”하는 물음에서 핵심이 있다.
[금강경 독송과 사경의 공덕](우학스님)
-무량 공덕경이다.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경이다.
-업장이 녹는다.
-정신이 맑아진다. (집착을 끊어내고 사고체계가 반듯해진다.)
-모든 존재를 편안하게 한다.(영가를 잘 천도해 편안하게 한다.)
-지혜를 얻게 한다.(깊은 삼매에 들게 하여 지혜를 얻는다.)
-몸과 마음이 청정해진다. (마음의 번뇌망상이 없어지고 몸의 세포가 청정해진다.)
-금강경을 사경하고 하루 최소 한 두 번 독송해서 부처님의 법력에 의지해서 생활해야 한다.
----------- 마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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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반갑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인 대승경전 반야부의 금강경을 열심히 공부하셨네요.
금강경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각자 근기에 따른 사유함이 틀리겠지만..금강경 대의를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좀더 깊이 공부하시겠다면 이중표교수님의
니까야로 설명하는 강의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수고하셨고..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