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그리스도께 대한 모든 것은 신비이다. 오늘 우리는 그분이 사람이 되심을 지내고 있다.
“사람이 되셨다.”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이다.
왜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는가 말이다.
성경은 이 사람이 되신 신비를 여러 관점에서 다루고 있지만,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신비는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여전히 신비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한 아기”는 “임마누엘”(이사 7,14)과 같은 아기이며, 이 아기를 통하여
놀라운 해방과 평화와 정의의 왕국이 세워진다고 한다.
이러한 왕국은 어두움 속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비쳐오는 “큰 빛”과 같다.
그 “아기”의 탄생은 그 아기가 곧 정의와 평화의 왕국을 세움으로써 해방을 실현하는 사람으로서
“해방”과 밀접히 관련된다.
이 해방은 인간의 전인적인 차원을 온전히 포용하는 근본적인 해방이다.
이 아기에게 수많은 명칭을 준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이사 9,5)
이 아기는 그 외에도 솔로몬의 지혜, 다윗의 힘과 신앙, 모세와 모든 성조의 훌륭한 덕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 아기는 과거의 모든 것의 종합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능가하는 분으로, 성탄의 전례는
그 모든 명칭을 그리스도께 돌려 드리고 있다.
복음: 루카 2,1-14: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가 태어나셨다.
오늘 복음에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신화나 공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 예수의 탄생으로 역사는 다른 의미가 있으며, 다른 운명을 향해 가게 됨을 말하고자 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10-11절)라고
천사가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그리스도라는 분이 목자들이 기쁨과 놀라움으로 경배하게 될 “구유에 누워 있는”
그 보잘것없는 “아기”라고 한다면(16절) 하느님의 구원은 바로 비천함에서 그리고 무능력에서 오는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역사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새롭게 변화시키며, 영적인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이렇게 해서 인간들이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 행복”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이 예수의 새로운 구원역사는 다윗과 연결되고 있다.
요셉과 마리아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에 따라 걸음을 재촉해 갔던 베들레헴이 바로 다윗이 태어난 곳이다.
바로 구약성서의 내용이 그리스도 안에 완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과거의 모든 중대한 사건들이 마침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보잘것없는 “아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천사들의 노래에 담긴 깊은 의미를 알 수 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14절)
이제 구원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열렸다.
그 구원을 얻게 되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과 사랑을 받아들여 평화를 이루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평화는 바로 구원이다.
이 평화를 위해 인간은 올바른 응답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영광”과 “평화”는 서로 밀접한 관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광”은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계획이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에 지상에서 하느님께로 올라간다.
그리고 “평화”는 그리스도의 선성으로 충만하게 된다.
선성에는 우리가 모두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인류에 대한 계획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인간들 사이의 화해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화해를 통한 평화를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탄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한 신비이다.
그래서 교황 성 바오로 6세는 이 성탄의 신비를 “하느님의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 감동적인 신비”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역사를 쇄신시키며 변화시킬 힘을 감지할 수 있는 아주 세련된 귀와
그리고 잘 준비된 마음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 줍니다.”(티토 2,11-13절) 라고 한다.
우리가 성탄을 지내면서 깊이 새겨야 할 것은 구세주의 탄생이 ‘하느님께는 영광’이며 ‘땅의 평화’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언제나 강생하시어 현존하시는 주님은 구원계획의 실현으로
하느님께 영광이 되며, 우리의 사랑의 삶으로 하나가 된 우리 사이에는 진정한 하느님의 ‘평화’가 있게 될 것이다.
이 평화가 바로 우리가 바라고 있는 구원이 아니겠는가?
성탄의 신비를 잘 묵상하면서 이 ‘성탄의 신비’가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