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2. 12. 21. 수요일.
날씨가 흐리며, 눈발이 날린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 이유는 있을까?
있다. 내일이 동짓날이기에(음 11월 29일 그믐).
동짓날에 관한 글을 검색하였다.
<청명선원 카페> '청명선원' 카페지기님의 '동지날 팥죽 먹는 이유는?'
2022. 11. 30.에 올린 글이 좋은 지식을 알려주기에 복사해서 여기에 올린다.
무단 게재인데도 용서해 주실 게다. 독자를 위해서 게재하는 자료이기에...
동지날 팥죽을 먹는 이유는?
청명선원
동지날 팥죽을 먹는 이유는?
동지날 왜 팥죽을 먹을까요?
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이다. 이 날이 지나면 하루 낮길이가 1분씩 길어지는데 옛 사람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날로 삼기도 했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동지 팥죽은 먼저 사당에 올리고 여러 그릇에 나누어 퍼서 장독, 곳간, 헛간, 방 등에 놓아 둔다.
그리고 대문과 벽, 곳간 등에 뿌리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팥죽의 붉은 색이 잡귀를 몰아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지 팥죽은 잔병을 없애고 건강해지며 액을 면할수 있다고 전해져 이웃간에 서로 나누어 먹었다.
동지 때는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보리밟기를 한다. 이때는 땅속의 물기가 얼어 부피가 커지면서 지면을 밀어 올리는 서릿발로 인해 보리 뿌리가 떠오르는 것을 막고 보리의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과거엔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보리밟기를 하기도 했다.
동짓날 한겨울 기나긴 밤에는 새해를 대비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복조리는 산죽을 쪄와 사등분으로 쪼개어 햇볕에 말리고 물에 담근 뒤 그늘에서 건조시켜 만든다. 쌀에 든 돌이나 이물질을 가려낼 때 사용하는 복조리는 새해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복을 사라며 "복 조리 사려"를 외치며 다녔다. 대보름이 지난 뒤 팔러 다니면 상놈이라 욕을 먹기도 했다.
복조리를 부엌 부뚜막이나 벽면에 걸어두고 한해의 복이 그득 들어오기를 기원했다.
음력 십일월부터는 농한기다. 이때는 가장들보다 아녀자들이 할 일이 더 많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기 위한 메주 쑤기로 부산할 때다.
무말랭이, 토란 줄기, 호박 오가리 등 각종 마른나물 말리고 거두기에 겨울 짧은 해가 아쉽기만 할 때다. 비닐하우스 농가에서는 비닐하우스 골조설치, 비닐 씌우기, 거름내기, 논갈이 등 중노동이 잇따른다.
과거엔 농한기로 쳤지만 비닐하우스의 등장으로 모내기철보다 더 바쁜 농번기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네 기억 속엔 정겨운 화롯가의
추억이 남아 있다.
겨울밤이면 농부들은 동네 사랑방에 모여 내년 농사에 쓸 새끼를 꼬기도 하고 짚신이며 망태기를 삼기도 했다. 더러 손재주 좋은 이들은 윷놀이와 곡식을 말릴때 쓰는 멍석, 음식을 보관하는 봉새기, 재를 밭에 뿌릴때 쓰는 삼태기, 배낭의 일종인 조루막, 풀 베어 담는 꼴망태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졸음이 몰려올 쯤이면 쌈지담배를 꼬실리다가 이내 아낙네들이 삶아온 고구마를 먹으며 마을 소식들이 오갔다. 내년 소작료 얘기며 부당한 물세 때문에 복장이 터진다는 얘기며 안산 너머 닭실골짝 김서방네는 소작료 때문에 논주인과 다투다 부치던 논을 뺏겨 내년 살길이 막막하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밖은 눈이 무진장 내리는데 말이다.
안방에서 동네 아낙들과 고구마에 동치미를 들이키며 바느질을 하다 말고 강부잣집 딸년은 시집가 잘 산다는 얘기며, 양달마을 박서방은 술집 작부와 눈이 맞아 도망을 쳤다는 얘기들이 오갔다. 그때 쯤이면 어린 것은 아이스크림 같은 겨울 감홍시를 입이 벌개지도록 칠한 채 먹다 말고 이내 어미 무릎을 베고 잠이 들곤 했다. 이처럼 겨울나기는 눈오는 밤 질하로에 묻어둔 불씨요 밤알처럼 훈훈한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라는 험한 상황이 아름다운 겨울의 낭만을 사라지게 했다.
모진 바깥 세상에 시달린 손을 포근하게 묻을 곳이며 얼어붙은 볼을 감싸 녹여주며 거칠어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정(情)의 원천이던 겨울나기. 쇠죽을 끓여 지글지글 끓던 방에서 밤과 고구마에 동치미를 들이키며 가족끼리, 이웃끼리 도란도란 얘기 나누던 따뜻함이 새삼 그리운 시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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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는 고대 중국 화북지방(북경)을 중심으로 만들었기에 우리나라 기후 실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24절기는 4계절을 가진 동아시아의 농경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왔음을 인정받아
지난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조금 퍼 온다.
1)
24절기는 중국의 재래 역법의 발상지인 기원전 고대 중국 주나라 때 황허강 주변 화북 지방의 기후 특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때 음력은 달의 움직임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해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되는 계절의 변화와 잘 맞지 않는다.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태양에 의한 기온 변화가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에 태양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기간을 24개로 나누어 24절기를 만들었다.
과거에는 지구가 태양을 15도씩 이동할 때마다 온도나 계절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24개로 나누었다.
2)
중국의 화북지방에서 시작했다.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까지. 농경사회 기반의 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24절기.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 또한 고려 충렬왕 때. 충선왕 때부터 널리 사용된 이후 현재까지 농사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두루 사용된다.
내 결론 :
24절기는 중국 화북지방을 배경으로 만들었기에 우리나라 기후와는 다소 차이가 있음에 주의하며,
현대인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참고로 했으면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그렇다.
동서의 길이는 짧고, 남북의 길이는 다소 길기에 각 지방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각이 다소 차이가 있다.
하물며 중국 화북지방을 근거로 만든 24절기가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 논리에 중국 24절기를 일상생활에 참고했으면 싶다.
예)
서해안 충남 보령지방 바닷가 인근에서 살았던 내 경험에는 년간 가장 추운 때는 1월 초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월 15일 경이라고 한다(어느 지역을 기준 삼았을까?).
2022. 12. 21. 수요일.
나중에 보탠다.
밥 먹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