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호야! 다왔나보다!"
" 흐음..!"
어깨에 머리를 기댄 은선을 최대한 떨구지 않도록 조심히 기지개를 핀 경호가 뒤늦게 창밖을 구경한다.
" 아까 거기 근처 아니에요? 우리 얼마나 날아왔어요?"
" 몰라. 한두시간? 베이징 어디겠지."
경호는 은선의 어깨를 살살 흔들어 깨운다. 맨 앞좌석의 직원이 뭐라뭐라 안내를 하는 소리에 은지도 깨어난다.
" 끄으응.. 뭐라는거야..."
" 본사에 도착했대요. 문 열어주면 그때 내리라네요."
완전히 핼기가 착륙장에 내려서서 옥상에 있던 직원이 뛰어나와 문을 열어준다. 앞자리부터 차례로 내려 그 직원의 뒤를 쫒아 옥상에 지어진 팬트하우스로 안내된다.
" 야! 경호야!!"
" 어! 김교위님!"
둥글게 배치된 소파에 누워있던 김교위가 일어나 경호를 반갑게 맞아준다.
" 야이!! 이제오냐!! 도대체 뭔일이 있었던거야? "
" 아아.. 일단 앉죠. 어어 조신철씨 ! 여기서 다시보니 반갑습니다!"
" 어어! 사지 멀쩡하게 물건너 오느라 애 많이 썼어! 우리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밤에 악몽을 다 꿨다니깐?"
" 박사님!"
" 어이구! 총명이! 오느라 수고많았네. 트럭은 잘 가지고 왔지?"
" 네 연구팀에 넘겼습니다."
" 넘겼어? 언제? 나는 구경도 못했는대? 음... 그것보다도. 뒤에 계신 아가씨들은 뉘신가? 아... 잠깐, 설마? 이놈이? 벌써 여자질이냐? 큰일 앞두고 들떠가지고! 하여간 젊은 것들은 절제라는게 없어?"
" 무슨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이분들 아니었으면 우린 지금 이자리에 올수도 없었어요!"
신철은 들은척 만척 다시 자리에 앉아 서류 뭉치를 이리저리 정리한다.
" 말씀 들었습니다. 도움을 주셨다고. 이거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할지."
김교위가 얼추 마무리를 지으려한다.
" 애좀 먹었죠. 구치소 구경을 다 하고.."
" 애쓰신 보상은 확실히 해드리겠습니다. 경호야 여기 앉아봐."
김교위와 신철이 앉은 소파 맞은편에 총명과 경호가 앉아서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상세히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자매들은 미니바에 앉아서 음료와 과일을 시켜먹는다.
" 하마터면, 빨간줄 갈뻔 했구나. "
" 빨간줄이 문제에요? 평생 대한민국 교정서비스를 받을뻔했는대? "
" 그러게. 인생 막을 내릴뻔했네. 총명씨도 이런일이 처음이라 많이 지치셨겠네요. 이제 여기서 하셔야 할일들이 많으니 막중한 책임을 지시려면 당분간 휴식이 필요 하겠습니다?"
" 저놈이 할일이 뭐있어? 내가 다했는대. 할줄아는거라곤 어버버 거리는거지. "
" 그럼 전 경호 따라서 홍콩이나 가면 되겠네요."
총명이 양쪽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불쾌한 감정을 삭인다
" 뭐? 어딜간다고? 할일이 태산인대? 생각하는거 하곤.. 이놈아 양산 생산 라인이니 설계 변경이니 밤셀거리 투성이야! 잠다잤어! 돈이 그냥 나오는줄 아냐? 너는 내가 시키는거 다 끝낼때 까정 쉴생각 말어."
" 하..."
더 지나면 험한 말이 나올거 같아 경호가 끼어들었다.
" 형님 제가 도울 수 있는건 도와드릴게요. 저도 이제 숴면 되겠구나 생각했는대 신철박사님 말 들어보니 아직 할일이 많네요."
" 글치글치. 나이가 더 어린거같은대 생각이 깊네. 넌 철좀 들어라.. 내가 저 뭐냐.. 보상금이랑 살 집이랑 추가로 해서 월급도 챙겨줄게."
" 아이고 감사합니다. "
한참 만남의 회포를 푸는중 나이가 60정도 들어보이는 남성 5명과 경호원 10명이 팬트하우스에 모습을 보인다.
" 아 인사드려. 우리 바이어. 아니 이젠 오너구만."
경호와 총명이 동시에 일어난다. 남성들 중 머리가 완전히 다 벋겨지고 조끼론 가릴수 없는 배불뚝이 중년말기 남자가 소파로 다가가 중국어로 먼저 솰라솰라 떠들며 손을 내민다.
" 형님 이찬이라는 이분이 자기가 이 회사 대표라며 악수나 하자는군요."
" 어디서 들어본 이름같은대? 내소개좀 해줘. 시범제품 생산이랑 설계수정한 사람이라고."
경호는 총명이 말대로 통역인사를 대신한다. 총명과 이찬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미소로 반가움을 보여준다. 대표라는 사람이 또 뭐라뭐라 하니까 경호원들중 하나가 통역을 해준다.
" 오시는중에 많은 고초를 겪으셨다 들었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은 피로를 느끼시고 계시리라 생각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총명이 화답을 한다.
" 의도치않은 일들때문에 고생한건 사실이지만 끝이 잘 마무리 됐으니 괜찮습니다. 빨리 양산형 설비를 마무리 짓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이번엔 경호가 통역을 돕는다. 인사 걷치례를 마치고 모인 사람들은 간단한 앞으로의 사업 진행 행보를 논의한다. 도중에 신철과 총명의 이견이 갈리기도 하고 호통이 오가기도 하였지만 총명의 의견대로 마무리를 훈훈하게 지었다. 드디어, 최종결정 계약서에 싸인함으로서 끝맺는다.
" 시범제품 생산을 직접 하신 나총명박사님의 설계대로 진행하되 신철박사님과 함께 양산 설계용으로서 수정을 한번더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 물론 그렇게 해드려야죠. 본격적인 작업 착수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총명의 대답을 미처 경호가 통역하기 전에 신철이 가로막는다.
" 뭐? 다음주? 오늘이 몇요일인지는 알고 말하는거야? "
총명이 눈쌀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본다.
" 화요일 이네요. 박사님은 숴셨겠지만 우린 쫒기다 와서 기진해요. 적어도 일주일은 푹 숴었다가 작업해야죠. "
" 이놈아.. 아까 내가 한말을 허투로 들었냐? 아이고 답답이가.."
" 그럼 목요일부터 해요. 최소한의 적응기간은 주셔야죠."
총명의 타협점에 경호가 편을 든다.
" 우리랑 저기 있는 자매들은 묵을 집이 당장 필요해요. 개인 짐이라곤 지갑이랑 핸드폰 달랑 들고 뛰어와서 살것도 많구요. 저 자매들은 주민 등록도 해야되요. "
신철이 멋적게 머리를 긁는다.
" 이곳에 정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를 마치고 일에 착수 한다 해봐야 일주일도 안걸릴걸요? 총명이 형님도 마찬가지아니에요? 네명이서 준비하면 일주일이면 충분해요."
" 아 그럼 맘대로 하시구랴. 뭐 내맘대로 되는거도 아닌대. "
경호는 작업 착수일에 대해서 명확히 답변을 주진 않고 이민 절차와 정착 준비에 대한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고 대표에게 설득했다. 다행히 오너는 넉넉한 시간과 도움을 줄것을 약속해줬다. 각자 계약서를 챙긴 후, 대망의 첫번째 계약금을 받을때가 됐다.
" 설계도의 신빙성과 시연을 직접 확인 했으니 받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차후 제품 양산과 차기 후속 제품에 대한 계약이 성사되면 또 그에 맞는 보상을 약속해 드리겠습니다. "
오너는 달러화가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래핑된 카트 10개를 신철앞으로 두도록 지시한다. 여섯명은 터질것 같은 심장의 두근거림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차기 계약과 양산 시설 준공 과정에 받을 보수에 대해 생각한다.
" 계좌로 넣어드릴까 했는대, 아무도 중국 계좌를 가지고 계신분이 없더군요. 하는 수 없이 현찰로 준비했습니다."
현금에 눈을 때지 못하던 와중 총명이 이를 악 물고 경호에게 의견을 구한다.
" 경호야. 계좌 하나 금방 만들어서 넣어달라하자. 저걸 어떻게 들고다녀? 강도당하갰다."
" 아아 맞아요. 막상 현물로 보니까 좋긴한대 여러가지로 위험하군요. 계좌를 만들어서 넣어달라고 하는게 훨신 안전하고. 간편하지 않겠어요.?"
신철을 보며 말했지만 신철은 입이 귀까지 걸려 올라가 안들리는 듯 하다. 조급했던 총명이 소리를 지른다.
" 신철 박사님! 계좌 만들어서 그쪽으로 넣어달라고 할게요!"
" 응? 뭐? 지금 가져가지 뭘또!! "
" 아... 야 경호야 말씀드려 계좌번호 나중에 불러줄태니까 그리로 송금해 달라고. "
자매를 포함해 네명이 이성을 챙기지 못했지만 그곳을 나와 여섯명이 레스토랑 테이블에 앉아서 점심을 먹을때즘엔 현명한 처사 였다는 것을 모두 인정했다.
" 요근처에 비비에스은행인가? 있다는대 탄탄한가봐. 중국으로 한정된거도 아니고. 거기따가 계좌 만들어서 나누자. 각자 계좌를 만든다음 몫만큼 뿌리자고"
총명이 자신있게 추천한다.
눈앞에 음식이 도무지 무슨맛인지 궁금하지 않다는듯, 회전 판을 멍하게 돌리며 아무도 먹을 생각을 안한다.
" 은선이랑 은지씨는 아직 여행자 신분이니까 계좌 파는게 안될거에요. "
경호가 다음 할 말을 예상한 은지가 반발한다.
" 아! 그럼 우린 수표로 줘요. "
" 그것도 나쁘진 않은대.."
총명이 마음에 안들어 하는것 같다.
" 일단 먹고! 은행에 가서 한명 계좌 만들고! 전화하고! 그다음에 결정하자고!"
신철의 말이 맞는것 같지만 걸리는게 하나 있었다.
" 누구 이름으로 대표계좌를 만들까요? "
김교위의 발언으로 돌아온 밥맛이 다들 떨어져 나갔다.
" 아무나. 어때요. 가서 생각하죠. 이런 생각 하는거 자체가 마음에 안들어요. 우린 모두 목숨걸고 함께한 동료잔아요. 지금은 일단 밥먹읍시다."
경호가 소고기 탕수육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 순간. 다들 일제히 젓가락을 들어 앞에 있는 이름모를 음식에 가져간다. 곧이어 쩝쩝대는 소리만 음식점 vip실에 울려퍼진다.
" 우린 얼마 줄거에요? 안물어 볼랬는대 아무도 나서서 챙겨줄 생각을 안하시네."
또 은지가 불화의 씨앗을 접시위에 뿌린다.
" 아.. 그걸 안정했네."
경호가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 계약 성사금이 1200억이고 저랑 교위님몫이 240억이에요."
은지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고기가 다시 입밖으로 컥하니 올라왔다.
" 어.. 얼마요? "
은선이 옆에앉은 경호의 팔둑을 주먹으로 팍팍 치면서 더 뭔가 말하기를 제촉한다.
" 그건 설계도랑 시험용 트럭까지의 계약 성사금이야. 아까 우리 앞에 보여준 현금이 그거지. 앞으로 시판 하기까지 수고와 판매 하고
나서 받을 성과금도 잊으면 안돼. 지금 우리가 받을건 아주 약소한거라고. "
모두들 신철의 말에 믿음을 나누어 준다.
" 그럼.. 경호 오빠 몫은요? 얼만대요?"
은선이 경호의 몫을 물어본다.
" 반씩 가지기로 했으니까 백이십억이네. 세금없이. "
김교위가 묵묵히 대답한다.
" 백 이십억이면 달러로.. 천사백만 달러 정도 되겠네요. 어차피 교워님이랑 저랑 돈모아서 빌딩 사면 얼마 안남을걸요?"
" 아니야 많이 남을거야. "
김교위와 경호의 대화가 배아팟던 은지는 다시 원 질문으로 이어간다.
" 아 그러니까 우린 얼마 줄거냐구요.!!"
은지의 표정을 읽은 신철이 빰을 긁으며 낮게 이야기한다.
" 샥시들이 뭐.. 수고한건 맞는거니까는..내가 보수를 줘야 안겠어? 한.. 이십억씩 놔드릴게."
" 오우!"
총명이 감탄사를 토한다.
" 오우라니요! 이십억으로 이 깜깜한 타지를 살라구요? "
신철이 젓가락을 들고 허여멀건 탕의 이상한 고기조각을 집어 먹는다.
" 그게 으음 쩝쩝. 모자르면 말이지. 음. 샥시는 잘하는게 뭐 있남?"
" 하아... 저요? 글세요."
" 뭔가 더 도움이 되면 내가 고용을 하겠지만 . 으음 이거 왜이렇게 비려? "
더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을것 같은 분위기다.
" 은지씨 저도 십억씩 드릴게요. 신세진게 있으니까.."
총명의 한마디에 은지의 수심깊은 눈썹이 일자로 펴진다.
" 그러시다면야.. 뭐...고마워요.. 사실 우리가 받을거 받는다 생각하지만 총명씨 말하신게 참 고맙네요."
두눈이 마주치며 웃음으로 서로 뭔가를 주고받는다.
" 경호 너는. 나랑 같이 계속 있어줘야되. 믿을 만한 사람이 있어야지. 아, 이자리에 있으신분들 제외하고 말이에요. 통역을 옆에서 계속 해줬으면 좋겠어. "
" 여기 한국말 잘하는 경호원들 많아요. "
" 알아알아.. 그런대 못믿겠다니깐!"
" 월급 줘요 그럼."
" 월 이천달러 줄게. 너 교도소에 있을때 그만큼 받았었지? "
" 아 장난하세요? 그러느니 다음주에 당장 은선이랑 홍콩여행 갔다 오는게 났겠네."
" 아니지.. 월급은 그만큼이고 나중에 이차 계약할때 또 보상금이 있잔아. 교위님껜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전 빌딩 하나 있으면 만족해요. "
이제 슬슬 다시 밥맛이 돌아오는 타이밍이다. 니글니글하고 멀건 탕도 맛있게 후루룩 마시는 신철의 입심이 다른 이들의 식욕을 자극한다. 식사 후 분쟁의 원인이었던 계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앞에 다시 모였다. 남자 네명의 이름으로 각자 계좌를 개설하고 신철의 계좌에 일괄적으로 보상금을 먼저 받는다. 은행청구에 신철을 앉혀놓은 후, 한명씩 보는앞에서 이체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매를 제외한 남자들은 편안히 대기실의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마지막, 총명이 약속을 지키기위해 이백만달러를 인출해서 호화스런 대기실로 들어온다.
그가 양손이 들고온 돈가방이 제법 묵직해 보였다.
" 여기 앉으세요."
은지가 자신의 옆자리 돈가방을 앞으로 치우고 자리를 만들어준다. 총명은 그 자리에 앉으며 가방 하나를 은지의 돈가방 옆에 나란히 놓아준다.
" 이건 은선씨꺼에요."
은선은 마다하지 않고 덥석 받으며 말한다.
" 저도 편의점 안할거에요. "
" 그럼 앞으로 뭐하실거에요?"
김교위가 은선과 경호를 번갈아보며 질문한다.
" 일단 여행! 홍콩, 베트남, 프랑스, 노르웨이, 로마찍고 하와이 갔다가 한국에 아니.. 여기 올거에요."
" 허이고! 혼자 거길 다 돌아다니겠다구요?"
김교위가 팔짱을 끼며 자기 딸에게 말하듯 턱을 삐죽 내민다.
" 아니죠. 경호오빠랑 갈거에요."
" 경호씨는 총명씨 일 도와준다고 그러지 않았나?"
걱정스런 눈으로 은지가 은선에게 뭍는다.
" 안돼요. 여행 갔다가 오면!"
경호가 난감하다는듯 커피를 다 비운다.
" 난 일단 빌딩 계약 한 다음 여행가고 싶은대.. 에이 아니다. 여행 갈수있을때 가야지! 총명이 형님 일은 오래 걸리는 작업이니까 한두달 나 없다고 큰일이 나는건 아니고 여행부터! 김교위님은 뭐하실거에요?"
" 야.. 언제까지 교위라고 할래? 지긋지긋하다. 나는 우리 애들 학교문제랑 학원 알아봐야지.. 코리아 타운 쪽으로 집 알아보려고. 중국어도 배워야되는구나. 그와중에 빌딩 적당한 매물 알아보고. "
" 총명이형. 그 회사에 부동산중계도 한다고 했었죠? 연결해보면 금방 될거같은대?"
" 응 그랬지. "
" 언제까지 여기 있을거여? 안나가?"
신철이 네잔째 커피를 비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춤을 추스린다. 총명도 따라 일어나며 말한다.
" 네 갑시다. 숙소정리할겸 생필품도 구할겸. 경호가 옆에 있어야 돌아다닐수 있으니까. 한꺼번에 갑시다. "
그들은 은행을 나와 근처 쇼핑센터에 들러 필요한 것과 필요할 것, 당장 필요치 않겠지만 언젠가 쓸것들을 쓸어 담는다. 배달 서비스를 신청한 후 신철을 회사로 보내고 나머지 다섯명은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택시를 탄다.
" 택시 타는것도 일이네. 영어라도 배워둘걸. 은선아 너 공시생이었으니까 영어는 할수 있지 않아?"
은지가 걱정스런 말투로 은선을 압박한다.
택시 기사가 한국말로 대화하는 소리를 옅듣더니 중국어로 뭐라 하는대 경호의 눈쌀을 보아선 좋은 말은 아니었던것 같다.
" 근대 그 숙소는 언제까지 있어야되는거야? 꼭 거기서만 살아야되?"
은선의 말에서 은지는 뭔가 느낀다.
" 아니 그런건 아닌대 우리가 당분간 현지 적응할때까진 모여살아야 할거같아서. 나중에 집산다음 나가살아도되지."
경호가 추측성 발언을 한다.
" 전 최대한 개길만큼 개기다가 나갈거에요. "
은지의 말에 경호가 슬쩍 찔러본다.
" 총명이 형님이랑 같이 살면 어때요? 혼자 지내는 것보다 안전하기도 하고 의지도 되진아요? 총명이 형님만큼 괜찮은 사람 없을걸요?"
" 혼자라니요? 은선이가 있는대? 저는 사람을 조건으로 판단하지 않아요. 사람이 좋아야죠."
" 총명이 형님이 얼마나 사람이 좋은대요? 똑똑하고 깔끔하고, 또..가끔 자상해요. 꼼꼼하구요. "
" 그건 제가 겪어봐여 아는거죠. "
" 그럼 겪어봐요. 진짜 괜찮은 사람이에요."
은선이 옆에앉은 은지에게 속삭인다.
" 나 경호오빠랑 숙소 같이 쓸거니까 짐 안나누어놔도되. "
" 뭐 이것아? "
은선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짝 소리가 나도록 때린다.
"아악!"
" 어린게 벌써 이상한것을 배워가지고! 결혼하기 전까진 꿈도꾸지마? 알았어?"
" 아아!"
" 이게?"
은선의 말을 듣고 설래였던 경호는 창밖의 가로수와 그 뒤로 넓은 정원을 품은 담을 구경한다.
" 다왔나보다."
택시 두대가 대충만든것 같지 않게 생긴 회색벽을 따라 달리다 벽에 설치된 거대한 전자식 철문 앞에 잠깐 멈춘다. 5초 후, 삐익 소리가 잠깐 나면서 그 문이 양옆으로 스르륵 밀려 들어간다. 택시가 철문 안으로 한대씩 들어간다. 오면서 보았던 그 정원이 계속 이곳까지 아니 더 멀리 이어진것 처럼 수목 사이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검은 아스팔트 2차선 도로와 미루나무같이 생긴 것들이 보기 좋게 심어진 곳을 더 들어가 이제 대나무와 대리석절반 자갈 절반 식의 도로가 펼쳐졌다. 좌회전 우회전 구불구불 들어가다가 마침내 둥글둥글 깎은 정원수가 어우러진 삼층짜리 저택이 드러났다. 하얀색인지 회색인지 모를 암석을 반듯하게 깎아 올린듯한 외관이 차가워 보였지만, 돌벽보다 좀더 진한 지붕색감과 깨끗한 여닫이 창문근처 보라색 분홍색 나팔꽃들이 그것을 따듯하게 만들어주는 듯 했다. 마치 유럽이나 미국의 고급 저택을 그대로 이곳에 가져다 놓은 것같았다. 저택까지 이어진 연한 갈색 반듯한 돌길 위에 택시가 멈추고 한명씩 내리는 소리와 트렁크 문이 열리는 소리가 분주히 들린다.
" 와.. 좋다.. "
경호는 탄성을 지른다.
" 우리 와이프가 저녁 해놓는다고 했으니까 짐 대충 풀고 이층 삼호로 올라와."
" 네. 온지 얼마 안됐지만 벌써. 한국음식이 설래이네요."
경호는 웃으며 속으로 뭔가 얼큰한것을 상상한다.
" 우린 방이 어디에요? "
은지의 질문에 김교위가 알려준다.
" 여긴 우리말고 없어요. 신철박사님이랑 저랑 먼저 잡은 방 빼고 빈방 아무대나 잡으면되요."
" 그럼 우린 이층."
" 아 난 싫어!"
" 이게? 또 맞을래?"
은선이 실망스런 표정으로 경호를 바라본다. 그러나 은지가 그 시선의 사이를 가로막아버리고 짐을 은선의 손에 쥐어준다.
" 일단 이층으로 가지고 올라가."
은선이 대답대신 휙 몸을 돌려 저택으로 향한다. 경호와 나머지 남자들도 슬슬 따라간다.
" 들어가시죠.."
터벅터벅, 숲의 시원한 공기를 코와 입으로 흐읍! 들이킨 경호는 길을따라 가며 짖은 파랑색 하늘과 길 양옆의 작은 정원, 마지막으로 반듯하고 깔끔한 저택을 눈으로 훍는다. 멋적게 일층 로비에 들어가서 한층마다 있는 두개의 호수 현황을 본 경호가 먼저 일층 오른쪽 방을 선택한다.
" 사치스럽네요.. 온통 번쩍번쩍 하양 대리석하며.. 높은천장.. 샹들리에. 그림들.. 어설프게 따라한 유럽디자인 문양들, 커다란 계단.. 비싸보이는 식탁이니 의자니.."
" 내생각엔 금방 질릴거같어. 나는 산중턱에다가 통나무집 하나 지어놓은다음에 텃밭을.."
" 오빠!"
총명의 말을 짤라먹은 은선은 경호옆에서서 팔짱을 끼고 어디론가 끌로간다.
" 어디가? "
은선은 경호가 묵을 방 옆에 나있는 통로로 경호를 대리고 간다.
" 여기봐봐. "
" 오오 수영장이네? 꾀큰대?"
고풍스런 저택과 달리, 상반된 하얀 콘크리트와 강화유리로 짜여진 4줄짜리 수영장안에 투명하고 파란 물이 잔잔하게 넘실대고 있었다. 그 양옆으로 수십명이 와도 넉넉할 만큼의 심플한 목제 테라스가 늘어서 있었고 경호가 있었던 통로 말고 저택 뒤의 파티룸이 왼편 테라스까지 연결되어 있다.
" 은선아아아아!!"
윗층에 홀로 짐정리를 하던 은지가 그 사실을 깨닫고 은선을 목놓아 부른다.
" 아 짜증나.."
" 있다가 밥먹고 수영하자. "
" 아 당장 나가 살고싶어. "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은지가 은선을 발견하고 다시 소리를 지른다.
" 야아아아!! "
" 알았다고!!"
은선은 경호를 거기 내버려 두고 다시 저택으로 들어간다.
" 이야 수영장이네?"
뒤늦게 따라온 총명이 감탄을 한다.
" 통나무 집엔 수영장 없죠?"
" 아니 있는대?"
" 안어울려요. 집옆에 흐르는 냇가가 어울리죠."
" 무슨소리. 요즘엔 퓨전이 대세인거 몰라?"
" 형님은 언제까지 여기 있으실거에요?"
" 나? 하.. 모르것다.. 한국에 있을때가 솔직히 더 좋았는대.."
" 그럼 다시 가요?"
" 뭐? 말이되냐.. "
" 이번 양산형 모델 시판 시작하면 기회봐서 나와버려요."
" 기회는 항상 있었어. 수단이 없었지. 나도 두둑이 챙겼으니까 노인내랑 멱살잡이 한번하고 러시아로 뜰까봐."
" 거기서 뭐하려구요. "
" 밭대기 사서 옥수수나 밀 농사 지면 어떨까? 난 쇠만지는거 보단 흙이 난거같아."
" 쇠나 흙이나.."
" 나 러시아 가면 따라올텨?"
" 거긴 추우서 싫어요."
" 춥긴! 시원하지! "
" 저는 됐고 은지씨나 대리고 가요."
" 그건 글렀어... "
" 은지씨는 왠지 벽이 두텁달까? 제가 보기엔 쉽지 않을거같더라구요."
" 몰라. 여튼 러시아에가서 농사만 지을거란 생각은 안해. 일자리 제안 온걸 이용해야지. "
" 거기선 뭐 만든대요?"
" 간단한 무기같은거라는대 살상용은 아니래."
" 그말을 믿어요? "
" 무긴대 살상용이 아니란 말에서 냄세가 나긴했어. 그래도 저 빌어먹을 노친내 밑만 아니면 전투용 후라이팬 이라 해도 믿고싶다.."
" 흐흐 후라이팬.. 에혀 가서 짐이나 정리 합시다."
두 남자의 그림자가 저택의 그림자에 뭍혀간다. 하늘이 점점 노랗게 물을어 간다. 정원의 나무가 내뿜는 선선한 공기가 수영장의 물을 식혀주고 저택 창문 여기저기에 노랑 하양 형광등이 점멸 된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식기가 달그닥 거리는 소리가 창문 밖으로 새어나와서 이제 막 도착한 자가용 운전자의 걸음을 재촉한다. 이제 아무도 없는 수영장. 파라솔 근처의 비둘기무리가 뛰어 올라 구름이 가득 낀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비구름일지 검은 하늘일지 구분 할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새로 비둘기는 곧장 그 방향을 향해 날개짓한다. 정원의 숲을 지나, 실처럼 구불구불 늘어진 고속도로와 그 끝의 유리도시 같은 시내공원의 보금자리를 찾아 퍼덕인 새무리는 그들을 기다리는 모이와 새끼들을 걱정하며 각자의 둥지로 돌아가 날개를 접는다.
한주 뒤. 본격적인 양산화 작업에 들어간 기업은 몇달동안 총명이 설계한 자료에 보편화된 승용차 디자인으로 살짝 수정한 후 판매에 들어갔다. 소비자들의 처음 반응은 거대 기업이 소비자를 상대로 사기를 친다, 중국에서 그런 기술이 가능할리 없다는 비난이었지만 곧 거리와 하늘에 날아다니는 차를 목격한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었다. 중국본토 뿐 아니라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까지 시장을 넓힌 기업은 기본 기술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크기와 모양으로 고급형과 보급형을 나누어 마구마구 팔았다. 위기를 느낀 타 기업들이 그 기술을 카피하려 했지만 쉅지 않았고 러시아에서 미리 총명에게 러브콜을 해두었던 기업은 더 적극적으로 스카웃 활동에 전념했다.
1년후. 베이징의 공항. 젊은 남녀 네명이 한쪽 게이트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경을 낀, 바짝 마른 남성이 배가 불룩 나온 임산부의 허리를 옆에서 받쳐주고 있고 그보단 조금더 어려보는 검은색 긴 생머리의 여성과 운동을 생활화 한듯 다부진 체격을 가진 외모의 남성이 반대편에 서있다.
" 드디어 홍콩에 가보네요.. 진작에 가고싶었는대."
" 대신 돈 많이 벌었잔아! 결혼식에 양가 부모님 모셔서 올리고. "
총명이 불편해 하는 은지의 허리를 토닥여주며 말한다.
" 우리가 먼저 결혼할줄 알았는대.. 겉으로는 보수적인척 하면서 하여튼간.."
" 이게? 언니가 나이가 더 많은대 내가 먼저 가야지! "
" 보수적인거 맞네. 은선아. "
경호는 손목시계을 힐끔거리며 안절부절 못해한다.
" 우리 가서 영영 안올지 모른다? 안온다고 슬퍼들 하지말아. 가자~ 오빠."
은선이 캐리어와 경호의 팔목을 잡아끈다.
"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
경호가 총명을 향해 인사를 남기자 총명도 기약없는 약속을 하며 손을 흔들어준다.
" 최대한 오래있다 와라! 러시아 가면 연락할게!"
이제 은지랑 총명도 카트와 캐리어를 끌고 시선은 가끔씩 동생네 부부를 힐끔 힐끔 뒤돌아 보며 걷는다. 두 부부는 그렇게 두갈래로 헤어진다.
" 나는 러시아 가기싫어. 돈은 충분히 있으니까. 홍콩가서 우리 부모님 모시고 정착 할래."
" 나도 홍콩이 좋아. 근대 총명이 형님이랑 떨어저 지낸다는게.. 아니 정든 이웃이랑 떨어 진다는게 아쉅네."
" 그럼! 언니네 부부가 홍콩으로 오라그럼 되잔아."
" 거긴 생업이 거기 달려있서."
" 우리도 생업이 저어기 있거든? 딴생각 하지마? 무슨 돈을 더 벌겠다고"
수많은 여행객들이 탑승구쪽으로 모여들고 그 사이 신생부부가 줄같은 무리속에 섞여 마침네 모습을 감춘다. 쉬지않고 들려대는 탐지기기의 소리가 어지럽게 군중속을 흔들지만 저지당하거나 밀려나오는 사람은 없다.
긴 기다림 끝. 홍콩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곧 활주로를 천천히 달리다 엔진의 굉음과 함께 힘찬 도약을 일으킨다. 뿌연 스모그. 그속을 박차고 날아가 멀리있을 푸른하늘에 크림같은 구름이 파란 바다를 떠다니는 화려한 도시의 섬을 향하여 꿈같은 비행을 시작한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