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서 생산된 겨울바람은 정말 싫다. 그것도 바이칼 제 바람은 그 속에 비수가 들어 있는 듯하다. 그냥 노출하고 들이나 산 길을 걷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얼얼하던 두 뺨은 칼로 베인 듯 아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옷을 잘 여미지 않으면 금방 체온을 겨울바람이 훔쳐가 덜덜 떨게 만든다. 겨울철 야외활동은 자기 체온을 지키기 위한 바람과 싸움이다. 제대로 바람을 막아야 하고 눈이나 비에 방한복을 적시지 말아야 한다. 다시 정리하면 방풍과 방수는 사람이 필요한 적정 체온을 유지시켜 주지만 바람을 차단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바람이 체온을 야금야금 먹어버리는 마수로 돌변한다. 그리고 입고 있는 옷이 눈과 비에 젖게 되면 옷을 말리기 위하여 많은 열을 발생시켜 에너지가 고갈되어 저체온증에 빠져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저 체온증이 지속되기 시작하면 죽음의 길로 한 발자국씩 다가 가는데 그 참혹한 현실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이 저체온증에 빠진 상태를 발견하지 못한다. 행동이 느려지고 말이 어눌해진다는 것은 이미 저체온증에 빠진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 알아채지 못하면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러한 불행을 막으려면 방풍, 방수, 보온에 신경 써서 의복을 준비해야 한다.
신체에서 가장 빨리 많이 체온을 빼앗아 가는 곳이 머리 부분이다. 그래서 모자는 필수 생존장비나 마찬가지다. 한파를 이기려면 노출 부위를 최대한도로 줄여야 하는데 목도리나 넥 워머, 안면을 가리는 마스크, 장갑도 탁월한 선택이 된다. 상의와 바지위에 오버 트러스 겉옷을 다시 입으면 방풍과 방수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 요즈음은 일반 아웃도어 옷도 방풍 방수 기능이 있어 잘 활용하면 된다. 바지 하단과 신발 사이에 눈, 비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스패츠를 착용하여도 적설기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 방풍과 방수를 막은 후 다음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보온이다. 외부에서 눈이나 비가 침투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체온 유지를 위하여 땀을 배출하게 되는데 장시간 야외에서 행동할 경우 흘리는 땀이 많이 배출되어 속옷을 적시면 저체온증을 유발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속건성 위주의 옷을 선택해야 한다. 순면 옷은 한번 젖으면 마르는 시간이 길게 지속되지만 나이론 계통의 옷은 대체로 쉽게 마른다. 그리고 속옷과 겉옷 사이에는 폴리스 계열의 옷을 입으면 보온성을 유지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너무 많은 적설로 산막에서 외부로 나가는 길이 빙판과 적설로 통행이 어려워졌다. 이렇게 긴 시간 머물 계획 없이 내려와 준비된 식자재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일 약 7.5km 걸어 나가 등짐으로 지고 날라 와야 한다고 고심하고 있던 차 카톡으로 후배가 공지사항은 날려왔다. - 긴급 속보입니다 . 곰 성님께서 폭설로 산막에 갇혀 구조대를 결성하여 구조 또는 응급용 식자재를 공급하려 하니 구조대에 참석하실 회원들께서는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일이었다. 뉴스를 통해 산막이 있는 이 지역에 한파와 적설에 대한 보도가 연이어 나가자 후배가 기억하고 있다가 나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읽고 만든 구조대 결성 공지였다. 공지 후 전화가 오기 시작하였다. 그런 후 토요일 오전부터 각지에서 식자재를 바리바리 싸들고 산막으로 몰려왔다. 산을 함께 다니며 각자 산음식을 만들어 먹던 기준으로 각자 찜용, 불판 구이용, 김치 깍두기, 만두와 떡국, 계란, 파, 고추, 마늘, 숙주, 콩나물, 해물 등등 갖고 산막으로 올라온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어울려 음식을 해 먹으며 각 지역 막걸리를 반주삼아 회포를 풀었다. 공지를 올린 후배가 건배사로 송년 파티 시간을 만들어 주어 감사하다며 술잔을 들도록 하였다.
누가 이렇게 지방 산골짜기까지 식자재를 들고 와주겠는가? 우정의 소산은 이토록 큰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떡 만둣국을 끓여 함께 먹은 후 선약이 있는 후배가 먼저 떠나고 나머지 일행은 함께 산에 올랐다. 정상 부근 눈이 많이 쌓여 양지바른 능선 길을 택하며 걸은 후 점심을 챙기겠다고 하니 친구가 극구 말렸다. 점심은 매식을 하고 편히 쉬라고 권하였다. 그래 함께 내려 가 차를 이용하여 식당을 찾아 해결한 후 늦으면 귀경 길이 밀린다고 다들 떠났다. 초등학교 정문 입구에서 헤어져 가는 친구와 후배들을 손을 들어 배웅하며 안전운전을 당부하고 걸어서 산막까지 올라왔다. 북쩍대던 산막은 다시 고요에 빠져들었다. 식자재를 정리해 보니 한 달 동안 먹어도 충분한 물량이었다. 잘 정리하여 냉동실에 넣고 빠르게 상할 수 있는 야채류는 별도로 보관해 놓고 청소를 하였다. 그리고 감사의 글을 적어 보내려고 작성 중이다. 산막 생활을 접은 후 잠시 귀경해야 할 일이 생겼다. 40여 년 전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 한 달의 시간을 갖고 귀국한 친구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동안 이런저런 일을 보느냐 연락이 늦었다면서 27일 되돌아가기 전에 만나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화요일 귀경하여 만나 동안 회포를 풀 계획이다. 친구를 만난 후 한파가 지속된다면 다시 산막으로 와 지키고 있어야 할 텐데 한파가 얼른 물러갔으면 좋겠다. 귀경하려 하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가족들 모임이 생겨 금요일 저녁을 먹는 것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쉽게 그러마 하고 다시 주저 앉았다. 목요일 귀경하여도 될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