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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진행하여 모압 평지에 진쳤으니 요단 건너편[이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요단 건너편’이라는 원어(메에베르 레야르덴)는 ‘요단 이편’ 혹은 ‘요단 저편’이라고 번역될 수 있고, 본절에서는 ‘요단 이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민수기 32:19, “우리는 요단 이편 곧 동편에서 산업을 얻었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편에서는 기업을 얻지 아니하겠나이다.”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은 모세가 쓴 책들이며 민수기는 그가 요단 동편 모압 광야에 있었을 때 기록한 책이다.
[2-4절]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을 인함이라.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의 연고로 번민하여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모리인들에게 행한 모든 일들을 들었고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다고 말하며 심히 두려워했다.
[5-6절] 그가 사자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가로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모압 왕 발락은 사자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였다. 민수기 23:7에 보면, 발람은 자신이 아람에서, 동편 산에서 왔다고 말한다. 신명기 23:4는 발람을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이라고 말한다. 발람은 모압 땅에서 보면 먼 북동쪽의 유브라데 강 상류의 한 강변에 살고 있었다고 보인다. 학자들은 발람의 고향인 브돌을 유브라데 강 상류인 하란 혹은 그 부근이라고 본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자손들로서 이스라엘과는 친척관계이었다. 물론, 인류는 한 부모의 자손들이다. 그러나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발람을 청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했다. 이웃을 저주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율법의 기본 정신이다. 그러나 모압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초청해 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다.
[7-14절]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로 그에게 고하매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하니라. 하나님이[께서] 발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와 함께한 이 사람들이 누구냐? 발람이 하나님께 고하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라. 이르기를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있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하나님이[께서]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느니라. 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고하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은 손에 복술(卜術)의 예물을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고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날 밤 발람에게 임하셔서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고 말씀하셨다.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 발락의 귀족들에게 거절의 뜻을 전하였다.
성경이 민수기 22장부터 24장까지 석 장에 걸쳐서 발람 선지자의 일을 자세히 기록한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발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어느 정도 받았던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에 이방인들 중에서도 그의 계시를 주신 일이 있었다. 욥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도 이스라엘의 천부장 제도를 제안했었다(출 18장). 또 심지어 그랄 왕 아비멜렉이나 애굽 왕 바로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도 꿈을 통한 계시를 주어졌었다(창 20:3; 41:25; 단 2:45).
발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9, 12, 20, 31, 35절). 그러나 그는 사술(邪術)을 사용하는 법도 알았다(민 24:1). 발람에게는, 선지자가 은금을 좋아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전해야 한다는 바른 마음도 있었다(22:18, 38; 24:12-13). 그러나 그에게 욕심도 있었고(22:19) 또 잘못된 조언도 했다(31:16). 후에 발람이 죽임 당한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을 저주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압 왕에게 이스라엘을 음행의 죄로 유혹하도록 조언했기 때문이었다(31:16).
[15-20절]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매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컨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발락이 그 집에 은, 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밤에 하나님이[께서]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발락은 다시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었다. 그는 발람에게 “아무것도 거리끼지 말고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말했다.
세상적 기준에서 보면, 발락의 제안은 발람의 관심을 끌 만하였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였다.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러나 발람의 마음에는 바른 생각도 있었으나 물질과 세상 권세에 대한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발락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행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즐거이 허락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네가 가보려면 가보라”는 뜻이었다고 보인다.
[21-27절]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하니 그가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이[께서] 진노하심으로 여호와의 사자가[께서] 그를 막으려고[그의 대적자로] 길에 서니라[서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타고 그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께서]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서신] 것을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여호와의 사자는[께서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서셨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비비어 상하게 하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여호와의 사자가[께서]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서신지라].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의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했다. 그가 행함을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께서 그의 대적자로 길에 서셨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께서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서신 것을 보았고 길에서 떠나서 밭으로 들어갔고 포도원 사이 좁은 길의 좌우의 담에 발람의 발을 비비어 상하게 했고 마침내 발람 밑에 엎드렸다.
발람은 노하여 지팡이로 나귀를 때렸다.
[28-30절]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느니라.
여호와께서는 나귀 입을 여셔서 발람에게 말하게 하셨다. 나귀가 말을 한 것은 이 경우 외에는 역사상 없었던 일이다.
그것은 선지자 발람을 깨우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 사건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믿는다.
[31-33절]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께서] 손에 칼을 빼어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여호와의 사자가[께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여호와께서는 발람의 눈을 밝히셨다.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께서 손에 칼을 빼어들고 길에 서신 것을 보자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다. 여호와의 사자께서는 그에게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의] 대적자로 나왔고(원문)”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고 말씀하셨다.
[34-35절]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사자께서]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귀족들과 함께 가니라.
발람은 회개하며 “내가 범죄하였다”라고 여호와의 사자께 말했으나 그는 발람에게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발람은 그 귀족들과 함께 갔다.
[36-41절] 발락이 발람의 온다 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고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케 하지 못하겠느냐?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임의로 말할 수 있으리이까? 하나님이[께서]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에 이르러서는 발락이 우양을 잡아 [제사드렸고 그 일부를] 발람과 그와 함께한 귀족을 대접하였더라[귀족들에게 보내었더라].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발람에게는 분명히 바른 생각도 있었으나, 세상적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발락은 발람과 함께 바알의 산당에 올랐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려 했다. 모압과 이스라엘은 먼 친척이다.
인류는 다 먼 친척들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을 우리 몸같이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둘째로,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이 보낸 귀족들을 따라 모압으로 가서도 안 되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서도 안 되었으나 그 속에 물질적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두 번째 찾아온 자들에게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고 말했다(19절).
사도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바른 길을 떠나 발람의 길을 좇으며 불의의 삯을 사랑한다고 증거하였다(벧후 2:15-16).
주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이 세상의 염려와 돈 사랑과 쾌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설명하셨다(눅 8:14).
우리는 세상적, 물질적 욕심들을 다 버리고 성경에 교훈된 하나님의 모든 뜻에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나귀를 통해 발람을 책망하셨다.
나귀는 하나님의 사자께서 손에 칼을 들고 길 앞에 서 계신 것을 보았고 그를 피하였다. 나귀가 그를 피하지 않았다면 발람은 그의 칼에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이지 않으셨고 그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사자를 보게 하셨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이르시는 말씀만 말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환경을 통해 우리의 잘못을 깨우쳐주신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빨리 깨닫고 돌이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