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안 한 이야기를 끝내다니요. 마을로 들어오는 초입에서 발길을 돌이키시다니요. 길이 보이지 않았다구요. 그럴 수도 있지요. 세상의 모든 길들이 다 잘 보이는 건 아니니까요. 그 동구밖 회화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나 보군요. 가끔 푸른 뱀이 지나가긴 하지만 우물이 있던 작은 길을 따라 들어오면 되는 것을. 풀이 우거지고 사람들이 살지 않는 것처럼 을씨년스럽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초입에서 그만둔 일이 어디 그런 일뿐이겠습니까. 본격적으로 싸워야 할 일에 전의를 상실한 것처럼 답답한 일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의 체념이라고나 할까요. 어찌보면 무책임한 일이지요. 당신은 항시 일을 시작할 줄만 알았지 끝을 맺을 줄 몰랐으니까요. 항시 용의 머리에 뱀꼬리 식으로 의욕만 앞섰지 행동이 따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지요.
당신이 그렇게 집착한 그 '안다'고 하는 것도 무엇이었을까요. 그 관념, 그 깨달음을 위해 달려왔지만 당신이 지금 적어낼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체험적인 글이 아니라 개념적인 글에 머물고 있지는 않나요. 절실하게 써야 할 승전보나 은밀한 깨달음이 있나요. 머리만 거대해지고 몸은 북어처럼 말라 비틀어지고 있는 당신은 봅니다. 무엇이 당신에게 몸을 움직이는 일에 그토록 둔감하게 만들었던 걸까요. 아마도 그 과도한 생각의 집착 때문이겠지요. 지나치게 생각한 나머지 몸을 움직일 행간조차 갖지 못한 채 서둘러 달려왔으니까요.
생각과 느낌 적기, 나라면 어떻게 할까, 다양한 인물이 제 성질머리대로 무장한 채 등장시키고, 다음 이야기 연상하기, 시간과 장소를 바꾼다면, 반동인물의 등장과 이야기의 흐름 이어가기를 해 봅니다. 그저 조금 흐르다 말라버린 강이 아니라 멀리 흐르는 강처럼 제 안에 꿈틀대는 이야기로 살아갑니다.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건 호랑이 굴 안으로 들어와 그 세상을 만나는 것이겠지요. 죽이되든 밥이 되든 한 번 시작한 이상, 대하처럼 흐르는 이야기의 강물을 따라 가 봐야 하겠지요. 결코 가볍게 끝나지 않는 세상사처럼, 이야기의 강물 또한 쉬지 않고 흐를 겁니다.
먼 예견력처럼, 인생의 종국을 알기에 한치도 낭비할 수 없는 날들입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서머셋 모옴의 고백처럼이나 세상을 겪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입니다. 너무 빨리 흘러가 버려 옥토를 적시지 못하는 허망함이 아니라 충분히 물을 나누는 물결의 출렁임처럼이나 당신의 이야기로 마음이 적셔지길 기대합니다. 출판의 홍수시대, 정말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글들은 많지 않습니다. 다시금 당신이 우리 마을에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허름하지만 훈훈한 정이 있고 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지만 그 안에는 은밀하고 간절한 희망의 출구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