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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과 평화의 샘 원문보기 글쓴이: jeosahp
The Resurrection-PINTURICCHIO Fresco. Palazzi Pontifici, Vatican
요한 3,31-36 31 위에서 오신 분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신다. 세상에서 나온 사람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 일을 말하고 하늘에서 오신 분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시며 32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시다는 것을 확증하는 사람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하시는 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셨다. 36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하느님의 영원한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축일:4월22일 성 레오니데스 순교자 St. LEONIDAS of Alexandria San Leonida Martire, padre di Origene Died:beheaded in 202 at Alexandria, Egypt Canonized:Pre-Congregation Leonida = simile al leone, forte, dal greco = similar to the lion, fort, from the Greek
세베루스 황제의 크리스챤 박해 때, 알렉산드리아 순교자들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순교자는 박학한 크리스챤 철학자인 레오니데스이다.
그는 기혼자이고, 그의 일곱 아들 중의 맏이는 저 유명한 학자인 오리게네스(philosopher Origen)이다. 에집트의 집정관 레투스가 박해를 시작하면서 그 역시 체포되었다. 당시, 17세이던 오리게네스는 순교의 열망에 불타서 부친을 찾아나서려 하자, 그의 모친이 그를 집안에 가두었다. 이리하여 그는 부친에게 용감하고도 즐겁게 순교의 영광을 받으시라는 글을 보냈다. 레오니데스는 202년에 참수치명하였다.
▶ 오리제네스
성서주석서로는 ≪핵사플라≫(Hexapla)가 유명하며 (가톨릭대사전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 축일:11월25일.게시판1491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오리게네스 사제의 순교 권고사에서 (Nn. 41-42: PG 11,618-619)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같이 당하고 있으니 그의 위로도 같이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옮겨 감으로써 죽음에서 생명으로 옳겨 갔다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가지 않고 아직 죽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죽음의 어둠에서 나와 소위 말하는 살아 있는 돌로 지은 생명의 빛이 비추는 건물에 들어간 이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셨으니" 우리도 그분을 위해 우리 생명을 바칩시다. 그런데 우리가 생명을 바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또 우리의 순교를 보고 감화를 받게 될 이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가 자랑할 시간이 왔습니다. 성서는 말해 줄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에 대해 자랑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가져 오고 인내는 사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가지고 오며 끈기는 희망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입시다. 우리가 많은 위로를 받기 원한다면 많은 고난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애통하는 이들도 위로를 받겠지만 아마도 같은 정도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다 똑같은 정도의 위로를 받는다고 하면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이들은 참여하는 고난의 정도에 따라 위로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확신에 찬사도의 다음 말씀에서 이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은층의 시기에 나는 너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봉사때문에 경비병에 둘러싸여 패배자처럼 하지 않고 승리자처럼 엄숙히 사형대로 끌려 나가는 날보다 더 은총이 넘치는 때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으뜸들과 권세들을 완전히 눌러 이기고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를 거둡니다. 그들은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므로 그분이 고통을 통하여 얻은 것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세상을 하직하는 날말고 구원의 날이 또 있단 말입니까? "나는 간청합니다. 우리가 하는 전도사업이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은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은 조금도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온갖 인내심으로무슨 일이나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하십시오." 다음의 말씀을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십시오. "이제 내 바랄 것이, 주여, 무엇이오니이까? 내 소망, 그것은 당신께 있나이다."
오리게네스 사제의 강론에서 (Homilia 9,1-2: PG 12,871-872)
우리는 하느님의 제단과 집을 짓는 살아 있는 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는 성경 말씀대로 살아 있는 돌입니다. "여러분도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사제가 되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십시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세의 돌 중에서 가장 강하고 단단한 돌을 기초로 깔고 전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그 위에 집을 짓듯이 산 돌 중에서도 일정한 돌을 골라서 이 신령한 집의 기초로 삼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초로 놓여진 사람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사도들과 예언자들입니다. 사도 바울로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누가 만일 이 집을 짓는 데에 마땅한 돌이 되려고 스스로 준비하여 기초에 가까운 돌로 놓여지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이 집의 기초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로의 말씀대로 "이미 그리스도라는 기초가 놓여 있으니 아무도 다른 기초는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렇듯 고귀한 기초 위에 거룩하고 신성한 건물을 짓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이 성전 건물에는 제단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살아 있는 돌인 여러분 중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밤낮으로 하느님께 청원을 드리고, 간구의 희생을 바치는 사람이 예수께서 제단을 만드실 합당한 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제단의 돌은 얼마나 귀중해야 할 것인가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입법자 모세가 말한 대로 "제단은 쇠가 섞이지 않은 완전한 돌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같이 완전한 돌은 과연 누구입니까? 사도들이야말로 완전하고 흠 없이 거룩한 돌이며 그들의 일치와 화목으로 모두 함께 한 제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기도하며, 입을 열어 "주여, 당신은 모든 이의 마음을 아시나이다."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음이 되어 말과 마음을 합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예수께서 성부께 제사를 바치시도록 한 제단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한마음이 되어 같은 생각을 하며 다투는 일도 없고 헛된 영광을 찾는 일도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말을 하도록 노력한다면 우리도 아마 제단을 만들기 위한 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사제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 (Tomus 10,20: PG 14,370-371)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의 성전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자기 육신이나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여기서는 유다인들을 뜻합니다.) 즉 아버지의 집을 자신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네들을 성전에서 쫓아낸 데 대해 화가 치밀어 하나의 표적을 청합니다.
그 표적을 통해서, 자기네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하시는 일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구세주께서는 성전에 대해 말씀하시는 듯하지만 실은 당신 몸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하는 그들의 질문에 대해,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고 대답하십니다.
그런데 성전과 예수님의 몸 두 가지 다 교회의 상징이라고 나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산돌로 세워져 거룩한 사제로서 신령한 집이 되고" "그리스도 예수를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로 모시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참된 성전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의 돌들의 일치와 조화는 "내려가 다 흩어졌나이다." 라는 시편 21편의 말씀에 따라 끊겨 나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박해와 혼란을 끊임없이 충동질하고 성전의 일치를 깨뜨리는 자들이 일으키는 전쟁으로 인해 이 일치는 끊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복구되고 몸은 사흘째 되는 날, 즉 환난의 날이 지나고 그 다음날인 완성의 날 후에 일어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집을 세우는 이 뼈들이 주님의 위대한 날에 그분의 죽음으로부터의 승리로 인해 다시 살아날 때, 새 하늘과 새 땅의 셋째 날이 참으로 동틀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수난을 뒤쫓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온 몸의 부활 신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묻힌 다음 다시 일어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성도들의 온 몸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먼저 십자가에 못박혀 이제 생명이 끊긴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로처럼 우리 각 사람도 그로 인해 우리가 세상에 대해 죽고 세상은 우리에 대해 죽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밖에는 자랑할것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세상에 대해 죽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또한 묻혔습니다. "실상 우리는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다." 고 바울로는 말합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우리도 하나의 보증을 얻었다는 뜻으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다." 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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