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중국 <신랑오락채널> 2007년 6월29일자 기사입니다.
*원문해석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사내용
제목: 보우루어 10년간 덩리쥔 성묘가지 않아--등장희 예비매형 '비난'
비록 덩리쥔이 타계한지 이미 12년이 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 어제 덩리쥔이 유일한 동생이며 <등려군문교기금회> 회장인 등장희가 충칭에 와서 이제 곧 공연하게 될 뮤지컬 <다만 천세만세 살기 원하네>의 현장답사를 시작하였다. 기자는 그와 저녁식사를 하기전에 인터뷰를 했다.
덩리쥔 장례식날 보우루어 가 만취했다. 덩리쥔이 태국에서 천식으로 쓰러질때 원래 옆을 지켰어야 할 프랑스 남자친구 보우루어가 외출하는 바람에 덩리쥔의 치료기회를 지체하게 되었다. 덩리쥔이 사망한 후 그녀의 세째오빠는 너무 화가나서 심지어 그를 패려고까지 하였다. 그렇지만 등장희는 사실 그의 심정은 차분해 있었으며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기자에게 말하였다.
덩리쥔의 장례식 전날 그녀의 세째오빠는 보우루어를 장례식에 참석시키지 않으려 했으나 등장희는 최종 가족들을 설득하여 그를 참석하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등장희는 장례식날 보우루어는 그림자도 나타내지 않았다. 등장희는 급히 보우루어가 들어있는 호텔의 지배인한테 전화연락을 하여 보우루어의 방에 가보도록 연락하였다. 후에 호텔지배인의 말에의하면 보우루어는 이미 만취해서 의식불명상태였다.
몇년간 연락이 끊겼으니 그를 미워한다는 말은 맞지 않아..
그 뒤 보우루어는 덩리쥔의 홍콩별장에서 2년동안 살았다. 이기간 등장희는 그를 위해 관리인을 붙여주고 모든비용은 덩리쥔의 유산에서 지불하였다. 후에 등장희는 보우루어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는 그때 그에게 당신이 아직 젊고 자신이 가야할 길이 있지 않느냐고 말해주었어요...' 마지막에 보우루어는 홍콩을 떠나 프랑스에 돌아갔어요. 처음에는 그래도 몇년간 등장희와 연락을 해왔으나 후에는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돌아와 성묘한 적은 없는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없었다"고 말했다.
보우루어에 대하여 등장희는 미워한다고는 말할수 없다면서, " 필경 그는 누님에게 큰즐거움을 준 적이 있었다."고 하였다.
첫댓글 궁금했던 사실 기사를 보게되네요, 감사합니다.. ^^*
프랑스 사진작가 스테판 퓨엘
그 남자친구는 우리등군님을 많이 사랑한거 같진 않군요 ~ 등군님이 안쓰러워요 애석하기두 하고요 ...
보우루어(아마 삐에로 아니면 바우로-폴)이란 이름 같군요. 리쥔이 그를 좋아하긴 했나본데 남자들이란 역시 이기적인 부분이 많군요. 저도 남자지만... 아쉽군요.
주제넘게 나서서 죄송하지만 폴(Paul) 이라는 남자분으로 기억합니다. 얼마전 아주 우연히 중국웹 바이두(www.baidu.com) 에서 검색해 보니 생전의 등려군과 함께 있던 사진도 볼 수 있었습니다.^^
폴도 맞습니다. 영어식 발음인가요? 아직 우리카페에 발음표기원칙은 없으므로 중국어이름을 한국발음으로 표기했답니다. 마치 등려군을 덩리쥔이라고 하듯이..영어,불어,중국어,한문발음 등 다양하게 부를수 있겠네요.
삐에르는 정신적으로 어리고 다소 겁이 많은 소인인듯 보입니다. 남자답고 정열적인 인물은 아닌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등려군의 남자친구였지 남편감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귀엽고 친절하긴 했을것 같네요.
[鄧麗君紹介年譜] 27에 올렸습니다, [鄧麗君등려군 傳記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