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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4년 10월 17일 토요정례법회 ○
● 영상법회
- 김정원 교무님 설법
반갑습니다.
법문 봉독해 드리며 시작하겠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불공을 할 때 사념잡념(邪念雜念)이 없이 정성을 다해 바치라. 이것이 바로 선(禪)이다.
청정한 법신불이 우주에 편만해 있음을 깨닫고 이 몸에 부처를 모셔야 산 부처가 된다.
산 부처가 되어야 남도 산 부처로 만들 수 있다. 죽은 부처는 죽은 부처만을 만들게 된다.』
이상은 대산종사법문 3집 제 2편 교법 9장 말씀이십니다.
기억 나실 지 모르겠지만, 지난 번에 불공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또한 설득에 대해 말씀해 드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어떻게 보면 교화와 불공 같습니다.
교화와 불공은 같이 맞물리는 거 같은데요,
나를 버리면서 하는 불공 이것이 쉽다고 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버리는 것도, 불공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죽을 때까지 나 자신을 어떻게 버려야 할 것인가 의문을 갖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상만 빼면 부처가 된다고.
그 첫 번째가 바로 아상입니다. 나를 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가장 힘든 게 바로 아상입니다.
나를 버리지 않고서는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 때문에 중생상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지난 법회에 설득과 불공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불공을 어떻게 해야 된다?
기억하고 계신가요?
불공을 설득이라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1. 설득은 마지막 버스가 아니다.
언제 그 사람을 만나서 또 이야기 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내가 그 사람에게 선의 씨앗을 뿌리는 건지
악의 씨앗을 뿌리는 것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제가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자기 스스로를 비춰볼 때 어떠한 일이든지 한 번에 성공한 적 있으신 분.
단 한번의 말로 다른사람을 설득해 본 적이 있나 생각해 봤습니다.
생각해 보니 단 한번의 불공으로 성공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만나는 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통해서 설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공도 똑같습니다.
한번해서 되는 불공은 극히 드물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2. 설득은 논쟁이 아니다.
즉 이쪽 저쪽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지 한쪽만 보고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공할 때 과연 상대방에 맞는 불공일까.
우리는 쉽게 오류를 범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도 좋아할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고민을 이야기 할 때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흔히들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나 실수가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원하는 상태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꼭 그 답이 나오길 바라고 나오지 않으면 실망하게 됩니다.
복이라고 짓습니다. 하지만 더 큰 복은 무상복이라고 합니다.
상 없는 복을 지어야 진정한 복이 된다.
무엇을 주고 내가 줬다는 상이 있으면 그게 바로 복이 되지 않는다.
내가 준 것도 없는데 과연 복을 지을 수 있을까.
어떠한 물건을 사서 누구에게 줬을 때 알게 모르게 맘속에 그에 상응되는 무언가를 원합니다.
대부분 원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복이 되지 않습니다.
3. 7 : 3의 법칙 - 누가 7이고 누가 3인가??
상대방의 입을 열게 하라.
상대방은 많은 말을 하면서 만족에 가까운 감화의 효과를 얻게 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불공이라는 법을 가지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얼마만큼 해야지 불공이 되고, 어떻게 밝혀주셨는지.
자, 마지막 버스.
이야기하면 끝일까요? 끝이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연의 씨앗이 뿌려집니다.
자주 하는 질문이지만 진짜 옆에 앉은 사람이 부처님으로 보이십니까?
10월에 교무 훈련을 다녀왔습니다.
아직도 제가 어디 갔다가 왔는지 이제 아시는 분들이 계시겠죠.
훈련을 가서 부처가 과연 무엇이냐. 네 스스로가 부처로 보이느냐 했을 때 절대 안보인다 했습니다.
분명히 대종사님께서는 네가 부처라고 했는데, 왜 부처로 안보이냐.
제 스스로 부처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여러분들은 부처를 자주 보시나요?
자신이 스스로 부처라고 느끼지 못하면 주위 동지 교무들이 부처로 느껴질 수 없을 겁니다.
왜, 부처가 누군지 모르는데 몇 사람이 부처라고 해서 부처로 느낄까요?
자기 자신이 부처라고 이야기 합니다.
맞냐,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부처를 보고 있냐, 안보고 있냐의 차이입니다.
스스로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어찌 보면 오류가 될 수도 있지만
다시 보면 부처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빠른 방법입니다.
남자들은 대체로 너그러우나 허한 듯하여 견실성(堅實性) 없는 것이 병이 되고,
여자들은 대체로 주밀하나 고정하여 용납성 없는 것이 병이 되므로,
사람이 원만한 인품을 이루려 하면
남자는 너그러운 가운데 내심(內心)이 견고하여 진실되기에 주로 노력하고,
여자는 주밀한 가운데 내심이 원만하고 관대하기에 주로 노력하여야 되리라.
혹시 들어보셨나요? 수행품 31장 남자와 여자들의 기질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법문입니다.
그 사람의 기질에 따라 어떻게 불공을 할 것인가?
여러분들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어떠한 기질을 갖고 계신가요?
나의 기질이 어떻다. 강하다, 약하다.
어떠한 성격이라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떠한 기질을 갖고 있다. 자신의 기질을 알고 계신가요?
쉽게 얘기하면 착하다.
자신의 기질, 성격, 행동, 습관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불공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두 번째는 기질입니다.
자신의 기질을 모르면 자신이 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살면서 수많은 일이 생깁니다.
어떠한 일이 어떻게 되었는가 기억 못할 때도 있습니다.
수 많은 일들이 있기에 포스트잇에 써서 책상 앞에 붙여 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가끔 자주 빼먹는 경우가 있어서 달력에 무엇이라도 적어 놓는 습관을 길들이고 있습니다.
좋게 얘기하면 저의 습관을 고치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때그때 적기도 하고, 핸드폰을 통해 메모를 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러한 습관이 한, 두 번 하루, 이틀이 아니라 1
년, 2년 혹은 그 이상의 노력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무언가 잡아간다는 것이죠.
노력하고 계신가요? 자기만의 그 무엇하나를 고치기 위해서.
설득 그 두 번 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영상을 보시면 다섯 가지가 나옵니다. 그 중 한 부분입니다.
영상에서 얘기하는 설득하는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게 있는 지 잠시 보겠습니다.
<영상>
1. 박노진 자동차 상무 - 바람을 기다리고만 있지 말라.
2. 양태준 과장 제약 회사 과장 - 설득의 전쟁터, 나만의 무기가 필요하다.
3. 김정해 화장품 수서지부장 - 부정적인 마인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4. 한일 EBS 영어강사 - 첫술에 배부른 설득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박노진 A자동차 상무 - 자동차 판매업계의 ‘전설’ 10년 연속 판매왕
양태준 E제약 과장 - 제약사 최초 1억 돌파, 입사 1년차 최초 판매왕
김정해 F화장품 지부장 -‘영업의 달인 10인’선정(2008년 D일보) 방문판매업계의 판매여왕
한일 EBS 영어강사 - 10만 여명이 선택한 최고의 강사, EBS 1위 강좌
우리가 본 영상에 있는 분들은 상대방을 설득하고 계시는 설득의 달인입니다.
과연 한방에 설득이 되는 사람은 몇 %나 될까요?
아니 설득을 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신 스스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서 자신을 변화 시켰을까요?
자기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 설득이 안됩니다.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어떠한 일을 추진할 때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 박찬호 선수가
모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중앙일보 2000.8.29.)
"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리고 필요한 건 정신과 마음이지요.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바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바른 생각은 바른 행동을 만들지요."
또한 박찬호 선수가 중앙일보 LA 지사의 김홍식 기자와 만나
인터뷰한 내용(10월 9일자 기사)을 일부 소개합니다.
─ 이겼을 때나 졌을 때나 모든 원인을 정신력과 마음가짐 탓으로 돌리는데…
“모든 삶이 집중력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잠자리에서도 좋았던 일만 집중적으로 생각한다.
안 좋았던 기억이 방해를 할 때도 있지만 극복하는 훈련을 해 왔다.”
─ 시즌 중에도 하루 한 시간 이상 참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부좌를 틀고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참선 때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한다.”
자기 자신과 얼마나 대화를 하십니까?
자기 자신에게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질문을 합니다.
질문은 필요합니다. 왜냐, 내 자신을 못 믿으니까 다시한번 확인 할 수 있는 시간인 것입니다.
<영상>
수행품 43장에 보면,
첫째 큰 원이 있은 뒤에 큰 신(信)이 나고, 큰 신이 난 뒤에 큰 분(忿)이 나고,
큰 분이 난 뒤에 큰 의심이 나고, 큰 의심이 있은 뒤에 큰 정성이 나고,
큰 정성이 난 뒤에 크게 깨달음이 있으며,
깨달아 아는 것도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통 만통이 있나니라.
설득을 나 자신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내가 스스로 설득을 할 때 나에게 맞는 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신심이 없는 사람에게 신심이 생길 수 있도록 하고 그에 따라서 신성을 강조 해야 되는 것이지
신심이 없는 사람에게 넌 스승과 법과 회상과 서원에 대한 신심이 부족하니 신성품을 읽어라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왜 신심이 없는지를 바라봐야 합니다.
간사시절에 무슨 일만 있으면 신성품을 읽어라 하십니다. 2년 동안 땅만 파느라.
과연 저한테 맞는 방법일까요.
역지사지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부족하면 그 부족한 무엇인가를 채워줘야 하지 그 무언가를 짜맞추는 것은 맞지 않는 공부법입니다.
기질변화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언가를 알아야 합니다.
부정적 마인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제가 부정적인 마인드를 가졌을까요? 맞습니다. 너무 현실을 바라보고 있죠.
아닙니다.
저는 부정적인 마인드가 아니라 실패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그 이후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냐고요?
이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은 실패를 생각하지 않고 성공만을 이야기 합니다.
성공 하기만을 바라는 희망은 너무 좋습니다.
하지만 성공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실패를 하면 쉽게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실패를 생각하고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여유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부정적일까요?
저도 처음에는 완벽하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긍정적인 행동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보니 이것은 아니다라고 생각을 했고
어떻게 하면 완벽한 일을 추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미래를 보지만 먼 미래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고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으로 일을 보고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완벽한 부정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부정적이 아니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보이는 것 만큼 부정적이 아니다라는 것이죠.
스스로가 기질 변화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그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스스로를 알기 때문에 좋은 생각을 할 것인가, 나쁜 생각을 할 것인가,
아니면 기질을 강하게 혹은 약하게 바꿀 것인가는 알고 있습니다.
실행이 부족할 뿐이지, 인지하고 있습니다.
<영상>
많이 들으시나요?
경청을 통해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상담의 첫 번째는 상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해법을 찾는 것입니다.
듣지도 않고 해법을 찾는다. 아주 웃기는 일입니다.
저는 지방에 내려가면 친구들을 만납니다.
자주 내려가지 못해서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내려가면 항상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도 성직자라는 신분이라서 그런지 많은 이야기를 하고 또 이야기를 듣습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위치, 다른 세계, 다른 모습, 다른 생활방식.
공통되어 있는 것은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것 밖에.
저는 7:3의 비율이 아니라 9:1의 비율이 되는 것 같습니다.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없어 듣습니다.
이야기를 하고서 다음날이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 많은 일들이 해결되었다고 전화가 옵니다.
저는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이야기를 많이 들어준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내가 설득을 함에 있어 내 이야기를 얼마나 듣고 있는가.
<영상>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수양력을 얻어 나가는 데 두 길이 있나니,
하나는 기질(氣質)의 수양이요 둘은 심성(心性)의 수양이라,
예를 들면 군인이 실지 전쟁에서 마음을 단련하여 부동심(不動心)이 되는 것은
밖으로 기질을 단련한 수양이요,
수도인이 오욕의 경계 중에서 마군(魔軍)을 항복받아 순역 경계에 부동심이 되는 것은
안으로 심성을 단련한 수양이라,
군인이 비록 밖으로 기질의 수양력을 얻었다 할지라도
안으로 심성의 수양력을 얻지 못하면 완전한 수양력이 되지 못하고,
수도인이 또한 안으로 심성의 수양력은 얻었으나
실지의 경계에 단련하여 기질의 수양력을 얻지 못하면 또한 완전한 수양력이 되지 못하나니라.」
기질과 심성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답은 자신밖에 모릅니다.
실지의 경계에 단련하여 기질의 수양력을 얻지 못하면 완전한 수양력이 되지 못한다.
수많은 경계가 요즘 많이 오고 있습니다.
밖에 놀러 나가고도 싶고 맛있는 거 먹고도 싶고 수도 서울에서 연극을 보러 다니고 싶고.
예전에 없었던 경계가 물밀 듯이 밀려서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것들에 흔들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면 아직 이 정도의 경계에 끌릴 정도로 약하지 않기 때문이죠.
혼자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경계들과는 아주 친하게 지내곤 했습니다.
혼자 노는 것은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먹고 싶을 때 놀고 보고 싶을 때 보고.
이 모든 것들을 경계에 끌리지 않기 위해서
내가 나가야 할 때만 나가고, 먹어야 할 때만 먹고, 볼 때만 보는 습관을 들였더니
이제 이런 경계는 그냥 지나가는 경계가 된 것입니다.
만약 아직도 이러한 경계에 끌려서 다니고 있다면 지금 저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요?
상상하기도 싫은 모습으로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일 같이 밥 먹자고 말씀을 하신 다면 무조건 찬성입니다.
<영상>
설득이 속임수라고요?
속임수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설득은 남에게 다가가는 기술 내가 아니라 대화의 중심에 놓는 기술이다.
그래서 가장 열린 인간이 되는 기술입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 나왔는데,
고개 끄덕거리기, 맞장구 쳐주기, 눈 마주치기.
어찌 보면 쉬운 것이지만 앞에서 이야기 하는 입장에서는 참 부담스럽습니다.
예전 같으면 누가 얘기를 해도 나 할 얘기만 한다, 상관 없다 라는 성격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받아주고, 그러한 부분부분들이 나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모습이 어떤지 알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금이나마 발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또 하나 해외에서 교화하고 있는 한 교무가 있는데요,
앞에 나가기만 하면 애들이 다 웃는다. 그 정도로 재밌고, 말도 잘합니다.
제가 그 교무 아이디어를 가지고 똑같이 해도 저는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목소리의 감각이나 특유의 부드러움이라는 것이 있어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노력하기 위해서 하는 방법이 나가자마자 사탕을 뿌려요. 분위기 안 좋으면 또 뿌리고.
그 다음에는 초콜렛. 그 다음에는 더 큰 것.
그러한 부분들도 어찌보면 노력을 해서 이러한 방법이 나한테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신심 공심 공부심을 짜맞추고 있지는 않는지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억지로 짜 맞추는 공부는 공부가 아닙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라고 대종사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답은 현실에 맞게 아니면 아니고 맞으면 맞는 것이 바로 이 공부법입니다.
유무념을 하면서도 유념과 무념이 표시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현실적이죠.
공부도 이와 같이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면을 찾아가는게 바로 기질변화고, 불공이고, 설득이고 공부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고쳐야죠.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저녁에 일찍잔다든가.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보면
그 사람에 맞는 기질변화를 위한 방법이 아닙니다.
저라고 아침에 잘 일어날까요?
절대 아닙니다. 잠이 부족하면 날이라도 샙니다. 교당문을 열여야 하고
달리 보면 아침에 좌선을 꼭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일찍자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지 않으면 다음날 그 생각이 그대로 납니다.
모 교무님이 큰 수술을 앞두고, 계속 사은님, 사은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눈 뜨자마자 바로 사은님이라는 소리가 나왔다고 합니다.
수술 끝나고 나면 아버지를 많이 찾죠. 엄마보다는.
수술이든 잠이든 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자신이 항상 외쳤던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 교무님처럼 입에서 사은님이라는 단어가 나올 수 있을 만큼 얼마만큼 했을까요.
쉬울꺼라 생각도 안하고, 쉬었다고 생각도 안합니다.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동조의 반응인지 아니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인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산상산님께서 종법사님 재임시절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훈련은 스스로 그리고 자성계발이 되어야한다.
이 말은 곧 ‘아닌 것을 하고 또 해서 힘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성이든 기질변화를 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설득시키든 주위 인연을 설득시키든 해서 나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훈련입니다.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고 행해야지만이 진정한 변화가 될 것입니다.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얻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버렸으면 두 개 세 개를 얻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자신이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설득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인연도 어떻게 변화를 시킬것인가?
그 답은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는 남을 변화시킬수 없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면 나를 변화시켜야만 합니다.
제가 원불교를 만나서 사람되었다고 하면 원불교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겠죠.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자신이 노력을 해보고 결과를 찾아내야만 진정한 변화를 이룰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당^^
은전교우님 ~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