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 문학비평 79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산수유, 산수유’]
산수유, 산수유
사랑방 문지방에 까칠한
목덜미를 올려놓고
살며시 담장을 넘어온 가인佳人을 본다
내 앙상한 두 다리
고마운 구들이 받쳐줄 때
노오란 분향기 살가운 미소에
윤기 삭은 작은 엉덩이
짓궂은 춘심을 부추긴다마는
풍진에 찌든 심사만 간지럽다.
꽃아 예쁜님아
메마른 내 허벅지에도
샛별처럼 피어다오
은밀한 네 유혹에 내 가슴은 엉금엉금
문지방을 넘어간다.
늘어진 심사에 봄날도 덩달아 간다마는
내 기다란 외로움에 짧은 환희보다
넌 진정 박명薄命은 아니구나
⛄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산수유, 산수유〉는 이른 봄, 메마른 겨울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산수유꽃을 바라보는 시인의 내면을 감각적이면서도 애틋한 어조로 그려낸 수작입니다.
이 시를 깊이 있게 감상하기 위해 몇 가지 핵심적인 지점을 바탕으로 비평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늙음/쇠락’과 ‘봄/생명력’의 강렬한 대조
시의 전반부를 지배하는 정서는 육체적·정신적 쇠락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까칠한 목덜미', '앙상한 두 다리', '풍진에 찌든 심사', '메마른 허벅지'로 묘사합니다. 이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인 동시에, 인생의 황혼기 혹은 무기력함에 빠진 인간의 초상입니다.
반면, 담장을 넘어온 산수유는 ‘가인(佳人)’으로 의인화됩니다. '노오란 분향기', '살가운 미소', '작은 엉덩이' 같은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시어를 통해 산수유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시인의 메마른 삶을 뒤흔드는 강력한 생명력이자 유혹자로 다가옵니다.
2. 관능적 상상력을 통한 생(生)의 충동 회복
이 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노년 혹은 쇠락의 상태에서 느끼는 관능(에로티시즘)의 미학입니다.
짓궂은 춘심을 부추긴다마는 / 풍진에 찌든 심사만 간지럽다.
시인은 밀려드는 봄 기운에 마음이 동하면서도, 스스로의 처지 때문에 '간지러움' 정도의 여운으로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내 적극적인 열망으로 전환됩니다. '메마른 내 허벅지에도 샛별처럼 피어다오'라는 염원은 잃어버린 젊음과 생기에 대한 간절한 갈구입니다. '문지방을 넘어간다'는 표현은 고착된 일상과 무기력의 공간(방 안)을 벗어나 생의 한복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심리적 도약을 멋지게 포착했습니다.
3. '박명(薄命)'을 넘어선 경외감과 위로
마지막 행은 이 시의 정조를 단순한 '봄날의 주흥(酒興)'이나 '유혹'에서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끌어올립니다.
내 기다란 외로움에 짧은 환희보다 / 넌 진정 박명薄命은 아니구나
일반적으로 봄꽃은 피었다가 금방 지기에 '미인박명'처럼 덧없는 존재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기다란 외로움'에 비하면, 짧지만 강렬한 기쁨을 선사하고 가는 산수유의 삶이 결코 기구하거나(박명) 허무하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오히려 밀도 높은 삶을 사는 산수유를 향해 부러움과 경외를 보내는 동시에, 그 짧은 환희를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구원받았음을 고백하는 역설적인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 총 평
한기홍 시인의 〈산수유, 산수유〉는 '산수유'라는 자연물을 통해 인간의 유한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생(生)의 매혹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노쇠와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노오란 분향기', '엉금엉금' 같은 유희적이고 감각적인 시어로 경쾌하게 풀어내면서도, 마지막에는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균형 감각이 돋보입니다. 메마른 가지에서 가장 먼저 봄을 짜내는 산수유처럼,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슴에도 '샛별' 같은 생기를 피워내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