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말서(始末書)
원 종린
지난해 1학기 중간쯤으로 기억된다. 나는 보직교수와 학생회 간부들이 함께 자리한 연석회의에 나가서 해명할 일이 생겼었다. 우리 대학의 연혁지의 간행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9개월 뒤인 지난 2월 말에 나는 정년으로 40여 년간 몸담았던 공직을 물러났다. 아직은 몇 군데 출강하는 덕분에 자신이 퇴물훈장인 것을 잊고 지낼 때가 많지만 퇴임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제는 시간강사가 나에게 붙는 유일한 직함이다. 그리하여 가끔 재직시절의 지난 일들이 회상되는데 밝고 즐거운 쪽보다는 어둡고 아쉬운 면이 더 부각되는 것은 역시 공직을 떠난 허탈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까운 일로는 연혁지의 간행책임을 맡았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도중에 물러난 일인데 이 회상도 가끔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몸에 밴 체질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퇴물훈장도 부족해서 아직도 묵은 학교이야기나 들먹이게 되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 학교는 지난해에 50주년을 맞이했다. 그 기념사업의 하나로 ‘50년사’를 발간하기로 하고 편집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위원회에서 부임 연도를 따지고 가끔 지상에 글줄이나 발표한 것을 들어서 나를 위원장으로 호천한 것이다.정말 달갑지 않은 감투였다. 나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개인적으로 준비할 일이 있어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 자리를 맡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집필진을 물색하고 원고청탁 차비를 하고 있는 참인데 학원사태가 발발했다. 처음에는 학보사의 사소한 문제가 발단이 되었던 것인데 결국에는 4~5명의 교수퇴진 문제까지 들고 나온 것이다.
행정동(行政棟) 점거 농성, 시위 그리고 단식 등 사태는 악화일로 속에서 강의가 공전되고 학사가 완전히 마비되었다. 그 무렵 이러한 사태는 각 대학마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학원가가 완전히 원상으로 회복되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책과 씨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날마다 시위로 지새우는지라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었다.
내가 느낀 솔직한 심정은 이미 정년으로 교단을 물러난 동료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정도였다. 하물며 직접 성토의 대상이 된 당사자들의 심정은 미루어 짐작할 만했다. 그 와중에서는 발간업무는 엄두도 못낸 채 시일만 흘러서 조급한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겨울방학이 가까워올 무렵에서야 사태는 일단 진정이 되었지만 후유증은 한동안 아물지 않았다. 발간 업무도 이제는 더 늦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처음 잡았던 4월 말일의 발간 예정일을 8월 중순으로 미뤄놓고 다시 편집위원회의 기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거의 인쇄에 회부할 단계에 이르렀을 때 또 학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난번 사태의 여신(餘燼)이 되살아난 셈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이번에는 교수들의 퇴진을 들고 나오지 않아서 다소 마음이 놓였지만 기성회비의 공개가 주된 이유로 등장했다. 그 밖에도 몇 가지 문제를 들고 나왔는데 '50년사'의 간행에도 제동을 걸어왔던 것이다. 학생들이 대자보를 통해서 걸고넘어지는 조건은 세 가지였다.
첫째, 일제 식민지 치하의 학제는 현재의 우리 대학의 뿌리로 간주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기간은 연혁지에 넣을 수 없다.둘째, 학생을 연혁지의 편집에 참여시키며, 학생들의 원고는 자,구의 수정없이 그대로 50년사에 수록할 것.셋째, 50년사의 구입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는 실비로 배포할 것 등이었다.
편집위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번째의 학생들에 대한 가격 조절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었고 또 별 문제가 될 성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머지 두 조항은 어느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첫 번째의 일제 치하의 학제는 일본학생과의 공학을 들어서 하는 말인데 그들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쪽발이를 선배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순수한 감정은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이 문제는 감정으로 처리할 성질의 것이 아닐 것 같았다. 그 기간에 졸업했거나 재학 중에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도 적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원고와 자료도 이미 수집이 끝난 상태였다. 그리하여 그 기간인 7년간을 빼면 모처럼 개교 이래의 역사를 정리한 과정에서 뿌리 잘린 나무 꼴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50년사가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난날의 과격한 학내사태를 학생들이 취재해서 자, 구의 수정 없이 수록하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학생들은 당당한 학원의 민주화운동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주장 가운데는 왜곡된 정보도 적지 않은 터였다.
두고두고 남는 기록 속에 무분별한 주장을 그대로 수록할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원고 속에는 무실하게 거명되었던 동료교수들의 이름이 안 나온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느 학교의 연혁지의 편찬에 학생들의 원고를 자, 구의 수정 없이 수록한 예가 있는지 나는 들어본 일이 없다. 그러나 학생들의 기세는 설득으로 무마될 상황이 아니었다.
한편, 교수들 사이에서도 편집위원회의 구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50년사 간행에 대해서 대체로 반응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교수들에게도 원고청탁을 했지만 거의 다 반응이 없었다. 어떤 교수는 편집위원장인 이 사람에게 직접 대놓고 “무엇 때문에 부질없는 일을 맡아서 남의 구설에 오르느냐?"며 충고인지 비아냥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내가 마치 공명심에 급급해서 그 자리에 연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불쾌한 말투였다.
이런 상황이나 분위기 속에서는 50년사의 간행을 아무리 잘해도 본전(?)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점에서 나는 보직교수와 학생회 간부들이 연석한 자리에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앞에서 밝힌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서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보다 앞서 나는 대자보가 붙자마자 편집위원회를 소집했다. 의견을 조정하기 위해서였다. 위원들은 다들 이구동성으로 편집위원회의 해체를 주장했다. 그리고 교수회의에서 간행위원회를 새로 구성하여 모든 사후처리를 그쪽으로 넘기자는 의견이었다. 우리는 희생적인 봉사를 하면서도 하향식 임명절차 때문에 어쩐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주위의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나는 교수회의에서 다시 일을 맡긴다면 계속해서 매듭을 지을 각오는 하고 있는 참이었다.
나는 우리 위원회의 합의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자리를 물러나왔다. 학생들은 허를 찔린듯이 나를 주목했지만 그 문제는 이렇게 해서 일단 유보가 된 셈이다.여름휴가를 눈앞에 두고 임시 교수회의가 소집되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의 경위를 설명하고 간행위원회의 재구성을 제의했다. 아무도 자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편집위원들에게 다시 일을 맡기자는 발언도 없었다. 나는 내심으로 각오한 바를 털어 놓았다. 간행된 뒤에 왈가왈부, 뒷말만 하지 않는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계속 추진하겠노라고.
아무도 적극 찬동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제기한 문제가 껄끄러웠기 때문에 다들 간행 자체를 꺼리는 것 같았다. 결국 학내의 분위기가 정상화가 될 때까지 발간을 유보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출판사의 견적까지 받아놓은 상황이었는데 50년사 간행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생각하면 애석한 마음 그지없다. 그동안 수집한 자료와 원고뭉치는 간사에게 맡겨놓고 나는 그 뒤에 정년으로 물러났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 간행의 중단책임을 전적으로 딴 곳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내 책임이 적지 않았음을 통감한다. 비록 도의적이라 할지라도.
그동안 경위를 대강 적어놓고 보니 떠나온 학교의 어두운 면을 들춰낸 부분이 없지도 않아서 낯이 뜨겁다. 어쩌다가 라도 뒤돌아서는 우물에 뭐 뱉는 심보라고 오해받는 일이 있다면 두고두고 유감스러울 것 같다. 다만 원고 집필진이나 자료를 제공해준 분들을 비롯하여 졸업생, 재학생 그리고 현, 구 교직원들에게 미안한 생각 뿐이다. 그리하여 일을 저지른 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시말서' 쓰는 심정으로 이 알량한 글을 적었다.
묶어놓고 나온 원고와 자료들이 가까운 시일 안에 햇빛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함께 하면서.
(수필예술.1989.9.)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늘 관심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솔한 원종린 교수님의 시말서를 읽노라니 깨닫는 게 참 많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일이 쉽지 않았네요~~
원종린 교수님께서 겪으셨을 난처하고 답답한 심정을 헤아려 봅니다.
정작 시말서를 써야 할 사람이 많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