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인 유 모(37) 씨는 설사와 구토 증상이 계속되자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진단 결과를 받았다. 병원에 가기 전만 해도 감기가 심해져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진단 결과는 간염으로 판명되었다.
그것도 평소에 들어보지도 못한 ‘E형 간염’이라는 병명에 유 씨는 적잖게 당황했다.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은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종종 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E형 간염은 처음 접했기 때문.
무슨 중병에 걸린 것이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유 씨에게 의사는 “다른 간염들과 증상이나 위험성에 있어서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고 전하면서 “개인위생을 청결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특히 물은 꼭 끓여 먹고, 고기나 야채도 반드시 익혀서 먹는 식습관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유럽의 간염 소시지 파동으로 E형 간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alsehat.com
국내에서는 연평균 60여 명 정도가 발생
E형 간염이 국내에도 상륙했다. 그동안 유럽 등지에서는 E형 간염 환자에 대한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 왔지만, 국내에서는 생소한 질병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관심이 덜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연평균 60여 명의 E형 간염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지난 해 유럽에서 발생한 간염 소시지 파동으로 인해 E형 간염 환자가 급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서도 E형 간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간염의 종류는 총 6개로서, 발견된 순서대로 A에서부터 G까지 붙여져 있다. 이 중 B・C・D・G형은 주로 혈액을 매개로 감염되고, A와 E형은 주로 수인성, 즉 입을 통해 음식물로 감염되는 질병이다.
발견된 순서에서 보듯이 E형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A형이나 B형보다 훨씬 늦게 발견되었다. 지난 1983년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된 E형 간염은 당시 급성 간염 집단 발병을 조사했던 러시아의 ‘미하일 발라얀(Mikhail Balayan)’ 박사의 헌신적인 희생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e형 간염에 걸리지 않으려면 고기같은 경우 반드시 익혀먹어야 한다 ⓒ porcino.info
당시 발라얀 박사는 급성 간염을 일으킨 바이러스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사람과 동물의 대변들을 모아 자신의 연구실이 있는 러시아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검체를 운반할 수 있는 냉장 시설이 없자 자신의 몸을 희생하기로 결정한다. 대변의 일부를 음료에 섞어 마신 후 러시아로 돌아가서 간염 증상이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
수주가 지나서 드디어 자신에게서도 급성 간염 증상이 발생하자 자신의 대변을 모아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A형 간염이나 B형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는 다른 새로운 바이러스를 대변에서 발견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발견한 바이러스를 실험용 원숭이에 주사하자 역시 원숭이에게서도 급성 간염이 발생했다. 결국 원숭이 간에서도 같은 바이러스 추출에 성공하면서 발라얀 박사는 새로 발견한 바이러스가 A형이나 B형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예방을 위해서는 음식물 가열이 필수
E형 간염은 일반적으로 물이나 음식 등을 통해 감염되는 전염병이다. 따라서 한번 발병하게 되면 대규모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더군다나 사람 뿐만 아니라 돼지 등의 동물에게도 나타나는 인수공통 전염병이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간염들보다도 전염경로가 더 다양하다는 것도 주의를 요하게 만든다.
E형 간염에 걸리게 되면 약 7일에서 10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친 후, 황달 증상이 가장 먼저 나타나게 된다. 이어서 구토 및 설사 등의 소화기 질환이 발생하고,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되면 열이 심해지고 간이 부어 오르는 증상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이나 음식이 전염의 주요 매개체인 만큼 E형 간염이 유행할 때는 끓여서 마시고 익혀 먹는 식습관이 중요하다.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간염유발 소시지 파동의 가장 큰 원인도 가공할 때 돼지고기를 제대로 가열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고기를 먹을 때는 70℃ 이상의 온도에서 완전히 익혀 먹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방글라데시나 미얀마, 몽골처럼 E형 간염이 유행하는 지역이나 간염 소시지 파동이 벌어졌던 독일 및 네델란드 등을 여행할 때는 물을 마실 때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E형 간염의 특징은 인수공통 전염병이라는 점이다 ⓒ 분당서울대병원
대한의학회의 관계자는 “면역력이 정상인 대부분의 환자들은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만으로도 E형 간염은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소개하며 “다만 임산부 및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의 경우는 정도가 심해질 경우 간부전 증상으로 인해 간이식을 해야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E형 간염의 치료약이나 국내에서 상용화된 예방백신은 아직 없는 상태이다. 다만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관한 ‘면역백신개발 정부과제 사업’에 전남생물산업진흥원의 생물의약연구센터가 제안한 ‘E형 간염 예방용 백신개발’이 최종 선정되면서 수년 내에 E형 간염 예방 백신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과제에는 생물의약연구센터가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등과 함께 오는 2021년까지 4년간 약 23억 원의 국비를 지원받아 ‘E형간염 백신기술 개발 및 비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임상시험 승인까지 추진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전남생물산업진흥원의 관계자는 “이번에 생물의약연구센터가 E형 간염백신 연구개발 주관기관으로 확정됐다”라고 밝히며 “국내 최초로 E형 간염 백신개발은 물론, 연관 제약기업을 화순에 유치하여 E형 간염분야 국가사업을 전남이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