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사는 이야기'라는 소제목을 부친
전우익씨의 글이 현암사에서 출간되어 읽어보았습니다.
글 가운데 '마음이 마치 옛 우물 같다'는 '심여고정心如古井'이라는 글귀가
마음에 오래도록 남기도 합니다.
사회전반에 전문지식이 요구되고 있는 우리시대에
진정한 프로정신을 가르쳐 주는 대목이 있어 옮겨 봅니다.
“소를 부린다는 것도 천층만층입니다.
처음에는 끌려가다가 겨루고 겨룬 나머지 멈춰 세울 수 있어야 부릴 수 있습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소 부리는 일꾼, 타리를 수 없이 치며 소를 부리는 사람.
우리 마을에서 소를 가장 잘 부리는 최무동이 소 부리는 걸 보면
그가 소와 호흡이 완전히 맞아 사람도 소도 힘들지 않게 논밭을 갑니다.
마치 유희를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대목에서 속삭이듯 소에게 이야기하고
소도 유연하게 방향을 바꾸어 물이 갈라지듯
흙덩이가 곡선을 그으며 넘어갑니다.
선일꾼은 소에 끌려가고 상일꾼이 소를 부리듯이,
미숙한 대중은 세상에 끌려가고
성숙한 민중은 세상을 바로잡아 갈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43쪽)”
최근 자락서당홈페이지에서 읽은 순자 애공 (筍子 哀公)'에는
말(馬) 잘 부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순자는 말들이 도망가지 않고 말을 잘 모는 기술을
'정치의 도리'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魯)나라 정공(定公)이 안연(顔淵)에게 물었다.
"동야필(東野畢)은 말을 잘 모는가?"
안연이 대답했다.
"그의 말 모는 기술은 훌륭합니다. 문제는 그가 부리는 말이 도망을 가는 데 있습니다."
노정공이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아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아, 군자도 어떨 때는 남을 모함하기도 하는구나!"
사흘이 지나자 말을 키우고 관리하는 사람이 와서 보고했다.
"동야필의 말이 도망을 갔습니다.
마구를 멘 두 필은 끈을 끊고 도망을 갔고,
끌채 메운 말 두 필은 도망을 갔다가 마구간으로 돌아왔습니다."
노정공은 이 보고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수레를 타고 가서 빨리 안연을 불러오너라!"
고 하였다. 안연이 도착하자 노정공이 말했다.
"그저께 과인이 그대에게 물었을 때
그대는 '동야필의 말 모는 기술은 훌륭하지만
문제는 말이 도망가는 데 있다.'고 했는데,
그대는 어떻게 그것을 알았소?"
인연이 대답했다.
"신은 政治의 道理로 그것을 알았습니다.
옛날 순(舜) 임금은 사람을 잘 부릴 줄 알았고,
조보(造父)는 말을 잘 부릴 줄 알았습니다.
순 임금은 백성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며,
조보는 그의 말을 피곤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순 임금은 백성을 잃지 않았고, 조보는 말을 잃지 않았습니다.
지금 동야필이 수레 모는 것을 보면 수레를 탈 때는
끈을 잡아 쥐고 굴레와 몸을 가지런히 하고,
말이 걷거나 달릴 때에도 모두 예의에 꼭 맞도록 합니다.
이렇게 해서 험한 곳을 지나고 먼 곳을 가면, 말의 기력이 소진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끊임없이 채찍질을 해댑니다.
이 때문에 그 결과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노정공이 말했다.
"훌륭하오. 나에게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겠소?"
안연이 대답해 말했다.
"저는 새가 곤궁하면 쪼려고 하고,
짐승이 곤궁하면 할퀴려고 하고,
사람이 곤궁하면 잘못을 저지른다고 들었습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아랫사람을 곤궁하게 해서
위험한 지경에 처하지 않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鳥窮則啄, 조궁즉탁,
獸窮則攫, 수궁즉확,
人窮則詐. 인궁즉사.
自古至今, 자고지금,
未有窮其下而能無危者也. 미유궁기하이능무위자야.
(순자 애공 筍子 哀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