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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15
1. 횡단보도 (낮)
횡단보도를 걷는 중아.
2. 시청앞 광장 (낮)
천천히 인도를 걷는 중아.
중아E 한쪽으로만 길을 걷는다.
길을 걷다 이른 곳에 시청앞 광장의 팻말이 붙어있다.
그 밑에 찍힌 발도장.
그 위에 서 본다.
중아E 아픈 마음으로 북아일랜드에서 이곳까지 걸어온 길. ...그리고 다시 아픈 마음들이 시작된 길.
발도장에서 내려서며 다시 길을 걷는다.
중아E 내가... 아픔을 준 사람.
3. 국의 승용차 안 (낮)
환하게 웃고 있는 국. C.U. (중아의 나레이션 뒤로 빠르게 들어왔으면 합니다.)
중아E 나와.... 아픔을 나눈 사람.
그 옆에서 시무룩한 표정의 시연. C.U. (역시나...)
국 (인상을 쓰며) 그러니까, 대본 연습을 죽어라 해야지. ...그냥 날루 먹을라 그르냐아? 감독한테 욕먹어두 싸다, 시연씨.
시연 (짜증) 아, 연습한다니까요? 그래두 안된다니까?
국 그래서 연기 지도해 줄 사람 찾았어요. 거기 가는 거예요. 지금.
시연 (물끄러미 국을 본다.)
국 ...
시연 왜 그렇게 신경을 쓰시나? 나한테?
국 친구니까...
시연 누가 친구한대요? 난 국씨랑 친구할 생각없어요. 국씨만의 일방적인 결정이야, 그건... 내가 나랑 잘 거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 그랬죠? 벌써 몇 번째예요? 이게?
국 그냥, 친구해요.
시연 (대뜸) 국씨, 나한테 넘어왔지?
국 아니요.
시연 근데, 왜 자꾸 찝적대요?
국 찝적대는게 아니라, 그냥... 잘해 주구 싶어요. 하두 사는게 위태위태하니까...
시연 ...
국 그래두 난 여전히, 중아를 좋아해요.
시연 (얼굴을 돌리며) 아우, 밥맛이야.
국 (인상을 쓰며) 아, 잠만 안자면 되잖아요. 친구로서 보는데, 뭐가 나빠요?
시연 친구 싫다는데, 왜 이러냐? 자기 편한대루 하냐? 국씨랑 나랑은 친구가 될 수가 없어요. 난 국씨를 바라볼때 음탕하게 바라봐요.
국 (헤죽 웃는다.)
시연 (물끄러미 국을 보며) 이게 바람이 아니라 그럴라 그러죠?
국 안잤잖아요.
시연 국씨는 지금 바람났어요, 나하구... 나 보구 싶어서 이러는 거잖아요? 그죠? (그리곤 곁눈질 한다.)
국 ...(한숨을 토한다.) 글쎄... 잘 모르겠어요. 왜 이러는지는... (인상을 쓰며) 그래두 드럽진 않잖아요? 사실? 그냥 서루 돕는 건데?
시연 (당당한 눈빛으로 국을 본다.) 몸주면 드럽구, 마음주면 안드럽나? 어차피 유부남이?
국 ...(할말이 없다. 그러다 어렵게) 네.
시연 ...내가 볼때, 국씨는... 나랑 잔거나 마찬가지예요. 나한테 다시 연락했을 때부터. 자고 싶으면 연락하랬잖아요, 내가. 결국 연락했고...
국 아니, 난 그냥 친구하려구...
시연 (갑자기 말이 없다. 우울한 듯) ...
국 삐졌나, 또?
시연 (우울하게) 국씨.
국 네.
시연 나... 이재복씨 봤어요.
국 (굳은 듯 시연을 본다.)
시연 ...(국을 본다.) 아까, 우리 주차했던 옆에, 세차장이요. 거기서 봤어요.
국 ...(시선을 돌린다.)
시연 이젠 경호 안해요? 이재복씨?
국 (어둡게) 네.
시연 다리 다쳐서?
국 네.
시연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
국과 시연, 서로 앞창만 바라본 채 말없이 서로 상념에 빠져든다.
시연 ...(어렵게 말문을 연다.) 참... 안되는 인간들은 뭘 해두 안돼. 멍충이 같이...
국과 시연 멍청히 차창 정면만 바라본다.
4. 세차장 (낮)
중아E 그리고...
무거운 다리와 호스를 끌며 승용차 앞에 선 재복.
중아E 나를 ...아프게 한 사람.
승용차를 세차하는 재복의 모습.
물줄기를 뿌리며 승용차를 닦는 그의 모습이 해맑다.
호스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아무일도 없던 듯 일어서는 재복.
아무 말도 없이 다시 물을 뿌리는 재복.
직원 (호스를 빼앗으며) 저 차 내부청소나 해. 서 있지 말구...
재복 (인상을 쓰며) 아, 씨. 먼지 다 먹잖아. ...난 물이 좋은데...
직원 물루 세차를 하는게 아니라, 사워를 하네. 계속 넘어져서... 얼른 기어 들어가아.
재복 (입을 삐죽이며 옆켠 승용차로 간다.) 에이, 씨... 고참이라구 너무 강압적이야.
5. 승용차 안 (낮)
승용차 안을 청소하는 재복.
바닥 매트를 벗겨낸다.
매트를 들추어 보면, 그 안에 100원 동전이 있다.
물끄러미 동전을 보는 재복.
동전을 집어 가슴에 달린 티셔츠 주머니에 넣는다.
재복 팁 벌었네.
그리곤 무심한 표정으로 청소를 한다.
중아E 가슴에... 아픔을 준 사람. ...가슴에 기쁨을 준 사람.
6. 부자의 집 골목 (낮)
부지런히 길을 걷는 중아.
7. 부자의 집 - 대문 앞 (낮)
대문 열쇠를 열며 집으로 들어가는 중아.
8. 부자의 집-안방 (낮)
몸져 누운 부자.
부자의 팔에 혈압계로 체크를 하는 중아.
부자, 여전히 어색한 듯 중아를 본다.
부자 아, 참, 신경쓰지 말라니까 그르네. 약국에서 약 좀 타다 먹으면 되는 걸.
중아 영양제 놔 드릴께요. (그리곤 옆쪽 옷걸이에 영양제를 건다.)
부자· 아가씨.
중아 (부자의 영양제 놓을 준비를 한다.)
부자 연락없지, 재복이?
중아 ...네.
부자 ...(한숨을 쉰다. 멍하니 천정을 보며) 사고 났으면 어뜩해?
중아 (퉁명스레) 사고 안났어요.
부자 어뜩케 알어? 아가씨가?
중아 ...(시선을 내린다.) ...재복이... 믿으니까...
부자 뭘 믿어?
중아 (슬픈 듯 시선을 내린채) ...우리 안보이는 데서... 걷는 연습하구 있을 거라구 믿어요.
부자 (물끄러미 중아를 본다.)
중아 (눈가가 젖는다.) 우리 놀래켜 주려구.
부자 ...
중아 그러니까, ...사고 안나게, 정성껏 살고 있을 것 같애요.
부자 ...(애잔하게 중아를 본다.)
중아 그러니까... 아주머니두 나랑 같이 믿어요. ...나, 재수없겠지만...
부자 (눈가가 젖는다.) 아니야. 재수없는 건...
중아 ...
부자 그냥... 평범하지 않은 것 같애서... 내가 평탄하질 않아서... 복잡한 사람 보면 그냥, 나두 모르게 피하구 싶어서... 재수없는 건 아니구... 그냥, 피하구 싶어. ...아직두 그래, 아가씨한테...
중아 ....(눈물을 닦으며 부자의 팔등에 고무줄을 감는다.)
부자 미안하구, 애처로운데... 그래두 피하구 싶어.
중아 네. ..알아요.
고인 눈물을 한 채 부자의 손등에 주사기를 꽂는 중아.
중아E 전쟁 많았던 내 고향에선... 사람들이 무기들로 전쟁을 했고,
9. 열차 기관실 안 (낮)
열차 기관실에서 앞을 보며 서있고 성만.
무심한 표정으로 가슴을 만진다.
그리곤 담담히 비상버튼을 누른다.
경적소리.
바닥으로 쓰러지는 성만.
성만의 손이 가슴을 쥐어 뜯는다.
열차의 급정거 소리.
중아E ...전쟁없는 조용한 이곳에선... 사람들은 슬픈 사연들로 전쟁을 한다.
10. 부자의 집 - 안방 (낮)
링거를 꽂은 채 중아를 바라보는 부자.
앉아서 부자를 바라보는 중아.
미소짓지 않지만, 편안한 듯 서로를 마주본다.
거실에서 열려진 문틈으로 보이는 둘의 모습 F.S.
집안을 울리는 전화벨 소리.
11. 종합병원 로비 (밤)
부리나케 뛰어가는 국.
12. 시체 안치소 (밤)
중아와 부자가 앉아있다.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며...
국이 뛰어온다.
국 (숨을 헐떡이며 중아를 본다. 그리곤 부자를 본다.) 어뜩케... (중아를 본다.) 어뜩케...
중아 (부자를 본다.) 아주머니. ...확인을 해야된다는데...
국 (부자를 본다.)
부자 (마른 침을 삼키며 문득 중아를 본다.) 재복 아부지가 심장이 안좋아서... 잠깐씩 숨을 못쉬구... 그랬어. ...그러니까... 아가씨가 의사니까... 심장을 어뜩케 해 봐. ..난 ...아닐 것 같거든? 우리 재복아부지, 어뜩케 되구 그런거? ...아가씨가 한번 봐봐. 난 아닐 것 같애.
중아 ...네. (국에게) 국아. ...아주머니 좀.
국 응.
중아, 안치실로 들어간다.
국, 부자 옆에 앉으며 부자의 어깨를 감싸준다.
13. 시체 안치실 (밤)
성만의 시체 앞에 서 있는 중아.
멍하니 성만의 얼굴을 본다.
그리곤 서랍을 닫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직원이 닫으려 할 때...
중아 잠깐만요. (다시 제자리에 놓인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성만의 가슴에 손을 얹는다. 그리곤 성만의 언 가슴을 녹이기라도 하듯이 한 손으로 둥글게 둥글게 마사지를 한다. 어느새 눈 속에 눈물이 고인다.) ...아빠.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서서 끝도 없이 가슴을 어루만지는 중아.
그러다 성만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댄다.
중아 숨소리 내 봐요, 아빠.
엎드린 채 성만의 차가운 손을 자신의 볼에 가져다대며, 울음을 터뜨리는 중아.
중아 나처럼... 숨소리 내봐요. 아빠. ...아빠.
안치실을 울리는 중아의 울음소리.
14. 시체 안치소 앞 (밤)
여전히 무표정하게 허공만 바라보는 부자.
성만의 죽음을 실감할 수가 없다. 아직도 성만이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얼굴에 있다.
부자 (국에게) 아가씨가... 안 나오네? (그리곤 살포시 미소) 병실루 옮기려구 그러나? (그리곤 허공을 본다. 가슴을 만지며 쉼호흡) ...후. 너무 떨린다.
떨리는 손으로 머리칼을 뒤로 넘기는 부자.
국, 애잔하게 부자를 바라본다.
15. 세차장 (밤)
세차장 문을 쾅쾅 두드리는 국.
직원 (머리를 긁적이며 나온다.) 영업시간 끝났는데요?
국 이재복씨가 여기 있나요?
직원 (국을 아래 위로 훑는다. 그리곤 들어가며 큰소리로) 재복아, 너 찾는다.
국 (문 앞에 서서 재복이 나오길 기다린다.)
재복 (다리를 절뚝이며 나온다.) 누가 날 찾어? 야밤에? (국을 보며 우뚝 멈춘다. 한동안 놀라서 말문이 막힌다. 그러다 뒤늦게) ...어?
국 (물끄러미 재복을 본다.)
재복 어?
국 맞네. 여기 있었네.
재복 어? ...뭐야? 어찌된 건가, 강국?
국 (재복의 팔을 잡으며) 가자.
재복 야아. 넘어져.
국 (팔을 푼다.)
재복 왜 가? 어딜가? 쫓아 낼땐 언제구? ...(씩 웃는다.) 간만에 보니까, 그래두 반갑다. 소주나 한잔 하까?
국 아버지, 돌아가셨다.
재복 (멍청히 국을 본다.)
국 병원 가야돼. 가자.
재복 ...
국 (소리친다.) 얼르은.
재복 ...(그래도 여전히 국을 본다.)
국 (재복의 팔을 당기며) 넘어지면 내가 업어줄테니까 빨랑 따라와.
재복 (국의 팔을 뿌리친다.)
국 (인상을 쓰며 재복을 본다.)
재복 (노려보며) 나, 여기 있는 건 어뜩케 알았냐?
국 ...누가 알려줘서.
재복 ...(여전히 노려본다.) 누구?
국 시연씨가...
재복 한시연 왜 만나? 경호해?
국 ...아니.
재복 (냅다 국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다.)
국 (바닥으로 넘어진다. 넘어져 바닥에 앉은 채 고개 숙인다,) 가자, 어쨌든...
재복 (성난 눈으로 국을 보다가 앞서 걷는다.) 이 새끼야... 오라 가라 하지마. 이젠 내가 알아서 가.
앞서서 바삐 걷는 재복.
일어서는 국.
재복의 뒤를 따라 걷는다.
16. 영안실 앞 (밤)
아직 아픈 몸이 낫지 않은 듯, 자꾸 옆으로 쓰러질 것 같은 부자.
중아, 부자의 얼굴을 자신의 어깨에 기대인다.
부자 난 왜 계속 졸려? 멍하구?
중아 약 때문에 그래요.
부자 아가씨.
중아 네.
부자 확실해? 눈 안떠?
중아 네.
부자 ...(물끄러미 중아의 어깨에 기댄채) 교수님들한테 연락해야겠다.
중아 ...네.
부자 (그냥 그렇게 기대어 있다가) 근데, 그럼... 난 인제 어뜩케? (점차 눈물이 난다. 복받친 듯 흐르는 눈물)
중아 (담담히 부자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이때, 문 앞으로 재복이 걸어온다. 뒤로 강국이 따른다.
놀라서 재복을 바라보는 중아와 부자.
부자, 벌떡 일어선다.
중아는 얼어 붙듯 자리에 앉아서 재복을 본다.
부자 (잰걸음으로 재복을 향해 걸어가는 부자. 재복의 가슴을 두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한다. 입술을 악물고 힘껏 때린다. 말이 새어 나올까봐 입술을 문채 눈물만 흘리며 쿵쾅대며 때린다.)
그리곤 힘없이 재복의 품에 안긴다.
큰소리로 울어댄다.
부자를 안은 어깨너머로 중아를 보는 재복의 여린 눈.
중아, 멍한 눈으로 재복의 흔들리는 다리를 본다.
마치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국, 살짜기 등 뒤에서 재복의 등을 한팔로 받쳐준다.
부자 앞에 재복, 그 뒤의 국.
그들 건너편에서 입을 벌린 채 앉아있는 중아의 모습이 동시에 보인다. F.S.
캡쳐.
중아E 슬퍼서 만난 사람들. ..슬픔이 차고 넘쳤다. 더 이상 남아있는 눈물이 없겠다. ...이젠... 눈물 안녕.
17. 시연의 매니저 차량 안 (낮)
매니저 앞에서 엉엉 우는 시연.
시연 싫어요. 안 찍어요. 엉엉. 내가 그 세계에서 빠져 나올라구 얼마나 기를 썼는데...
매니져 이건... 에로가 아니라, 영상 화보야. 작품이야.
시연 연기할래요.
매니져 이것두 연기야. 표정연기. ...그리구, 시나리오 들어오는 것두 다 비슷한 캐릭터야. 별루 안달라. 그럴거면, 더 이쁜 사진 찍어서 돈 벌구 좋잖아.
시연 싫어요. 나.... 연기 할래요. 피나게 노력할께요. 네? 네?
매니져 그래. 노력두 하구, 지금은 일단 화보두 찍구... 응?
시연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엉엉. 몸으로 하는 거 말구, 말루 하는 거... 저, 그거 하구 싶어요, 팀장님.
매니져 (버럭 소리친다.) 아, 다 뽀록났어. 너 리딩 안되는 거... (그리곤 화가 나서 나간다.)
시연 (혼자서 구슬피 운다.)
18. 대학로 (낮)
그림을 그리는 재석 옆에 쪼그리고 앉아 턱을 괸채 그림을 보는 국.
재석 (초상화를 그리며) 이렇게 사람 얼굴을 그리다 보면... 내가 부끄러워 져.
국 왜요?
재석 다른 사람 얼굴을 땀구멍 하나, 주름 하나 또렷이 짚어내는데... 내 얼굴은 거울을 봐두, 어뜩케 그려야 되는지 모르겠어. 단점두 모르겠구, 장점두 모르겠구... 그냥, 눈, 코, 입 달린 위치만 보여. 자화상 그리는 화가들, 그것들, 진짜 독한 것들이야. 어뜩해 제 얼굴을 알아보나 몰라.
국 목사님.
재석 그놈의 목사님.
국 왜 목사하다 마셨어요? 목사님은?
재석 남들이 자르기 전에 관뒀어.
국 잘릴 짓 하셨어요?
재석 ...입장차이지, 뭐.
국 무슨 짓 하셨는데요?
재석 누굴 좋아했어.
국 누구요?
재석 (힐끔 보며 인상을 쓴다.) 왜 캐물어?
국 불륜이구나?
재석 그래, 불륜이다.
국 (못마땅한 듯) 개나 소나 다 불륜.
재석 (인상을 쓰며) 내가 개냐, 소냐?
국 다 싫어요. ...인간이 참을 줄을 알아야지.
재석 ...(물끄러미 보다가 그림을 그린다.) 죽어라 참아두 안되니까, ...내가 널 맡아 키웠지.
국 (놀라서 재석을 본다.) 네?
재석 (그저 묵묵히 그림만 그린다.)
국 네? 목사님?
재석 ...(아무말도 않고 그저 그림만 그린다.)
국 ...(의아한 눈으로 재석을 보다가 조심스레) 우리 엄마, ...좋아하셨어요?
재석 (입을 꽉 닫는다.)
국 네?
재석 (그림만 그린다.)
국 (연필을 빼앗으며 재석의 팔을 잡아 흔든다. 인상을 쓰며) 말하세요, 빨랑.
재석 (인상을 쓰며 다시 연필을 뺏는다.) 아, 얘가 왜 이래? 왜 이렇게 보채냐, 오늘?
국 (인상을 쓰며) 말하라구요.
재석 아니야. (그리곤 인상을 쓰며 초상화를 그린다.)
국 ...근데, 그게 무슨 뜻이예요?
재석 ...니 엄마 아니란 뜻이야. ...내가 좋아한 사람.
국 ...
재석 니 엄마가 좋아한 사람을 나두 좋아했지.
국 (의아한 눈으로 재석을 본다.)
재석 ...
국 ...아빠요?
재석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스케치만 한다.)
국 (얼어붙듯 재석을 바라본다.)
19. 부자집 앞 골목 (낮)
대문을 내려오는 중아. 머리에 흰핀을 꽂고 있다.
그 뒤로 중아를 따라 내려오는 재복.
중아 내려 오지마라. 아주머니 약 꼬박꼬박 챙겨드려.
재복 (들은 척도 않고 기어이 따라 내려온다.)
중아 (인상을 쓰며) 내려오지 말라니까?
재복 (귀먹었다. 듣지도 않고 제 갈길 가듯 계단을 한칸씩 내려온다.)
중아 (인상을 쓴 채로 재복이 내려오는 한칸 한칸마다 선다.)
재복 (계단끝에 이른다.)
중아 (함께 끝에 내린다.)
재복 (그제사 중아를 본다.) 내가... 계단만 약해. ...도로에선 강해. (그리곤 담옆에 세워둔 스쿠터를 탄다. 그리곤 중아를 본다.) 타.
중아 좌석이 너무 좁아.
재복 (소리를 버럭) 니가 자꾸 이따구루 구니까 강국이 미워하지?
중아 (재복을 보며) 나 밉대? 강국이?
재복 말을 해야 아냐? 너 원래 재수없잖아. 얼른 타. 데려다 줄게.
중아 (재복의 뒤쪽에 오른다.)
재복 (헬맷을 중아에게 씌운다.)
중아 (씌우자마자) 출발.
재복 아, 아직. (몸을 돌려 핸들을 잡으며) 하여간 말이 느려서 그렇지. 성격은 은근히 급해, 얘.
중아 (헬맷 쓴 머리로 재복의 뒷통수를 박치기하며) 출바알.
재복 에이씨.
재복의 스쿠터가 달린다.
20. 도로 (낮)
도로를 달리는 재복과 중아.
재복의 얼굴에 도는 화색. 바람을 가르며 가는 둘의 얼굴에 모처럼 환한 미소가 어린다.
재복이 소원성취했다.
재복 (큰소리로) 중아야.
중아 응.
재복 어디 가구 싶냐?
중아 바다.
재복 바다는 무리다. ...무리다? 물루 가자?
중아 응.
도로를 달리는 둘.
21. 한강 변 (낮)
재복의 스쿠터가 한강둔치에 닿는다.
둔치에 닿은 중아가 내려서며 헬맷을 벗는다.
재복 여깄어. 우유 사올게.
중아 응.
재복 (다리를 절뚝이며 걸어간다.)
중아 (그 모습이 좋다. 씩씩하게 걷는 재복의 모습에 미소가 감돈다.)
재복 (그러다 옆쪽에서 오던 자전거를 피하다 바닥으로 넘어진다.)
중아 (재빨리 달려가려는데)
재복 (중아를 보지도 않은채 손을 들어 멈추라는 표시를 한다.)
중아 (멈추어 선다.)
재복 (일어서서 제 옷을 툭툭 털곤 매점으로 걸어간다.)
22. 매점 앞 (낮)
재복 아저씨, 흰우유 주세요. 두개요. 김밥두 주세요. 콜라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본다. 황당하다.)
중아 (어느새 왔는지 재복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재복의 바지를 털어주고 있다. 힐끔 올려다 본다.)
재복 (퉁명스레) 너, 뭐하냐? 남의 바지 가랑이 붙들구?
중아 (일어선다.) 널 일으켜 주진 못해두... 옷의 먼지는 털어주겠다. 내가.
재복 (물끄러미 중아를 보다가 무표정하게... 미소짓지 마세요) 날 이미 일으켜 줬어, 니가. ...너 없는 동안 (그리곤 다시 매점안을 보며) 얼마예요?
중아 (계산을 하는 재복의 옆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그러다 다시 바지에 묻은 먼지에 눈이 간다. 선채로 다시 툭툭 먼지를 털어준다.)
23. 거리 (낮)
거리를 뛰어가는 국.
그저 그냥 뛴다.
중아E 사람들은, 햇빛 속에서... 숨가쁘게 사랑을 한다.
숨차게 달리던 국.
뛰어서 뛰어서 도착한 곳이 막다른 골목이다.
끝이 막혀 있는 골목에서 막힌 담을 짚으며 숨을 헐떡인다.
국 ...(그러다 멍하니) 아빠래. ...(그렇게 공허한 눈으로 담만 보고 서 있다.)
속이 답답한 듯 가슴을 콩콩콩 주먹쥔 손으로 두드린다.
그리곤 담 밑에 쪼그려 앉아 오바이트를 한다.
그리곤 몸을 돌려 다시 뒤돌아 뛰어가는 국.
24. 거리 (낮)
돌아온 길을 다시 달린다.
그러다가 지친 듯, 점차 걷기 시작한다.
아직도 속이 거북한지 자신의 가슴을 콩콩 두드린다.
이젠 힘없는 팔을 흔들며 걷는 국.
그렇게 힘없이 팔을 흔들며 걸어가는 국의 굳은 얼굴.
그러다가 허탈한 표정으로 어이없는 미소를 짓는다.
국 하. 아빠래.
그리곤 어이없던 웃음이 점차 애틋한 미소로 변한다.
걸으면서 얼굴을 쓸어내린다.
국 (안정이 된듯하다.) 배 고프다. 밥이나 먹자. (그리곤 미소)
씩씩하고 편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국.
25. 중식당 (낮)
시연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중식 코스요리를 먹고 있는 시연가족.
시연부 (말도 없이 음식을 먹는다.)
시연 (미소) 아빠, 생신 축하해.
시연부 (물끄러미 시연을 보다가 시연모를 본다.) 시연이 미쳤나봐? 나한테 친절해.
시연모 나두 당신 생일 축하해.
시연부 다 이상해. 나 생일날 이런 접대 받아본 적 없어.
시민 아빠가 자구 엇나가니까 그르지이. 말두 안하구...
시해 그래. 아빠는 맨날 베란다 나가서 화분앞에만 있구.
시채 (그새 몰래 시해의 접시에 있는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시해 (시채의 머리통을 팍 때린다.)
시채 이게 근데, 언니한테, 씨이.
시해 언니 좋아하네.
시연모 (인상을 쓰며) 아으, 이것들은 괜히 내가 실수루 만들어 가지구...
시민 (씩웃으며) 무슨 실수?
시연모 웃는 꼴 봐라. 능글능글...
시연부 (시연에게 진지하게) 시연아.
시연 응?
시연부 왜 탕수육이 없냐? 여긴?
시연모 여태 비씬 코스요리 다 먹구, 무슨 탕수육을 찾어?
시연 따루 하나 시키지, 뭐.
시연부 (힘없이) 그래, 시켜.
시연 (벨을 누른다.) 아빠, 탕수육 먹구 발 마사지 받으러 가까?
시연부 먹구 잘거야, 집에 가서...
시연모 아, 진짜. 언젠 시연이 생일상 받구 싶다구 징징대놓구?
시연부 그건 예전 살던 집에서의 바램이지?
시연 (시니컬하게 소리친다.) 아, 진짜 왜 이래?
시연부 (놀라서 시연을 본다.)
시연모 (역시나 놀라서 시연을 본다. 당황해서는...) 시연아. 시연아. 아유, 왜 소린 지르구 그래에. 시연아. 그냥, 가. 일보러... 여긴 우리끼리 그냥 먹구 알아서 갈게.
시연 (소리친다.) 판 집을 어쩌라구? 아빠가 돈벌어서 그럼 도루 사아. 뭐, 어쩌라구?
시연부 ...
시연모 시연아. 그냥... 니 아빤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시연부 친구가 없다. (슬프고 애처로운 눈빛이다.)
시연 ...
시연부 새로 이사간 그 동넨... 내가 친구할 사람들이 아니야. ...내가 가꿀 꽃두 없구... 그래서... 자꾸 집 생각이 나구... 자꾸... (갑자기 시연을 보며) 요기까지... 더 말하면, 너 환장하겠다.
시연 이재복?
시연부 (시연의 눈을 피한다.)
시연모 (시연의 눈치를 보며) 에이... 왜 괜히 앞서서 그런 생각을 해, 시연이? 오바야아, 너. 아니야, 니 아빤. 그것까진...
시연부 응. 재복이 생각 나.
시연모 (버럭) 도와 줄라 그래두, 수습이 안돼, 이 인간은...
시연 ...(차갑게) 아빠.
시연부 ...
시연 내가... 돈을 더 많이 벌게.
시연부 돈 싫어.
시연모 난 돈 좋아.
시연 다시 죽어라 돈 벌어서 그 집두 다시 살게.
시연부 진짜루?
시연 응. 대신... 아빠 혼자 거기 가서 살어.
시연부 (시연을 본다.)
시경 나두 거기 살래.
시연 그래, 너랑 아빠랑... 이재복을 데려다 놓든가 말든가, 그건 댁들이 알아서 하시고... ...(눈물이 어린다.) 아빠한텐 추억의 집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 집 하나 사겠다구 기를 쓴 고통의 흔적이야, 그때, 내 나이가 그렇게 어렸는지두, 나중에 알았어. 그런 집이야. 날 지치게 한 집. ...난 좀 편하게 살면 안돼? 응?
시연부 ...
시연모 (물끄러미 시연을 보다가 시연부의 등짝을 주먹으로 쿵쿵쿵 때린다.) 탕수육이구 나발이구 얼른 일어나. 니들두 얼른 일어나. 지 생일날 지가 판을 깨, 왜?
시연부 (시연을 본다.) 시연아. (손을 잡는다.)
시연 (시연부를 본다.)
시연부 ...아빠가... 원래 땡깡쟁이야. (씁쓸한 미소)
시연모 (그제사 시연부를 보며 애잔해진다.)
시연 ...(흐르는 눈물)
시연모 (시연의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준다.)
중아E 사람들은 ...숨가쁘게 사랑을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에선, 숨막히는 한숨소리가 새어나온다.
26. 한강둔치 (낮)
강물을 보며 나란히 앉아있는 중아와 재복.
중아와 재복이 손으로 김밥을 먹는다. 동시에 오물오물...
중아와 재복이 우유를 같은 우유를 빨대로 빨아 마신다.
중아 재복아.
재복 응.
중아 나, 여기서 죽을라 그랬다?
재복 (힐끔 중아를 본다.) 미쳤냐? 왜 죽냐?
중아 (부자의 문장처럼 두서없는 문장으로 말한다.) 나두 물에 들어가서 알았다. 미쳤다, 왜 죽냐? 것두 여기서? ...물 속이 얼마나 드러운지... 아우... 물 다 마시구 나와서... 내가 수영을 좀 한다. 바닷가에서 자라서... 어쨌든 그 날 물먹은 배가 임신한 지금 배보다, 두배는 나왔다? 그때, 속이 너무 구려서... (그러다 자신이 먹는 우유를 본다.) 재복아, 콜라 좀 줘.
재복 안돼. ...애기 강국 까매져.
중아 (인상을 쓰며) 김밥이랑, 우유랑 이거 아닌 거 같다. 속이 구리다.
재복 그럼, 둘 중 하나를 먹지마. ...애기 강국은 김밥 소화 안돼. 우유나 먹어.
중아 (재복을 보며 우유를 쪽쪽 빨아 먹는다.) 한강만 오면, 물루 배를 채우네, 내가...
재복 그래서...
중아 ...(가만 있다가) 까먹었다. 무슨 말을 할라 그랬지?
재복 (어이없는 눈으로 중아를 본다.)
중아 ...
재복 임산부 증상이야? 기억상실?
중아 ...모르겠다.
재복 뭐?
중아 (미소) 결론은... 내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너랑 둘이 앉아 웃구 있다는 거... 김밥 먹으면서...
재복 (물끄러미 중아를 본다.)
중아 이젠 강물이 영화 같다. 강국이 흘러가구, 한시연이 흘러가구, 노동석씨, 권병란씨, 김부자씨, 그리고 한성만씨... ...이 사람들이 흘러가는 순서가... 내가 여기서 살아온 발자취다. (미소)
재복 나 왜 빼냐?
중아 (재복을 본다.) 넌 저 강물에 없다. 지금 내 옆에 있으니까...
재복 중아야.
중아 응.
재복 내가 오빠해 주까?
중아 (재복을 본다.) ...싫다. ...마음 속에 가족들이 너무 많다. 이젠 가족 찾기는 끝.
재복 ...그럼... 아무것두 해줄게 없네, 우리 중아한테?
중아 ...
재복 이젠 강국 죽어두 결혼 못해, 너랑.
중아 왜?
재복 강국 족기전에, 내가 먼저 골루 갈 것 같다. 화병으루..
중아 ...
재복 ...이젠 기쁘구 재밌어서 웃는 게 아니라... 울까봐 웃어. 난 지금 서서 일할 주제비두 아니야. ...다리가 아파. 많이 아파. 널 위해서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니네 병원 화장실 청소.
중아 (물끄러미 재복을 본다.)
재복 ...겁나지? 빌붙을까봐?
중아 응.
재복 거 봐.
중아 뭘 거봐? 빌붙지 못하게 하면 되지.
재복 ...
중아 헛소리 그만하구, 오토바이나 태워줘.
재복 중아야.
중아 ...왜.
재복 그릏케 드럽냐? 저 물이?
중아 응.
재복 ...(여전히 강물을 본다.) 내 드런 인생보다 더 드러운가. 저 물이? 내가 빠지면, 물이 싫어할까? 내가 싫어할까?
중아 ...개소리.
재복 난 분명히 쓰레기였는데... 그 때는 살만했는데... 지금은 왜 이러냐? 그때보다 더 쓰레긴가?
중아 ...(물끄러미 재복을 본다.) 다리가 너무, 무거워져서... 니 마음두 무거워졌나 부다. 다리는... 내가 가볍게 만들께. ...너는 그냥 다이어트나 하구 있어, 니 마음을...
재복 다이어트 정도가 아니다, 지금. ...내 안의 사람들이 죽어 가. 니 발자취 사람들이, 내 안에선 죽어 가. ...무거워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텅텅 비어서 없어졌다, 가슴이... 가슴의 영양실조... (한동안 말이 없다.) 중아야. ...내 마음에 단 한명두 없다, 이제... 너까지... (중아를 본다.) 할아버진 병원에서 장례 치뤘구, 넌 내 마음에서 장례식 치뤘다, 이미... 그니까... 내 앞에서 알짱대지마.
어두운 재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중아.
27. 도로 (밤)
스쿠터를 타는 중아와 재복의 모습.
어둡게 도로를 달리는 둘의 모습.
중아E 사람들은... 달빛 속에서... 숨죽이며 사랑을 한다.
28. 중아집 거실 (밤)
열려진 창문.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실 커튼을 살짜기 날리운다.
거실 소파에 힘없이 앉아있는 국.
중아가 들어온다.
물끄러미 국을 바라본다.
중아 (국을 향해 바닥에 마주 꿇어 앉으며) 뭘 도와 줄까, 국아?
국 (물끄러미 중아를 본다.) 왜 안 물어 봐? 아직까지?
중아 뭘?
국 이재복. 어디서 어뜩케 찾았는지...
중아 ...
국 니가 물아봐야 내가 말을 하지. 내가 이재복 쫓아 보낸 것 까지...
중아 (빤히 국을 바라본다.)
국 응?
중아 ...다시 왔잖아. 그거면 된다.
국 이재복만 있으면, 날 미워하지두 않아? 미워할 필요두 없어?
중아 ...(국을 본다.) 널 미워한 적 없다, 국아.
국 ...
중아 좋아한 적은 있지만...
국 중아야.
중아 응.
국 도대체... 사랑이 뭐냐?
중아 ...사랑이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누굴 사랑하는지는 알어.
국 나중에 변할 수두 있잖아.
중아 너한테 사랑은... 영원히 함께 행복할 사람인가 보다. ...나한테 사랑은... 함께 불행해두 좋을 사람. ...영원할거란 믿음보다, 지금 함께 있다는 것이 ...더 소중한 사람.
국 ...
중아 그 사람과 함께라면... 불행해두 행복한 사람.
국 ...(물끄러미 중아를 본다.) ...위험한 사랑이네?
중아 응.
국 넌 그런 애구나? ...이제서야 널 알겠다. ...난 ...그런 사랑 싫다.
중아 ...알어. ...니 사랑은... 평화롭고 따뜻한 사랑. ...난, 그런 사랑 싫다.
국 ...
중아 ...
국 이혼해야겠다.
중아 ...(고개들어 국을 본다.)
국 우리가 좋은 부부는 아니지만, 좋은 부모는 될 수 있겠지, 중아야?
중아 (눈물이 어린다.) 응. 최선을 다하자, 우리 아가 강국한테...
국 ...(중아에게 손을 내민다.) 나, 기다려 주느라... 애썼다. (눈가가 젖는다.)
중아 (국의 손을 잡는다.) 니 사랑이 못되 줘서... 미안하다, 국아.
국 니 행복이 못되줘서, ...미안하다. 중아야.
국, 중아의 잡지 않은 손으로 중아의 볼을 어루만진다.
중아, 잡지 않은 손으로 국의 뺨을 어루만진다.
눈물 흘리며 미소짓는 둘의 모습.
그들의 뒤쪽에서 커튼이 날린다.
29. 중아집-베란다.(밤)
날리는 커튼 사이로 스치듯 보이는 둘의 모습. F.S.
30. 시연의 아파트 앞 공원 (밤)
벤취에 앉아있는 시연.
재복의 스쿠터가 시연을 향해 다가온다.
시연, 일어선다.
헬맷을 벗으며 시연을 향해 걸어오는 재복.
입을 벌린채 재복을 바라보는 시연.
재복 (미소) 잘 살아, 시연양?
시연 (애틋하게 재복을 본다.) 알잖아, 나 잘 사는 건...
재복 ...(먼 아파트 건물을 바라보며) 이 아파트 몇 평짜리야?
시연 그건 니가 알아서 뭐하냐?
재복 (한쪽 다리를 뻗으며 벤취에 앉는다.) 우리 펭귄들은 잘 있어?
시연 잘 있든 말든...
재복 아. 씨. 간만에 만났는데 되게 구박하네. (버럭) 다리 전다구 무시해?
시연 (버럭 소리친다.) 이 찐따야. 가뜩이나 가진 것두 없는게, 몸 하나 있는 것두 그 따위루 망가뜨리냐? 내가 오토바이 안된다 그랬지, 그래서? 사고 난다구...
재복 오토바이는 다치구 나서 산거야.
시연 (물끄러미 본다.) 그런건가? 헷갈렸네.
재복 에유, 기집애. 그냥 되두 않게 소리부터 지르구... 쪽팔리게...
시연 ...(물끄러미 재복의 다리를 본다.) 다리... 계속 그렇게 그런거야?
재복 (아무렇지도 않게) 응.
시연 뭐... 방법없어? ...돈 필요하면 얘기해. 나 돈 있어.
재복 돈 좀 번다구 뻐기네, 얘가? 오토바이두 결국은 내 돈으루 샀네. 아, 약올라. 빌붙어 있을때 사실, 별루 받은 것두 없어, 밥만 얻어 먹었지.
시연 그니까, 돈 준다니까?
재복 돈이 아니라... 약속 줘.
시연 무슨 약속.
재복 강국 안 만난다구...
시연 ...
재복 협박을 했건만... 그때...
시연 만나야 돼.
재복 나, 이제 막 갈라구, 시연아.
시연 막 가.
재복 ...
시연 난 괜찮아.
재복 완전 담배야? 마음에 물러 날 기세가 안보여?
시연 담밴지, 성냥인지 나두 몰라. ...근데, 울타리야.
재복 ...
시연 니가 해주겠다구 말루만 뻥쳤던 울타리. ...그거 하나루두, 내 인생 절반을 바치겠다. 너같이 착한 새끼두 잊을만큼, ...그 사람 울타리는 나한테, 너무.. 벅차. 그 사람만 보면... 그렇게 벅차, 나는... (눈물이 어린다.)
재복 ...(물끄러미 시연을 본다.)
시연 ...
재복 참... 인생이 코메디다. ...참 수습 안된다, 인간들. ...얘가... 진짜루 담배하네? ...(한동안 말이 없다. 그러다가 궁시렁) 그냥, 돈 많은 한시연한테 삥이나 뜯을까? 신경끊구?
시연 응.
눈물 흘리는 시연과 쓴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재복.
중아E 사람들은 숨죽이며 사랑을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선, 속삭이듯 눈물이 흐른다.
31. 부자의 집-안방 (밤)
어두운 부자의 방에 달빛만 새어 들어온다.
잠든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재복.
옆 테이블에 놓인 성만의 영정사진을 바라본다. 달빛에 비추이는 성만의 얼굴.
재복, 사진 속 성만의 얼굴을 물끄러미 본다.
재복 할아버지. ...나... 할아버지 없으니까, ...(눈물이 맺힌다.) 기분 나빠. ...욜라 기분 나빠.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부자가 깰까봐 입을 틀어 막는다. 그래도 자꾸만 새어나오는 울음소리.) 기분 나쁘다고오, 이 할아버지야아. 엉엉엉. (성만의 사진을 가슴에 묻는다.)
부자 (잠든 척 눈을 감은 부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재복의 울음소리가 달빛 속에 젖는다.
32. 연기 연습실 (낮)
대본을 들고 개인지도를 받고 있는 시연의 모습.
복도로 난 창가에서 빼꼼히 시연을 바라보는 국.
33. 연기연습실 복도 (낮)
한참동안 숨어서 시연의 연습을 바라보는 국.
미소가 어린다.
중아E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그리곤 복도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가방 속에서 시연과 같은 대본을 꺼내 든다.
그리곤 자신도 중얼대며 대본을 읽어본다.
34. 부부의원 (낮)
치료실을 정리하는 중아의 모습.
어디선가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
중아, 놀란 눈으로 창밖을 본다.
중아가 손 우산을 씌워주던 그 창가에 재복이 서 있다.
멀리 떠날 사람처럼 아득하게 중아를 바라보면서...
중아 ...안돼, 재복아.
스쿠터를 타는 재복.
부랴부랴 창문을 여는 중아.
재복이 떠난다. 등에 배낭 하나 매고...
중아 (소리친다. 상기된 목소리다.) 재복아, 재복아... 재복아. ...(숨이 멎는다. 한참동안 아무 말도 없다. 눈물... 속삭이듯) 가지 마.
35. 도로 (낮)
중아와 만났던 그 도로.
보행자 푸른 신호등으루 멈추어 선 재복.
추억의 그곳. 생각들이 스친다.
보행자 신호등에 붉은 등이 켜진다.
힘차게 달리는 재복의 스쿠터.
중아E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사랑은 추억이 아니라, 현재다. ...사랑은 마음이 아니라, 현실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서, 세상을 살아야 한다.
도로를 달리는 재복의 얼굴 C.U.
병원중아E (속삭이듯 울먹이며) 가지마.
중아의 흐느낌이 도로를 적신다.
절망의 눈물을 흘리는 병원 중아와 달리는 재복의 모습.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