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궈의 모든 것]청동정(靑銅鼎)
노예사회에 이르러 정의 재질은 청동으로 발전했으며 그 모양과 형식이 점차 규범화됐다.
정은 발이 세 개, 귀가 두 개로 다양한 음식을 함께 조리하는 보물 그릇이었다. 옛날 대우(大禹)가 구주(九州)의 금속을 수집해 형산(荆山)에서 구정(九鼎)을 만들었는데 희귀한 야수와 신선, 괴물을 정에 새겨 백성들이 더는 고통과 공포의 위협을 받지 않고 하늘의 보살핌을 받을 것임을 예시했다.
이로부터 구정은 하늘의 명을 뜻하게 됐으며 국가의 상징이 됐다. 하나라, 상나라, 서주 등 조대를 거치며 나라가 멸망하고 도읍을 옮기면서 정은 세세대대로 전해졌고 천하의 권력을 상징했다.
청동정은 중요한 예기(禮器)가 됐고 더는 음식을 조리하는 그릇이 아니라 몸체에 도안과 문장이 새겨지고 하늘의 명을 받드는 신비로운 힘의 상징이 됐다. 또한 노예주 계급의 성과와 업적을 기록하기도 했고 죄수를 처벌하는 형벌 도구가 되기도 했다. 정에 담는 물건, 크기와 조합, 정의 수량 등 많은 것들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됐고 정 사용에서 엄격한 등급제도가 형성됐다.
정의 사용은 상당한 수준의 예의와 장중함을 상징했고 정과 음식의 만남 ‘정식(鼎食)’이라는 단어는 규모의 거대함과 인원수의 방대함, 그리고 예의범절의 장중함과 비할 수 없는 흥성함을 뜻한다. 당시 ‘정식’은 확정(镬鼎), 뇌정(牢鼎), 수정(羞鼎) 세가지로 나뉘었다. 확정은 음식을 끓이는 용기이고 뇌정은 음식을 담는 그릇이며 수정에는 조미료를 담았다. 이것은 현재의 훠궈 냄비로 음식을 끓이고 접시에 음식을 담아 올리며 작은 그릇에 소스를 올리는 방식과 비슷하다.
이밖에 서주시기에는 이미 ‘작은 냄비 훠궈’가 나타났다. 사람마다 작은 정 하나씩 올렸고 정과 화로가 하나로 결합된 모양을 갖추었다. 정 내부는 상하 2층으로 나뉘는데 아랫 층에는 불을 지필 수 있게 구멍을 뚫었고 윗 층은 음식을 담아 끓이게 만들었다. 제사나 연회 등 공식 행사 때 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편종 음악을 감상하며 사람마다 ‘작은 냄비 훠궈’ 를 끓이며 각자 선호하는 음식을 즐겼다. 당시 대형 정은 제사 등 정식 행사 예기로 사용됐고 작은 정은 기존의 음식을 끓이고 담는 용도로 사용됐다.
주나라 말년에 제후국들의 혼전이 이어지면서 예의와 격식이 파괴됐다. 예악제도가 쇠퇴해 지면서 정의 신권과 왕권의 의미 또한 점차 약화됐다. 정은 다시 본연의 음식 용기로 쓰였고 정교하고 신비한 무늬들은 다시 미의 기준으로 평가 받았으며 후세의 많은 훠궈 냄비는 여전히 정의 격식과 특징을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