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가격 찔끔 내려가자, 요즘 다주택자들이 벌이는 일
부동산 증여 급증
부동산 시장이 소강 상태에 들어간 가운데 이때를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자녀에게 증여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의 증여 거래 동향에 대해 알아봤다.
◇매매 급감, 증여 급증
작년 12월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597건으로 9월(449건)과 비교해 33% 늘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597건으로 9월(449건)과 비교해 33% 늘었다. 같은 기간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여파로 아파트 매매는 3874건(9월)에서 1634건(12월)으로 58% 급감했는데, 증여는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전국적으로도 아파트 매매는 3개월 사이 5만5191건에서 3만484건으로 44.8% 줄었는데, 증여는 4758건에서 5213건으로 9.6% 늘었다.
증여 급증은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가격이 소강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작년 6월 다주택자 종부세율은 최고 6%로 뛰었다. 보유세 과세 기준인 아파트 공시가격도 지난해 전국 평균 19%나 올라서, 서울의 웬만한 다주택자는 대기업 연봉보다 많은 세금을 내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다주택자 양도세율이 기존 최고 62%에서 72%로 올랐다. 종부세가 부담돼 팔자니 많은 양도세를 내야 하는 것이다.
증여 급증은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가격이 소강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픽사베이
그러자 증여 수요가 늘었다. 자녀 등에게 집을 넘겨 본인은 다주택자 종부세에서 풀려 나고, 자식의 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증여세 역시 최고 세율이 50%로 높지만, 다주택자 양도세율이 워낙 높은데다 줄어드는 종부세 부담까지 감안하면 증여가 낫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가격 보합세는 증여의 기회가 되고 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를 때는 증여 가액도 올라 많은 증여세를 내야 하는데, 내릴 때는 증여 가액과 증여세가 함께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는 “서울 인기 지역 아파트 값은 다시 오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요즘 시장 상황을 증여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불법 사례 벌어져
증여 과정에서 각종 불법 탈법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증여 과정에서 각종 불법 탈법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국세청은 최근 “부모 찬스를 이용해 빚을 갚는 등 편법 증여로 세금을 빼돌린 혐의가 있는 10~30대 227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사례를 보면 대학생인 A씨는 작년 경기도 소재 아파트와 단독주택, 상가 주택 등 3채를 샀다. 총 50억원 규모다. 아르바이트로 버는 연 1000만원이 소득의 전부라서,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어머니에게서 40억원을 증여받았다. 나머지 10억원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 대출받았다.
그런데 증여받은 40억원에 대해 증여세를 내지 않은 게 덜미가 잡혔다. 또 10억원 대출에 대한 이자를어머니가 대신 갚아준 정황까지 드러났다. 여기에 명품 가방 구입과 해외여행 등에 쓴 신용카드 대금도 어머니가 대신 내준 것으로 국세청은 보고 있다.
실질적으로 증여를 받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 ‘금수저 엄카족(엄마가 카드비 갚아주는 사람들)’이 많다. /픽사베이
A씨처럼 부모가 카드 대금을 대납해주는 방식으로 실질적으로 증여를 받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 ‘금수저 엄카족(엄마가 카드비 갚아주는 사람들)’이 많다.
국토교통부는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아파트에 대한 편법 투기 거래 의심 사례를 대거 적발했다. 미성년자가 부모 돈으로 아파트 12채를 매수한 사례, 법인이 대표이사 개인 자금으로 저가 아파트 33채를 갭 투자(전세 낀 매매)한 명의신탁 사례 등이 밝혀졌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부동산 증여 과정에서 각종 불법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며 “정부가 보다 면밀한 조사를 해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수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