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정약용의 둘째아들 학유가 지었다는 농가월령가가 있다. 달거리 형식이라 서장을 포함해 모두 열세 장으로 된 장편가사다. 이 가사의 칠월 절기로 입추와 처서가 나온다. 늦더위가 있다 해도 계절은 속일 수 없고 바람이 달라졌다고 했다. 칠석에 견우와 직녀가 흘린 눈물은 비가 되어 지나고 오동잎 떨어질 때 눈썹달은 서녘하늘에 걸렸다. 농부보고는 마음 놓지 말라 했다.
같은 달에 꼴 베고 김매고 피 골라서 낫 갈아 두렁 깎고 선산에 벌초하자. 거름할 풀을 베어 더미 지어 모아 놓고 올벼 논에 새를 보고 허수아비도 세우자. 기름진 밭을 깊게 갈아 무 배추 심어 놓고 가시로 울을 막아 놓자. 부녀들도 생각 있어 앞일을 헤아린다 했다. 베짱이 우는 소리 자네를 위함이라 저 소리 깨쳐 듣고 정신을 가다듬자 한 것도 농사는 미리 준비하라는 뜻이다.
우리네 세시풍속 가운데 설과 추석은 두루 쇠었다. 이십사절기는 농경사회에서 나침반 같은 역할을 했다. 단오는 씨앗을 뿌리는 시점으로 중부지방에서 중요시했다. 강릉 단오제가 오늘날 맥을 잇고 있다. 남부지방은 호미씻이에 해당하는 백중을 크게 생각했다. 밀양에는 백중놀이가 한 마당 펼쳐진다. 내 어렸을 적 백중날 아침이면 소 먹이는 아이들도 산신령님께 제사를 올렸다.
장마와 더위가 물러간 구월 초였다. 양력으로 구월에 들어섰다만 음력으론 아직 칠월이었다. 올해는 윤오월이 한 달 더 끼어 백중이 조금 늦게 왔다. 추석이 오려면 한 달은 더 지나야 한다. 퇴근 후 저녁밥 먹고 반송공원으로 올라가 보았다. 평소 같으면 반송시장을 둘러보고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으로 나갔더랬다. 방향을 바꾸어 반송공원으로 간 것은 풀벌레 소리 때문이었다.
언젠가 가까운 사람 간병으로 병원을 드나들 때였다. 어쩌다 밤새도록 응급실 풍속도까지 살필 기회가 있었다. 의료진도 고생이고 보호자도 고생이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더 서러웠다. 병원은 병원대로 사람들이 넘쳐났지만 시장에 가면 시장에도 사람들이 복작댔다. 식후 저녁시간이었지만 공원에 가면 운동하러 공원을 찾는 사람은 웬 그렇게 또 많은지.
반송공원 길섶에선 귀뚜라미소리가 낭랑했다. 기온이 높아지면 소리는 위로 퍼져가고, 기온이 낮아지면 소리는 아래로 깔린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낮말을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날이 저물자 귀뚜라미 소리가 더 낭랑하게 들려왔다. 도심 아파트 살다보니 자연의 소리에 익숙하지 못했다. 잠시만이라도 발품 팔아 산책 나오니 청아한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둑한 산길을 올라 아트막한 산정에 닿았다. 태양광발전으로 충전된 전등불이 켜져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거리는 가로등이 켜지고 차량이 꼬리를 물고 지났다. 아파트와 주택에도 등불이 켜졌다. 상가엔 네온이 아롱져갔다. 공중에선 지상의 불빛보다 더 아름다운 달빛이 비추고 있었다. 만월에 가까운 칠월 열나흘 달이 덩그렇게 솟아 있었다. 숲속이기에 완상 가능한 달이었다.
나는 산정 의자에 가부좌 틀고 번잡한 세상사를 잊어버렸다. 운동기구에 매달리고 흔들고 하던 사람들도 점차 줄어졌다. 숲속 길이 더 어둡기 전에 서둘러 하산하고 있었다. 산꼭대기에서 내가 맨 마지막이다시피 할 때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하산 방향은 바꾸어 반지동 까치아파트 쪽으로 내려섰다. 비탈진 길이라 서둘지 않고 살금살금 발을 디뎠다. 어둔 숲속이라 조심해야 했다.
지난여름 큰물이 스쳐간 생태하천은 다시 정비해야 할 곳이 많았다. 개울 따라 낸 산책로 언덕엔 코스모스가 피었다. 초여름엔 망초가 하얗게 피었던 자리다. 둘 다 꽃향기보다 꽃모양으로 눈을 즐겁게 했다. 가로등이 켜진 우레탄포장 산책로엔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서늘한 밤공기에 계절이 바뀜을 실감했다. 아까 산정에서 본 달을 더 중천으로 솟고 있었다. 별빛은 반짝거리고. 09.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