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9. 첫째 부활
계시록 20:4-6절 말씀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우리는 무엇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내가 꼭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하는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기도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감동을 그대로 깨우치며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날의 많은 사람들은 입술(말)로만 잘 믿고 있어요. 실제로 변화 받지 않고, 형식적으로 살아가면서도 자기는 부활할 것이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다, 그리고 천국 간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죄를 짓더라고 바로 죄임을 깨닫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보면 22절부터 24절까지에 보면 세 가지의 부활이 나온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요,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첫째 부활은 첫 열매인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부활이고, 우리자신들의 부활과는 다른 문제이다. 또한 둘째는 부활에 대해서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이렇게 말씀했다. 그리스도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부활하는 것이 둘째 부활이라 셋째 부활은<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이것은 천년왕국 전에 일어나는 부활이 여기서 말하는 고도전서 15장의 둘째 부활이고, 천년왕국 후에 일어나는 부활이 여기서 말하는 셋째 부활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야기는 빼놓고 앞으로 우리에게 올 두 가지의 부활이 남아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 강림하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 부활하는 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천년왕국이 지난 다음에 인류 전체가 부활하게 되는 그 부활을 가리켜서 우리는 둘째 부활이라고 설명을 한다. 우리는 이런 상식을 가지고 이 말씀을 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가? 오늘 본문 4절 말씀 보면 설명한다. <예수님을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이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다> 이렇게 말씀한다. 첫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고 전파하는 사람이라야 한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잘 전한 사람들인 것이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지혜롭고 충성된 종들을 찾으시는데 우리가 목사님이라고 해서 다 저절로 여기에 속하는 게 아니고 그 목사님들 입에 진짜 하나님의 말씀(생명)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된다.
둘째는 <짐승과 우상에게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이마와 이마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 짐승, 곧 마귀에게 경배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마땅히 섬겨야 할 하나님을 버리고 온갖 잡신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영어 성경을 보면 이 둘째와 셋째를 대역 성경처럼 두 가지로 이렇게 나누어서 번역한 게 있는가 하면, 한편 이 두 가지를 동적으로 해가지고도 같은 것으로 설명한 책들도 많이 있다. 이 두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함과 복음을 전하는 이 일에 충성스러운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목베임을 받은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로는 어린 양이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했다. 여자라고 하는 거는 영적으로 모든 유혹,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데 받는 유혹이다. 돈의 유혹, 명예의 유혹, 권세의 유혹, 세상 쾌락의 유혹 얼마든지 유혹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이런 것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전심으로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넷째로는 사랑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 되었다. 여기 처음 익은 열매라는 게 첫째 부활에 참여할 사람들이란 말이죠. 하나님께 온전히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 반 하나님께 반 이렇게 반반 양쪽 양발을 이렇게 한쪽씩 디디고 서 있는 자가 되지 말고 온전히 주님께 두 발을 다 드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는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 이렇게 설명을 했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 헛된 것에 유혹받지 아니하고 이 세상 헛된 것 따라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서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들이 꼭 되어야 하겠다. 이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이냐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주님 재림하셔서 이 새로운 세상이 될 때 그 세상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이 세상에서도 왕 노릇 한다는 게 영광스러운 거겠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왕은 수명이 오래 가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수십 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1년도 못하는 사람도 있지요. 심지어는 몇 개월밖에 못하는 사람도 있기도 한다. 이렇게 짧게 하는 우리나라 한국 대통령 5년 한다고 하지만 5년이라고 하는 것도 잠깐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걸 무슨 영광이라고 거기다가 목을 매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자들은 다 불행하게 될 것이다. 왕이 되기 위해서 왕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사람되면 안되고,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왕이 되어야한다. 그런데 이 천년 왕국에서 왕이 될 사람들은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해서 사랑으로 봉사하는 왕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이런 복된 왕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의 날 곧 첫째 부활의 날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 복이 있는 사람이고 거룩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둘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기를 사모하면서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기를 노력하는 이런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다 깨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주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면서 주님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렇게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고대하면서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 성경의 제일 마지막 말씀이 그 말씀이죠.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리고 내가 속히 오리라. 주님 하시면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말씀하셨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것이 아니고 주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면서 한 영혼이라도 멸망당하지 않기를 원하시기에 우리 위에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깨어서 주님 앞에 기도하고 주님을 뜨겁게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30. 십자가 위의 주님이 밝히 보이는가?
갈라디아서 3장1절~3절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꿰더냐
2.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당하신 것을 우리가 마음에 늘 새기고 이 일을 마음에 묵상하면서 경건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여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사모하며, 은혜 받기를 간절히 구하며, 또 주님 앞에 우리가 바로 그게 살아가기를 소원하고 결심하면서 살아가는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의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처음부터 굉장히 책망을 하고 있는 교회이다. 1장 시작부터 누가 너희를 꿰더냐 다른 복음은 없나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비록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 이렇게 무섭게 책망을 하고 있어요. 라고하며 갈라디아 교회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와서 바울이 전해서 예수님 믿게 하고, 은혜 받게 하고, 신실한 사람을 만들었던 사람들을 유혹을 해 다시 세상으로 흘러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혹하고 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 한 장은 3장이다. 1장에서는 “누가 너희를 꿰더냐”로 시작했다가 3장에 와서는 무섭게 선포한다.
그리고 본문의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이것은 갈라디아 사람들한테만 책망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오늘도 주일이라며 주님 앞에 다 모여 예배한다고 이렇게 찾아든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역시 이 말씀인 것 같다. 어리석게도 갈라디아 사람들아 너희가 정말 크리스찬이냐 너희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에도 밝히 보이느냐 그것이 밝히 보여야 된다고 하는 이야기다. 밝히 보이지 않으면은 이 사람들은 밝히 보이는데도 유혹을 받아서 넘어진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밝히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받으면 넘어지는 것을 말할 것도 없지만, 유혹을 하지 않아도 자기들 스스로가 다 넘어지고도 겉보기에만 잘 믿는 것 같은데, 진짜 내면적으로는 믿음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 갔다 다니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고 그래서 붉은 피를 이렇게 흘리시고 고개는 푹 숙이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이 성화를 바르게 볼려면 이렇게 내가 서서 보면은 안되고 그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올려다봐야 된대요 쳐다봐야지 된다. 근데 아래에 글이 쓰여 있는데, 내가 너를 위하여 내 몸을 주었건만 너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 그런 말씀이 써져 있었다. 그 글을 읽고 깜짝 놀랬다. 그리고 앞에 엎드려져 펑펑 울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는데 그래서 당신의 생명을 주시고 나에게 구원을 주셨는데 나는 주님을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 그렇게 울고 마음에 새롭게 결심이 생겼어 이 백작이라고 하는 직위도 내려놓고 재산은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 주고 그리고 복음 전에는 이 일에 뛰어들어서 주님 앞에 충성스럽게 기도하고, 전도하고, 이 일에만 힘을 썼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교당이 이 경건파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육신의 눈이 밝아지고 우리의 영안이 밝아지고 새로워지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늘 바라보는 사람이 되면 그의 영안이 새로워지고 밝아지게 되는 것이다. 또 사람이 세상에서 그림을 보고 글을 읽을 때에도 나쁜 것을 보고, 악한 것과 더러운 것을 자꾸 보고 들으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두어지고, 더러워지기 쉽다. 마음의 생각이 세상을 비판하고 비관하고, 이 세상 인간사이의 희망을 갖지 못하고 좌절하기 쉬운데 그 때에 치료하는 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우리들은 세상의 나쁜 것을 보지 말고 좋은 것을 보아야 우리 마음도 좋아진다. 최고로 좋은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모습을 보아야 한다. 모습을 볼 때에 우리의 영혼이 열리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바로 성경의 핵심이다. 성경의 중심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나에 대해서 증언하는 것이라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그래서 우리가 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거기에 못 박혀 계신 그분이 바로 성경의 중심이시로구나... 이 성경책이 전부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구나...하는 것이 깨달아져 성경을 읽어야 말씀에 깨달음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모르고 성경을 읽으면 글자는 읽는데 무슨 뜻인지 깨달아지지 않고 글자를 많이 읽고 외우니까 성경을 잘한다고 세상 사람들은 박사라고 칭할지도 모르고 아주 대학자라고 높여 줄지는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 영안이 열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 된다. 성경을 보는 눈이 깜깜하고 남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엉뚱하게 가르치고 잘못되게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늘 바라보면서 우리가 새로워져야지만 한다. 주님께서 이 놀라우신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의 눈이 밝아지고 우리 마음이 깨끗해지고, 이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 믿는 모든 성도들은 입술로만 예수님을 찬양하고 믿는 척하고 그러지 말고 진심으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마음의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렇게 그려보고 십자가를 내가 바라보면서 나를 위해서 이렇게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 그분이 되 간 절 누구신가 그분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그분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깨달음을 받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삶이 새로워지고 이렇게 변화 받는 역사가 일어나야지만 되겠다. 하는 것이다.
이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에게 큰 깨우침을 주는 것 정말 귀한 깨우침을 주시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십자가라고 하는 가장 어리석은 방법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런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내셨다고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거 나무에 매달아 죽이는 것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받은 자라 기록되었다. 그건 저주받은 자이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은 극형 중에 최고의 극형 가장 나쁜 그런 형벌인데 예수님이 그런 형벌을 받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는 주님이 왜 십자가에 저렇게 못 박혀 돌아가셔야 되는가 하는 거를 생각하면서 사실은 우리가 이 깨달음을 가져야한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저렇게 죽어야 될 텐데 주님이 나를 대신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게 마음의 깨달아줘야 된단 말이다. 주님이 나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아는 사람이 되고, 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를 구원해 내시는 큰 사랑의 감격 하면서 우리도 나를 주님께 드립니다. 하는 이 아름다운 헌신의 생활이 우리 생 삶 속에 이루어져야지만 되겠다고 하는 것이다. 주님을 늘 바라보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나에게 깨달아지게 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나에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인지를 들을 수 있어야한다.
이 마지막 시대에 예수님 잘 믿으려는 우리가 진짜로 잘 믿는 사람이 되고, 주님의 음성을 늘 들으면서 음성을 따라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부어주시고, 또 이렇게 비디오를 통해서 유튜브를 통해서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 위해 주님께서 크신 은혜를 베푸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되고 주님의 말씀을 깨닫는 사람이 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에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승리하며 살아가고 마귀를 깨트리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밝히 보면서 살면 참 좋겠는데 왜 이것이 오늘 우리들에게는 보이지가 않을까? 의 이유를 보겠다. 첫째, 이유 이 세상에는 내가 보아야 할 것과 급한 것들이 너무 많다. 당장 돈 벌어야 되고, 공부해야 되고, 또 세상 명예 권세를 얻어야 되는 것이다. 모든 목표를 인간들마다 세워놓고 사는데 어떤 사람은 돈 어떤 사람은 권세이다. 오늘날 인간들이 100% 다가 아니라 정말 90% 이상의 인간들이 전부 이렇게 엉뚱한데다가 한눈 팔고 살고 있다. 그러니 예수님이 보일 리가 없다.
둘째는 마음에 악한 것을 생각하고 살고 있고 마음의 헛된 것을 사모하고 살고 있고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문이 열려지지 않는 것이다. 마음의 욕심이 가득하다. 물론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이런 것들도 다 들어있지만 외에도 이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어지러운 욕심들이 많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나의 마음을 가로막아가지고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하게 나아갈수가 없다. 그래서 마음에서 끊임없이 악한 죄가 올라오고 있다.
이런 것이 로마서 1장 끝에도 이렇게 나타나고 우리 성경에 마음에서 마음에 있는 죄 마음에서 나오는 죄 예수님이 이거를 제일 경계하셨다. 마음에서는 뭐든 악한 생각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가 몸으로 짓는 죄보다도 마음으로 짓는 죄가 훨씬 크며 사람마다 마음이 더러워져 있다. 마음이 더러워지니까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은 당연한것이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팔복 가운데 여섯 첫째복 이것이 마태복음 5장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라 내 마음이 더러우므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하는 것이다.
셋째로, 이유는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속이기 때문에 그런다. 하와를 찾아와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 따먹어라 이렇게 충동질하던 사탄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찾아와 똑같이 우리 마음의 거짓말을 가르쳐 하나님 대적하도록 만들고 하나님 말씀은 거짓말이고 자기가 하는 말이 참말이고 자기 말을 들으면 행복이 찾아오고 자기 말을 들으면 이 세상이 다 새롭게 되는 줄로 이렇게 자꾸 가르치니까 사탄의 말에 속아가지고 인간들은 하나님을 대적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밝히 보여야 우리가 유혹을 이어나갈 수가 있다. 우리가 한시라도 여기에서 눈을 떼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헛된 것을 보고 그런 데에 욕심을 품고 그런데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결국 우리의 시간도 재물도 다 마귀에게 빼앗기고 마귀를 위해서 쓰임 받게 되고 우리 인생은 비참하게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의해서 이 진실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 삶이 이루어져야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질 때 우리의 가정이 밝아지고 자녀들이 아름답게 자라나고 이 세상이 새롭게 변하고 내 주변의 악한 친구들은 쫓겨나고 의로운 사람들 좋은 친구들이 모여들어서 나를 돕는 사람이 되고, 여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고 놀라운 복을 날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은혜 안에서 복을 받아 새로워져야지만 한다.
주님 앞에 간절히 은혜를 구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 마음의 깨달음을 주시고 가르치심을 주시고 우리 손목을 잡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일을 이 땅에 펼쳐 나가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찬의 삶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 위에서 내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보혈을 받아 우리 죄를 씻고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 정말 이 땅에서 잠깐 더 사는 동안 천국을 건설해 나가는 이 거룩한 사연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는 일꾼들이 다 되어야한다. 이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31. 우리가 어떤 몸으로 부활할 것인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들은 부활하기를 원합니까? 아이들이 예~ 대답을 했다. 우리가 부활하려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될까요? 라고 질문을 하니 제일 앞에 앉아 있던 아이가 손을 들고 대답을 했다. 선생님 먼저 죽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깜짝 놀랐다. 선생님의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예수님 잘 믿어야 됩니다. 라는 답이 나올 줄 알았다. 교회 빠지지 말고 잘 다녀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이런 대답들도 나올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른 대답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의 말을 듣고 선생님은 큰 쇼크를 받았다.
그래 먼저 죽어야 한다 그래 너 말이 내 대답보다 더 좋다. 그 선생님은 이 아이가 대답할 말 먼저 죽어야 됩니다. 하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생각했다. 과연 뭐가 죽어야 될까? 사람은 육신이 죽으면 부활한다. 그러나 짐승은 죽어봤자 부활이라는 것이 없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이 식물의 씨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거기서 많은 열매가 나온다고 하셨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내 육신에 속한 나쁜 생각, 악한 생각, 더러운 것, 이것이 다 죽어야만 한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 가 오는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라고 요한복음 5:27~28절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28절에는 우리는 다 아담의 죄를 가진 죄인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육신에 속해 있고, 영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육신을 따라서 낳은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그 사람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을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삭은 약속을 따라서 낳은 사람이고 성경을 따라서 낳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교회 처음 나올 때는 다 육신을 따라서 낳은 사람들이다.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다 약속의 말씀이다. 그래서 구약 옛날 약속, 신약 새로운 약속 성경책이 약속의 책이다. 그러므로 약속의 말씀을 듣고 이것을 마음에 새겨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약속을 해주셨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약속에 자손이 되는 것이고, 이삭은 약속을 따라서 낳은 사람이다. 또 이삭은 성경을 따라서 낳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삭은 육신의 소욕대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성경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성령을 따라서 낳은 사람은 생명의 부활을 받을 것이고 불신을 따라서 낳은 사람은 심판의 부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영원히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어가지고 심판의 부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불타올라야한다.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얼마나 뜨겁습니까? 예수님을 제일로 사랑합니까? 항상 나를 살펴서 내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늘 살펴봐야 한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
잠언 4:23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내 마음을 지켜라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아멘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의 생명이 마음에 있다고 하신다. 과연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느냐?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내 마음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사는 내 마음은 아주 정직하다고 한다. 내 마음은 거룩하다고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우리는 내 마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다. 저 깊은 곳에 그 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았다. 가득하게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집에 돌아가려고 그물을 거두어 가려고 하는데 예수님이 배로 오셔서 저 깊은데 가서 그물을 내려라~ 하셨다. 베드로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물을 던졌다. 베드로는 많이 잡힌 고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주님 앞에 와서 무릎을 끊으며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로소이다 라고 고백하였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떠나가시는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는 네가 나를 따라와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는 의인이 아니고 죄인이다. 주님 앞에서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 주님께서 받아주신다. 그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 내 마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깨닫는 사람이 되어 주여 나를 고쳐 주시옵소서. 나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라고 주님 앞에 고백을 할 때 주님은 우리를 받아 주신다.
베드로는 어부를 그만두고 예수님만 따라가며, 말씀에 귀를 기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것을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생의 마지막에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목숨을 바쳐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는 새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우리도 교회에 다니면서 그저 기쁘다. 구주오셨네, 찬송하고, 예수님 부활하셨네. 찬송하는데서 끝나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해야 생명의 부활을 받을까? 이것을 아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늘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생명의 부활이냐? 심판의 부활이냐? 어떤 부활을 받기 원합니까? 우리가 씨를 심는데 육신은 이런 씨가 못된다. 우리가 심는 씨는 우리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심히 부패되어 좋은 씨를 심어봐야 좋은 열매가 나오지 못한다. 씨가 변화를 받아야 한다. 좋은 씨를 심어야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잠깐 사는 이 세상이 우리 속에 있는 씨를 바꿀 수 있는 기회이다. 씨에는 두 가지이다. 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이다. 우리 인간들은 마귀의 씨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태어나서부터 마귀의 자식들이다. 절대로 좋은 일을 할 수가 없고, 이 세상에서 살면서 죄만 많이 짓고 살아간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우리에게 이 부활 생명을 주신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면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우리의 삶이 변화가 되고 마음이 변화가 되어 오직 주님을 따라가는 주님의 백성이 된다. 그러나 세상은 지금 다 마귀를 따라가고 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마귀를 따르는 자가 되지 말라, 육신을 따라서 살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살아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 마지막 주님의 때에 귀하게 쓰임을 받아야 한다.
32. 요나의 표적
본문 : [마12:38-42]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바리새인중 몇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세례 요한도 사람을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이을 더 기다려야 되는 겁니까? 라고 물었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는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을 가서 그대로 전해라고 말씀하셨다. 소경이 본다. 앉은뱅이가 일어난다 문둥이가 깨끗해진다. 귀머거리가 듣는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이거 다 표적이 아닙니까? 이것을 요한에게 가서 전하면 요한은 무슨 뜻인지 깨달아 알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볼 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다 보았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믿지 않았고 또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한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보여줘도 절대로 안 믿는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주 자그마한 것을 보여줘도 다 믿는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 17절과 1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이 따라온다. 저희가 내 이름으로 새 방언을 말하며 귀신을 쫓아낸다. 새 방언을 말한다. 뱀을 집는다.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다. 예수님이 이것도 이렇게 표적을 보여주시면서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마음이 강팍해서 이런 표적을 보면서도 도무지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자들에게도 보여줄 가장 중요한 표적이 하나가 있다고 말씀한다. 그것이 바로 요나의 표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요나는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 있었다. 사람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으면 살 수가 있겠습니까? 도저히 살아날 수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물속에 빠져있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살아날 수가 있겠습니까?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겠습니까? 사흘 동안이면 먹을 것도 아무것도 없었고,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목마른 건 또 어떻게 참겠습니까? 사실상 요나는 세상 적으로 우리가 생각 할 때에는 죽은 거나 마찬 가지이다. 그런데 죽지 않았다. 요나는 물고기에 뱃속에 들어가서 창자를 쥐어잡고 쥐어뜯으면서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고 소리 지르고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당장 죽을 지경이지만 이 물고기도 더 견딜 수가 없어 물고기가 바닷속에서 뒹굴면서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나중에는 물 위로 떠올라 요나를 뱉어 버렸다. 그러므로 요나가 사흘 동안이나 물고기 뱃속에 들어있다가 살아 난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하시기를 나도 땅속에 사흘 동안 밤낮 사흘 동안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근데 들어가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서 다시 살아나올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실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예수님에게 많은 표적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표적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죽었던 사람 세 명을 살려내신 일이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살려줬어도 다시 죽었다. 근데 예수님의 부활은 그런 부활하고 똑같은 게 아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셨다. 문을 꼭꼭 닫아 놓아도 여기 얼마든지 들어오실 수가 있고, 아무리 닫아도 또 마음대로 바깥으로 나가실 수 있다. 사람의 눈에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몸이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다시는 죽을 수가 없는 몸이며, 이 땅에도 하늘에도 마음대로 왕래하실 수가 있다.
예수님은 이런 부활을 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부활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그런 부활이 아니고 죽었다가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는 그런 부활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부활절 예배를 기념하는 것은 우리도 다시 다 예수님처럼 그런 몸으로 살아난다고 하는 것을 믿기 때문이고, 장차 지옥에 들어갈 사람들이 아니고 모두가 부활해서 천국에 갈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예수님 잘 섬기다가 주님 앞에 올라가야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한 명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말았다. 그리고 자살을 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 잘 섬기고 복음전하다가 순교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은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부활의 소망을 가지게 되면 우리에게는 절망이라고 하는 것이 없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이겨내며 원수들이 우리를 죽여도 우리는 다시 살아난다. 이러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이다.
요나의 표적이란 말에 첫째, 뜻은 이렇게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이런 뜻이다. 둘째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요나는 원래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걸 싫어했다. 가서 내가 회개하라! 그러고 외쳤다가 사람들이 진짜로 회개하면 어떡해요? 저 사람들은 회개하지 말고 내 말을 듣지 않다가 다 지옥에 가야 되는 사람들인데 만약에 회개해서 구원받으면 어떡하겠습니까? 하며 요나는 하나님, 나는 저 사람들 구원받는 거 원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입니다. 지옥에 가야 됩니다. 그러니 나는 저기 가기 싫습니다. 하며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간다.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서 결국 바닷속에 던져졌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죽지를 않는다. 하나님이 거기서 살려내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명령하신다. 니느웨로 다시 가라. 가서 외쳐라! 이제는 거역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힘 있게 가서 외쳤을까요? 그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외쳤을까요? 무슨 일이든지 내가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해야 되는데 하기 싫은 거를 억지로 하였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그 백성들이 왕부터 회개했고 백성들에게 다 회개하라고 하였으며 굵은 베옷을 입으라고 하였고 금식하라고 했다.
어린애들까지도 다 금식해라. 너희 집에서 기르는 짐승도 다 금식해라. 애들한테는 밥 안 먹이면 되지만 짐승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근데 왕이 명령을 내렸다. 백성들이 왕의 명령을 받아 순종하여 다 회개하고 금식했다. 그 성 안에 큰 회개가 일어났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 성에 내리시기로 작정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고 이들을 다 구원해내셨다.
지금 이 세상에는 온갖 재앙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이건 시작에 불과하며 아무것도 아니다. 성경에는 이 마지막 때 무서운 재앙이 이 지구상에 가득해질 것을 예언하고 이 땅에 죄악이 관용해지니까 하나님의 재앙도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니느웨의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면 된다. 하나님은 회개하라고 명령하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추악한 죄악들을 진심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지은 죄는 저 사람도 지은 죄야. 저 사람은 나보다도 더 큰 죄를 지었어, 하며 도대체 내가 회개할 게 뭐야? 하는 생각들도 할 수 있지만 성경에서 우리에게 깨달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뭐 살인을 했다. 도둑질을 했다. 간음했다. 물론 이것도 다 죄이다. 그러나 사실은 진짜로 큰 죄는 하나님을 모르는 죄,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죄,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내가 하나님보다도 더 잘났다고 하며, 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내가 근본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나는 죄인으로 태어났다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요나의 표적 셋째가 또 하나 더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마지막 날 심판 때에 니느웨의 백성들이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들을 때에는 굉장히 기분 나쁜 말 이였다. 저 이방인인 니느웨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이 세대 사람들, 유대인들을 심판할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유태인들만 기분 나쁜 게 아니고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각해 봐도 이건 기분 나쁜 말이다. 그때는 아직 예수님이 오시기도 전인데, 그 사람들은 예수님도 안 믿었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부활해 가지고 이 세대 사람들을 심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들이 장차 이 세대 사람들을 심판할 것이다. 철저히 회개한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정죄하고 심판하게 된다고 말씀하다. 요나 시대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저들이 예수님이 오신 것을 알고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옛날 니느웨 사람들도 저들을 심판할 수 있는 이런 심판관이 된다고 하셨는데 하물며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잘 섬기면 얼마나 귀한 사람들이 되겠습니까? 부활절은 예수님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고 기뻐하고 축하하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받아야 되고 영원한 생명을 받아야 마귀를 이겨낼 수 있고 죄악을 이 길수도 있으며 사망권세를 이겨낼 수 있다. 우리들은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