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山日記-‘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이라고 했는데...
올 한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擧世皆濁’이 뽑혔다는 보도다. 교수신문이 전국대학교수 626명에게 물어 선정했다고 한다.(25일자 중앙일보 ‘분수대’). 하필 성탄절 아침에 ‘세상이 온통 더럽다’는 문구를 접하니 좀 찜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교수 제위의 고견을 틀렸다고 하기도 어렵다.
나 역시 ‘글 써 먹고 사는’ 입장이라서 이런저런 매체에 써 올린 졸문을 통해 ‘擧世皆濁’를 개탄하면서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이 땅의 미래를 걱정했다고 삼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평생해온 직업적 행위일 뿐이다. 이른바 古稀를 맞은 올 한 해 동안 내 의식에서 떠나지 않은 혼자만의 話頭는 바로 ‘늙음’이었다고 고백해야겠다.
나에게 늙음을 새삼 생각토록 한 계기는 올 봄에 상영된 영화 ‘은교’ 관람이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우리와 같은 세대인 70세의 노시인. 그는 자기 집에 기숙하는 제자의 문학상 수상 축하연설에서 무거운 말투로 토로한다. “젊음이 네가 잘 한 것에 대한 賞이 아니듯이 늙음도 내 잘못에 대한 罰이 아니다”.
영화와 원작소설은 노시인이 자기 집에 우연히 드나들게 된 17세의 여고생을 환상처럼 사랑하는 과정을 기둥 줄거리로 한다. 자신이 처음으로 써 보관하고 있던 소설을 훔쳐 발표한 제자가 그 작품으로 문학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축하연설을 통해 ‘늙음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로 제자에 대한 분노와 용서의 감정을 여과시켜 표현한 노시인의 '아픔'에 많은 관객이 공감했던 것일까.(영화 은교는 흥행에 상당히 성공했다.)
영화 관람 이후 줄곧 나는 내 늙음을 스스로 위로했다. 그렇구나! 내 흰 머릿결(염색했지만..), 주름살 그리고 무기력...이 모든 것이 나에 대한 벌은 결코 아니구나! 이룬 것 없는 내 지난 삶은 응징 받아야 할 정도로 과오의 연속은 아니었구나!!!ㅋㅋ.
어쩌면 누구나 이성으로 이해하고 감성으로 느끼는 사실이나 현상도 문장으로 명료하게 정리될 때 ‘진리’로 다가오는 경우가 흔하다. 영화 은교 속 노시인의 말이 그런 경우다. 은교 관람 후 늙음에 대한 내 느낌이 그러했는데 해를 마감하는 시점인 며칠 전, 젊음과 늙음을 대비해서 언어로 정리된 한 또 하나의 ‘진리’를 접했다. 56회 송년회 자리에서였다.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이다.”-(Beautiful young people are accidents of nature, But beautiful old people are works of art). 56회 동기회 새 회장을 수임한 김인호 동문이 ‘취임사’의 말미에 우리들의 늙음에 대해 말하면서 소개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영부인 에리나 여사의 어록 중 하나다. 김 동문이 내 요청에 따라 고맙게도 e메일로 원문과 함께 보내 준 이 어록을 찬찬히 읽고 나서 나는 영화 은교 속 노시인의 말뜻과는 다른 측면에서 요 며칠 이런 저런 상념에 젖었다.
아름다운 노년이 예술작품이라는 건 참으로 卓見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노년은 아름다워 질수 있는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건강·재화·마누라·친구·취미(혹은 일) 등등을 갖추면 아름다운 노년? 그것들은 실제로 ‘노년행복’의 요건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들만으로 예술작품으로서의 노년까지 성취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노년행복의 그 외형적 조건들이 충족되는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예술작품으로서의 노년은, 그 이전 수 십 년에 걸친 인생경영을 도외시하고는 만들어지기 어려울 터인데다 늙은 우리의 마음까지도 상당한 경지로까지 淨化시킴으로써 얻어질 것인데 그게 가능할까. 종교가 주창하는 믿음과 나눔과 사랑까지? 아름다운 노년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기까지 가야 할 텐데- 진정으로 나는 그만한 인간적 그릇일까.
성탄일인 오늘만은 아내의 ‘강요’를 물리칠 수 없어 저녁 6시 미사에 함께 참석했다. 성당에 가기 전까지 기도의 한구절도 마음속에 예비하지 않았지만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어쩔수 없이 기도 흉내는 냈다. 뭘 기원했느냐구? 늙음에 관해서였다. "제 몸 비록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계속 젊음을 유지하도록 도와 주십시요. 최소한도나마의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주십시요"- 이런 정도의 소망도 결국 이기적 祈福일까.
<*덧붙임: 이 놈의 추운 날씨 때문에 하루 종일 ‘방콕’하면서 떠올린 잡상을 두서없이 타자했습니다. 말하자면 한가한 개인적 생각일 뿐입니다.-뒷메 謹上>
첫댓글 흠.. 좋은 말씀이기는 한데...
예술작품이 모두 아름다워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름답다는 기준도 잘 모르겠고.
예술작품의 美醜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이지요..개인의 자기인생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자 아닐까요.
세속적 성공이거나 패배이거나 간에 관계없이....
노년을 예술작품까지 승화 시킬 자신이나 능력이 없을진데
지금은 아름다운 노년으로 남기라도 했으면 좋겠구만......
내 짐작으로는, 고미현님의 경우 충분히 아름다운 노년을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 . . 그저 추하게 늙지 않았으면 하고 노력하며 살고 있었는데, 노년은 예술작품이라고 하시니, 뭐라고 해야 할지 ... ?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좀 어렵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accidents of nature"를 "우연한 자연현상"이라고 아름답게 번역한 것이 과연 원문 전체의 맥락에 맞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네요.
'예술'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니, 노인을 예술작품이라고 칭한다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닌 듯 하오.
아름다운 노인이나 추한 거지나 모두 하나님(또는 하느님, 부처님 등)과 자신과 사회가 공동 제작한 '살아있는 예술작품'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