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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송년?신년에 읽는 명시 몇 편
ysoo 추천 0 조회 54 15.12.28 16: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송년?신년에 읽는 명시 몇 편

 

김재홍?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1. 겨울 바다에서 마음을 정리하다

 

연말이 다가올 무렵이면 문득 겨울 바다로 떠나가고 싶습니다. 육지의 끝이면서 바다가 시작되는 경계선, 겨울 바닷가를 거닐면서 묵은 한 해를 정리하고 새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번 세밑의 번잡한 일상사를 떨쳐 버리고 겨울 바다로 시의 여행을 떠나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보았지

忍苦의 물이

水深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김남조「겨울 바다」

 

 

이 시 ?겨울 바다?는 그 핵심이 물과 불의 긴장력 또는 부정과 긍정의 변증법에 놓여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삶이란, 사랑이란 바로 그처럼 불과 같이 뜨거운 열정과 물과 같이 차가운 냉정이 무시로 교차되고 반복되는 것이 아닌지요? 생성과 소멸, 이성과 감성, 정염과 허무, 육신과 정신, 신성과 세속, 희망과 낙망의 대립 또는 화해 속에서 전개되어 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대립과 화해란 ‘새들은 죽고 없었네/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와 같은 부정의 인식으로부터 시작되어 ‘허무의/불/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와 같은 격심한 갈등을 겪고, 마침내 ‘나를 가르치는 건/언제나/시간……/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처럼 깨달음 또는 긍정의 모티브를 마련해 가게 되는 모습이라고 할 겁니다.

 

이렇게 보면 이 시 ?겨울 바다?의 의미는 자명해질 겁니다. 그것은 좌절과 절망 끝에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대립적인 것의 경계선 바닷가에서, 스스로 참회와 정죄를 겪으면서 새롭게 자기 극복과 부활을 성취해 가는 안타까운 통과 제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겨울 바다는 뉘우침과 속죄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부활과 재생의 장소라고 하겠지요.

실상 우리는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잃을 수 있기에 얻을 수 있는 것이며, 헤어질 수 있기에 새롭게 만날 수 있고, 또한 죽어 가는 사람이 있기에 새로운 아가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자명한 이치이겠지요.

 

바로 이 점에서 이 시는 겨울이라는 묵은해와 새해의 교차점에서 또 바닷가라는 공간적 경계선에서 삶의 거듭 태어남 또는 사랑의 거듭남을 ?겨울 바다?라고 하는 부활의 동굴, 또는 無의 통과 과정을 통해서 성취해 가게 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어디 가까운 바닷가라도 가서 묵은 한 해를 털어 버리고 새해맞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크리스마스를 뜻있게 보내며

 

즐거운 성탄절 무렵, 우리 이웃의 가난한 아이들, 길 잃고 방황하는 어린양으로서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기쁨을 함께 더하면 어떻겠습니까? 그야말로 한해를 보내는 보람과 의미가 새로워질 수 있지 않을는지요.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 김종삼「북 치는 소년」

 

 

한 해를 보내면서 떠올리는 또 한 편의 시는 바로 이 ?북 치는 소년?입니다. 그런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세모의 거리에서 ‘북 치는 소년’의 라빰빰빰 북치며 부르는 캐럴송 말입니다.

 

그런데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라뇨? 삼라만상 모든 게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되기 마련인데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술 세계에서 특히 시에서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형식만으로도, 꾸밈새 또는 표현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삶에 있어, 존재에 있어 꼭 내용이나 주제가 크고 무거워야 그것이 의미가 깊고 가치가 큰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려울 겁니다. 이름 모를 산모롱이에 쓸쓸히 피어 있는 단순 소박한 들꽃 하나가 오히려 깊고 아름다운 울림을 줄 수 있듯이 우리네 삶에 있어서도 착한 눈망울의 어린 아이 하나, 또는 작은 진실 하나가 때로 진한 마음의 울림을 던져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살이에서 너무 거대 담론, 큰 것들, 무거운 주제들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기에 때로는 작은 진실, 소박한 표현 하나에서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시가 그렇지요. 한 해가 기울어 가고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날 즈음이면 무언가 무거운 것들을 훌훌 떨치고 가볍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가난한 아희에게 온/서양 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 하나가 가난한 소년에겐 큰 기쁨과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선물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 색깔 고운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 받고서도 밤새 설레고 기쁘던 그 추억이 생각나는 것이지요. 그러노라면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진눈깨비’의 눈 내리는 모습 속에서 살아 있음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찡하게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난한 소년과 어린양의 여리고 슬픈 모습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살아 있음의 고마움, 그리고 작은 진실의 아름다움을 애잔하게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3. 송년에 참회록을 쓰다

 

제야, 종소리 속에 촛불이 찌르르 녹아내리면서 한 해가 저물어 가면 우리는 깊은 후회와 함께 부끄러움으로 뒤채이게 됩니다. 특히 추위 속에서 고생하는 병사들이나 밤바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떨며 일하는 어부들, 고통 받는 분들을 생각하노라면 수심마저 깊어지게 마련이지요.

이국땅에서 태어나 평생 객지를 떠돌다가 스물여덟 아까운 나이로 작고한 윤동주의 순결한 영혼과 그의 맑은 시들을 떠올리노라면 새삼 제가 얼마나 때 묻은 인간이고 참회해야 할 사람인가 또, 세상에 겸허해지고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절감하곤 합니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王朝의 遺物 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懺悔의 글을 한 줄에 주리자

―― 滿二十四年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웨 그런 부끄런 告白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그러면 어느 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윤동주「참회록」

 

 

그렇습니다. 육체의 길, 죄의 길은 지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길이기에 죄와 속죄, 참회는 인간의 몫이자 사람에게 있어 운명의 길에 해당합니다. 육체를 지니기에 욕망을 갖게 되고 그래서 죄업을 쌓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지요. 따라서 늘 속죄하고 참회하는 가운데 인간은 거듭나고, 새로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또 그러기에 神의 음성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윤동주는 늘 자신을 반성하면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보자’ 다짐하는 가운데 새롭게 부활하고 새 생명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한 생애는 욕망을 덜어 내는 일이고 스스로 죄를 씻는 일이며, 그렇게 해서 영혼이 맑아지고 정신이 자유로워지는 길을 가는 일입니다.

 

윤동주의 한 생애가 비록 불우와 외로움 속에 사라져 갔다 해도 그가 보여 준 맑은 영혼과 고귀한 정신에의 지향과 갈망은 어두운 시대일수록 오래도록 우리의 문학사, 한국인의 정신사에 살아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4. 눈 내리는 고향 들길에 서서 길을 찾다

 

눈물의 시인 박용래(朴龍來)를 기억하시는지요. 요즘 같은 기계 문명과 자본주의의 홍수 시대, 거칠고 소란한 세상에는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지만요, 그렇기에 더욱 그립고 소중하게 생각되는 시인이랍니다. 그야말로 토종 한국인이고, 진짜 서정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저 말고도 많으실 겁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분 댁에서 한두 번 만났을 뿐이었지만요, 만나자마자 덥석 손을 잡으시고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으시는 게 아니었겠습니까? 무명 평론가를 그리도 따뜻하게 손잡아 주시던 그 선량하고 순수한 마음이 지금도 마음에 찡하게 다가옵니다.

 

아마도 그러할 겁니다. 시와 인간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분이 세상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의 시에는 그만큼 인간의 본원적인 마음의 형태인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고, 슬프면서도 따뜻한 영혼이 애잔하게 스며들어 있는 듯싶습니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마늘 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박용래 「겨울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 터만 다니며 붐비다.

 

― 박용래 「저녁 눈」

 

 

그의 시에는 유난히도 ‘겨울?저녁?노을?밤’과 같은 쓸쓸한 시간 배경과 ‘가랑잎?눈발?달빛?들풀?잡목 숲’ 등의 소박한 전원 심상, 그리고 ‘운다/떨어지다/사라지다/뉘우치다/묻히다’ 등과 같은 하강 시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언젠가 제가 ‘전원 상징과 낙하의 상상력’이라고 불러 본 적도 있습니다만, 그의 시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와 애수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연이 지닌 본원적 모습으로서의 적막감과 인간의 영혼 깊이 자리한 생래적인 외로움에 대한 탄식이며 슬픔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시에서 ‘눈발은/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변두리 빈 터만 다니며 붐비다’와 같이 생명 감각을 일깨워 주는 서정적인 소재와 리듬 의식의 섬세한 결합은 한국적 서정의 한 본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올겨울에는 가까운 교외의 들길 또는 어디 먼 고향 집에라도 훌쩍 떠나가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과 생명력을 찾아보시면 어떻습니까.

 

 

5. 눈 내리는 밤, 흰 당나귀를 그리워하며

 

우리 현대 시사에서 북방 정서를 잘 형상화해 낸 분들이 몇 분 계시지요. 함북 경성에서 두만강 주변의 정경을 잘 그려 준 김동환 시인과 이용악 시인을 꼽을 수 있을 것이고요.

평안도 지역 정서는 소월과 백석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이 두 분은 평안 방언과 그 지역 사람들의 질박한 생명력에 바탕을 둔 북방 정서를 잘 드러내면서 우리 민족 문학의 문학적 자산을 풍요롭게 해 준 데서 그 문학사적 의미가 드러납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횐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눈 내리는 겨울 압록강, 두만강 등 국경 지방의 이국적 풍정을 바탕으로 연애 감정과 함께 소외 감정, 즉 세상과의 단절과 불화 의식을 잘 드러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끊임없이 눈은 내리고, 내려서 쌓이면서 지향 없는 마음의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그런 밤에는 쓸쓸히 혼자서 소주를 마시면서 나타샤, 그리운 이를 더욱 그리워하면서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처럼 어디론가 연인과 함께 떠나가고 싶은 것입니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라는 구절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외와 낙백한 심사를 스스로 달래고 위무하기에 이 시는 백석의 인생관을 잘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그것이지요.

1930년대 후반 서울이 상징하는 권위적인 식민지적 생활 방식 또는 세속적인 삶에 환멸을 느끼고 신문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면서까지 만주로 어디로 떠돌면서 젊은 날을 보낸 백석 시인의 유랑인의 기질, 자유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백석 시인처럼,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마을에서, 그렇게 한세상 외롭고 고단하지만 오히려 자유로이 낭만적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건 비단 저뿐만은 아니겠지요?

 

 

6. 새해 아침 겨울 산을 오르다

 

새해 겨울이 깊어 가면 저는 한 번씩 근교의 산을 찾아 오르면서 조정권의 시 ?산정 묘지?를 읊조리곤 합니다. 눈에 덮인 서울 성곽 길이나 스카이웨이 또는 북한산이나 관악산 또는 수락산이나 소요산을 혼자 오르노라면 찬바람 속에서 삶이란 결국 나 혼자 가는 길이고,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이며, 최후의 적도 바로 나 자신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삶이란 갈수록 쓸쓸한 것이고 허무감을 느끼기 마련이라는 사실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天上의 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 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 주리.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울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 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관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산정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보라,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허나 하늘은 허공에 바쳐진 무수한 가슴.

무수한 가슴들이 소거(消去)된 허공으로,

무수한 손목들이 촛불을 받치면서

빛의 축복이 쌓인 나목(裸木)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가.

정결한 씨앗을 품은 불꽃을

천상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도취의 시간을 꿈꾸지 않았는가.

나의 시간은 오히려 눈부신 성숙의 무게로 인해

침잠하며 하강하지 않았는가.

밤이여 이제 출동 명령을 내리라.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나의 핏줄을 나의 뼈를

점령하라, 압도하라,

관통하라.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은 존재의 處所에 뿌려진 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던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 조정권 「山頂墓地?1」

 

 

그렇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 우리는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얼음처럼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삼 ‘가장 높은 정신은/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평범한 진실을 깨치게 됩니다. 그러기에 알피니스트들이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 산정에 오르는 것이고, 예술가들이 혼의 울음 속에서 저 높고 깊은 절대의 소리, 神의 음성을 드러내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또 깨닫습니다. 겨울 산을 오르는 고심참담 역경과 고난 속에서 절망이 바로 삶에 있어 슬픔의 힘과 희망을 줄 수 있는 ?生木의 향기?라는 것을……. 그리고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과 같이 높고 깊은 진리를 깨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혜로운 선인들은 산을 오르면서 삶을 깨닫고 자신을 극복하면서 정신의 고양과 구원을 향해 나아가려 노력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산정 묘지’란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산정’이란 산꼭대기, 즉 지상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기에 그곳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하늘이 시작되는 곳이지요. 그만큼 춥고 적막한 곳입니다.

그런가 하면 ‘묘지’란 죽음, 즉 지상에서 영원으로 옮겨 가는 지상의 끝이면서 죽음 세계의 시작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이자 통로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조정권의 ‘산정 묘지’란 바로 김남조의 ‘겨울 바다’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세계가 끝나면서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경계선이자 출발점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끝과 시작, 소멸과 생성, 죽음과 부활, 절망과 희망이 서로 얼크러들면서 새 출발을 다짐한다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세모와 새해에는 겨울 바다를 산책해 보시거나 겨울 산을 올라 보시면서 지난 한 해 묵은 삶을 정리하고 새해 새 마음으로 겨울 출발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국어생활 제17권 제4호(2007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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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잠산

 

 

저녁눈 /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1925~1980) 시인은 과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말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기워 시를 써냈다. 그의 시는 가난한 것과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세필(細筆)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돌보았다.

'저녁눈'을 읽으면 허름한 말집(추녀를 사방으로 삥 두른 집)에 앉아 '탁배기'를 한 잔 하고 있는 박용래 시인이 보이는 듯하다.

 

말집에는 마차꾼과 지게꾼이 흥성흥성하고,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온 나귀와 노새가 급한 숨을 내쉬느라 투루루 투레질을 하고, 누군가는 구유에 내놓을 여물을 써느라 작두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는 떨어지고 추운 밤은 오는데 눈발은 삭풍에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호롱불 불빛을 받으며 떠도는 눈발을, 조랑말의 정처 없는 걸음처럼 난분분한 눈발을, 여물 써는 소리처럼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에서 '붐비다'라고 써서 목탄화처럼 평면적인 풍경에 동선(動線)을 끌어넣는가 하면, 한 곳 한 곳 짚어가던 시선을 들어 올려 퀭한 빈터로 옮김으로써 시의 공간을 일순에 넓게 확장하는 재주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물러나 앉아 늦은 저녁 눈발 내리는 그 풍경을 하나의 '공터'로 읽었을 것이다. 마차꾼과 지게꾼의 떠도는 삶과 내일이면 또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네들의 노심초사와 나귀와 노새의 공복(空腹)을 읽었을 것이다.

박용래 시인은 술판에서 엉엉 잘 울던 마음 여린 시인이었다. 천진하게 잘 울어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용래 시인과 절친했던 소설가 이문구는 '박용래 약전(略傳)'이라는 글에서 박용래 시인의 잦은 눈물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박용래 시인이 생전에 살았던 대전시 오류동 17번지의 15호를 찾아가면 "감새/ 감꽃 속에 살아라"라고 노래했던 선한 그가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다시 살고 있을까.

 

문태준/시인

 

 

 

시락죽 / 박용래

 

바닥난 통파

움속의 降雪(강설)

꼭두새벽부터

降雪을 쓸고

동짓날

시락죽이나

끓이며

휘젓고 있을

귀뿌리 가린

후살이의

木手巾(목수건)

 

 

 

 

 

손거울 / 박용래(1925~80)

 

어머니 젊었을 때

눈썹 그리며 아끼던

때까치 사뿐이 배추 이랑에

내릴 때 ―

감 떨어지면

친정(親庭)집 달 보러 갈거나

손거울

 

 

도시 사람의 정서가 육식성인 데 반해 농경민의 피와 살로 육화된 정서는 여리고 순정적인 초식성이다.

박용래의 시는 “꼭두새벽부터 강설(降雪)을 쓸고 동짓날 시락죽이나 끓이며”(‘시락죽’) 사는 농경민의 식물성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손거울’은 시인의 식물성이 숨길 데 없이 드러난 군더더기 한 점 없이 깨끗한 시다. 식물성의 존재에게 해보다는 달이 더 잘 어울린다. 스스로 빛을 못 내지만 남의 빛을 반사한다는 점에서 달과 손거울은 하나다. 이 시의 영리함은 달과 손거울이 서로의 자리를 슬쩍 바꾸는 데 있다.

어머니 젊었을 때 눈썹 그리며 아끼던 것은 손거울, 감 떨어질 무렵 친정집 가서 보려는 것은 달! 시인은 이것을 능청스럽게 뒤바꿔놓는다. 하늘엔 손거울, 땅엔 달!

 

<장석주·시인>

 

 

 

정한(情恨)의 시인 박용래

 

그는 가히 눈물의 시인이라 할 정도로 많이 울었다 한다.

김수영시인의 슬픔에 찬 쾡한 눈이 자꾸 어른거렸으나 울고 있는 그를 먼저 달래고 싶었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초야에 묻혀 스스로를 다듬으며 살았던 그에게 무슨 서러움이 그리도 많았을까

 

그는 모든 아름다운 것,갸륵한 것,소박하고 조촐한 것,갓 태어난 것,저절로 묵은 것...그러기에 그는 한떨기 풀꽃,시래기 삶는 냄새,뒷간 지붕 위 호박넝쿨,심지어 찔레덤불에 낀 진딧물까지 온갖 생령에서 천체의 흔적까지 사랑스러운 것들은 모두 그의 눈물의 근원이었다.

이쯤되면 그가 당시 명문이던 강경상고 대표 정구선수요, 뭇 여학생들의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전교생을 구령 한마디로 호령하던 대대장이었다는 것이 실감이 안난다.

 

고은 시인의 시에서도 그의 눈물바람은 볼수 있는데

 

 

"술먹은 박용래가/

대전 유성온천 냇둑/

술 먹은 고은에게 물었다/

은이 자네는/

저 냇물이 다 술이기를 바라지? 공연히 호방하지/

나는 안 그려/

나는 저 냇물이 그냥 냇물이기를 바라고/

술이 그냥 술이기를 바라네//

 

고은이 킬킬 웃어대며/

냇물에 돌 한 개를 던졌다/

물은 말이 없고/

그 대신 냇둑의 새가/

화를 내며 날아갔다/

박용래가 울었다 안주 없이 먹은 술을 토했다/

괜히 새를 쫓았다고 화를 냈다//

 

은이는 나뻐/

은이는 나뻐//

 

박용래가 울었다 고은은 앞서가며 울지 않았다"

 

-고은의 시 '어느날 박용래' 전문

 

 

편히 쉬고 있을 새를 괜히 겁주어 쫓았다고 화를 내며 울고있는 시인과 그것이 무슨 대수냐 앞서서 씩씩하게 걷고 있는 고은 시인의 모습이 대비된다.이렇듯 그는 한갓 미물도 그냥 흘리지 않고 맘을 쏟고 있었으니 울 일이 지천이었으리라.

 

그는 같은 시대 시인들에게서 보인 나라 잃은 설움이나 분단의 아픔,거친 목소리로 외치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아닌 서민적 애환과 토속적인 정서의 현장인 황토에 삶의 뿌리를 대고 있다.

한때 그는 썰렁한 하숙방 벽 한 켠에 짚으로 쫌쫌히 삼은 씨오쟁이(종자 망태기)를 걸어두고 그 속에다 수수·조이삭,볏모개,옥수수,이팥,새알콩,호박씨,분꽃씨까지 넣어두고 살았다 한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은 토속적인 것,흐려져 가는 것들인 우렁껍질,둠벙,잉앗대,쇠죽가마,목침,깻단,놋대야,횟대,돌절구,개비름,얼레빗,골무,지풀,박고지,솔가리,빨래터등 자칫 누추하고 초라해 보일 수 있는 것들을 택해 깔끔하고도 간결한 시어로 노래했다.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그와 시단에 함께 등단한 친구 임강빈은

 

"그는 조각하듯이 시를 썼다 낱말 하나하나에 대한 정성은 비길 데가 없었다. 한 자 한 획도 소홀히 다룬 적이 없고 누구보다 미의식이 강했다 행간마다 무수한 침묵의 공간미를 깔아놓았고 따라서 그의 시는 한결같이 응축 돼 있고 대담한 생략으로 짧은 시형을 택했다"고 표현했다.

침묵의 공간미,응축된 의미들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성긴 그물로 던져도 걸려 올라오는 시들은 가득했다.

 

 

"한때 나는 한 봉지 솜과자였다가/

한때 나는 한 봉지 붕어빵였다가/

한때 나는 좌판에 던져진 햇살였다가/

먼 먼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오류동 동전"

 

-'오류동 동전'전문

 

유고시이기도 한 이 시는 그의 자화상으로 봐도 무방하리라.그는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고,후에는 교사로 여러 학교를 전전하지만 오래 적을 두지는 못한다.보다 못한 아내가 다시 간호사 일로 생계를 맡고 그는 오류동에 마련한 버섯만한 초가집에서 다섯아이를 토실토실 키워낸다.

짖굳은 지인들로부터 애보개라고 놀림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미술적 재능을 물려받은 둘째딸의 사철 물감 묻은 옷을 주물러 빨고,학교서 오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 먹이는 일을 무엇보다 보람으로 여기고 살았다.

일하러 간 아내를 대신해 살림을 하며 삶의 안정을 ?던 곳이었고, 스스로 '청시사'라 이름짓고 많은 사람들과 술 잔을 기울이며 교재하던 곳이었다.

 

 

"바람처럼 앉아 아무데도 발을 디딜랴 하지 않았다.더 더 더 좀 크고 싶었던 소망이/

어쩌다 물 속에 태어나 한 치 풀꽃으로 자라 머리올처럼 가는 물거품에 뜨다"

- '수중화'전문

 

 

어디에도 발을 디딜랴 하지 않은 가는 뿌리들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았을까 안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그의 시선이 고마워 풀꽃은 바람에 불려온 지풀 한오라기 부여잡고 끝끝내 꽃 피워 올렸을까

 

 

"눌더러 물어볼까 나는 슬프냐 장닭 꼬리 날리는 하얀 봄길 여기사 부여,고향이란다 나는 정말 슬프냐"

- '고향'전문

 

 

"잠 이루지 못한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한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겨울밤'전문

 

나는 슬프다가 아니라 슬프냐 하니 더 슬프고 나는 눈 내리는 밤 잠을 못 이루어도 고향집은 이곳저곳 불려다니는 바람조차도 잠을 잘 것이다라는 단정이 짢하다.'겨울밤'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서울서 출판사 편집일을 하던 스물여덟살 때 쓴 시이다.

 

 

"눈보라 휘돌아 간 밤/

얼룩진 벽에/

한참이나 /

맷돌 가는 소리/

고산식물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돌리시던/

오리오리/

맷돌 가는 소리"

 

 -'설야'전문

 

 

"바닥난 동파/움 속의 강설/꼭두새벽부터/강설을 쓸고/동짓날/시락죽이나/끓이며/휘젓고 있을/귀뿌리 가린/후살이의/목수건"

- '시락죽'전문

 

 

"전략/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우를 깍기도 하고 고구마를 깍다,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내리는 짚단,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숨을 죽이고 생각합니다/후략"

-'월훈'부분

 

얼룩진 벽,흔들리는 호롱불 아래서 늙은 어머니가 메밀을 가는지 콩을 가는지 맷돌가는 소리 오리오리 들리고,귀뿌리를 가린 채 동짓날 팥죽 대신 시락죽이나 휘젓고 있는 모습과 긴 밤 홀로 잠이 깬 노인의 행동들은 삶의 애환이 겨울 정취와 잘 어우러지는 시들이다.서민들의 창백한 삶,그 눈물겨운 것들을 다독이는 그의 성품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가 열다섯살 나던 해 초산의 산고 끝에 죽은 홍래누이에 대한 얘기를 빠뜨릴 수 없다.늦둥이로 태어난 그가 바쁘고 연로한 부모 대신 바로 위 누이를 얼마나 따랐을지 짐작이 간다.

훗날 시의 씨앗을 받게되는 채운산과 놀뫼나루,온 논티(논산)들녘을 함께 누볐을 누이.유년시절 내내 입히고 먹이고 씻겨 함께 누워 잠재우던 이가 이 세상에 없어졌다는 허전함은 그가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누이가 시집 간 강 건너 마을,이미 죽고 없어진 지가 오래인 그곳을 바라보기 위해 홀로 옥녀봉에 오르곤 했었다는 말에 절절히 묻어난다.

 

 

"볏가리 하나하나 걷힌/

논두렁/

남은 발자국에/

딩구는/

우렁껍질/

수레바퀴에 끼는 살얼음/

바닥에 지는 햇무리의/

하관/

선상에서 운다/

첫 기러기떼"

 

-'하관'전문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 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 '구절초'

 

 

"오동(梧桐)꽃 우러르면 노(怒)한 일 뉘우쳐진다.

잊었던 무덤 생각난다.

검정 치마,흰 저고리,옆가르마,젊어 죽은 홍래(鴻來) 누이 생각도 난다.

오동(梧桐)꽃 우러르면 당장에 떠는  아슴한 대낮.

발등에 지는 더디고 느린 원뢰(遠雷)."

 

 -'담장"

 

 

이 외에도 누이에 대한 애닯은 맘은 여러 시편에 스며있다.

 

'박용래약전'을 쓴 이문구 시인은 그를 "아무런 허위의식 없이 생긴 그대로 순진무구하게 살아가는 대인,스스로 분수를 가늠하여 삶의 줏대로 삼고 타고난 숨이 다하면 하릴없이 자리를 뜨되,일생을 지녀온 고운 얼까지도 남에게 물려주고 가던 대인"이었다고 회고하며 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오지않을 하나 뿐인 정한의 시인이라 했다.

 

"이제 만나질 시간 없으니/

헤어질 장소인들 있으랴/

중략/

만나면 어깨부터 툭 치던/

손/

마실수록 아쉬워하던 석별의/

잔/

중략/

오늘은 널 위해 슬픈 잔을/

던지누나/

(반잔만 비운 나머지..)/

쨍그렁 울리는 저승바닥"

 

- '반 잔(고 현웅형에게)'부분

 

 

평소 술 좋아했다는 그에게 나도 술 한 잔 가득 올리고 싶어진다.

그럼 그는 "넌 누구네? 허허 시인 알아보는거 보니 사람이 됐구나야"할까

끝으로 그의 시 '오류동 동전'을 보면서 저절로 써진 메모가 있다.

 

 

"한때 나는 과자공장 알바생였다가/

한때 나는 신학교 사무원였다가/

한때 나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가들의 보모였다가/

한때 나는 눈 먼 맹인 아이들의 선생였다가/

먼 먼 윤회 끝/

이제는 고향에 돌아와/

한 남자의 아내요/

한 아이의 엄마로 산다"

 

 

선생님은 이런 경우를 "서정이 옮아간다"라고 표현했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시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자기 속에 서정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한 해 동안 근·현대사를 풍미한 스물 두 명의 시인들을 만나면서 벅찬 숙제와 더 쓰기 어려워진 시를 붙들고 고민했지만 내 안의 나는 알 것이다.수 많은 시들을 읽어내며 이미 넓어진 감정의 폭과 높아진 지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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