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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말(泡沫)의 집
박 완 서
전기밥솥의 스위치를 누르려다 말고 나는 아차했다.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손가락을 오므라뜨리고 우두망찰을 했다.
동석이와 나는 지난 일 주일 동안 거의 말을 안 하고 지냈다. 동석이는 워낙 입이 뜬 애라 전에도 말이 없었지만 요새 더 심해진 것 같다. 말이 없는 애는 아무리 내 자식이지만 나는 겁났다. 그런 동석이가 어젠 학교에 갔다 와서 책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놓으며 자못 공손하게 말했다.
“내일부터는 보리를 좀더 많이 섞어야 돼요. 우리 선생님이 혼식을 엉터리로 해오는 놈은 이제부터 그 부모를 고오발하도록 하겠다고 했어요.”
녀석은 입술을 휘파람 불 때처럼 병의 주둥이를 만들어가지고 고발을 ‘고오발’ 로 강조했다.
그게 어제 동석이가 나에게 한 말의 전부다. 일 주일 만에 아들이 엄마에게 한 말의 전부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마침 보리쌀이 떨어졌을 터인데도 나는 동석이한테 그런 말을 들은 즉시 그걸 사다놓을 생각을 못 했다. 나는 다만 교탁에서 선생님도 학생들한테 입을 병의 주둥이처럼 뾰족하게 빼고 너희 부모님을 ‘고오발’ 하겠다고 했을까, 그 생각만 했었다. 그 생각은 저녁을 지으면서도,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잠자리에서도 떠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 반이었다. 가스에다 급하게 짓는다면 지금부터 보리를 사다가 지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아파트 계단을 내려다보며 가벼운 현기증을 느껐으나 그대로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을 쳤다. 발볕에서 계단이 무너져내리는 느낌과 함께 손바닥에선 난간과의 마찰로 찌릿찌릿 열과 전기가 나면서 심장도 날카롭게 찌릿찌릿했다.
발로 뛰어내렸다기보다는 계단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면서 저절로 땅을 디딘 것처럼 나는 사층에서 삽시간에 보도를 밟고 있었다.
상가를 향해 달음질쳤다. 반듯반듯한 모양으로 직립한 아파트들 사이로 난 널찍널찍한 보도엔 아직도 간밤의 어둠이 남아 있고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없었다.
저만치서 달려오는 승용차의 헤드라이트가 꼭 나를 해칠 목적으로 달려드는 괴물의 눈빛 같은 공포감을 무릅쓰고 나는 용감하게 앞으로 달렸다.
교탁에서 또다시 동석이 선생님이 입을 병의 주둥이처럼 만들게 할 수는 없지. 암, 그럴 수는 없지. 나는 보리를 사야 했다. 제일 가까운 상가의 싸전은 셔터를 굳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몇 번 셔텨를 때렸다. 늦가을의 쇠붙이의 냉기와 쇳소리가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나는 다시 시범 아파트 쪽 상가로 달음질쳤다. 그쪽의 상가도 닫혀 있었다. 다시 공무원 아파트 쪽으로 달렸다. 그쪽의 상가도 닫혀 있었다.
이러단 도시락은커녕 아침도 굶길 것 같았다. 나는 이번엔 내 아파트를 찾아 달음질치며 몇 번이나 길을 잃었다. 매연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 어둠이 서서히 엷어지는 속에 무수히 직립한 아파트와 그 사이로 난 널찍널찍한 보도는 거기도 여기 같고, 여기도 거기 같은 모습으로 나를 혼미시켰다.
설사 내 아파트가 내가 찾아오기 쉽게 잠시 역립(逆立)을 하고 나를 기다려준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게다. 아파트는 성냥갑처럼 아래위가 없었으니까.
이런 혼미 속에서도 나는 동석이 선생님 생각을 했다. 선생님은 참 농담도 잘하시나봐. 그 철부지들 앞에서 그런 농담을 하신 걸 보면 보나 마나 젊은 선생님이실 거야. 한번 찾아가 뵈야지. 드디어 나는 내 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 측면 회색 콘크리트 벽의 노란 숫자 108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날이 밝았다.
사층까지 뛰어오르긴 뛰어내리기처림 쉽지 않다. 혁혁 숨이 차고 침이 마르면서 나중에는 입천장과 혓바닥이 따갑게 옥죄어 왔다.
사층 왼쪽 문의 벨을 눌렀다. 안에서 들리는 누구냐는 물음이 시어머니의 목소리보다 훨씬 젊게 들렸지만 개의치 않고 대답 대신 다시 한번 짧게 벨을 눌렀다.
도어가 조심스레 열리고 머리가 포도송이 같은 여자의 얼굴이 기웃이 밖을 내다봤다. 가끔 본 일이 있는 얼굴이다. 아마 내 아파트와 같은 동에 사는 여자일 게다. 그나저나 그 여자가 이 시간에 내 집에 와서 마치 주인처럼 굴다니.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아직 입에 침이 돌지 않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시죠? 이 시간에.”
도어 위에 문패를 보니 404호였다. 내 집은 406호인데. 그러니까 나는 우리 동의 셋째번 문으로 들어와 계단을 올라야 하는 건데 둘째번 문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도대체 무슨 일 이냐니까요?”
머리가 포도송이 같은 여자가 화를 냈다. 나는 겨우 침이 돈 입으로 더듬거렸다.
“저어, 미안하지만 보리쌀이 있으면 한 움큼만 꾸려구요, 마침 보리쌀이 떨어졌는데 싸전도 아직 안 열었고…….”
여자의 얼굴이 갑자기 너그러워지면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집에도 학생이 있나보다. 우리 사이엔 삽시간에 어떤 이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주 보리 밥으로 꾸어드리죠.”
여자의 포도송이 같은 머리가 안으로 사라졌다.
이 무슨 전화위복인가. 입구를 잘못 찾아든 걸로 이런 복이 터지다니.
교탁에서 또다시 동석이 선생님의 입을 병의 주둥이처럼 만들게 할 수는 없지, 암 그럴 수는 없지. 그러면서 나는 여자가 보리밥을 꾸어주기를 기다렸다.
곧 문이 방시레 열리고 보리밥이 나왔다. 꽁보리밥이 담겨 있는 네모난 쿠킹호일의 은빛과 그것을 받쳐든 여자의 뾰족한 손톱의 진홍빛의 대비가 너무 강렬해 나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언젠가도 한번 아파트 단지에 새로 생긴 화랑에서 열린 전위 미술전이라는 결 심심풀이로 보러 들어갔다가 같은 느낌으로 진저리를 치며 돌아나온 일이 있다.
“어서 받아요.”
여자가 짜증을 냈다. 며칠 동안 냉장고에 저장돼 있었던 듯 보리밥은 얼음처럼 찼다.
“흰밥을 두어 숟갈만 섞으면 될 거예요.”
여자는 친절했다. 조리법까지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여기다 더운밥을 섞으면 쉬지 않을까요?”
“어차피 애들이 먹으려고 가져가는 건 아니잖아요?”
여자는 내가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가스에 급히 익힌 밥을 여자가 일러준 대로 냉동 보리밥에 두어 숟갈 섞어서 도시락을 싸고 나니 동석이 교복이 보이지 않는다. 또 시어머니가 감춘 모양이다. 급히 필요한 물건을 감쪽같이 감추고 시치미 딱 떼고 있는 시어머니의 이상한 노망은 요즘 더 심하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시어머니와 합친 지 삼 년째다. 합치고 나서 서로 서먹서먹한 느낌도 채 가시기 전에 남편이 미국으로 갔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불쌍한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나나 동석이에게 정을 붙이려고 무척 애를 썼던 것 같다. 거의 온종일 아부하는 웃음을 띠고 말을 시켰다.
나는 그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버린 것을 좋아하는 시어머니의 식성을 안 것으로 나의 시어머니에 대한 지식은 충분했다. 옛날 옛적에 시집살이하던 얘기, 칠남매나 낳아서 홍역으로 잃고 감기 촉상으로 잃고 남매밖에 못 건진 얘기, 동석이가 애비 자랄 때를 빼다박은 것 같다는 얘기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시어머니도 차차 말수가 적어졌다. 살 것 같았다. 그러더니 조금씩 노망의 낌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뭐든지 물어봤다.
에미야, 나 아침 먹었냐 안 먹었냐? 에미야 나 머리 빗을까 말까? 에미야 전깃불 끌까 말까? 수돗물이 넘치는데 잠글까 말까? 온종일 이런 백치 같은 질문을 하면서 내 뒤를 쫓아다녔다. 나는 귀찮아하면서, 그러나 똥오줌 싸는 노망 안 들린 것만 다행해 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짧은 대답, ‘네’ ‘아니오’ 만 가지고 시어머니를 상대했다.
그러더니 요즘 들어 새 노망이 생겨난 것이다. 아이들이 새록새록 재롱을 부리듯이 시어머니는 새록새록 새 노망을 부렸다.
어느 날, 북엇국을 끓이려고 북어를 찾았으나 한 쾌를 사다 찬장에 넣어놓은 지가 엊그젠데 온데간데가 없었다. 찬장은 물론 부엌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나서 하도 답답한 김에 혹시나 해서 시어머니한테 물어 봤더니 생긋 웃으면서,
“응, 북어 말이냐? 북어는 찬장 속에 넣어두는 게 아냐. 내가 빈 독 속에 넣어두었느니라.”
하면서 베란다의 빈 독에서 북어를 꺼내 자랑스럽게 받쳐들고 왔다. 그때만 해도 그게 그냥 노인네의 예전 생활습관이려니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났고 차츰 심해졌다.
외출하려면 좀 전까지도 거기 있던 구두가 없어졌다. 또 시어머니 짓이려니 싶으면서도 물어보기가 싫어서 어떡하든 혼자 찾아내려 들지만 하도 기상천외의 장소에 감추는 까닭에 그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더니 며칠 전서부터 동석이 것까지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이야말로 물어보기가 싫었다. 동석이 교복 어디 있느냐고 물어봐주길 자신 있게 기대하며 자는 척하고 누워 있을 시어머니를 보기 좋게 배신하고 싶었다.
나는 덮어놓고 시어머니 방으로 들어가 시어머니의 장롱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동석이 것은 내 것과 달라 함부로 아무 데나 감추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이불 속에 반듯이 누운 채 새된 소리로 악을 썼다.
“왜 남의 세간을 뒤지냐 뒤지길. 내가 죽었냐 죽었어? 나 너희들 것 훔쳐 가진 것 하나도 없다. 다 내가 갖고 들어온 세간에다 우리 영감이 해준 옷가지야.”
돌아간 시아버지의 검정 세루 두루마기 사이에서 동석이 교복을 찾아냈다. 서로 빛깔이 똑같아서 하마터면 못 알아보고 넘길 뻔 했다.
동석이가 학교에 가고 나서 시어머니의 아침상을 본다. 그 동안에 시어머니는 욕실로 들어가 양변기 속에 구여 있는 물로 세수를 한다. 혼자서 투덜대며 세수를 한다.
“물이 또 다 식었잖아. 세숫물을 떠놓았으면 떠놓았습니다고 한마디 해줘야 식기 전에 씻지. 아유 쯧쯧, 신식 며느리 쌀쌀맞은 것…….”
시어머니는 언젯적부터인지 양변기 속에 고여 있는 물이 내가 자기를 위해 떠놓은 세숫물인 줄 안다. 생각하면 구역질이 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의 신종 노망이려니 하고 있을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아침이 끝나면 시어머니에게 옷을 갈아입혀야 한다. 오늘은 노인학교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한 번도 옷을 순순히 갈아입은 적이 없다. 꼭 핑계를 댄다. 머리가 아프다느니, 감기 기운이 있다느니, 어지럽다느니 하면서 마치 옷 갈아입는 일이 누구를 위한 힘든 노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꾀를 부린다. 나는 마치 귀중품을 약탈하는 것처럼 힘겹게 모질게 헌 옷을 벗겨내고 새 옷을 입힌다. 노인의 나체를 보는 건 참 싫은 일이다. 더군다나 살갖에 닿는 일은 그분이 그걸 즐기기 때문에 더욱 싫다.
아마 노인학교만 없었던들 나는 이런 싫은 일을 일 주일에 한번씩이나 하려 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시어머니도 싫어하고 나도 싫어하는 일을 오직 남의 이목 때문에 하는 것이다. 노인학교만 해도 그렇다. 나는 시어머니가 노인학교에 가서 어떤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리라곤 생각 안 한다. 다만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노인네들이 노인학교에 가는 게 유행이기 때문에 보낼 뿐이다.
이 아파트 단지엔 노인네가 귀하다. 한 동에 한 명꼴이나 될까. 그러니 얼마나 고독할까.
여기 착안해서 아파트 단지의 극성스러운 젊은 부인들의 친목단체인 진달래회 회원들이 교회를 빌려서 일 주일에 한 번씩 노인학교를 열기로 한 것이다.
노인학교가 열리는 수요일이면 며느리나 딸이나 손자들이 성장을 한 노인을 부축해서 교회당으로 가는 모습을 어디서나 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어찌나 아름다운 광경인지 노인네가 없는 가족도, 어머머, 우리 어머니도 우리하고 사셨으면 얼마나 좋아, 일 주일에 한 번씩 노인학교에도 가실 수 있고, 매일매일 효도도 받으실 수 있고 이러면서 애기 못 낳는 사람 유모차에 탄 애기 탐내듯이 노인네를 다 탐내게 했다.
남들은 노인네를 어디서 꾸어다가라도 모시고 가고 싶어하는 노인학교를 버젓이 노인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안 보내보라. 내가 지나가면 돌팔매라도 던지고 싶게 고약한 며느리로 소문이 나리라.
나는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무하고도 친하지 않았지만 아무하고나 대개는 낯이 익었고 남 하는 대로 휩쓸리지 않으면 뒤로 욕을 먹을 것 같은 막연한 공포감을 갖고 있었다.
한 번도 노인을 모셔본 일이 있을 것 같지 않게 싱싱하고 버르장머리 없어 뵈는 진달래 회원들과 교화의 부설 유치원의 원아들이 갖은 애교를 다 떨며 노인들을 맞아들이면, 모시고 간 젊은 이들은 노인네를 떼어놓고 차마 발길이 안 떨어지는 것처럼 아쉽고 정겨운 얼굴로 돌아보고 진달래 회원들한테 감사하고 또 감격하며 교회당을 떠나야 한다
시어머니를 모셔다놓고 온 나는 오랜만에 남편의 편지를 꺼내 놓고 본다. 남편이 미국에 가 있는 지 이 년이 넘건만 그 동안에 온 편지가 삼십 통이 채 안 된다. 그러니까 한 달에 한 번꼴로 편지가 온 셈이다. 내용도 비슷해서 나는 그 톱밥처럼 재미없는 말들을 욀 수도 있다.
‘동석이 엄마 보시오…….’
그는 미국에 그만큼 오래 있었건만 사랑하는 은영이라든가 사랑하는 아내여라든가 이런 말을 쓸 줄 모른다.
‘어머님은 안녕하시오? 당신이 극진히 보살펴드리리라 믿소…….˙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번번이 어쩌면 남편은 어머니가 안녕하시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짙은 의혹을 품었다. 왜냐하면 남편은 결코 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로 살 때도 부모님 안부를 자발적으로 궁금해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내가 대신 가끔 찾아뵙고 남편이 보내서 온 것처럼 시부모의 섭섭한 마음을 달래드렸었다.
한 집에 모시게 되고 나서 남편이 같이 지낸 건 불과 반년 남짓하지만 그 동안에도 남편이 어머니에게 알뜰하게 구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구박을 하거나 불손하게 군 적도 없다. 한마디로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의식하지도 않는 것처럼 굴었다. 이런 무관심이 얼마나 잔혹한 대접이란 걸 나는 옆에서 보기만 하고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내가 그런 의혹을 품게 된 건 아니다. 남편이 미국에 가고 나서 초기의 일 년, 그러니까 그가 근무하던 무역회사의 로스앤젤레스 지점에 근무할 때의 편지에는 전혀 어머니에 대한 안부가 없었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티조차 안 비쳤다. 집에 있을 때처럼 철저하게 어머니의 존재에 무관심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본사 근무로 발령이 나자 귀국하는 대신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그곳에 눌러앉아 상업으로 성공했다는 친구의 가게 일을 도우며 영주권이 나오는 대로 가족을 데려갈 계획을 세우고 나서부터 그는 별안간 효자스러운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또 그의 이런 새삼스럽게 효자스러운 편지는 내가 답장에서 시어머니의 급격한 노쇠와 새록새록 새로워지는 새로운 노망을 낱낱이 고자질하기 시작한 때와도 일치했다
우리가 이민을 가면 천생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갈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니는 우리 말고 의지할 데라곤 없었다. 시누이가 하나 있지만 첫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부터는 의절하다시피 하고 살고 있었다.
양변기 속에 고인 물에 세수를 하는 노인을 미국의 기계문명 속으로 끌어들이기도 그렇고, 떼어놓을 마땅한 고장은 없고, 팔순이 내일모레니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남편의 조바심을 ‘어머님은 안녕하시오?’ 의 뒤통수에서 읽었다면 내 눈이 지나치게 밝았을까?
‘이달에도 백 달러만 부치오. 수입은 훨씬 더 되지만 한푼이라 도 더 저축해서 나도 빨리 내 가게를 가져야지 밤낯 남의 고용살이만 하겠소. 나도 삼 년 안에 내 가게를 가질 수 있을 것이오. 내 계획에 추호의 차질도 없을 것이니 믿고 기다려주오.’
믿다마다, 남편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나는 남편이 한번 한다고 한 것을 얼마나 독한 의지력으로 밀고 나가나를 알고 있었다. 그의 의지는 차고도 단단하다. 같이 살 때도 나는 그의 정열이 동반하지 않은 의지력에 가끔가끔 진저리를 치곤했다.
동석이를 낳고 남편은 동석이 하나를 잘 키우기 위해 아이를 더 낳지 말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약간 아쉬웠지만 동의를 했다. 어차피 피임에는 실패율이란 게 따르니까 하나 둘쯤 더 낳을 수 있겠지 하는 꿍꿍이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 그는 한 번도 실수를 안 했다. 그렇다고 그나 내가 불임수술을 한 것도 아니고 약물이나 기구를 쓴 것도 아니다. 그는 피임은 자기에게 맡기고 나는 거기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말라고 했다. 그는 동석이를 낳고 나서 한 번도 내 몸 안에 사정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놀라운 의지력이었다. 나는 남편을 잘 만난 덕택으로 그 흔한 중절수술 한 번 못 해본 것이다. 나는 그가 삼 년 만에 자기의 가게를 갖고 가족을 데려갈 수 있으리란 걸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곳 생활은 한마디로 고달프오. 솔직히 말해 당신을 그리워할 새도 없소. 당신도 여기 오면 처음엔 상당히 고통스러울 거요. 그러나 동석이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어떡허든 이 고장에 자리를 잡아야 할 줄 믿소.’
동석이를 위해 동석이를 위해·…… 는 피임을 할 때도 그러더니, 미국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도 동석이를 위해서란다. 철수네 부모도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철수를 위해서라더니, 혁이네 부모도 캐나다로 이민 가면서 혁이를 위해 낯선 땅에 자리를 잡아야 한단다.
알 수 없는 아이 동석이를 위해, 자기는 서른 살 때 시작한 불효ㅡ 어머니와 말이 하기 싫은 불효를 이미 열다섯 살에 시작하고 있는 동석이를 위해 남편은 낯선 땅에서 고생을 하잔다.
도대체 미국이란 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기에 남편이나 딴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내가 미국이란 고장에 대해 알고 있는 확실한 몇 가지 지식으론 미국 사람은 주로 미제만 먹고, 미제만 입고, 그리고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해 에미 애비, 특히 늙은이를 개떡같이 안다는 데 왜 우린 늙어가면서 그 고장에 가서 동석이를 위해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자기가 자기 어머니에 대I막음 씀씀이만 갖고 짐작하더라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희생처럼 억울할 건 없다는 걸 알 터인데 왜 동석이를 위해 희생을 각오하자는 걸까.
예전에 만주로 흘러가던 이민들이 베보자기에 바가지쪽을 못 버리고 악착같이 달고 다니듯이 미국까지 가서도 자기의 삶의 의미를 오로지 자식을 위한 걸로 국한시키는 낡은 의식을 못 버리고 있다.
‘여기는 멋진 나라요. 사람 살 만한 나라요. 여기서 우리의 삶을 다시 시작해보지 않겠소. 사랑하오.’
이럴 수도 있으련만 한 번도 남편은 이래준 적이 없다.
남편의 재미없는 편지를 다 읽고 나도 시간은 열두시도 안 됐다. 시어머니를 노인학교로 모시러 가려면 아직 다섯 시간이 남아 있다. 나는 그 귀중한 다섯 시간을 심심하게 보내서는 안 될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동안에 재미를 보고 싶다. 부정을 저지르고 싶은 것이다. 꿀 같은 부정을, 불같은 부정을. 조금 있으면 그 부정이 내 문을 노크할 것이다. 나는 물론 문을 안 열어줄 수도 있다. 안 열어줄 수도 있기를 바랐기 때문에 남편의 편지를 꺼내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편의 편지는 내 부정에의 충동에 제동의 역할을 할 힘이 없었다.
나는 가슴을 조이며 일 주일 전에 만났던 청년을 기다린다. 일 주일 전 시어머니를 노인학교에 모셔다드리고 오는 길에 나는 아파트 단지에 새로 생긴 화랑에 들렀다. 이 화랑에선 여직껏 신통한 전시회가 열린 일이 없지만 나는 그냥 들러본다. 나는 미술 애호가도 아니요, 안목도 없으니까 노인학교에서 우리 아파트로 오는 길목에 화랑이 있다는 게 거기 자주 들르는 가장 큰 이유일
게다. 또 노인네를 맡기고 난 후의 홀가분한 기분이 은연중 약간 현대적이고도 문화적인 자극을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전 수요일은 미전이 아니라 건축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름 있는 건축가의 것이 이런 데서 열릴 리는 없고 K대학 건축과 학생들의 작품으로 대부분이 소형 주택이었다. 불쌍하도록 관람객이 없었다.
어쩌자고 여기서 이런 전시회를 열었을까. 이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은 거의 개인주택을 원하지 않는다. 개인주택에 살던 시절을 지긋지긋해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좀더 나은 생활에 대한 꿈은 더 큰 아파트 아니면 더 호화로운 아파트지 개인주택하곤 상관이 없다. 아파트라는 첨단의 주택의 주민들은 이 첨단의 주택에 지극히 만족하고 이 첨단의 주택을 사랑한다.
이런 고장어니 단독주택의 설계도가 관심을 끌 리 만무했다. 혹시 아파트 단지의 주민일수록 개인주택에 대한 향수가 있으리라고 짚었다면 잘못 짚어도 크게 잘못 짚은 거였다. 아마 이 학생들은 몹시 전시회가 하고 싶은 나머지 대관료가 싸다는 데만 정신이 팔렸음에 틀림이 없다.
나도 입구에서 돌쳐나오려다 말고 회장을 지키고 있는 학생들이 안된 생각이 들어서 한 번 휘둘러봤다.
K교수의 집, 호반의 집, 그린룸이 있는 집, 비탈에 지은 집, 벼락부자의 집…… 등 다채로운 제목대로 개성 있는 예쁜 집의 투시도와 설계도가 있고, 그 집이 지닌 특색을 설명한 간단한 설명서가 붙어 있었다.
K교수의 집을 보고 있으면 K교수의 집을 설계한 학생이 옆에 붙어서 친절히 설명까지 해주려 들었다.
“이 집의 특색은 서재가 본채에서 뚝 떨어져 완전히 독립돼 있다는 점이죠. 학자에게 있어서 서재란 자기의 우주인 동시에…….”
나는 가벼운 미소로써 답례를 하고 다음 집으로 옮아간다. 원름 시스템의 독신자의 집이 있는가 하면 궁전 같은 벼락부자의 집이 있다. 맨 나중 제일 구석진 곳에 포말(泡沫)의 집이라는 게 있다. 포말이면 물거품이 아닌가. 설마 물거품처럼 불면 꺼질 집은 아니겠지.
투시도를 보니 아닌게 아니라 둥근 방들이 방울방울 물거품처럼 모여 있는 묘한 집이다.
특징을 설명한 글도 간단했다. ‘미래의 주택을 종래의 주택의 직선으로부터 해방시키자!’ 설명서라기보다는 무슨 격문 같았다.
어떤 괴짜가 설계한 건가 싶어 학생들 쪽을 휘둘러봤더니 한 청년이 뒤통수를 긁으며 다가왔다.
장발에다 옷이 남루하고 얼굴이 썩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는 그냥 내 옆에 섰다뿐 구차한 설명 따윈 하려 들지 않았다. 청년은 나를 경멸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설명을 해봤댔자 네까짓 여편네가 뭘 알아들을까 하는 불손한 낯짝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청년이 저 변두리 산동네 형편없는 판잣집에 살면서 단순하고도 견고한 도심의 현대식 건축에 신경질적인 적의를 품고 살아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 청년이 나를 경멸하는 것만큼이나 나도 그 청년을 경멸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재미있는 집이군요. 이런 집은 방바닥도 평면이 아니라 곡면이겠네요?”
“그럴 톄죠.”
청년은 무책임한 대답을 했다.
“불편하지 않을까요?”
“습관들이기 나름이겠죠.”
“혹시 학생은 무주택 서민이 아닌가 몰라?”
청년이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우리집에 놀러 오지 않을래요?”
“뭣 하러요?”
“그냥 차 같이 마시게. 굳이 설명을 붙이자면 직선으로 된 집이, 적어도 바닥만은 평면으로 된 집이 살기 편하다는 걸 가르쳐 주고파서요.”
나는 수첩을 찢어서 ‘칸나맨션 108동 406호’ 를 적어주면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점심때쯤 오라고 덧붙였다. 청년은 그날 틀림없이 왔다. 볼수록 잘생긴 청년이었다. 숱이 풍부한 지저분한 장발과 남루한 복장이 그의 수려한 이목구비를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좋은 집이군요.”
청년은 내 직선으로 된 집을 칭찬해줬다. 그리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했다. 그가 가난하다는 얘기, 학비 벌기에 짓눌린 나머지 그의 유일한 소망은 어디서 돈 많은 과부를 만나 과부에게 실컷 재미나 보여주고 학비나 얻어썼으면 하는 거란 얘기까지 했다.
청년은 내가 돈 많은 과부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어느 틈에 돈 많은 과부 행세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세련된 폼으로 청년에게 조니워커를 권했다. 남편이 있을 때 어디서 두어 병 들어온 건데 마실 사람이 없어 그대로 있었다.
청년의 얼굴이 꿈같은 행운과 양주에 취해서 보기 좋게 상기했다. 나는 청년에게 키스했다. 조니워커를 몇 잔 마신 남자의 입은 얼마나 뜨겁고 향기로운 것일까.
이때 동석이가 돌아왔다. 우리는 둘 다 당황했지만 곧 평정을 회복했다. 돈 많은 과부라고만 했지 자식 없는 과부란 소리는 안 했으니까.
다음 수요일 다시 오기로 하고 청년은 돌아갔다. 그리고 오늘이 그 다음 수요일인 것이다.
나는 다탁 위에 흩어진 남편의 편지를 한데 묶어 꼭꼭 숨겼다. 그리고 가슴이 넓게 파인 홈웨어로 갈아입었다. 몸의 요소요소에 향수를 뿌리고 입술도 실제보다 약간 크게 진하게 그렸다. 모든 준비가 완료된 후 청년은 나타났다. 나는 말없이 조니워커를 권했다. 청년은 눈에 띄게 서둘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 애가 늦게 돌아오는 날이니 천천히 놀다 가라고 알아듣게 일러줘도 청년은 서둘렀다.
그의 입술은 전처럼 향기롭지 않았다. 딱하게도 단내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내 옷을 벗기든지 찢어내든지 그의 마음대로였다. 실은 나도 약간 떨고 있었다.
내가 향수를 뿌린 데를 우선적으로 그의 단내 나는 입술은 핥았다. 그러나 그는 서두르고 서두르면서도 마지막 행동은 못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온갖 기교를 다해 그를 도왔으나 우린 끝내 합쳐지지 못했다.
“불능인 주제에 돈 많은 과부를 낚을 꿈을 꿨단 말이죠?”
나는 그를 비웃었다.
“불능이라뇨? 당치도 않아요. 몇 번 경험이 있어요. 싸구려 창녀였지만요. 그리고도 매일 마스터베이션을 해야 할 만큼 왕성한 편이죠. 마스터베이션을 할 때마다 환상의 상대는 아름다운 처녀가 아니라 바로 돈 많은 과부였는데 정작 돈 많은 과부를 안고도 그게 안 되다니.”
“호호! 그림의 떡도 팔잔가봐.”
나는 허리를 비틀고 그의 어처구니없는 불능을 조소했다.
청년은 갔다. 아마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배척한 확실하고 힘찬 직선으로 된 아파트군 사이로 곧게 난 보도를 휘청거리며 걷는 그의 뒷모습이야말로 흡사 불면 꺼질 포말처럼 허약해 보였다.
불쌍한 예언자ㅡ, 나는 창을 통해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가 그린 미래의 집의 포말의 모습은 건물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가족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는 얼마나 끔찍한 걸 예언한 것일까. 나는 진저리를 쳤다.
노인학교에서 시어머니를 모셔오고, 동석이가 돌아오고 세 식구가 말없이 저녁을 먹고, 그리고 각각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문을 안에서 잠갔다.
어째 또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경대 서랍에서 알약을 꺼내 삼켰다. 그것으로 오늘 밤의 안면이 보장된 것이다. 나는 아마 내일 아침 다섯시까지 잘 잘 수 있으리라. 이 알약은 실은 시어머니 몫의 알약이었다. 시어머니가 남의 물건을 감추는 증세와 거의 같은 시기에 생긴 또하나의 증세는 오밤중에 일어나 이 방 저 방의 문을 두드리며 다니는 거였다.
애간장을 끊는 것 같은 슬프고 애달픈 소리로, “얘야, 문 좀 열어다우” “얘야, 나 문 좀 열어다우”.
처음엔 밤에 급한 병환이라도 난 줄 알고 급히 문을 열었더니 머리를 풀어헤친 채 알몸으로 떨고 서서 “너희들은 갑갑해서 어떻게 문을 걸어잠그고 자냐?” 하는 거였다.
그 후부터는 아무리 그 소리가 소름이 끼쳐도 아예 못 들은 척했다. 그러나 “얘야, 문 좀 열어다우” 에 한번 단잠이 깨어나면 그 소리가 제풀에 사그라진 후에도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슬픈 원혼이 흐느적거리며 문틈으로, 열쇠구멍으로 들어와 방을 하나 가득 채운 것 같은 무서움증을 느꼈다. 생각다 못해 약국을 하는 친구한테 상의를 했더니, 그 약을 지어주었다.
“매일 밤 이것 한 알씩만 드리면 아침까지 잘 주무실 수 있을 거야.”
“몸에 해로운 건 아니니?”
“이로울 거야 없지. 습관성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젊은 사람이 우선 살고 봐야지 어쩌겠니? 습관성이 있다곤 하지만 사셔야 몇 해나 더 사시겠다고, 그 동안 쭉 복용하시면 될 거 아니니?”
“혹시 수명엔 상관없을까. 조금씩 조금씩 쇠약해져서 결국 제 명에 못 간다든가, 뭐 이런 거 있잖아?”
“아무려면 약사가 그런 약을 지어줄까. 큰일나려고.”
나는 어쩌면 그게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는 약이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알약을 한 번도 시어머니에게 드리지 않았다. 내 바람이 무서워서 드릴 수가 없었다. 대신 내가 먹는다. 이제 그 약을 먹진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내가 잠든 후 시어머니는 아마 방마다 굳게 잠긴 문을 두드리며 “얘야, 문 좀 열어다우. 얘야, 나 문 좀 열어다우” 슬피 울부짖겠지.
동석이는 잠귀가 어두워서, 나는 알약을 먹어서 우린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깜깜한 밤을 시어머니는 혼자서 귀신처럼 울부짖다가 날이 새면 귀신처럼 잠잠해지겠지.
나는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아파트군이 그 견고하고 확실한 선을 뒤틀면서 해체되고 드디어는 방울방울 불면 꺼질 듯한 포말의 모습으로 겨우 그 잔재를 남기는 걸 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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