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내시/주요 내시들
1) 충신
가. 상선내시 김처선(金處善, ~ 1505, 4.1, 종2품)
- 1418년 세종(이도) ~ 1505년 연산군(이융) 까지 7명의 왕을 모신 충신
- 처용놀이를 하며 음란한 짓을 하는 연산군에게 바른말을 해 활에 쏘이고 다리가 잘리고 혓바닥이 뽑힘.
- 연산군 김처선 ”처“ 자 사용 금지 처용무를 풍두무로 개칭, 전국에 ”처“가 들어 간 이름 개명, 공문서에 ”처“ 자 사용 금지, 과거 답안 ”처“자 쓴 응시생 낙방 시킴.
- 김처선의 양자들과 7촌 까지 죽임. 부모 묘 파고 고향집(세종시 전의면) 불태워 연못 만들었으며 본관 전의도 없애 버림.
- 중종 : 김처선 미복권
- 영조 1751년 : 복권, 고향에 정문(공적을 기리는 붉은문) 세움.
* 충신 종2품 상선내시 김처선/“ 이 늙은이가 6명의 임금을 모셨는 데 전하같은 전대 임금은 없었습니다. 부디 정사를 돌보시고 성군이 되십시오 ” 간청/1505년 4월 1일 "전하, 이 늙은이 바라노니 부디 성군이 되소서 "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사진 kbs 역사저널 그날
나. 연산군을 몰아낸 내시 6명
다. 임란 때 선조 피난길을 도운 내시 24명
2) 간신
가. 상전 김자원( ~ 1506, 정4품) : 승전 내시, 연산군 이융의 총애를 받으며 많은 전횡. 연산군을 주색에 빠지게 한 간신
- 왕명출납 담당(승전색)으로 막강한 권력 행사
- 1506년 6월 9일 중중반정 이후 기록 無
나. 하음군 전균 : 수양대군이 단종 왕위찬탈 도움
다. 흥양군 신운 : 남이장군 옥사
3) 김사행(, ~ 1398, 정2품, 김해 김씨) : 경복궁, 흥천사 사찰 등 설계, 타구 도입
- 조선 내시부제도 정비. 박자청(건원릉, 헌릉, 제릉(신의왕후 강씨), 정릉(신덕활후 강씨), 창덕궁 인정전, 경복궁 경회루 등)의 스승
- 경복궁과 광화문, 정릉, 공민왕과 노국공주 능, 정릉(태조 계비 신의왕후 강씨)의 원찰 흥천사 등 사찰 설계, 원으로부터 타구(골프에 비슷) 도입, 공민왕의 손과 발
- 공민왕, 우왕, 창왕, 공양왕, 조선 태조 등 5명의 왕 모심
※ 태종실록/태종 12년 5월 14일
”태조 때 모든 공역(工役)을 김사행(金師幸)이 맡았다. 온나라 사람들이 말하기 를 김사행이 태조를 권하여 공역을 일으켰다.“ ”그러나 김사행이 권한 것이 아니 고 한양 도성을 창건하는 계획은 태상왕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 환관 최만생 : 공민왕 죽임.
※ 삼봉 정도전 : 경복궁, 근정전(정전). 사정전(왕의 편전), 교태전(왕비 침전), 강녕 전(왕의 침전) 등 주요 전각의 이름을 지음
- 세자 방석과 그의 장인 심효생과 정치노선이 같아 1398년 1차 황자의 난시 이방 원에 의해 효수 됨(일부설은 권세(가마를 타고 궐에 입궁)에 사치조장을 죽음 당함)
* 신언패(愼言牌) : 연산군 10년 1504년 3월 박은, 표연말 등 사림파 신하들의 간언이 빗발치자 연산군(燕山君)이 환관과 궁녀들에게 말을 삼가도록 목에 걸고 다니게 한 팻말을 조간들에게도 목에 걸고 다니게 함
4) 성리학자 안향 외 고려시대 내시/엘리트 집단. 거세하지 않음.
가. 고려시대 내시
- 과거나 음서 출신 문벌귀족의 자제
- 전쟁이나 군에서 공을 세운 자
- 학문적 지식이 있는 젊은이들
나. 주요 고려시대 내시
a. 회헌 안향 : 안자(1243 ~ 1306,09,12), 고려의 유학자, 풍기 순흥, 한국 성리학 의 시조. 충선왕 때 원나라로부터 성리학 도입. 회헌실기.
b. 삼국사기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
c. 문헌공도 최충(9재학당)의 손자 촤사추
d. 최충헌의 사위 임효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