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
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나다니기를 싫어한 나를
구멍지기라 하며 어머니는 꾸중했다
바깥 세상이 두려웠는지
낯설어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도 남 못지 않은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맬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성했다
행선지도 있었고 귀착지도 있었다
바이칼 호수도 있었으며
밤 하늘의 별이 크다는 사하라 사막
작가이기도 했던 어떤 여자가
사막을 건너면서 신의 계시를 받아
메테르니히와 러시아 황제 사이를 오가며
신성동맹을 주선했다는 사연이 있는
그 별이 큰 사막의 밤하늘
히말라야의 짐진 노새와 야크의 슬픈 풍경
마음의 여행이든 현실적인 여행이든
사라졌다간 되돌아오기도 하는
기억의 눈보라
안개이며 구름이며 몽환이긴 매일반
다만 내 글 모두가
정처 없던 그 여행기
여행의 기록일 것이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중에서-----
사전에는 여행을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님"이라고 정의합니다.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되지 않은 시절, 서울을 가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흐린 등잔불에 앉아 책을 볼 때에 산짐승과 풀벌레가 구슬프게 울어대던 고향에서는
박경리 선생님처럼 교과서나 동화책에서 보았던 서울도 가보고, 바다도 가보고,
비행기나 기차도 타보고, 알프스의 소녀를 만나는 상상 여행을 하곤 했습니다.
자가용으로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시대가 되어
손바닥 크기의 휴대전화에 카메라는 기본이요,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방 출장 중에 시간이 되면 문학관을 찾아 작가님들의 삶을 배웁니다.
서울, 강원, 경기/인천, 경상, 전라, 충청, 제주 등.
경상도에만 25개의 문학관이 있더군요.
박경리 선생님은 "내 글 모두가 정처 없던 여행기의 기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요, 인생은 여행입니다.
오늘도 떠납시다. 먼 여행길을......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