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조원제 목사가 결국 4월 6일 오후에 하나님 곁으로 갔습니다.
저는 3주 전 일본에서 섬기는 고요엔교회의 성도 한분을 먼저 보내드리고,
연회 일로 한국에 가자마자 제 파송교회의 젊은 교우가 갑작스레 또 돌아가셨지요.
그런데 결국 지난 주에 누워있던 원제까지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아픈 사순절 기간은 아마 다시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멍하니 있다가 눈물을 떨구곤 합니다.
그 동안 조원제 목사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직접 방문해 함께 아픔을 나눠주신 서정민 선생님과 효성, 혜원, 호영, 한규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함께 밤을 새워준 용민 선배께도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西宮東幕
* 아래는 미국과 영국에 있는 친우들에게 장례 직후 보낸 편지입니다.
원제를 보낸 밤에...
공무(公務)로 귀국했지만 결국 이번 한국행은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한 '원제와의 마지막 만남의 기회'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던 날 금요일(4.2.) 정오, 나는 단 3명에게만 허락된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막 인도에서 돌아온 현철이와 함께 들어갔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정말 예수처럼 누워있는 원제의 모습은 그저 낯설기만 했다. "원제야! 형 왔어! 원제야! 임마!" 이렇게 귀에다 울먹이며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재수씨는 시편 23편을 읽어주고, "주 너를 지키리" 찬송가를 불러주더니, 함께 손을 꼭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더라. "오빠! 이번 주 부활주일이라고 놀래켜 주려고 이러고 있는거 맞지? 알았으니까 주일날 예수님처럼 꼭! 보란듯이 일어나는거야! 나 믿는다!"
예수처럼 그렇게 닮고 싶고 살아내고 싶어한 원제 그 녀석, 그렇게 예수 따라 하늘나라로 가버리고 말았다. 저 혼자만 좋다고 말이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날 그 소식을 접한 나는 다음 날 비행기표를 여지없이 버리고, 그 다음 날로 새로운 티켓을 구입했다. 원제 이 녀석 일본 가는 내 발목 잡으려고 단단히 작정했던 모양이다. 그래... 그렇게 원제는 나를 보고 그분 곁에 가려고 그렇게 힘들게 사투하며 기다렸나보다. 적어도 나 혼자는 그렇게 생각하련다.
원제가 떠난 날. 이범조 목사님과 한인철 선생님은 발인 전날 전야식을 나와 승표에게 맡기셨다. 원제를 멋드러지게 보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막상 뭘 하려고 하니 슬픔이 앞서고 눈물이 앞을 가려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밤을 세워 원제를 보내는 식문과 어록집을 작성해 인쇄했고, 승표의 후배를 통해 급한대로 훌륭한 영상 하나를 제작했다. 그 영상을 보는 이마다 원제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경황없던 첫째 날과는 달리, 두번째 날 오전에는 원제가 담임하던 충신교회(군인교회)를 돕던 서울의 충신장로교회 목사님과 성도들 와주어 <위로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오후 3시에는 이범조 목사님의 집례로 가족 및 인우교회 성도들과 <입관예배>가 이어졌다. 모두들 마지막으로 원제의 얼굴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원제와 함께하는 마지막 밤....10시.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해주어 한편으론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가 사회를 보았고, 이태훈 선배가 기도를, 서설원이 성경봉독을, 한인철 선생님이 설교를 해주셨다. 간단한 약력소개가 이어진 뒤, 노동과사목연구회를 대표해 김병준이 조사를, 신과 친우를 대표해 조윤이 추모시를, 성서연구회 벗들이 늘 함께 부르던 <우리는 친구>를 제창했고, 인우학사에서 원제의 뒤를 이어 전도사로 일하는 조진수가 다시 추모사를 읽었다. 그 후 이대성 선배가 원제가 남긴 어록 가운데, 봉숭아와 얽힌 단상을 읽어 원제의 생명에 대한 경외와 단상을 참석자들에게 전했고, 나와 승표가 늘 원제가 불러 달라던 두 노래 <맑고 향기롭게>,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불러 "그대! 잘가라!"하며 애통한 만장(輓章)을 대신했다. 그 후 원제의 최근 삶을 모아본 영상을 보면서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순서에 없던 원제 아버님의 인사말씀을 부탁드렸는데, 사고 직후 늘 복음을 멀리했던 자신이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 메달리며 원제의 회복을 기원했음을 간증하셨다. 그 밖에도 "옆의 사람을 바로 지금 한없이 사랑하라! 후회하기 전에!"라는 아버님의 간절한 요청은 지금도 나의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바로 옆에 지금 보고있는 이들을 지금 사랑하라는 거였다. 원제는 아마도 늘 그랬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순서로, 네 딸을 잃고도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노래했던 스퐈포드 씨의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길>을 모두 제창하며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고 있을 원제와 함께 했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아무쪼록 원제가 마지막 가는 길 밝은 미소로 만족하며 떠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오늘 (8일) 오전 8시에 기감 서울연회 서대문지방에서 목사님들이 오셔서 발인예배를 해주신뒤, 성남영생원 화장장에서 원제는 그렇게 한 줌의 흙으로 화했다. 그렇게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똑같이 그러할 우리들처럼...
그렇게 원제는 나의 선배가 되었다. 죽음의 선배, 부활의 선배, 영생의 선배.... 그리고 하나님의 용안을 먼저 아뢰고 확인한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대선배로 말이다.
아... 피곤하다. 육신을 탈출한 원제는 이제 이런 피로감 따위완 영영 작별했겠지. 일본 돌아오는 길 내내 혼자서 바보처럼 많이 울었다. 마치 엄마잃은 어린 아이처럼 말이야... 고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이 밤... 나는 한없이 외롭고 허전하다. 너희들도 그렇지?....
西宮東幕 이표가... (2010.04.09 00:40)
<조원제 목사 약력>
1977년 11월 14일 서울 출생
1996년 2월 분당 서현고등학교 졸업
1996년 3월 연세대 신과대학 입학
2003년 2월 연세대 신과대학 졸업
2003년 3월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입학
2006년 6월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연세대 재학 시, 신과대학 노동과사목연구회 및 교목실 연세성서연구회 활동
2000년 1월 ~ 2002년 10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양시 중산영락교회 전도사 역임
2002년 11월 ~ 2009년 4월 감리교 ‘인우학사’ 및 ‘떡 다섯과 물고기 둘 교회’ 전도사 역임
2008년 11월 29일 최윤미 사모와 결혼
2009년 4월 22일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에서 목사안수
2009년 5월 ~ 현재 철원 충신교회(제6사단 76포병대대 군인교회) 담임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서대문지방 은석교회 소속
2010년 4월 6일 오후 3시 7분 소천
첫댓글 서정민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말씀하셨던 선배님이시군요.. 그곳에서도 부디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