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에 관한 시 모음
차례
이슬에 사무치다 / 서정춘
아침 이슬 / 문정희
관점/ 류윤모
새벽 이슬 / 이정록
이슬의 꿈 / 정호승
거미와 이슬 / 오봉옥
이슬 / 이재무
이슬에 사무치다 / 서정춘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돋보기까지 갖고 싶어진다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나도 돋보기만한 이슬방울이고
이슬방울 속의 살점이고 싶다
나보다 어리디어린 이슬방울에게
나의 살점을 보태 버리고 싶다
보태 버릴수록 차고 다디단 나의 살점이
투명한 돋보기 속의 샘물이고 싶다
나는 샘물이 보일 때까지 돋보기로
이슬방울 들어올리기도 하고 들어 내리기도 하면서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타래박까지 갖고 싶어진다
- 서정춘,이슬에 사무치다 (글상걸상,
아침 이슬 / 문정희
지난밤 무슨 생각을 굴리고 굴려
아침 풀잎 위에
이렇듯 영롱한 한 방울의 은유로 태어났을까
고뇌였을까, 별빛 같은
슬픔의 살이며 뼈인 생명 한 알
누가 이리도 둥근 것을 낳았을까
고통은 원래 부드럽고 차가운 것은 아닐까
사랑은
짧은 절정, 숨소리 하나 스미지 못하는
순간의 보석
밤새 홀로 걸어와
무슨 말을 전하려고
아침 풀잎 위에
이렇듯 맑고 위태한 시간을 머금고 있는가
- 문정희,『나는 문이다』(문학에디션 뿔, 2007)
관점/ 류윤모
글썽이는 한 방울,
이슬의
표면장력에 대해 나는또 생각해보고
골똘해지는 것이다
우주적 순환의
가벼운 방점으로 내려앉은
자아
돌올한 존재감으로
뭇시선속에 들고 싶은
몸부림, 마음부림으로 구르는
피는 당긴다는데,
가만히 손끝을 대면
그렁그렁
울먹이다가
확 엉겨붙는 *관종
음 소거의
맑고 투명한 울림으로
활자처럼 구르다 멎을
하나같이
슬픔의 근친들이니
한 하늘 아래 땅위에 숨결 섞으며
웃고 떠들고
무리를 지어 다투고 배척하며
힘 자랑질을 해도
관점 이동해보면
우리 모두
그 분의 얼로 빚은
공통 분모
관계로서의
인류 아닌가
이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떠한가
천년 만년 살 듯
욕망에 부역하다가 마침표를 찍는
삼투압의
이 허들을 넘기가
이토록 고통스러운가
임종을 앞둔 병상에서
연민을 글썽이는 가족들
깨어 기다리라는
크신 분의 발자취를
촉각이나 하듯
또랑또랑 눈뜨고
새벽을 맞는 이슬은
동질성인 것을,
* 관종- 관심 종자
- 류윤모. 관점 『두레문학』2022
새벽 이슬 / 이정록
새벽에
꼴 베러 가서는
손을 다치지 않는다
이슬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새벽 이슬에
손마디가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낫 날이
이슬을 숫돌 삼아
자신을 벼리기 때문이다
새벽 꼴에는
핏물이 배들지 않는다
소를 앞세우는
착한 마음 앞에
새벽 풀들이 엎드려주기 때문이다.
- 이정록, 『제비꽃 여인숙』(민음사, 2001)
이슬의 꿈 / 정호승
이슬은 사라지는 게 꿈이 아니다
이슬은 사라지기를 꿈꾸지 않는다
이슬은 햇살과 한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슬이 햇살과 한몸이 된 것을
사람들은 이슬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나는 한때 이슬을 풀잎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새벽별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슬은 울지 않는다
햇살과 한몸을 이루는 기쁨만 있을 뿐
이슬에게는 슬픔이 없다
- 정호승, 『여행』(창비, 2013)
거미와 이슬 / 오봉옥
거미의 적은 이슬이다
끈끈이 점액질로 이루어진 집은
이슬의 발바닥이 닿는 순간
스르륵 녹기 시작한다
눅눅해진 거미줄로는
그 무엇도 붙들 수 없어
허공을 베어 먹어야만 한다
거미는 숙명적으로
곡마단의 곡예사가 된다
가느다란 줄에 떼지어 매달리는 이슬을
곡예사가 아니고선
다 털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의 살은 공처럼 부드럽다
곡예사는 이슬을 발가락 끝으로 통
통 퉁겨보기도 하고
입으로 빨아들여 농구공처럼 톡
톡 내쏘기도 한다
작은 물방울들을 눈덩이처럼 굴려
크게 만들어놓은 뒤
새총을 쏘듯이 거미줄을 당겼다 놓아
다시금 새하얀 구슬들로 쏟아지게도 한다
이슬을 다 걷은 거미는
괜시리 한번 거미줄을 튕겨본다
오늘도 바람이 불면 그물망 한 가닥
기둥처럼 붙잡고 흔들릴 것이다
그뿐인가,
팽팽한 줄이 퍼덕이는 순간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할 것이다.
- 오봉옥,『노랑』(천년의시작, 2010)
이슬 / 이재무
풀잎 속 집 한 채
누가 누가 사나
한낮 내내 빈집이다가
비오는 날 내내 빈집이다가
맑은 날 밤이면 분주하더군
달과 별 들러 노독을 풀다 가더군
숲속 뛰쳐나온 밤새 울음
불콰한 얼굴을 하고 와서는
슬그머니 문꼬리 열고 들어서더군
풀잎 속 집 한 채
누가 누가 사나
보석같이 반짝이는 푸른 방에는
피가 뜨거운 여자가 살고 있더군
- 이재무,『푸른 고집』(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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