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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뚜껑의 웃음
김종진
도자기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 곳은 한가한 시골 길 옆이라 마음이 여유롭거나 도자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꽤 많이 자동차를 세우고 구경을 합니다. 구경하는 사람들마다 상품이 많은 것에 놀라고 종류가 다양한 것에 입을 벌립니다.
도자기 가게에 있는 도기, 자기, 토기들은 가게 주인 못지않게 모두들 자신이 손님들의 눈에 띄기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많은 물건들이 팔려 나가고 새로운 물건들이 진열 됩니다. 그러나 버려지듯이 구석에 놓여있는 깨진 항아리뚜껑 하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기가 팍 죽어 있는 것입니다. 커다란 항아리뚜껑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아주 멋진 항아리를 덮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달 전 어느날이었습니다. 그날 도자기 전문 가게에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와서 도기, 자기, 토기들을 자세히 둘러보았습니다.
“어머니, 이 항아리 좀 보세요, 간장 항아리 하면 정말 좋겠어요.”
“그러게 말이다. 유약도 적당한 것이 전에 쓰던 항아리와 비슷하구나. 또 집에 이렇게 큰 놈은 별로 없는데 정말 마음에 든다.”
“그렇군요.”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정겨운 대화입니다.
“야, 그런데 이 뚜껑이 진짜 괜찮다. 턱이 깊게 만들어져 항아리를 깊숙이 덮어주고 있구나.”
“그러네요. 자세히 보니 뚜껑이 작품이네요. 어머니.”
아주머니는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항아리뚜껑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칭찬을 받은 항아리뚜껑은 마음이 들떴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마조마 합니다.
“얘야, 간장이 꽤 많이 들어가겠지?”
할머니께서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며 말씀하시자 며느리인 아주머니가 말을 이어갑니다.
“어머니, 이 뚜껑에 그려진 그림 좀 보셔요, 투박함 속에 이런 멋진 나무 그림이 예상 외로 잘 어울리네요. 어머, 안쪽에도 그림이 있어요. 옆에도 은은하게 그림이 있고요. 신기하죠? 항아리 뚜껑에 그림이 있다니!”
아주머니는 뚜껑을 요리조리 살피며 항아리뚜껑을 칭찬을 하느라 입에 침이 마릅니다. 항아리뚜껑은 아주머니의 계속되는 칭찬을 들으며 저 푸른 하늘의 구름이 된 듯한 기분입니다. 마음은 점점 하늘 높이 떠오릅니다. 항아리뚜껑은 자신을 칭찬해주는 아주머니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주머니, 항아리가 마음에 드세요? 뚜껑이 마음에 드세요?”
그 때 주인아저씨가 다가와 아주머니를 보고 활짝 웃으며 말합니다.
“이렇게 예쁜 항아리뚜껑은 처음 봐요. 우리집 항아리를 덮는 뚜껑으로는 딱 일 것 같아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제가 직접 정성을 다해 만든 겁니다. 뚜껑이라고 해서 작품성이 없으란 법은 없잖아요. 저는 누군가 이 항아리뚜껑에 관심을 가질 줄 알았어요.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헌데….”
“어머, 아저씨가 직접 만드신 거예요? 그런데 뭐가 문제가 있어요?”
아주머니는 주인이 만들었다는 말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입니다만 가게 아저씨의 그 말에는 눈을 꿈벅꿈벅합니다.
“예 일단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항아리도 중요하지만 뚜껑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거든요. 저는 항아리를 여닫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 뚜껑은 임시로 덮어 놓은 거랍니다. 유감스럽게도 불량이거든요.”
“불량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여 뚜껑까지도 신경 쓰는 아저씨 마음이 감동인데. 불량이라니요?”
“예. 맞습니다. 제가 시간 있을 때마다 몇 작품씩 만들어 놓는답니다. 이렇게 제 작품을 좋아 하시는 분이 계시니 저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그릇을 굽다가 열이 너무 높아져 이 항아리뚜껑은 금이 갔어요. 그래서 우선은 그냥 임시로 덮어 놓은 거랍니다. 미안하군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뚜껑을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갑자기 실망하면서 입을 엽니다.
“어? 그럴 수가?!”
갑작스런 아주머니의 놀라는 목소리에 항아리뚜껑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항아리뚜껑은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난 줄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뜻밖의 일입니다.
“그렇군요. 아저씨, 여기 가느다란 실금이 있군요?”
“죄송합니다. 뚜껑을 덮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여닫다보면 금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불량품을 내놓아 죄송합니다. 걱정 되실 테니 다른 뚜껑으로 가져가시지요.”
가게 주인아저씨 말에 아주머니와 할머니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가게를 떠납니다. 떠나는 그 아주머니와 할머니를 바라보는 항아리뚜껑은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졌습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던 마음은 바닥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뚜껑은 눈물을 흘리며 멀어져 가는 아주머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주머니도 가다가는 아쉬운 듯이 뚜껑이 있는 쪽을 다시 한 번 뒤 돌아 봅니다.
그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떠나고부터는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산과 들은 온통 짙은 초록으로 물들고 서로 자기가 아름다운 색이라고 뽐내고 있습니다. 그제나 지금이나 도자기 가게의 상품들은 고개를 쑥 빼고 자신을 데려갈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부터 금이 간 항아리 뚜껑은 구석에 처박힌 채 쪼그리고 앉아서 가늘게 한숨만을 쉬고 있었던 겁니다. 먼 산을 바라보며 금 간 항아리뚜껑은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니다.
‘아! 이럴 수가? 나를 불량으로 만들다니!’
항아리뚜껑은 주기를 만들어 준 아저씨를 원망합니다. 그러나 구석에 있는 항아리뚜껑에 관심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항아리뚜껑은 우울해집니다. 한 달 전 구석으로 밀려오던 날, 항아리뚜껑을 보고 옆에서 안 됐다고 말해주던 호랑이가 커다랗게 그려진 하얀 도자기도 이젠 여기 없습니다. 새로 들어온 도자기들은 가엾어진 항아리뚜껑을 힐끔 바라다보았을 뿐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습니다. 항아리뚜껑은 다시 먼 산을 힘없이 바라봅니다. 다행이라고나 할까? 산에 있는 나무들이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습니다. 바람이 건듯 불며 지나갑니다. 지나가던 바람도 ‘힘을 내’ 하며 용기를 주는 듯합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입입니다. 아주머니 한분이 주인아저씨와 함께 구석에 처박혀 있는 뚜껑에게 다가옵니다. 항아리 뚜껑은 반가웠습니다. 아!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지난번에 왔던 바로 그 아주머니입니다. 어쩜 바람이 항아리뚜껑의 다친 마음을 알고 아주머니를 모시고 왔는지도 모릅니다. 놀란 항아리뚜껑은 아주머니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아주머니는 무릎을 구부리고 자신 옆에 앉습니다.
“주인아저씨, 아무래도 이 항아리뚜껑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사러 왔습니다.”
“예!? 금 간 뚜껑을 뭐에 쓸려고요?”
아저씨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습니다.
“이 뚜껑을 사 가지고 가면 꼭 쓸 데가 있거든요. 우리집 아저씨기 사 가지고 오라고 했어요.”
“그래요? 쓸 데가 있다니 반갑습니다. 그냥 드리겠으니 좋은 곳에 쓰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요? 이 예쁜 뚜껑을 그냥 주신다고요? 그럼 제가 고맙지요.”
항아리뚜껑을 들고 가는 아주머니도 그 항아리뚜껑을 주신 아저씨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항아리뚜껑은 말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습니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입니다. 갑작스런 일에 어리둥절했지만 자신이 쓸데가 있다는 아주머니가, 소원을 들어주는 그 아주머니가 하느님처럼 보입니다.
항아리뚜껑이 도착한 아주머니 댁은 아파트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욕실에서 그 항아리뚜껑을 깨끗하게 목욕시켰습니다. 항아리뚜껑은 몸도 마음도 개운하였습니다. 보송보송하게 수건으로 물기까지 씻은 항아리뚜껑은 자신이 어떻게 될지 기대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상상만 해도 기뻤습니다. 그 전에 옆에서 팔려나간 백자 호랑이 도자기도 자기 같은 대우는 받지 못할 거라는 상상까지 하면서 입가에 미소가 그치지 않습니다.
잠시 후에 항아리뚜껑은 아주머니 댁 아파트 발코니로 조심조심 옮겨졌습니다. 이미 아파트 발코니에는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했습니다.
“여보, 여기에 강력 접착제를 붙여야겠소. 실금이지만 안심할 수가 없어서.”
주인아저씨의 말입니다. 주인아주머니도 그 말에 찬성합니다.
“여보, 좋아요. 역시 당신이예요 옥상 정원을 완성하는 게 당신 소원이셨잖아요.”
아주머니의 말에 더욱 힘을 얻은 아저씨는 항아리뚜껑을 다시 마른 걸레로 깨끗이 씻고 접착제를 바른 후에 입으로 후후 불어 말려줍니다. 그러잖아도 실금이 간 부분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뚜껑은 소독약을 바르고, 항생제를 바르고, 반창고까지 바른 듯한 기분입니다. 이제는 상처가 다 나은 기분입니다. 자신을 안전하게 처리한 주인아저씨가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접착제를 다 바른 후, 주인아저씨는 아이들을 부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듯 보이는 아이 두 명이 항아리뚜껑 옆으로 와서 다리를 모으고 앙증스럽게 앉았습니다. 항아리를 사러 오셨던 할머니도 다가와 아이들 옆에 앉으셨습니다. 아주머니는 뒤에서 양동이 하나를 들고 오셨습니다. 항아리뚜껑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항아리뚜껑이 행복해지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여기 흙과 모래 가져 왔어요.”
그 말을 들은 항아리뚜껑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머니께서 들고 있는 것이 모래와 흙이라니 항아리뚜껑은 믿어지지 않습니다.
‘설마 나에게 저것들을 다 쏟아 붓지는 않겠지?’
그 생각을 하는 순간인데, 항아리뚜껑 안에 냄새나는 기름진 흙과 까칠한 모래가 와르르 부어졌습니다. 항아리뚜껑은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울고 싶은데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런 일인데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멍한 상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흙과 모래가 소복하게 부어진 얼마 후입니다. 잠시 무언가 항아리뚜껑 자신을 간질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눈을 떠 보니 항아리뚜껑 안에 아주 앙증스런 아기나무가 심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흙이 소복한 가운데에 남천이라는 나무가 심어졌고 그 옆에는 이름 모를 초록빛 작은 풀꽃들이 빽빽한 숲을 이뤘습니다. 분수도 만들고. 물레방아도 설치하는 아저씨입니다. 아젔는 흙이 흘러가지 않게 바위옷을 입혀주었습니다. 항아리뚜껑 안은 금세 아주 작은 정원이 된 것입니다. 항아리뚜껑은 그제야 쾌재를 부릅니다.
이어서 주인 할머니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야! 얘들아, 항아리뚜껑 정원이 우리 집의 명물이 되겠구나.”
아이들도 한마디씩 했습니다.
“할머니, 정말 예뻐요. 그동안에 꾸며진 발코니 풍경과 아주 잘 어울려요.”
“그래요, 정말 훌륭해요.”
“여보, 쓸모없어 보였던 금간 항아리뚜껑이 멋지게 변신한 날인데 기념 촬영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아이들 크는 것처럼 뚜껑안의 나무들도 조금씩 자랄 텐데, 기록으로 남겨야 하잖아요.”
아주머니께서 기쁨의 소리로 말하자 아저씨도 찬성합니다.
“그럽시다. 좋은 생각이에요. 어머니도 함께 찍으시지요.”
“그래라 함께 찍자구나.”
할머니께서도 호호호 웃으십니다.
“버려진 항아리뚜껑이 이렇게 쓰일 줄 누가 알았겠니? 뚜껑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더니 애비와 에미가 결국 우리 집 베란다에 이렇게 훌륭한 정원을 완성시켰구나. 오늘 사온 저 금간 항아리뚜껑도 처음에는 흙으로 만든 것이니 다시 흙과 나무를 품었으니 참 흐뭇하겠구나.”
“어머님, 고맙습니다. 칭찬해주셔서. 이게 다 항아리뚜껑 덕분이니 저는 이 뚜껑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네요. 고맙다 항아리뚜껑아.”
하하하 호호호 주인아주머니 댁의 발코니에 웃음꽃이 활짝 핍니다.
아주머니가 아니었으면 항아리뚜껑은 아직도 도자기를 파는 곳 구석에서 쓸쓸하게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항아리뚜껑은 새롭게 단장을 시켜서 예쁜 정원을 만드는데 제 역할을 하게 해준 주인집 식구들이 고마웠습니다. 항아리뚜껑은 나무와 꽃을 보듬어 안아 잘 키울 수 있는 정원을 품을 수 있어서 마냥 기쁩니다. 할머님 말씀대로 자신의 모습을 찾은 것도 같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신이 납니다. 마음씨 고운 아주머니와 한 식구가 된 항아리뚜껑은, 주인 식구들과 함께 멀리 도시하늘을 바라보며 지금 마음껏 웃습니다.
첫댓글 어른들이 읽는 동화 재미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것도 보는 이에 따라 쓰임새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자주 뵐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