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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이란?
한국 사회는 ‘앵그리 사회’로 일컬어질 만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폭력으로 이어지고, 지인과 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불을 지르고, 경찰의 대처 방식에 공분을 표현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는 분노와 관련된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다. 분노에는 여러 가지 형태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특정한 형태의 분노, 곧 울분(embitterment)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울분은 독일의 정신의학자 미하엘 린덴(Michael Linden)에 의해 체계적으로 연구되었다. 린덴은 1990년 독일 통일 이후의 구 동독인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들은 통일된 독일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좌절과 모욕감 등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고,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으로 일어나는 증오와 울분의 감정 상태를 경험했다. 린덴은, 또한 직장에서나 가정에서의 갈등, 심각한 질병, 이혼, 해직 등, 일상생활에서 일어나지만 이례적인 부정적 사건을 경험한 후, 이 사건에 대해 심히 불공정하다고 느끼거나 이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울분, 분노, 무기력감을 드러내는 것도 같은 현상이라고 보고, ‘외상 후 울분장애’(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라는 진단 범주를 제시했다.
린덴은 울분을 ‘모멸감, 모욕감, 패배감을 지니고, 복수심과 무기력감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정서’라고 정의한다. 일반적인 분노와 달리 울분은 자기를 비난하고, 불공평하고 부정의하다는 느낌을 가지며, 기본적인 신뢰가 깨어지고 가치관이 무너지는 경험과 관련된다. 울분을 가진 사람은 모욕감과 부당함을 호소하고 불공정과 맞서 싸우려 하지만 적합한 목적의식을 갖지 못한다.
정신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하면, 이례적인 어떤 사건을 경험하고, 현재의 부정적인 상태가 이 사건의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결과라고 생각하고, 이 사건이 부당하다고 느끼고, 이를 떠올릴 때 분노를 드러내고, 이 사건을 겪기 전에는 다른 뚜렷한 정신적인 문제가 없었을 경우에 울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건과 관련되어, 정서적으로 피해 의식과 무기력감, 자책감, 공포, 의욕 상실, 자살 충동, 불쾌감, 공격성과 낙담 등의 반응을 보이거나, 신체적으로 식욕 부진, 수면 장애, 통증 등을 호소할 수도 있다. 린덴에 따르면 이러한 상태가 3개월간 지속되거나 일상적인 생활과 역할이 방해받을 때 외상 후 울분장애라고 진단할 수 있다.
비록 외상 후 울분장애라는 진단 범주가 학문적으로는 논란이 있고, 아직 공식적으로 진단 범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러한 울분 개념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을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의 한과 화병, 외국인 노동자와 북한 이탈주민, 산재 피해자들의 부정적인 감정도 울분과 관련지어 다룰 수 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나 숭례문 방화 사건을 포함해서 뉴스에 보도되는 홧김에 일어나는 수많은 폭력과 살인 사건 근저에는 울분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부당 해고, 직장에서의 갈등,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이혼 등도 울분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울분자를 위한 돌봄과 변화
P는 교통사고로 피해를 당했지만 피해자인 자신이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억울한 일을 겪었다. 소송까지 가면서 억울함을 풀려고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법체계의 허술한 점을 이용한 상대방에게 결국 재판에서 졌다. 이후 부당한 판결에 대한 억울함과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대한 울분, 그리고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력하게 재판에서 패배했다는 무력감으로 깊은 좌절과 절망감을 품게 되었다.
이처럼 울분을 지닌 사람은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지속적으로 무력감, 격노, 포기, 자기 비난의 모습을 보인다. 울분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울분을 느끼는 이(울분자)를 비난하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다. 울분자는 자신이 불공정한 사건의 억울한 피해자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의 가해자가 혹은 이런 일이 발생하게 허용한 불공정한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네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암시를 주는 말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울분자는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관계, 그래서 굳이 자신이 정당하다고 힘써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관계가 필요하며, 나아가 자신이 갈망하는 정의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 상담자와 의미 있는 돌봄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관계가 형성되면 울분을 촉발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울분자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사건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사건에 대해 묻고, 왜 모멸감이나 부당함을 느꼈는지, 그 일로 자신의 어떤 신념이나 가치가 손상되었는지 등을 질문할 수 있다. 또한 그 사건이 그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한다.
울분자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기 쉽고, 복수에만 관심을 둘 수 있다. 이때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이나 보복의 방법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가해자는 과거의 사건으로 그에게 고통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그 일로 고통스러워하는 울분자에게 이중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라거나, ‘왜 지금까지도 그 사건으로 인해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면서 가해자에게 그렇게도 많은 힘을 실어주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또한 울분과 격노 등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지내는 것보다, ‘더 이상 상처를 입지 않고 잘 생활하는 것도 가해자에게 응징하는 방법이 될 수 있고,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회복해야 가해자와 더 잘 싸울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다음에는 울분을 느끼는 이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울분자는 종종 격렬한 감정에 휩싸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려 하는데, 오히려 마음속에 있는 감정들을 자유로이 표출하여 부정적인 감정도 수용하고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유용하다. 이를 위해 제3자의 입장에서 감정을 묘사하도록 하거나, 격렬한 감정이 생길 때 타임아웃 시간을 가지게 하여 진정시킬 수 있다.
울분자가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고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변화의 목표이다. 울분자가 감정에 휩싸이지 않게 되면,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건과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자신의 관점과 가치에 고착되어 왜곡된 기억을 가질 수 있고, 상황을 편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역할극 등을 통해 가해자의 입장에서도 사건을 볼 수 있게 하거나, 주변 정황들을 충분히 고려해 보게 하거나, 울분자가 고수하는 정의나 명예 같은 가치도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 그가 현재의 고통을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서 사건의 의미를 다시 해석하고, 그 사건과 현재의 고통에 대해 다양한 선택이 가능함을 발견하며, 자유로이 이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변화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가 가해자와 끝까지 싸우기를 원한다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고,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익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성경과 울분
울분의 촉발 요인은 사회적 차별,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갈등, 이혼, 해직, 심각한 질병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이는 죄와 비참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실존을 보여준다. 울분은 자기 밖에 있는 사건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행하는’ 악이 아니라 ‘당하는’ 악, 곧 고난과 고통의 문제와 연결된다. 울분을 지닌 자는 자기에게 일어난 특정 사건을 자기 존재에 대한 부당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분된다. 울분자는 “왜 이러한 일이 내게 일어났는가?”라고 질문한다. 신앙인의 경우에 이러한 질문은 “왜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허락했는가?”라는 신정론의 질문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성경적으로는, 욥의 고난을 울분자의 고통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욥은 극심한 충격적 사건들을 중첩적으로 겪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울분의 촉발 요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욥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자기가 아무런 죄와 허물없이 고통을 당한다고 호소하며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은 울분을 지닌 사람들과 같은 마음 상태를 보여준다. 욥은 실제로도 의인으로 묘사되지만,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와 같이 죄가 없고 의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울분을 지닌 사람은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고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욥과 유사하다.
욥의 잘못을 찾으려 하고 하나님이 무죄한 자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고 설득하는 세 친구의 조언은 욥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욥은 친구들에게 “나를 위로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너희는 하나같이 나를 괴롭힐 뿐이다”(욥 16:2, 새번역)라고 호소했다. 울분자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고통스러워하는 울분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울분자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특정 사건에 고착되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회복의 길로 나아갈 때, 그 사건과 상황 전체와 가해자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가치도 여러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도 욥에게 광대한 창조 세계를 제시하며 욥이 하나님과 세계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도록 깨우치셨다.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울분자는 무엇보다 그 사건이 일으킨 고통과 고난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도달할 수 있다. 그는 결국 고통 후에 성장이 있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고 고백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통을 일으킨 그 사건 자체가 긍정적이거나 성장을 일으켰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고, 고통을 준 사건과 현재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게 되는 변화와 성장의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울분과 지혜는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상반되는 대응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울분자와는 달리 지혜로운 사람은 고통을 주는 사건을 성찰하고, 그 경험에서 의미를 찾아내며,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건을 재평가하고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배우려고 함으로써 감정을 조절한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잠 29:11). 울분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삶의 지혜를 깨닫고 터득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앙인의 경우에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고(시 121:7)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시 34:19)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얻게 될 때, 울분에서 자유롭게 된다.
이 글은 “울분에 대한 목회신학적 탐구”, 「신학과 사회」 33/3 (2019), 115-137에 게재된 글을 약간 수정하여 작성했습니다.
첫댓글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고,지혜로운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지혜로운자 되기를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