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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화가가 세상의 가장 평화로운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 여행을 했습니다. 이곳 저곳을 다 가봤지만 진정한 평화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몇 달 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빠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뛰어나와서 “아빠!” 부르며 품에 안깁니다. 그리고 아내가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서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먹을 때 화가는 깨달았습니다. ‘아하, 이게 진정한 평화구나!’ 그리고는 그 가정이 식사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두 남녀가 만나서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아 양육하게 됩니다. 그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가정을 통해서 인격을 배우고 삶을 배우고 하나님을 배우고 신앙을 배우게 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기 전에 박목사님과 함께 임승만 집사님의 부친 임목사님과 모시고 호윅에 있는 Historic Village(역사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눈 여겨 보았던 것 가운데 하나가 집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울타리였습니다. 그 울타리는 목재소에서 다듬어진 나무로 된 것이 아니라 그냥 나뭇가지로 자연스럽게 역어서 만든 울타리였습니다. 그런 울타리가 참 편안하게 보였습니다.
옛날에 갈대나 대나무, 혹은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서 그 가정의 경계를 정해놓은 것이 바로 울타리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온 동네의 짐승들이 드나들어 마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반면에 울타리를 단단히 쳐놓게 되면 그 가족만을 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울타리 안에서 쉼과 여유를 경험하고 행복은 경험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격려하며 용서하는 법을 배워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허물어져 갑니다. 가정을 세워가기가 쉽지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울타리를 든든히 해야겠습니다. 시편 128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가정의 울타리를 세워가야 할지를 생각해 보십시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입니다.
시편 128편 1-2절 말씀 읽어봅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길을 따르는 가정은 복을 받습니다. 그 복은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식구들이 굶지 않고 먹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할 수 있다는 말씀합니다.
여호수아 23장에 여호수아는 백성을 모아놓고서 선언했습니다. “오늘 너희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 자신과 그의 가정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담대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가정은 오직 하나님만을 선택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기를 선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을 보호하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형통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이라는 책을 낸 전기 작가는 말하기를 ….
링컨은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어디로 봐도 대통령이 될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될 재목 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가정배경도 좋지 않았고, 모든 것에 그리 능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링컨이 10살 때 어머니 낸시가 세상을 떠납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 링컨에게 유산을 주는데 그것이 바로 손에 익은 성경책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성경인데 이것을 너에게 준다. 링컨아! 이 성경을 잘 읽고 이 성경 말씀대로 네가 산다면 넌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단다.”
이렇게 어머니는 링컨에게 유언을 남겨 주었습니다. 링컨이 그 성경을 열심히 읽고 실천할 때에, 미국에서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대통령, 세계인의 존경 받는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것이 가정이 견고해지는 최선의 조건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울타리를 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그러면 우리 가정에는 화목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시편 128편 3절에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 어떤 복을 누리게 될까요? 포도열매가 여름에 탐스럽게 맺히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남편의 눈에는 아내가 그저 탐스럽게 맺힌 포도열매처럼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금술도 좋고 화목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네 식탁에 둘러앉은 어린 자식들은 마치 감람나무처럼 사랑스럽습니다. 감람나무는 올리브나무인데 그것은 관상용으로도 보기 좋고 그늘도 되고 열매는 기름으로도 쓸 수 있어서 가정에 요긴한 나무입니다. 그 어린 자녀들이 식탁에 둘러앉았는데 너무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울타리 안의 단란한 행복한 모습입니다.
잠언 15장 17절에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찐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채소를 먹고 가난해도 화목한 가정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잠언 17장을 보니까 “마른 떡 한 조각만 놓고도 화목하는 것이 고기가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진수성찬를 먹으며 다투며 사는 것보다는 먹는 것이 좀 부실해도 화목한 것이 최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란한 가족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넘치는 것도 있습니다. 저를 한번 따라해 보십시오. “내 잘못입니다 내 탓입니다.” 이 말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 거실에서 누가 물을 먹다가 컵을 바닥에 두었습니다. 다섯 살 된 손자가 그것을 모르고 뛰어가다가 컵을 발로 차서 온 거실이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가정은 정말 화목한 가정입니다. 그것을 보고는 할머니가 나오더니 “아이고 큰일 났다 어떡하냐? 내가 할 일도 없는데 이것 좀 치워 놓을걸. 이건 내 잘못이야. 애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하고 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랬더니 며느리가 나와서 “어머니 아니에요! 제가 보살펴야 했는데 이것은 제 잘못이 커요.” 또 물을 먹었던 장본인인 아들이 나와서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물을 먹고 텔레비전을 본다고 옆에 놓았는데 제가 치워야 하는 것을 치우지 않아서 그러니 이것은 제 잘못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손자가 “아니에요 할머니, 그것은 제 잘못이에요 제가 뛰어다니지 않고 걸어 다녀야 했는데 뛰어가다가 발로 찼잖아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 가정은 화목하지 않을래야 화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 자기의 잘못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러한 일들이 또 다른 가정에 일어난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세상에, 며느리는 뭐하느라고 자식새끼하나 살피지 않고 애가 발로 차서 이 난리를 만드냐, 여기가 무슨 축구장이냐! 애새끼는 눈도 없느냐 그것을 왜 발로 차느냐” 이렇게 난리가 나고 그 일 때문에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한 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은 이편도 못 들고 저편도 못 들고 가정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서 가족들은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므로 자신의 잘못한 원인을 찾게 되고 남의 허물을 덮게 되니 가정은 화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연히 울타리 안에는 웃음이 흘러나오지 않겠습니까?
3. 이런 가정에는 부모를 공경합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 말씀을 보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입니다.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사람은 보이는 부모께 순종합니다. 순종이란 말을 뭐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순종이란 말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귀담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요즘 부모님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섭섭하게 느끼게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어떤 말입니까? “엄마 아빠는 몰라도 돼요!”라는 말입니다. 컴퓨터에 대해 아빠가 무엇을 하다가 “이것이 뭐니? 이것 좀 알고 있니?”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세요?” 하고 핀잔을 주는 것입니다.
특히 이민을 와서 영어가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부탁을 하면 짜증을 내고 귀찮아하면서 부모님의일을 부모님이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나옵니다. 사실은 못하는 영어로 버벅거리며 힘들게 살면서 키워놓았더니 저렇게 하구나 앞으로 나이가 더 들면 어떻게 할까 하는 마음으로 상처가 됩니다.
‘빅토르 위고’의 유명한 소설가운데 나오는 대목입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나라가 온통 혼란스럽고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고통 당할 때 한 군부대가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가에 한 중년 여인이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버려져 있습니다. 너무 굶주려 기진맥진하여 탈진되어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상사가 그것을 보고 빵 한 덩어리를 꺼내서 여인에게 건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 지켜봤더니 그 여인이 빵을 세 조각으로 똑같이 나누어서 세 아이에게 하나씩 주어서 먹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는 사병이 상사에게 묻습니다. “상사님! 그런데 저 여자는 누구일까요? 자기는 먹지도 않고 아이들에게만 빵을 나누어 주네요.”
그래서 상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넨 그걸 모르나? 보나마나 저 분은 아이들의 어머니라네” 자기는 배고파도 아이들에게 먼저 나누어 주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이런 부모님의 사랑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부모에게 효를 다할 때에 내가 네게 복을 줄 것이고 네가 땅에서 장수하고 네가 잘 될 것이라”고 축복의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참으로 효자였습니다. 십자가의 마지막 고통스러운 순간에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십자가 아래에서 울고 계시는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합니다. “요한아! 네 어머니라” 그 순간부터 요한이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로 모셨습니다.
‘반포보은(反哺報恩)’이라는 말을 알고 있습니까? 즉 ‘까마귀도 부모의 은혜를 안다’는 말입니다.
까마귀가 두 마리가 나무에 앉아 있을 때에 어미 새와 새끼 새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어미 새와 새끼 새가 있는데 나무에 앉아도 어미 새는 늘 위에 앉고 새끼 새는 늘 아래에 앉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가 새끼 새에게 먹이를 먹여주지만 한참 후에는 이것이 바뀐다고 합니다. 어미 새가 나이가 들어 날지 못하면 새끼 새가 날아가서 먹이를 물어다가 엄마와 아빠의 입에 물어다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반포보은(反哺報恩)’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나아주고 길러준 부모의 은혜를 모르면 까마귀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신의 부모가 나쁜 부모라고 생각하고 모시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부모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부모도 허물이 있을 수 있고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노아는 경건한 인물이지만 하루는 포도농사를 짓고 나서 포도주를 짰는데, 그것을 과하게 많이 먹어서 취하여 대낮에 벌거벗고 누워있었습니다. 둘째 아들 함이 그것을 보고 동네방네 다니며 소문을 내고 자기 형제들에게 가서 흉을 보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아들 셈과 야벳과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치며 들어가서 아버지의 겉옷을 덮어드렸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노아는 함에 대해서 축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해서 그 민족을 더 부강하고 번성한 민족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부모의 허물을 덮어주는 그것이야말로 큰 효도 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잠언 19장 26절에 보면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쫒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 23장 22절에 보면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시편 128편의 말씀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시편 128편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복된 울타리를 치시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어 단란함과 서로 공경함이 넘치는 가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