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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바라보는 창조 세계 (히 11:1~12)
2012,9,23.
*** 책 <두 배 기적의 리더 엘리사> 저자 조 봉희 목사는
“하나님은 당신도 돌보아주신다”에서
평양 과부 백선행 이라는 유명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한국 개신교 선교 초창기에 평양은 우리나라 최초로 ‘장로교 신학교’가 세워진 곳이니 정말 영광된 곳이니 영광된 역사를 가졌습니다.
백선행 집사님은 여성이며 과부였지만 평양의 기독교사학의 ‘대모’로 불린 분입니다.
백선행 집사님은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하여 14살 어린나이에 수원 사람 안재욱과 결혼했지만 겨우 2년 만에 청상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청순한 신앙으로 최선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삯바느질을 비롯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봉숭아꽃을 심어 모종도 팔고 꽃도 팔고 열매가 맺히면 씨도 받아서 팔았습니다.
매일 질동이를 머리에 이고 20리 떨어진 시장에 가서 음식찌꺼기를 얻어다가 돼지를 키웠습니다.
억척스럽게 일하여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이름도 없던 백집사님을 ‘악바리 백 과부’ ‘구두쇠 백 과부’ 라고 불렀습니다.
스스로 ‘자계삼훈’(自戒三訓’) 이라고 정한 원칙 즉, “먹기 싫은 것 먹고, 입기 싫은 것 입고, 하기 싫은 일을 하자”는 원칙 그대로 억척스럽게 일을 해서 30세 즈음에는 일 년 50석지기 중 농인이 되고 40세 즈음에 그 두 배인 100석지기 부농이 되었습니다.
지독하게 돈을 벌어댔고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습니다.
60세 즈음에 큰돈을 내놓아 대동군 용산면 객 석리에 돌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본래는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큰 비만 오면 떠내려가서 마을사람들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마침 그 다리는 남편의 묘소로 가는 길목이기도 했습니다.
2천원이 넘는 돈을 내놓았는데 당시 쌀 한 가마니가 4~5원쯤이었다니 당시로서는 무척 큰 액수였습니다.
1911년 8월에 다리가 완공되자 인근 사람들이 이름도 없던 백집사를 더 이상 ‘과부’ 라고 함부로 부르지 말자는 뜻으로 ‘선행(善行)’ 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주어 그때부터 ‘백선행'이 된 것입니다.
70세 즈음에 억척스럽게 이백 낭의 돈을 모아서는 시부모님과 남편을 위해 선산을 만들어 드리려고 대동강 변에 있는 '만달 산‘ 이라는 야산을 하나 샀습니다.
땅문서를 손에 쥔 그는 감개무량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남편의 무덤을 이장하려고 산 구경을 가보니 전혀 쓸모없는 산이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없는 돌산이었습니다.
완전히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힘없는 여인으로 억울함을 하소연할 길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면밀히 살피지 못한 자기 책임이 크다고 인정하고는 다른 누구를 원망하지도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나 일본의 건설회사가 대동강에 다리를 놓는 공사를 하게 됩니다.
건설회사에서는 시멘트 공장을 세우고자 지질조사를 하던 중 대동강 옆 ‘만달 산’이 매우 질 좋은 석회암 산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산 주인을 찾으니 바로 백선행 이었습니다.
일본인 기업주 ‘오노다’는 이 산을 사려고 열러 번 시도했으나 백선행은 절대로 팔 수 없다고 냉정히 거절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백 과부가 배짱을 부리는 줄 생각하고 그가 매입한 가격의 백배인 이만 냥으로 준다고 했으나 또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일본 사람은 평안도 도지사, 평양 부윤을 동원하여 백선행이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에게 설득해 달라고 찾아왔습니다.
그녀가 교회 목사님의 말씀은 잘 순종한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백선행 집사를 심방하여 산을 팔지 않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때 백선행 집사님의 대답이 참 감동적입니다.
“목사님,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사기를 당하여 돌산을 샀는데. 다른 사람이 그런 산을 이만 냥에 사간다면 그 사람 망하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제 양심으로 나 혼자 망하고 말아야지 다른 사람 망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얼마나 청순한 신앙의 사람입니까?
백선행 집사는 목사님으로부터 그 산이 시멘트를 만들 수 있는 석회암산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도 이득을 보고 대동강에 튼튼한 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그 산을 기꺼이 이만 냥에 팔아 백배의 이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백선행 집사가 고생 끝에, 피나는 노력 끝에 하나님께서 부자로 만들어주셨다는 것으로 ‘헤피 앤딩’ 하지 않았습니다.
백선행 집사님은 그 돈으로 교회를 짓고, 학교를 세우고, 한국의 간디라고 불리는 조만식 장로님의 독립운동을 돕고, 또 기독교 회관 건물과 평양신학교 제단 설립에 막대한 재산을 바치는 등 아낌없이 헌신했습니다.
83세로 자택에서 별세할 때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였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하였습니다.
평양의 22개 단체가 참여하고 총독부조차 적극 도와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사회장이지만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문하여 국장(國葬) 못지않게 성대하게 치렀다고 합니다.
첫째, 믿음의 실상 (1~3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 실상 옛 조상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좋은 증언을 받았습니다. 3.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 곧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생기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1,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2, 선진들의 믿음
3, 믿음으로 바라보는 창조 세계
둘째, 믿음의 선진 아벨과 에녹 (4~6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훌륭한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런 제물을 바침으로 말미암아 그는 의인이라는 증언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두고 증언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 믿음을 매개로 해서, 아직도 말하고 있습니다.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옮겨 가셨으므로, 우리는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옮겨 가기 전에,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다는 증언을 받은 것입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1, 아벨의 죽음
2, 에녹의 믿음
3,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셋째, 믿음의 사람 노아 (7절)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을 지시하셨을 때에, 경외심을 가지고 방주를 지어서,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른 의를 유업으로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 노아의 경건
2, 노아의 방주 건조
3, 의의 후사가 된 노아
넷째,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8~10절)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차 분깃으로 받을 땅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 그는, 마치 타국에서와 같이 약속의 땅에서 거류하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10.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1, 믿음 속에 부름 받은 아브라함
2, 믿음으로 약속의 유업을 받은 아브라함
3, 아브라함이 바라본 소망
다섯째, 믿음의 사람 사라 (11~12절)
“믿음으로 사라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약속해 주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12.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또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자손들이 태어났습니다.”
1, 믿음으로 잉태한 여인
2, 약속의 하나님을 미쁘시게 본 여인
3, 생육의 축복을 받은 여인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에 마치 전기의 힘이나 다이나마이트의 힘이나 기계의 힘과 같이 실제적인 힘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으로 홍해를 갈라지게 했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습니다.
또 믿음으로 죽은 자와 같던 할머니 사라가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잘 활용하면 하나님 놀라운 기적을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게 할 수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는 믿음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부정적인 말이요, 거짓말입니다.
또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은행에 돈을 맡기겠습니까?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우체국에 중요한 편지나 돈이나 물건을 부치겠습니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이발소에 가서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시퍼런 칼날로 면도를 해달라고 얼굴과 목을 맡기겠습니까?
믿음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다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 매일 믿음을 활용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가운데는 믿음이 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또 어떤 성도는 “나는 믿음이 적다” 고 말하는 사람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십시오,
마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고 했습니다.
겨자씨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적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믿음을 활용할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믿음을 활용하면 실제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성공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승리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또 없는 것도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믿음에는 분명한 기대와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대가 없고 바라는 것들이 없는 사람을 통하여 절대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야곱과 같이 매달리며 바라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을 받는 것도 받고자 하는 “바라는 것”이 있어야 그런 은사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소원과 바람과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축복을 받게다 던지. 교회 부흥을 간절히 원한다던지. 혹은 사업에 성공하게다 던지 하는 간절한 소원과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소원은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분명한 목표가 정해져야 믿음은 확실해지고 기도도 더 힘이 있이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가 정해져야 믿음도 확실해지고 기도도 더 힘이 있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마음에 실상을 그려야 합니다.
분명한 목표를 정했으면 그 바라는 실상을 마음에 그려서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를 정했으면 그 바라는 것을 막연히 생각만 하지 말고 마음속에 다 이루어지는 것처럼 영상을 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 꿈을 가졌습니다.
열한개의 별과 해와 달이 자기에게 절하고 열하나의 곡식 단이 자기 곡식 단에게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형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미움을 샀습니다.
그것을 인해 종으로 팔려가고 옥에도 갇히고 갖은 환난과 시련을 겪었으나 그 꿈을 버리지 않고 나갔더니 훗날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고 부모님과 열한 형제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마침내 그 어렸을 때에 꿈이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꿈을 가지십시오!
구체적인 영상을 가지십시오!
70인 역본 잠언서 29:18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심리학적으로도 잠재의식은 믿는 것을 반드시 실현시키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롬 4:17 “기록 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입으로 시인하며 나아갈 때에 믿음이 확실해지며 그 믿음대로 실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시인하며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입으로 부정적인 말이나 불신앙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입으로 시인하고 긍정할 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눈에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믿음으로 영상을 붙잡고 입으로 시인하며 나갈 때에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때가 오고야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불타는 소원을 갖고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창조적인 역사를 이룩하려면 기도를 통하여 이제 되었다고 하는 信念이 올 때까지 부르짖고 불타는 소원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불타는 소원을 갖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다가 다 된 것같이 확신이 오고 믿음이 오면 그 때엔 응답이 온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렘 33: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응답을 받고 믿음이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부르짖어 보고 응답을 받아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렘 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해야 믿음이 자라고 응답을 받아 보아야 확증이 굳어지는 것입니다.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마 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신앙의 능력이 있기에 믿음을 활용해야 합니다.
요일 5:1~12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가진 자의 능력을 말씀하고 있는
요일 5:4~5 “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맺는 말
첫째,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악한 세상으로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가득 찬 곳입니다.
또한 사탄이 역사하는 곳으로 미워하고 시기하게 하여 죄를 범하게 하여 하나님과 분리되게 합니다.
죽음의 권세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둘째, 신앙은 그 자체가 승리의 힘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부활을 통하여 극복하셨습니다.
사망권세에 대한 승리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믿는다는 것, 그 자체가 승리인 것입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하였습니다.
세상을 이기었다니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과연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신앙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하였습니다.
세상은 모든 죄악의 근원지가 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로 하여금 넘어지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더 이상 세상이 왕 노릇하지 못합니다.
죽음도 이기고 고난과 역경도 이기어서 개인이나 사회 그리고 온 세상까지 변화하게 만듭니다.
어둠과 절망 속에서 방황하는 자들에게 소명과 생명을 제공해 주어 이 세상에서 더욱 힘차게 살아가도록 합니다.
*** 책 <그대는 생각보다 멋지다>의 저자 황은우 목사는
“내 경험에 값을 매겨라”에서
한 스승이 제자에게 큰 깨달음을 주기 위해 돌 하나를 주면서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이것을 시장에 가서 5냥을 부르며 팔겠다고 해라. 그러나 절대 팔지는 말아라.”
제자가 보니 그냥 짱돌이다. 1냥은커녕 몇 푼도 못 받게 보인다. 하지만 스승이 시키는 대로 시장에 나가서 5냥을 부른다.
사람들이 다 비웃으며 지나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돌을 유심히 보더니 5냥에 사겠다고 한다.
제자는 스승이 시키는 대로 팔지 않고 돌아왔다.
다음날 스승은 그 돌을 1,000냥을 부르되, 이번에도 팔지 f말라고 한다.
사람들은 무슨 돌 하나에 그렇게 하냐며 궁금해 하기도하고 그 돌 이야기가 펴져 나가서 인ㅍ파가 엄청나게 몰렸다.
어떤 사람이 드디어 1,000냥에 사겠다고 말했지만 제자는 스승이 시킨 대로 이번에도 그냥 돌아왔다.
드디어 스승이 돌의 비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제야 깨닫겠느냐?
사실 이 돌은 값비싼 보석이다. 가공을 하지 않아서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 5냥의 눈을 가진 사람은 5sis 정도에는 사겠지만 100냥에는 안사지. 하지만 1,000냥 이상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1,000냥을 주고서라도 사는 것이다.
믿음을 활용하려면 창조의 힘을 받습니다.
1, 믿음에는 분명한 기대와 소망이 있어야
2, 마음에 실상을 그려야
3, 부르짖고 기도해야
4, 신앙의 능력이 있기에 믿음을 활용해야
1),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2), 신앙은 그 자체가 승리의 힘입니다.
첫댓글 백선행집사님의 믿음에 은혜를 받습니다.
오늘에도 그렇게 순수하고 열정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만들지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