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장로의 헌신이 빛나게 하려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세브란스’와 ‘연세’라는 이름은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와 젊은이라면 누구나 입학하기를 열망하는 명문 대학의 상징이다. 세브란스는 신촌, 강남, 용인, 원주에 자리 잡은 병원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배출해 내는 대표적인 명문 사학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대다수는 이 거대한 축복의 출발지가 어디였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그 내막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세상적인 번듯함 뒤에 숨겨진 영적 본질의 상실이다. 선망의 대상이 된 연세대학교가 원래 누구에 의해, 무엇을 목적으로 세워졌는지, 그리고 지금 그 선한 목적에서 얼마나 멀어져 벗어났고 변질되어 버렸는지를 아는 이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연세대학교와 세브란스 병원의 뿌리에는 120년 전,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Louis H. Severance, 1838~1913) 장로와 그 가족의 뜨거운 헌신이 있었다. 캐나다 출신 의료 선교사 올리버 R. 에비슨(O. R. Avison)은 왕립 병원이었으나 난항을 겪던 제중원을 개혁하고 단순한 시술을 넘어 조선인 의사를 양성할 현대식 병원 건립을 열망하고 있었다. 제중원은 1885년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 선교사가 고종의 신임을 얻어 세웠는데 4대 원장으로 에비슨이 취임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 정부 관료들의 부패와 간섭, 위생 문제로 이름만 남은 채 파행 상태였다.
1900년 4월, 뉴욕 만국선교대회(Ecumenical Missionary Conference, New York, 1900)에서 에비슨 선교사의 연설을 통해 조선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영적·육적 비참한 실상을 접한 세브란스 장로는 하나님 나라와 복음 전파라는 거룩한 소명에 감동하였다. 그리고 병원을 짓는 데 얼마가 필요한지 물어 즉석에서 1만 달러(현재 가치로 한화 5억 원을 상회한다)라는 기부를 결정하며 조선 선교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실제 병원을 건립하고 운영하기까지는 총 5만 달러를 기부했다.
세브란스는 존 D. 록펠러와 함께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을 창립하고 이사를 역임하며 거대한 부를 쌓은 자본가였다. 그런데 그는 록펠러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록펠러가 거대 재단을 통해 자신의 이름과 부의 영향력을 세속적으로 확장해 간 것과 다르게, 세브란스 장로는 순수한 장로교 신앙에 기초해 자신의 부를 오직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했다.
그는 자신을 철저히 감추었으며, 병원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사양할 만큼 겸손하게 오직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 건설만을 위해 물질을 드렸다. 이렇게 드려진 세브란스 장로의 재정은 1904년 한국 최초의 현대식 종합병원인 ‘세브란스 기념병원’으로 결실을 맺었다.
세브란스의 아들 존 L. 세브란스는 1907년에 아버지 루이스 세브란스 장로, 누이 엘리자베스 세브란스와 함께 직접 조선을 방문하여 세브란스 기념병원과 선교 현장을 둘러보고 때마침 일어난 조선의 대부흥 운동을 직접 경험하였다. 그리하여 아들 존 세브란스는 1913년 아버지가 소천한 후에도 계속해서 후원하여 1934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총 12만 4,500달러(현재 가치로 수백억 원)라는 거금을 기부하였다.
딸 엘리자베스 세브란스 역시 오빠 존과 함께 아버지의 선교 유지를 이어받아 조선 선교를 지속해서 후원했다. 1907년에 조선을 방문했을 때 조선 여성들과 아이들의 비참한 실상을 목격하고 여성 의료 인력 양성과 간호학교 설립, 병원 내 여성 병동 및 간호원 양성소 지원에 가문 차원의 재정을 보탰다.
한편, 1915년 언더우드 선교사는 복음주의적 기독교 인재 양성을 위해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했다. 의료 선교를 담당하던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 학문 및 기독교 리더십을 담당하던 연희전문학교는, 일제의 탄압과 해방 후의 혼란기 속에서 교육과 의료가 통합되어야 강력한 복음적 시너지를 낸다는 비전 아래 1957년 두 학교를 합쳐서 ‘연세대학교’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 두 축은 단순히 병을 고치고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거대한 전초기지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 아름다운 동산의 모습은 어떠한가. 복음 전파라는 절대적 우선순위와 생명의 말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세속화된 사회봉사와 학문적 명성만 남았다. 오늘날 대다수 기독교 기관이 복음 전도를 언급할 때마다 섬김과 봉사를 앞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섬김과 봉사는 복음 전도의 문을 여는 접촉점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이는 결국 복음의 본질을 뒷전으로 밀어내는 물타기에 불과하다.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이 빠진 섬김은 기독교를 그저 세상의 수많은 봉사단체 중 하나로 전락시킬 뿐이며, 실제로 오늘날의 연세대학교와 한국교회 생태계는 이미 그러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초기 선교사들과 세브란스 장로가 바랐던 것은 세상적 명문 대학이나 대형 병원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복음의 능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연세대 신학을 비롯한 한국교회의 영적 토양에는 자유주의 신학과 세속주의라는 독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아름다운 동산을 덮어버렸다. 정글처럼 우거진 독초를 제거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처음에 흘렸던 선구자들의 눈물겨운 헌신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 미국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에 있는 레이크뷰 공원묘원에 가면 록펠러의 웅장한 오벨리스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브란스 가문의 묘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세브란스는 살아생전 조선 땅을 직접 밟은 것은 단 한 차례뿐이었지만, 그와 그의 가족이 조선을 향해 펼친 선한 사마리아인의 손길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연세대학교 전교생이 가기 곤란하다면 최소한 연세대학교 교수들과 세브란스 병원의 의료인들이라도 이곳을 필수 방문 코스로 삼아 그들의 기원과 목적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브란스 가문의 묘원은 정갈하고 아름답게 관리되고 있다. 그 정갈한 모습을 보며 필자는 문득 이런 생각에 잠겼다. “만일 이곳을 관리하지 않고 수십 년간 방치한다면 잡초와 잡목이 자라고 덩굴식물이 휘감아 황폐한 정글처럼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해서 잡초를 베어내고 관리했기에 세브란스 가족 묘원은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묘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를 향한 세브란스 장로의 헌신이 계속해서 아름답게 빛나게 하려면, 영적 독초를 뽑아내는 관리가 절실하다. 특히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자유주의 신학(성경 비평학)을 가르쳐 한국교회를 성경의 신적 권위에서 멀어지게 하고 구원 얻는 순수복음 진리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독초를 제거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오늘날 전 세계 선교학은 복음 전도 우선성 대신 사회적 섬김이 그 자리를 차지함으로 복음의 본질을 덮어버리는 총체적 선교가 유행하고 있다. 이것은 140년 전 선교사들이 목숨을 걸고 어두운 조선으로 찾아온 목적도 아니며, 세브란스 가문이 그 많은 재산을 선뜻 보내어 준 목적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성경의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교회가 다시금 영적 경각심을 가지고 복음의 순수성을 회복할 때, 비로소 세브란스 장로가 꿈꿨던 하나님 나라의 진짜 열매가 다시 맺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