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2일차
오늘 답사지인 흥성고성, 즉 영원고성(寧遠古城)은 호텔과 가까웠다. 8시 15분부터 답사를 시작했다.
1626년 누르하치가 이끄는 후금군이 명나라 원숭환이 지키던 영원성을 공격하다가 큰 패배를 당하고 철수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영원성은 후금(청)이 거듭 공격했지만, 끝내 함락시키지 못했다. 원숭환은 멸망해가는 명나라를 지킨 최후의 보루, 충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원숭환이 누르하치, 홍타이지의 거듭된 공격을 막아낼 수 있던 이유로 거론되는 것이 홍이포(紅夷砲)의 활용이다.
영원성 동문에서 답사를 시작했다. 동문 앞에는 홍이포 5문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홍이포에 대해 몇 가지 설명을 했다. 포르투갈에서 만들어진 홍이포는 명, 청, 조선의 전쟁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영원성 전투에서 홍이포의 역할은 과장되어 알려져 있다. 홍이포는 포탄이 터지는 대포가 아니다. 그저 커다란 쇳덩이를 멀리 보내는 대포일 뿐, 정확한 조준도 어려웠다. 단지 진격해오는 적의 보병과 기병 대열을 흐트러뜨리거나, 성벽을 부술 때만 유용한 무기였다. 그럼에도 굉음을 내며 날아오는 포탄과 쇳덩이에 맞고 뛰겨 나온 파편이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었음을 분명하다.
조선은 벨테브레이, 하멜을 홍이포 제조 공장에서 일하게 할 만큼, 홍이포에 열광했다. 그렇지만 홍이포를 능가하는 새로운 대포는 만들지 못했다. 그 결과 병인양요, 신미양요에서 참패를 당했다. 홍이포는 동아시아 전쟁사를 바꾼 무기지만, 동시에 동아시아에서 무기 혁신을 막는 존재였다.
흥성고성 동문으로 들어와서, 가운데 종고루로 갔다. 종고루에 올라가 성을 둘러보았다. 중문학과 교수님은 청명상하도(淸名上河圖)가 생각나신다며, 마치 사극의 무대에 온 듯하다고 하셨다. 이곳에서 전쟁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셨다. 종고루를 중심으로 4대 문으로 연결되는 대로변 좌우에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그곳에서 열심히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생활사의 기본은 역시 경제다. 성의 기능 중 하나는 ‘일상성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졌다고 해도, 사람들은 오늘 하루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종고루에서 남문 방향에 조대락, 조대수의 패루가 있다. 연암 박지원이 신의 작품이라고 극찬할 만큼, 잘 만들어진 패루임에는 분명했다. 유교, 불교, 도교의 각종 상징을 새긴 조각 등이 멋졌다. 이곳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남문 옆으로 성벽에 올라, 서쪽 각루까지 걸었다. 성은 중국 4대 고성답게 잘 보존되어 있었다. 벽돌로 견고하게 쌓은 성이지만, 성가퀴 즉 여장은 매우 단순했다. 그저 모을 숙일 수 있을 정도로 쌓았을 뿐이다. 먼거리의 적과 가까운 거리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원총안, 근총안의 구분이 없다. 벽돌로 한 곁은 쌓은 것이라고, 포탄 공격에는 약할 것 같았다. 다만 벽돌로 쌓은 성이라, 성벽 기울기도 80도 정도 되어 보였다. 적이 기어오르기 힘든 구조다. 성벽의 폭도 넓어, 화포 공격에도 어느 정도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 원숭환이 후금군을 격파한 진짜 이유는 현지인으로 구성된 관녕철기(關寧鐵騎)라 불린 최정예 기병 부대를 육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벽의 방어력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누르하치와 홍타이시의 공격을 막아낸 영안성은 크게 파괴되지 않아,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었다. 관광객은 많지 않았지만, 도시는 나름 활기차 보였다.
1시간 30분 정도 답사를 하고 난 후, 2시간 30분을 달려 12시 무렵 조양시에 위치한 봉황산이 보였다. 조양 시내 식당에 들어가기까지 약 30분이 흘렀다. 만두로 점심을 먹은 후에, 1시 30분에 조양박물관에 도착했다. 3년 전 새로 이전해 오픈한 조양 박물관은 삼연(三燕)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박물관이지만, 고대부터 근대까지 모든 역사를 다룬 볼만한 박물관이었다. 특이한 것은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예전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 것을 박물관 전면에 배치한 점이다. 다만 예전에 홍산문화의 중심지롤 놓고 적봉시와 경쟁하며, 옥저룡(玉猪龍)을 강조하던 분위기는 없어진 듯하다. 박물관에 볼 것이 많아, 3시가 넘어서 답사를 마쳤다. 다만 북연(北燕)과 고구려의 관계가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고, 고구려와 수, 당 전쟁에서 격전지였다는 내용도 없다. 또 고분벽화도 충분하게 전시하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그럼에도 조양시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두루 다루었고, 실크로드를 언급하며 교류사를 강조했다는 점 등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또 이곳에서 고구려 유민 고운의 후손으로 고씨 부인의 묘지석을 본 것도 좋았고, 여성 생활 특별전 전시도 좋았다.
박물관을 본 후, 대릉하 강변을 보고 싶어 버스를 강변에 정차주셨다. 대릉하와 조양시의 주산인 해발 660m 봉황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대릉하 물을 직접 만져보기도 했다. 그리고 강변에서 커다란 민물조개도 보았다. 과거에 보았던 대릉하 옆에서 조죽을 파는 상점들을 없어지고, 강변은 공원으로 변모했지만,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아직은 개인적 견해에 불과하지만, 나는 조양을 고조선이 동쪽으로 중심지를 옮기기 전에 수도인 아사달로 추정하고 있다. 대능하를 보면서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약 15분 정도 대릉하에서 사진을 찍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3시 40분 조양시의 대표 유물인 조양 북탑에 갔다. 북탑을 사진 찍고, 남탑까지 연결된 모용가를 걸었다. 모용가에는 골동품 가게가 많았다.
남탑을 둘러보고, 버스에 탄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이제부터 적봉까지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야 한다. 적봉까지 버스로 2시간 반 정도 소요되었다. 버스 안에서 요서 지역 방언을 연구하신 박사님과 고조선 문제, 갑골문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미려하(美麗河)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었다.
적봉으로 가는 길에 좌우를 보니, 갑자기 움푹 파진 지형도 많았다. 확실히 건조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고속도로 주변에 나무를 심어, 주변을 보는 맛이 조금 떨어졌다. 적봉에 도착하니 저녁 7시. 한국식 고기구이 식당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호텔에 들어오니 밤 9시. 오늘도 바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