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읽·걷·쓰 한다
文霞 鄭永仁
인천지하철 광고에 ‘인천은 읽 · 걷 ‧ 쓰 한다’ 고 도배하다시피 했다. ‘읽 ‧ 걷‧ 쓰’는 읽고(read), 걷고(walk), 쓴다(write)의 앞 글자를 딴 줄임말이다. 그러면서 ‘읽기’는 지혜와 지식을 쌓고, ‘걷기’는 건강을 사유하고 힘을 기르며, ‘쓰기’는 자신 및 타인과 소통‧공감을 하지는 것이란다.
하기야 학교 교육의 기본은 독서산讀書算이 아닌가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디지털 교육의 선봉을 달리고 있다. 남아도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으로 전교생에게 무료로 태블릿 pc를 나누어줄 정도이다.
그런데 각국에서는 디지털 교육의 제동을 걸고 있다. 디지털 교육으로 인한 학력 저하 때문에 ‘종이책을 읽고 손글씨를 쓰는 아날로그 교육으로 회귀라 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초등학교 읽기 능력의 저하로 6세 미만 아동에게는 디지털 교육 전면 금지를 시행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가 학습능력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는 학생의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3학년부터 필기체 쓰기를 시킨다고 한다. 불란서 이태리 네덜란드는 내년부터 교실에서 스마트 폰 사용을 금지 시킨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 발명의 선도적 역할을 했던 인사들은 자식들이 어렸을 적엔 스마트 폰을 사용하게 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디지털문명의 약진은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지만 아직도 선뜻 디지털문명에 다가가지 못하는 나이 든 아날로그 문명과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교육 당국은 “필기체 수업은 자기 이름을 서명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필기가 더 실질적이고 진정성 있게 표현하고, 더 비판적으로 사고하게 하는 데 도움에 되는 중요한 삶의 기술이라는 사실이 연구 결과로도 분명 나타났다”고 밝혔다.
학교에 아예 스마트 폰을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나라가 늘고, 수업 중에는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고 한다.
모든 게 스마트 폰으로 해결하는 세상이라 그런지 이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스마트 폰에 빠져 있다. 지금 당장 스마트 폰이 없어진다면 세상은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이다, 내 손 안에 스마트 폰이 없다는 것은 정신이 오락가락 할 정도로 불안한 심리가 동반할 것이다.
초등학생조차 으레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은 스마트 폰이다. 김천의 어느 전국 자율형 사립고는 학교에 아예 스마트 폰을 가지고 오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차별화 된 독서‧토론 수업 등. 결국 읽‧걷‧쓰 등을 통하여 사색하는 10대들을 키운다고 한다. 결국 ‘읽‧걷‧쓰’가 모든 학력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발달된 문명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유소득(有所得)이면 필유소실(必有所失)이요, 유소실(有所失)이면 필유소득(必有所得)이라’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다. 자동차로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자동차로 잃는 것이 있다. AI로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AI로 잃는 것이 있을 것이다.
우리 동네 조금만 김밥 집에도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주인아줌마는 되도록 김밥 한 줄도 키오스크로 주문하라고 한다. 거기다가 무인점포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아이스크림 가게, 커피 숍……. 이제는 구입자가 서비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서비스를 해서 물건을 구입하는 시대가 되었다. 무인점포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으려 해도 키오스크를 상대하여야 한다.
우선 시작을 누르고 상품의 바코드를 찍어야 한다. 다음에는 현금이냐 카드냐의 결제수단을 선택한다. 영수증을 출력할 것인가를 누르고 결제 버튼을 터치하여야 모든 작업이 끝난다. 물론 뒤에는 cctv가 감시의 눈을 번쩍이고 있다.
키오스크에 익숙한 젊은이들은 척척하지만 디지털에 익숙하지 못한 노인네들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면 은행창구는 줄어들고 디지털 문명에 익숙하지 못한 노인들은 대면 창구 은행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거대한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사소한 문명의 충돌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 거기다가 AI의 등장은 더욱 갈등을 심화 시키고 있다.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이 시대에…….
앞으로는 ‘세상은 AI를 쓰는 자, 못 쓰는 자로 갈린다’고 한다. 갈수록 디지털 원시인들은 고달플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키오스크도 제대로 사용 못하는 디지털 문맹들에게는…….
아무리 AI 시대라곤 하지만 ‘읽 ‧ 걷 ‧ 쓰’가 디지털 발전의 기초일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읽‧걷‧쓰' 해야 한다.
(옮긴 글)